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여 (1837~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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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성인장주기(張周基, 요셉)의 재종(再從)으로 제천 배론에서 살며 부모에게 천주교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계명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해도 탓하지 않고 양자를 데려다 기르며 화목하게 살았다. 그의 양아들도 그에게 천주교를 배워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처자를 거느리고 서울 백동(栢洞)으로 가서 천한 일을 하면서 신앙 생활을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869년 4월 14일 아내 이 바르바라 등 10여 명이 포교에게 붙잡혀 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는 피신하여 체포를 면하였다. 가족을 모두 잃고 의지할 데 없이 외롭게 지내던 그는 역시 과부가 되어 홀로 쓸쓸하게 지내던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의 당질녀 홍씨를 만나 재혼하였다. 그들 부부는 만약 체포되면 함께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굳게 언약하였는데, 재혼한 지 1년 만인 1871년 5월 포교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 부부는 처음에 굳게 약속한 대로 낳은지 3일밖에 안 된 자식을, 자식이 없어 데려다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좋은 낯으로 붙잡혀 가서 내외가 함께 좌포도청 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숙모 방 프란치스카와 재당질 장사진도 그들 부부와 함께 체포되어 좌포도청 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순교할 당시 장한여의 나이는 35세였다.
※ 참고문헌  《치명일기》/《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병인 치명 사적》 23권, pp. 6~8. 〔徐鍾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