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지도서(指導書).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meux, 張敬一) 주교에 의해 1857년 8월 2일자로 반포되었다. 베르뇌 주교는 1857년 3월 25일 다블뤼(Daveluy, 安敦伊) 보좌 주교의 성성식(成聖式)을 거행한 후, 3월 26일부터 3일간 최초의 조선교구 성직자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결의된 사항이 사목 서한을 통하여 반포되었다. 즉 일반 신자들에게는 《장주교윤시제우서》로, 성직자들에게는 1858년 4월 라틴어로 발표된 것이다. 이 서한은 회람 형식으로 전달되어 신자들에게 베껴 두게 하였으며, 수신인은 공주(公州)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와 전라도의 모든 신자로 되어 있다.
《장주교윤시제우서》는 신자들이 평소 힘써야 할 행동 지침과 도리(道理), 성사(세례 · 견진 성체 · 고해 · 종부 · 혼배) 및 영해회(嬰孩會) 규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뇌 주교는 먼저 조선에 입국하여 신자들의 영혼을 구하는 데 진력했던 자신의 입장을 소개한 후, 신자들이 평시에 또는 미사 및 모든 예절 때에 갖추어야 할 몸가짐과 자세, 그리고 남녀 간에 조심해야 할 사항 등을 적고 있다. '도리' 에서는 도리를 모르는 자는 구령(救靈)할 방법이 없다고 전제한 뒤,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도리 공부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한편,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본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성사' 에서는 신품성사를 제외한 여섯 가지 성사를 설명하는 가운데, 이단(異端)의 물건을 두는 자는 고해를 못할 뿐만 아니라 공소에도 오지 못한다고 하여 이단을 경계하였고, 혼인에 있어서는 자녀의 의사를 존중할 것과 과부의 재혼을 권고하는 등 당시의 사회 관습과는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어 부록으로 수록한 영해회 규식에는 영해회에 대한 내용과 몇 가지 서식(書式)이 소개되어 있다. 영해회는 고아(孤兒)나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棄兒)를 거두어 양육하는 단체로, 베르뇌 주교는 신자들에게 영해회 운영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천주교회가 전개하였던 사회 복지 사업의 일단을 엿볼수 있다. 한편 이 서한은 간행된 적은 없으나, 그 뒤 《한국 교회 지도서》에 부분적으로 수록되었고, 많은 필사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참고문헌 《장주교윤시제우서》, 1857. 〔白秉根〕
《장주교윤시제우서》
張主教輪示諸友書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