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1933~ )

張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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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제3대 춘천교구장. 세례명은 십자가의 요한. 1933년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장면(張勉,세례자 요한)과 김옥윤(金玉允, 마리아)의 5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46년 9월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6 · 25 전쟁으로 도미하여 1952년 6월 미국 펜실바니아 주 버나드 스쿨을 마치고, 1956년 6월 일리노이 주 메리놀 신학대학을 졸업하였다. 1957년 7월 벨기에 루뱅 대학교 철학과를 마친 다음 대학원에 진학하여 1958년 7월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9년 7월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해 9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 입학하여 1963년 7월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3년 3월 30일 인스부르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963년 9월부터 루뱅 대학교에서 연구하였으며, 1967년 4월 대방동 본당 보좌, 그해 8월에는 서울대교구장 비서를 맡았다. 1970년 1월 정릉 본당 주임을 거쳐 1974년 9월부터 1년간 국립 대만 대학교 중문연구소에서 수학하였고, 1976년 1월 서울대교구 공보실장 및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1월부터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연구원, 1978년 9월부터 1993년 8월까지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고, 1986년 8월부터 1990년 9월까지 서울대교구 사목 연구실장, 1990년 9월부터 1994년 11월까지 세종로 본당 주임으로 있었다. 1993년 9월부터 1995년 1월까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겸하였다. 1978년 4월부터 1985년 4월까지 교황청 비그리스도교 평의회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1980년 10월부터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교황 방한과 한국 순교자 시성 준비의 실무를 맡았고, 1984년 10월 103위 시성식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어를 교수하였다. 1987년 6월 비동맹 정상 회의에 교황청 옵서버로, 1988년 10월 교황청 특사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1994년 11월 20일자로 제3대 춘천교구장에 임명되어 12월 14일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주교에 수품되고 교구장에 착좌하였다. 1995년 12월부터 2000년 7월까지 교황청 종교 간 대화평의회 대의원을 맡았다. 주교 회의 상임위원, 문화위원회 위원장, 성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2003년 현재 주교 회의 상임위원회 총무와 천주교 용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0년 5월 한림대학교에서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세속 안에서의 자유》(한스 큉, 분도출판사, 1971),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요셉 라싱어, 분도출판사, 1974),《복음서가 말하는 공동체상》(헤르만 헨드릭스, 가톨릭출판사, 1987), 《성서의 상징 50》(미셀 크리스티안스, 분도출판사, 2003) 등 다수가 있다. (→ 장면)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