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동 본당

長位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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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233-53번지 소재. 1968년 10월 18일 미아동(彌阿洞,현 길음동) 본당과 이문동(里門洞)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관할 구역은 장위1 · 2 · 3동 전 지역과 상월곡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1,400명, 1974년 2,535명, 1978년 3,222명, 1983년 4,881명, 1987년 6,980명, 1992년 5,441명, 1995년 6,000명, 1998년 4,423명, 2001년 4,981명.
〔역대 신부〕 초대 게러티(B. Geraghty, 지) 베르나르도 (1968. 10~1971. 1), 2대 호간(J. Hogan, 강) 요한(1971.1~1975.5), 3대 양홍(楊弘) 에우세비오(1975. 5~1980. 5), 4대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1980. 5~1985.8), 5대 김영환(金永煥) 바오로(1985. 8~1990. 9), 6대 안상인(安商仁) 요셉(1990. 9~1992.9), 7대 함세웅(威世雄) 아우구스티노(1992. 9~1997. 10), 8대 현동준(玄同準) 세례자 요한(1997.10~2001.3), 9대 송명은(宋明銀) 요셉(2001.3~현재).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아리 본당 관할에 속했던현 장위동 본당 관할 구역은 거의 대부분이 농경지와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주택 단지가 조성되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게 되자,1967년 하반기에 이르러 오석근(바오로)을 비롯한 소수의 신자들이 성당 건립의 필요성을 논의하였다. 이듬해 4월,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파악하고 본당 설립을 계획하고 있던 왕십리 본당 3대 주임 게러티 신부는 오석근의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미사가 끝난 뒤 신자들은 '신우회' 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본당 설립을 준비하였고, 곧 이어 장위동 233번지 53호 소재의 부지를 매입하여 그 대지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여름부터는 공사를 시작하여 건물의 1층이 완공되자 노천에서 거행하던 미사를 공사가 진행 중이던 건물 1층에서 봉헌하였다. 마침내 10월 18일 장위동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이때 본당 사목권이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로 위임되어 초대 주임으로 본당 설립을 위해 노력해 온 게러티 신부가 임명되었다. 게러티 신부는 일반 주택을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공사를 진행하였고, 1969년 11월 임시 성당을 완공하였다. 또한, 공사 중이던 1969년 9월 22일에는 전입자가 증가하고 본당 신자의 수가 늘어나자 전교 활동을 알리고 간단한 교리 지식을 나누기 위하여 본당 주보를 창간하였다. 1970년 11월에는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 호간 신부는 신자수의 증가로 신자들이 임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자 1972년 3월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5월 단층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75년 5월 25일에는 본당 관할권이 교구로 이관됨에 따라 3대 주임으로 양홍 신부가 부임하였다. 양홍 신부는 부임 직후부터 각종 신심 단체를 정비하고 사목회를 확대 개편하는 등 본당 운영 체제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976년 3월 양홍 신부는 유신 헌법의 발효로 인해 개최된 시국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당국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후부터 양홍 신부는 사회 변동에 관심을 기울이며, 강론과 주보를 통해 신자와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양홍 신부는 본당이 안정되고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교리실, 회합실의 증축이 요구되자, 1978년 9월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3월 3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이어 10월에는 본당 설립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염수정 신부는 본당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981년 1월 장위동 233-453번지의 대지와 지상 건물 67평을 매입하였다. 1983년 2월에는 장위동 233-452번지의 대지 62평을 매입하였고, 1984년 1월에는 장위동 233-454번지의 대지 일부(9평)를 매입하였다. 1984년 4월 그동안 마련한 대지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8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성당(960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5대 주임 김영환 신부는 1989년 3월 새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5월 7일 본당 주보 1천호 특집호를 발행하였다. 7대 주임 함세웅 신부는 1993년 1월 수녀원 건립을 위한 대지와 건물을 매입하였고, 1997년 3월부터는 임영하 변호사를 초빙하여 신자 및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법률 상담을 실시하였다. 8대 주임 현동준 신부는 1998년 10월 14일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2000년 8월에는 본당 첫 가두 선교를 실시하였다. 2001년 9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명은 신부는 소공동체 운동과 복음 나누기를 통한 내실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위동 본당은 1971년 1월 상계동(上溪洞) 본당, 1978년 6월 석관동(石串洞) 본당, 1983년 8월 번동(樊洞) 본당을 각각 분리하였다. → 서울대교구 ; 길음동본당)
※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교구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金善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