장두봉 (1917~?)

張斗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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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1917년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송호리 조개섬에서 출생하여 서울 동성 상업학교 을조를 거쳐 1937년 4월 덕원 신학교 철학과에 진학하였다. 1943년 12월 5일 명동 대성당에서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사제품을 받았으나 폐결핵으로 평양교구 주교관에서 휴양하던 중 1944년 4월 순천 본당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가 11월 강계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해방이 되자 소련군의 진주와 공산당의 득세로 종교 활동에 제한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건강의 악화로 1946년 9월 이후 주교관과 본가에서 정양을 하다가 1949년 9월 중화 본당 주임을 맡아 불편한 몸으로 사목 활동에 진력하였다. 그해 12월 6일부터 신학생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 후에 원주교구장) 등을 대동하고 중화 본당 소속 공소를 순회하다가 공산당의 체포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은신하였으나, 12월 12일 검암리 공소에서 정치보위부에 체포되어 행방불명되었다
※ 참고문헌  張善興, 《붉어진 땅의 十字塔》, 갑진문화사, 1951/지학순, 《내가 겪은 공산주의》, 가톨릭출판사, 1976/ 평양교구 순교자사료 수집위원회 편, 《북녘 땅의 순교자》, 가톨릭출판사, 1999/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