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4동 123-11호 소재. 1978년 8월 18일 전농동(典農洞)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자. 관할 구역은 동대문구 장안2 · 3 · 4동 전역, 장안1동 · 전농3동 일부 지역과, 답십리4동 1-4, 산 42번지, 휘경동 43, 49번지. 〔교 세〕 1978년 1,136명, 1982년 2,916명, 1986년 5,362명, 1990년 6,336명, 1994년 6,412명, 1999년 5,756명, 2002년 5,600명. 〔역대 신부〕 초대 김정직(金正直) 디오니시오(1978. 8~1983. 8), 2대 박고빈(朴槁斌) 시메(1983.8~1988.8), 3대 최치규(崔致奎)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8. 8~1993. 10), 4대 한정관(韓貞瓘) 바오로(1993. 10~1998. 9), 5대 임덕일(林德一) 아마투스(1998. 9~2003.9), 6대 박규흠(朴圭欽) 베네딕도(2003. 9~현재).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서울시의 도시 계획에 따라 장안 지역의 전답이 서서히 대지화되었고, 늘어가는 인구에 비례하여 신자수도 증가해 갔다. 이에 서울대교구에서는 전농동 본당에서 장안동 본당의 분리 · 신설을 계획한 후, 1974년 12월 30일 현 본당 위치의 대지 533평을 매입하였다. 이후 두차례에 걸친 성전 신축 모금 운동을 전개하던 가운데 1978년 8월 18일 장안동 본당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신자수는 261세대 1,048명이었고, 전농동 본당 관할 구역인 장안1 · 2동, 답십리4동, 면목5동, 전농3동 지역을 이관받았다. 초대 주임 김정식 신부는 1978년 9월 9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111번지 12호에 소재한 신자 곽재흥(郭在興, 필립보)의 건물 2층 30평에 임시 성당을 마련하여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1978년 9월 27일에는 이전에 매입해 두었던 대지 위에 연건평 447평 예정으로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1 · 2차로 나누어 건축하기로 하여 1979년 6월 9일 1차로 지하와 지상 1층 총285평을 완공하여 현판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7월 2일 장안동 130번지 3호 대지 83평을 매입하여 사제관 부지를 마련하였다. 이후 2차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대교구의 19개 본당과 1개 수도 단체를 방문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한 후, 1981년 4월 2일 2차 공사가 착공되어, 10월 초순에 준공되었고, 1982년 9월 27일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성당 건축 공사가 진행되던 가운데 1980년 2월 21일 본당에는 성체 수녀원 분원이 개설되었으며, 여러 단체들이 창설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대 주임 박고빈 신부는 성당 완공 후 부속 건물 신축을 추진하여 1985년 5월 13일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 성물 판매소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같은 해 9월 완공하여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처럼 성당과 부속 건물들의 신축을 마친 장안동 본당은 이후 본당의 내실화에 충실하였다.
4대 주임 한정관 신부는 1998년 9월 19일 본당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심을 기리고 모범으로 삼기 위해 순교자 현양 칸타타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5대 주임 임덕일 신부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2003년 4월 20일부터 일 주일간 기념 사진전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중순부터 반별로 돌아가며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며 모은 300만원의 기금을 바탕으로 6월부터는 쉬는 교우 가정에 대한 집중적인 가정 방문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7월 18일 '쉬는 교우를 위한 공동 고해성사 및 특별 미사' 를 통해 250여 명의 쉬는 교우들이 본당을 찾게 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白秉根〕
장안동 본당
長安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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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