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화 (1912~1990)

張炳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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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제2대 마산교구장. 세례명은 요셉. 1912년 7월 4일 대구시 남산동에서 장윤이(안드레아)와 지도쇠(데레사)의 5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1924년에 세례를 받았다. 서당에 다니다가 해성보통학교를 마치고 1926년 9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진학하여 1938년 6월 11일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라리보(元) 주교 집전하에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문산 본당 보좌를 거쳐 1939년 5월 진영 본당 주임, 1940년 8월 계산동 본당 주임, 1942년 7월 충무 본당 주임을 역임하였다. 1943년 8월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로 부임하였고, 1945년 9월 남산동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다가 1949년 6월 대구교구 경리부장이 되어 1954년 4월까지 재임하였다. 1954년 6월부터 1956년 6월까지 벨기에 루뱅 대학교에 유학하여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1956년 6월 진해 본당 주임이 되었다. 1957년 부산교구가 분할되자 3월 부산 중앙 본당 주임을 거쳐 1960년 1월부터 부산교구 부주교로 활동하며 1962년 10월부터 부산교구 유지 재단 이사를 겸하였고 1963년 3월 30일 몬시놀에 임명되었다. 1960년 7월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원조로 대구시 남부민동에 난민 주택 50동을 건립하였고, 10차에 걸쳐 부산시 여러 곳에 250세대 규모의 주택과 아파트를 건립하여 난민들을 도왔다. 1968년 9월 7일 제2대 마산교 구장에 임명되었으며, 병인순교 복자 시복식 다음날인 10월 7일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 부속 성당에서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 장관 아가지아니안 추기경의 주례로 주교로 서품되었고, 10월 30일 교구장에 착좌하였다. 1989년 2월 21일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였으며, 1990년 8월 3일 선종하여 8월 6일 경남 고성군 이화공원 묘원 내의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마산교구장으로 재임한 20년 동안 25개 본당을 신설하였고, 신자수는 2만 8천명에서 9만 1천명으로 증가하였다. 번역서로 《신은 참으로존재하는가?》(분도출판사, 1962) 등이 있다.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