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권

抵抗權

[라]ius resistendi · [영]right of 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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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권은 폭군 방벌론에서 시작되었다(프랑스 루이 16세의 처형) .

저항권은 폭군 방벌론에서 시작되었다(프랑스 루이 16세의 처형) .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통치권자나 국가 권력 소유자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다른 모든 합법적인 보호 수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그러한 보호 수단을 행사하더라도 실효성을 예견할 수 없는 경우, 공개적으로 복종을 거부하거나(소극적 저항 : 교회는 이에 대한 근거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 드리시오" [마태 22, 21]에서 찾는다) 실력을 행사하여(적극적 저항 : 메스너[J.Messner] 추기경은 이를 '국가 권력의 악용에 대한 국민의 조직적 방어' 로 정의하였다) 저항하는 권리나 의무. 따라서 저항권은 현존하는 사회 상태나 국가 상태를 변경하기 위한 혁명권이 아니라, 현행 법질서와 헌법 질서를 유지하거나 재건하기 위한 긴급권이다. 일명 '반항권' (反抗權)이라고도 한다.
저항권은 '폭군 방벌론' (暴君放伐論)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저항권은 고도의 가치, 곧 자연법을 근거로 불법한 국가 권력에 대하여 실력으로 대항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실정법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인권으로서의 저항권)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헌법 국가에서는 헌법 수호를 위한 수단(헌법 수호 수단으로서의 저항권)으로 변하였다. 국민 주권, 기본권, 권력 분립으로 특징지어지는 근대 헌법 국가에서 저항권은 오직 '최후의 비상 수단' (ultimaratio)일 뿐이다. 실정법을 초월하는 또는 실정법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저항권은 제정법에 선존(先存)하며, 제정법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 효력을 가지는 질서 속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역사적 전개〕 저항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시인 소포클레스(Sophocles, 기원전 496?~406)의 작품 《안티고네》(Antigone)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에서는 치체로(M.T.Cicero, 기원전 106~43)나 세네카(L.A.Seneca, 기원전 4~서기 65) 등이 폭군 방벌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리스에서는 폭군을 살해한 자를 재화를 주어 격려했고, 로마도 제정 시대에 폭군을 참살(斬殺)하였다고 전해진다.
게르만 사회의 봉건 제도에서 영주는 봉신(封臣)을 보호하고 배려할 의무를 지며, 봉신은 영주에게 복종할 의무를 가졌다. 그러나 영주가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 않을 경우 봉신의 복종 의무는 끝나고, 봉신은 영주를 떠날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법에 따르면, 봉신은 영주를 떠나기 전에 복종 의무가 종료되었음을 공개적으로 통지해야 하였다(diffidatio) . 모든 충성 관계는 법률 관계이며, 충성 관계의 합(合)은 봉건 국가의 법질서였다. 봉건 국가에서 통치권은 관습법적으로 또는 계약으로 확정된 충성 관계를 근거로 행사되었다. 통치자는 자신의 즉위시 명시적으로 승인한, 전래된 법을 보호하고 그 법에 복종해야 했다. 만일 통치자가 불법을 행하면 그것은 충실 의무와 함께 전래된 법을 어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항이 요청되었다. 충실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는가의 여부 및 봉신(들)이 저항권을 행사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봉신들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저항권은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공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어떠한 공권도 하느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있을 수 없으며 기존하는 공권은 하느님으로부터 명을 받은 것입니다"(로마 13, 1 : 저항권의 부정)와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사도 5, 29 : 저항권의 인정)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이교도 황제의 지배가 끝나는 4세기까지신자들의 삶은 인고(忍苦)의 시간들이었다. 당시의 저항은 소극적 저항, 곧 황제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의 형태로만 행하여졌으며 그 결과는 순교였다. 그러나 신자인 황제가 지배하게 되자 통치자는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직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자 신자인 신민(臣民)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신자인 통치자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동방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인 요한 그리소스토모(347~407)는 하느님이 세워 준 것은 군주직이지 군주직의 소유자에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설파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중세 초기의 신학적 입장은 다음과 같다. '신자인 통치자는 교회의 형벌권 아래 있다. 교회는 통치자가 하느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통치자를 신자로서 벌하는 것이며, 교회가 통치자를 파문하는 경우 교회는 통치자에 대한 신민의 복종 의무를 해제한다. 따라서 저항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밖에 있는 권위이다. 통치자가 교회를 부정하거나 신정법이나 자연법을 위반하는 경우에 저항권이 인정된다. 이렇게 통치자에게 형벌을 과하고 퇴위시키며, 그 신민으로 하여금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회(특히 교황, 경우에 따라서는 주교)의 입장은 중세에 황제와 교황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조직적 사회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당대 최고의 라틴어 저술가였던 존(John of Salisbury, 1115~1180)은 고대적인 사고를 원용하여 법을 준수하지 않는 통치자에 대한 저항은 물론 심지어는 폭군 살해까지도 정당하다고 설파하였다. 묵시적으로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고 이해되는 개인은 그가 폭군과 충성 맹세를 하지 않은 한 하느님의 계시와 자연법을 위반하는 통치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 저항권 이론을 기초한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사도행전 5장 29절에 대응하여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저항권을 "악한 군주에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강도에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과 같다" (Ⅱ, II, 69, 4)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찬탈자' (tyrannus ex defectu tituli)와 '처음에는 정당하였으나 후에 폭군으로 타락한 지배자' (tyrannis exerci-tio)를 구별한 후, 전자는 누구나 살해할 수 있지만, 후자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하였다. 폭군 살해론이 점점 더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자,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서는 1415년에 폭군 살해를 금지하였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저항권 행사 수단으로써 폭군 살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그러나 1944년 7월 20일의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 암살 계획이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 계획 · 수행되었다는 것과 많은 그리스도교인 작가들은 경우에 따라서 독재자 살해가 정당화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11세기가 12세기로 변하는 시대에 살았던 논쟁가인 라우텐바흐의 마네골트(Manegold von Lautenbach)는 저항권을 둘러싼 논의에 새로운 사고를 도입하였다. 그는 통치자직의 기초를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나 자연법적 원리가 아닌 법적 · 역사적으로 이해된 '복종 계약' (pactumsubiectiones)에서 찾았다. 이로써 게르만적 상호 충실 의무와 로마법적 계약 형태가 결합되었다. 이러한 복종 계약과 지배 계약으로부터 통치자의 특정 의무가 도출된다. 만일 통치자가 이러한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폭군이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복종 의무에서 해방되어 폭군을 퇴위시킬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인 마르실리오(Marsilio da Padova, 1280?~1343)는 이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정치 권력의 소지자는 '국민' (uni-versitas civium)이며, 국민은 이 권력을 지배 계약을 통하여 통치자에게 위탁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국민 주권 사상에 이르렀다. 14세기 초 이래 왕권이 확립되고 16세기에 종교가 분리되면서 게르만의 봉건법적 충실 의무의 전통과 그리스도교적 복종의 전통은 신분 국가에서 결합되게 되며, 문서를 통하여 보증된 저항권은 신분 국가의 본질적인 구성 원리가 되었다.
종교 개혁론자들의 태도는 일정치 않다. 루터(M.Luther, 1483~1546)는 저항권을 부인하는 반면-그런데 루터는 초기에 모든 형태의 적극적 저항을 부인하였으나, 종교 개혁의 성공 여부가 위험해지자 영주에 한하여 황제가 권력을 남용한 경우 저항이 허용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견해도 있다-츠빙글리(H. Zwingli, 1484~1531)는 시민의 저항 의무를 강조하였으며, 칼뱅(J. Calvin, 1509~1564)은 신분의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16세기 후반의 종교 전쟁 기간 동안 저항권은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며, 이에 대한 결론적인 입장은 네덜란드의 칼뱅파 정치이론가인 알투시우스(J. Althusius, 1557~1638)에게서 발견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저항권은 질서 잡힌 절차 체계, 지배 관계가 법률 관계로 간주되는 신분 공동체의 통합적 구성 요소이다. 스페인 예수회의 신부인 수아레스(F.Suárez, 1548~1617)와 스페인의 역사가인 마리아나(J. deMariana, 1536~1624)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전제하에서 폭군 살해를 인정하였다. 또한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자인 로크(J. Locke, 1632~1704)와 프랑스 철학자인 루소(J.-J. Rousseau, 1712~1778)는 사회계약론을 근거로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헌법 수호 수단으로서의 저항권) 저항권에 대한 여러사상가들의 주장은 1776년의 버지니아 주 권리 장전, 1789년의 프랑스 인권 선언, 1791년 프랑스 헌법 등에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의회 민주정적 법치 국가의 확립과 더불어 전제정과 폭군에 대한 일반적인 비상권으로서의 저항권은 불필요한 것으로, 곧 국가적 불법에 대처할 수 있는 여러가지 법치 국가적 제도들-기본권의 보장, 권력 분립, 공권력이 헌법에 구속됨, 행정의 법률적 합성, 완비된 법보호 체계 등-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는 달리 권력에 우호적인 법실증주의가 지배한 18~19세기 독일의 경우에 저항권의 문제는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거의 잊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법치 국가가 제 기능을 하는 한에 서만 옳은 것이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곧 20세기의 전체주의적 독재 국가의 등장은 이러한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1968년에 기본법을 개정하여 기본법 20조 4항에 최종적인 헌법 수호 수단으로서 저항권을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은 저항권을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주체 : 저항권의 행사 주체는 모든 국민이며, 여기에는 단체와 정당도 포함된다. 그런데 저항권의 행사 주체와 관련하여 공무원이나 국가 권력이 저항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국가 권력에게는 헌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 긴급권이 주어져 있는데, 저항권의 주체성까지 인정한다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더욱 위험한 수단을 제공하는 결과가 되므로 국가 권력의 저항권 주체성은 부정된다. 그러나 공무원은 사인(私人)의 자격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도있다.
행사 대상 : 저항권의 행사 대상은 전통적으로 국가권력에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항권의 행사대상의 범위를 확대시키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저항권의 보호법익인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는 반드시 국가 권력에 의해서만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헌법에 적대적인 사회 세력이 현재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여 다른 헌법 체계로 바꾸려 한다든지,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려 한다든지, 또는 헌법의 개별적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가 현실화되는 경우 헌법은 침해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권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정변'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혁명 세력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정변' 에 대해서도 저항권은 행사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의 혁명 세력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할 필요성은 특히 그 세력이 외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경우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정치적 다수가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적 소수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항권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행사 요건 : 저항권은 예외적인 것이고 지극히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저항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을 지켜야 한다. 저항권은 보통 최후 수단성(보충성, 예비성), 명백성, 성공 가능성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비로소 행사될 수 있다고 이야기된다. 첫째, 저항권은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된 일체의 법적 구제 수단이 이미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없는 경우로서(보충성, 예비성) 민주적 · 법치국가적 기본 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권의 행사만이 남아 있는 경우(협의의 최후 수단성), 또 국가 기관이 헌법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거나 헌법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지 않는 경우에만 행사할 수 있다. 둘째, 저항권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헌법 질서에 대한 공격이 명백해야 한다. 또한 이때 헌법에 적대적인자들이 헌법을 파괴하려는 것과 같은 주관적 동기는 필요하지 않다. 침해는 헌법 질서의 일부에 대한 침해로서 충분하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중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의회주의 하나만 폐지되어도 저항권은 행사될 수 있다고 하겠다. 셋째, 저항권은 성공 가능성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행사될 수 있다. 곧 저항권은 위헌적인 행사를 제거할 가망성이 있어야지, 그것이 전혀 없으면 행사할 수 없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면 국민은 비례의 원칙을 지키는 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여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권의 행사 요건을 전부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이러한 저항권 행사의 요건 중 최후 수단성은 저항권의 행사 시기와 관련하여 너무 막연하다. 왜냐하면 정상 상황과 저항 상황의 한계가 극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저항 상황의 도래 여부를 개인이 판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고도로 기술이 발달된 상황에서는 명백성의 요건 또한 충족하기 어렵다. 특히 성공 가능성의 요건은 더욱 충족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저항권의 행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헌법 침해 초기에 저항권이 행사되기 시작해야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반대로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는 이미 불법 권력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저항권의 문제는 비례성의 원칙에 귀결되는 이익 형량의 문제라고 하면서 저항권을 미국의 시민 불복종 이론, 특히 롤스(J.Rawls)의 시민 불복종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저항권을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복종의 자세' 로 이해하고, 이를 '수시적이고 계속적인 현상' 으로 이해하려는 입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항권의 행사 요건으로서 성공 가능성의 요건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고, 성공 가능성의 요건을 완화시켜 해석하려는 견해도 있다.
저항권의 행사 요건이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기 때문에 모든 요건을 갖추어 저항권을 행사하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저항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최종적인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호의 주체는 국민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저항이 성공하여 법치국가적 질서가 재건되면 저항 행위는 소급하여 유효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교회의 현재 입장] 저항권에 대한 교회의 현재 입장은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같지 않다. 저항권에 대한 가톨릭의 윤리 신학적 입장은 통치자를 비합법적인 통치자와 합법적인 통치자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린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와 일치한다. 비합법적인 통치자에 대해서는 복종하기보다는 투쟁하여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이나, 이 원칙에 대해서는 비합법적인 통치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안전과 복지에 기여한다면 복종해야 한다는 예외가 인정된다. 또한 합법적인 국가권력의 경우에도 첫째, 복종 거부를 통한 소극적 저항이순교에 이르는 경우, 둘째, 합법적 수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 셋째, 정당 방위의 요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극단적인 불법이 존재하고 그 불법이 저항을 통해서 제거되지 않으며, 전체 이익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적극적 저항도 인정된다. 그러나 언제 적극적 저항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는 분명한 언급이 없다.
반면 저항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입장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다수의 입장은 종교 개혁자들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루터적인 사고를 반박하면서 법치 국가를 방어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그러한 뜻에서 적극적 저항까지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교회와 정치)

※ 참고문헌  홍성방, 《헌법학》, 현암사, 2002, pp. 68~73/ R. Dolzer,Der Widerstandsfall, Handbuch des Staatsrechts, Bd. VII, Heidelberg, 1992,pp. 455~482/ C. Starck, Widerstandsrecht, Staatslexikon, Freiburg ·Basel · Wien, 1989, pp. 989~993/ S. Grundman, Widerstandsrecht Widerstandspflicht, Evangelisches Staatslexikon, Stuttgart · Berlin, 1975, pp. 2891~2903/ P.J. Winters, Widerstandsrecht, Handlexikon ZurRechtswissenschaft, Hamburg, 1974, pp. 526~531/ Z.-W. Shim, Widerstandsrecht und Menschenwirde, Diss. Bielefeld, 1973/ A.Kaufmann . L.E. Backman, Widerstandsrecht, Dasmstadt, 1972/ G. Scheidle, Das Widerstandsrecht, Berlin, 1969/ A. Merkl, Widerstandsrecht,Katholisches Soziallexikon, Innsbruck . Wien . Miinchen, 1964, pp.1307~1310/ KF. Bertram, Widerstand und Revolution, Berlin, 1964/ G.F.Riihe, Widerstand gegen die Staatsewalt?, Berlin, 1958. 〔洪性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