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본당

長水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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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454-11 소재. 1977년 6월 30일 장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장수읍, 번암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수분 · 덕산 · 번암 · 하동 · 상동 공소 등 5개소. 〔교 세〕 1977년 919명, 1981년 857명, 1987년 1,371명, 1991년 975명, 1996년 829명, 2001년 1,086명. 〔역대 신부〕 초대 왕수해(王壽海) 세례자 요한(1977.6~1979.8), 2대 이종원(李鍾源) 토마스(1979. 8~1983. 1), 3대 박성팔(朴性八) 안드레아(1983. 1~1986. 1), 4대 강덕행(姜德幸) 요셉(1986. 1~1992.1), 5대 김영태(金永泰) 토마스(1992. 1~1994. 1), 6대 정양현(丁良鉉) 베드로(1994. 1~1996. 2), 7대 서광석(徐光錫) 요셉(1996. 2~1998. 1), 8대 강명구(姜明求) 요한 보스코(1998. 1~2001. 8), 9대 전종복(全鍾福) 사도 요한(2001 8~현재).
장수 지역을 관할하는 장계(長溪) 본당이 1954년 신설되었을 때 장수읍에는 장수 공소가 있었다. 장수 공소는 장계 본당 관할로 운영되었다. 장계 본당 4대 주임이었던 성민호(成珉浩, 야고보) 신부는 1965년 구호 물자와 장수 공소 신자들이 마련한 자금으로 공소 건물로 사용할 8칸 초가가 딸린 부지 700평을 매입하였다. 이후 장계 본당 6대 주임 김병운(金柄韻, 베네딕도) 신부는 1973년 2월 기존 공소 건물과 부지를 매각하고 현 장수 본당 소재의 부지 500평을 매입한 뒤,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0평 규모의 강당을 마련하였다. 이때부터 장계 본당 주임 신부는 매주 공소를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행하였으며, 그러한 가운데 공소는 차츰 본당으로 설립될 수 있는 기틀을 갖추어 나갔다. 이에 장계 본당 9대 주임 김봉희(金鳳熙, 요한) 신부는 1976년 10월부터 본당의 분리 신설을 계획하고 기초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장수 공소를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77년 6월 공소는 장수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에 왕수해 신부가 임명되었다. 왕수해 신부는 평신도 활동 단체인 베드로회를 구성하여 신자 상호 간의 신심 향상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고, 공소 신자들 간의 유대 강화를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2대 주임 이종원 신부는 신용 조합을 창립하였고, 베드로회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그것을 개편하여 요셉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성팔 신부는 성당 개축을 제안한 뒤, 1983년 3월 '성당 개축 추진 위원회' 를 구성하여 5월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한파로 인해 한동안 공사를 중단하였다가 1984년 6월 개축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4대 주임 강덕행 신부가 재임하고 있던 1987년 4월에는 한국 가톨릭 농민회 전북연 합회 장수협의회가 창립되었고, 회원을 중심으로 '농수산물 수입 반대' 와 농가 부채 탕감' 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다. 강덕행 신부는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성당을 개축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91년 12월 새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다. 6대 주임 정양현 신부 재임기였던 1994년 4월 단층 성당(98평)이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지상 2층 60평 규모의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이어 이듬해 1월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7대 주임 서광석 신부는 신자들의 신앙 쇄신을 위해 힘을 쏟았고, 9대 주임으로 부임한 전종복 신부는 2002년 10월 총회를 소집하여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수분리 공소 주변에 신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을 수립하였고, 그 가운데 우선 신자들이 피정 할 수 있는 '쉼터' 를 마련하였으며, 이어 기도원을 마련하려고 준비 중이다. (→ 전주교구 ; 장계 본당)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천주교 전주교구, 199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