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조

再創造

[라〕recapitulatio · [영〕recapit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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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재창조.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재창조.

세상의 종말 때 태초에 창조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완성하는 것. 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 구원을 위해 육화함으로써 아담으로 잃은 것, 즉 하느님의 모상과 하느님의 유사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전(全)생애 역시 타락한 인간의 원초적인 소명을 회복시키기 위한 재창조의 신비이다(사목 38항, 57항 ; 《가톨릭 교회 교리서》 518항). '재창조'란 의미로 사용된 라틴어 '래카피툴라시오' (recapitulatio)는 본래 '총괄 갱신'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창조와 구원] 하느님의 구원 경륜은 태초의 우주 및 인간 창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의 재창조,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끝나는 거대하고 장엄한 구원 과정이다. 하느님이 주도하는 구원의 역사에는 의미가 있고 성취될목적이 있다. 사물의 시작은 끝을, 미완성은 완성을 지향하고 만사는 종국적(終局的)인 목표를 향해 진행된다. 가능성은 현실성을, 현실은 이상을, 존재는 당위(當爲)를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미래로 향해 열려 있고, 세계는 미래의 그 어느 때에 완성되기를 바라면서 희망 속에 살아간다. 구세사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을 인류와 세계에 베푸는 사랑의 전개 과정이다. 창조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무상적 은혜-하느님 자신의 선성(善性)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일방적증여 행위-이다. 육화와 구원은 성자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초월성과 절대성, 즉 하느님은 사랑 자체임을 증거한다. 성화 활동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이 인간과 세계를 당신과 일치시킴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완성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어 죄로 죽을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저주받을 인간을 천상 영광으로, 비참한 인간을 성자의 모습을 띤 완전한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과 부르심에 응답하여 구원될 뿐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구원은 완전한 인간 회복이요, 되어야 할 인간이 됨이며, 하느님을 버림으로써 낙원을 잃은 인간(창세 3,22-24)이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낙원을 다시 찾음(묵시 21, 1-8 : 22, 1-5)이다. 구원은 인간성의 궁극적인 완성, 곧 인간이 신성(神性)에 참여하여 하느님과 일치함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만인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인간 상호 간에 완전한 평화를 누림이요, 또 인간과 만물 간의 조화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고 하느님의 통치 아래 온전히 복속(服屬)됨이다(1고린 15, 26-28).
〔종말과 구원, 재창조] 창조의 완성은 세상 종말-인류 역사와 우주 만물의 종말-에 이루어지고 신약성서에서는 이때를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일시한다.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구원 경륜을 온전히 성취시킨다. 창조에서 비롯된 구약의 역사가 오실 구원자를 고대했듯이, 오신 그리스도에서 비롯된 신약의 역사는 재림 할 구원자를 고대한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새 세계로 들어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하느님의 백성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으나, 아직도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구원은 얻지 못한 채 죄악의 유혹과 슬픔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예언자는 하느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을 바라보았다(이사 65, 17 66, 22). 종말적 구원이 성취되는 새 하늘과 새 땅 및 새 예루살렘의 건설은 묵시록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느님이 태초에 창조한 모든 것은 사라졌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처럼 아름답게 단장하였다(묵시 21, 2 ; 19, 7-9). 새 예루살렘은 구원된 백성인 교회가 영원히 머물 곳이다. 구원자인 하느님이 영원히 인간과 함께 계시며 당신 백성을 위로하고 친히 돌본다. 이제슬픔이나 고통, 죄와 악, 죽음은 없어진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악마의 권하에 속하고 옛 것과 묵은 세상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묵시 21, 1-4). 이제 천상 도성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넘치고 하느님의 현존이 찬란한 광채 속에 빛난다(묵시 21, 10 : 에제 43, 5). 그 도성에는 성전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묵시 3, 12 : 7, 15) 성전이 없는 것으로도 되어 있다(21, 22). 전능하신 하느님과 어린 양이 계신 곳에는 그 어떤 다른 성소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어린양의 찬란한 광채는 다른 어떤 빛 (발광체)도 거부한다. 그래서 태양이나 달이 필요없게 된다(21, 23). 그 도성은 만왕의 왕이요 영원한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이므로 세상 만민과 왕들이 하느님과 주님께 경배를 드리며 예물을 바친다(21, 24).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순교자)과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자들 뿐이다(21, 27 : 3, 5 : 13, 8 : 17, 8 : 20, 12. 15). 그리고 그 도성에는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도성의 넓은 거리를 흐르는 생명수를 내는 강이 있다(묵시 22, 1 : 창세 2, 9 -10 : 에제 47, 1-12) . 생명의 나무는 에제키엘서에 나오는 나무처럼 강 양편에 있고 달마다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된다. 이 열매는 천상 도성의 거주자가 먹을 불사의 음식인 것 같다(창세 3, 22). 그리고 그 도성을 더럽히는 자나 물건은 아무것도 그곳에 있을 수 없음은 거룩한 하느님의 옥좌와 어린 양의 옥좌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종들이 하느님을 친히 뽑고 경배하며 그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지게 된다. 그들은 영원히 하느님께서 소유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묵시 3, 12: 14, 1). 그들은 이제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통치하게 되고, 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께 영원히 찬미와 감사와 영예와 영광을 드리게 된다(22, 5 ; 7, 12).
마침내 창조 전부터 계획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완전히 이루어진다. 구세사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이고 마침인 주 예수 그리스도(22, 12) 안에서 하느님이 주도하고 끝맺는다. 결국 성서의 이야기는 인간이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아 행복으로 끝맺는 이야기요, 역사와 시간을 완전히 초월하는 영원한 새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종말적 구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오소서, 지체하지 말고 속히 오소서" 라고 외치고, 주님은 "내가 곧 오겠다" (22, 20)라고 말한다.
〔재창조와 신자들의 역할] 하느님의 말씀은 "완전한 인간" 으로서 세상의 역사 안에 들어와서 그 역사를 당신안에 받아들이고 새롭게 재창조하였다(사목 38항). 그리고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이 새로운 창조를 지상에서 시작해 마지막 날에 완성할 것이기에 평신도들은 교회의 이상을 수행하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영적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이행해야 한다(평신도 5항). 또한, 평신도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하여야 한다(평신도 7항).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며, 마지막 날에 완성된 구원, 즉 재창조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구원 ; 종말)
※ 참고문헌  Jean Corbon, trans. by Violet Nevile, Path tofreedom,Sheed and Ward, New York, 1969/ Claus Westermann, trans. by Omar Kaste, The old testament and Jesus Christ, Augsburg Publishing house, Minneapolis . Minnesota, 1968/ William A. Van Roo, S.J., The Mystery, Gregorian University Press, Rome, 1971/ Bernhard W.Anderson, The unfolding drama of the Bible, Association Press, NewYork, 1976. [李弘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