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1915년 10월 25일 평북 의주에서 출생하여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마치고 덕원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료 후 병으로 요양하였다. 이후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병으로 다시 휴학한 뒤 신의주 본당과 평양 관후리 주교관에서 일하였다. 해방 후 덕원 신학교에 돌아가 학업을 계속하였으나 1948년 12월 공 산당에 의한 수도원 해산으로 주교관에 머물렀다. 1950년 1월 월남하여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사제직 준비를 마무리하고, 1950년 3월 20일 명동 대성당에서 노기남(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윤공희(빅토리노, 후에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와 함께 사제품을 받아 성가 기숙사의 지도 신부로 일하였다. 1950년 10월 21일 강현홍(요한) 신부와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사제로 국군을 따라 평양으로 가서 교구 재건에 노력하였으나 1951년 1 · 4 후퇴로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부산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의 재건 사업에 진 력 하다가 1953년 7월 12일 수녀원 지도 신부로 임명되었으며, 1956년부터 평양교구 신우회의 지도 신부를 맡았다. 1958년 10월 14일 지병으로 선종하여 용산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저서로 해방 직후부터 1950년까지 공산당의 박해를 받은 평양교구에서의 경험담을 담은 《붉어진 땅의 십자가》(갑진문화사, 1951 ;가톨릭출판사, 1997)가 있다.
※ 참고문헌 張善興, 《붉어진 땅의 十字塔》, 갑진문화사, 1951(가톨릭출판사, 1997 재간)/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崔起榮〕
장선흥 (1914~ 1958)
張善興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