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가(道家) 초기의 사상가. 본명은 장주(莊周). 도가의 시조인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한 장자의 철학은 '무위자연' (無爲自然)으로 대표된다.
〔생 애〕 장자의 생몰연대에 대한 정설은 없다. 다만,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 ~85?)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한다. 또한 일찍이 몽(蒙 : 현 중국 하남성 商丘市 동북 지역)이라는 곳에서 칠원리(漆園吏)를 지냈다고 한다. 장자에게는 혜시惠施, 기원전 370?~310?)라는 말벗이 있었는데, 그는 중국, 고대의 논리학파인 명가(名家)의 대표적 인물이며 , 위(魏)나라 재상을 역임하였다. 장자는 혜시와 자주 만나 철학적 문제들을 토론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에 근거해 그의 생몰 연대를 추정하면, 기원전 35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75년경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강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초(楚)나라 위왕(威王, 기원전 339~329)이 장자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초빙하여 재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하지만 장자는 초나라 위왕이 보낸 사신에게 자기는 차라리 진흙투성이인 개천에서 사는 물고기 신세가 될지라도 군주에게 속박당 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말로 사양하였다고 한다.
〔사 상] 장자 사상의 주축을 이루는 개념은 천(天)과 도(道)와 자연이다. 《장자》에 나오는 천(天)이라는 낱말의 용례들을 검토해 보면, 천공(天空)과 천지(天地)와 천연(天然)의 의미로 나눌 수 있다. 천공의 천은 창공처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며, 천지의 천은 우주 전체를 의미하며, 천연의 천은 자연과 동의어이다.
도(道)는 광대하여 일체를 포괄하고 있는 천지를 성립 · 유지 · 전개시키는 것이다. 장자는 "도는 진실로 있으며 무위무형(無爲無形)하며, 마음으로 전할 수 있으나 언어로 전수받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 터득할 수 있으나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스스로 근본이 되어 천지가 있기 이전에 예부터 원래 있어 왔으며, 귀신과 상제를 주재하며 천지를 생성한다" (《莊子》, <大宗師>)라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그에게 있어서 도는 일체 존재와 힘의 근거이다. 천지만물이 존재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도가 그 근거로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가 존재하고 움직이기 위하여 그 이외의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도는 "스스로 근본이 된다" 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이 자기의 근본을 이루는 도는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데, 이것이 '무대' (無待)이다. 이러한 성격의 도는 현상계의 어떤 존재와도 같지 않다. 현상계의 사물 · 사건들은 다른 것에 의존하면서 존재한다. 그러나 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아니하고 대비(對比)를 넘어서 존재한다.
일체 대비를 초월한 도는 그 짝이나 대상이 없다. 그러기에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감각 · 사려 ·감정 등이 없다. 즉 도는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지 않으며, 사유하거나 욕구하지 않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한 도는 무엇에 대하여 말하지도 않고 어떤 것을 만들지도 않는데, 이것을 '무위' (無爲)라고 한다. 도는 무위할 뿐 아니라 자연하다. 이때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을 뜻한다. 도는 사물들과 달리 그 이외의 존재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위진(魏晉)시대 서진(西晉)의 철학자인 곽상(郭象, ?~312)이 지적한 것처럼 자연은 '사연(使然)' , 즉 '시켜서 그러한 것' 이 아니다. 자연이 주동적 · 능동적이라면, 사연은 피동적 · 수동적이다. 도는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위에서 그것을 시키는 존재가 있을 수 없다. 도는 그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 의하여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존재를 성립시키며, 자기 조절을 하면서 스스로 움직여 간다. 천지만물의 본체인 도가 자기의 본질적 성향에 따라 스스로 존재하고 움직이듯이 인간도 자기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장자는 이상적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자연에 따르는 삶이라고 하였다.
자연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수한 수양 공부가 필요하다. 장자는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의 수양 공부를 제시하였다. 심재는 마음 속의 욕념을 씻어 내버리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물든 마음을 씻어 내버리면 마음이 텅비게 되고, 마음이 텅비게 되면 영험해진다고 하였다. 좌망은 정좌(靜坐)하고서 자아·사회 · 자연 등 일체 대상들을 잊어버리는 정신적 경지이다. 그러한 경지에서 조철(朝徹) · 견독(見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철은 수도하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환하게 깨치는 것이며, 견독은 독자적인 실체인 도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허정(虛靜)한 마음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장자는 도에 대한 깨달음을 조철과 견독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저 작〕 그가 집필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불리는데, 위진(魏晉)시대에는 《노자》(老子) ·《주역》(周易)과 함께 '세 가지 현묘한 책' 〔三玄〕 가운데 하나로서, 당시 명사(名士)들이 즐겨 담론거리[談資]로 삼았다. 이 책은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도덕경》(道德經)보다 더 분명하며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뛰어난 장자 연구가로 평가한 곽상(郭象)은 장자의 저작에 처음으로 주석을 달았고, 장자의 위치를 도가 사상의 원류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장자》는 바로 곽상본(郭象本)이다. 곽상본은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등 33편으로되어 있다.
서기 1세기경에 활약하였던 한나라 역사가 반고(班固, 32?~92)가 지은 《한서》(漢書)의 <예문지>(藝文志)에는 《장자》가 내편 7편, 외편 28편, 잡편 14편, 해설 3편 등 모두 52편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장자》는 반고가 보았던 《장자》보다 19편이 적은 것이다.
〔영 향〕 장자의 사상은 노자와 함께 도가 사상의 주축을 이룬다. 또한, 그의 사상은 중국 불교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詩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불교 특히 선(禪)불교의 학자들도 장자의 책을 많이 인용했다. 도가 사상은 유가 사상과 함께 중국의 양대 사조로서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유가 사상이 정치 · 교육 윤리 · 도덕 등 인간의 공동 생활 영역에서 주로 기능을 발휘하였다면 도가 사상은 종교 · 문학 · 예술 · 의술 · 기공 · 무술 등 개인 생활의 영역에서 주로 영향을 끼쳤다. 중국 동한 (東漢) 때 장릉(張陵, 또는 張道陵, 34~156)이 노자와 장자 사상에 근거하여 종교 단체를 만들었는데, 이를 도교(道敎)라고 한다. (→ 도가 ; 도교)
※ 참고문헌 郭慶藩 撰, 《莊子集釋》, 臺北 世界書局, 1968, 再版王先謙, 《莊子集解》, 臺北 三民書局, 1963, 初版 이강수, 《노자와 장자》, 길 출판사, 1997. 〔李康洙〕
장자 (기원전 355? ~ 375?)
莊子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