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회

傳敎會

[라]Pontificium Opus a Propagatione Fidei · [영]Pontifical Society of the Propagation of the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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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전교 원조회 산하의 4개 기구 가운데 하나.
[기원] 전교회는 1816년 프랑스 리용의 마리 폴린느자리코(Marie Pauline Jaricot)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녀는 신앙을 모르던 사람들과 그러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하여 선교 지역으로 나가 자신의 일생을 희생하면서까지 봉사 활동을 펼치는 선교사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선교 사업을 돕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교인들이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하느님께 도하고, 선교 신부들을 위하여 헌금하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처음에는 10명을 단위로 조직되었는데 이 모임의 회원들은 매일 선교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매주 선교를 위해 헌금하였다. 이 모임은 1822년 5월 3일 '전교회' 라는 정식 단체로 발족하였고, 1844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의 인준을 받았다. 설립 100주년이 되던 1922년 5월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전교회를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에 소속시켰다. 이로써 전교회는 선교 원조를 위한 교회의 정식 기구가 되었으며, 본부도 리용에서 로마로 이전되었다. 1926년 4월 14일 신자들의 선교열을 고취시키고, 전교회 회원의 모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매년 10월의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제정하였다. 현재 전교회는 세계 곳곳에 지부를 설치하여 활동하고 있다.
[활동] 전교회의 목적은 선교 지역의 교회에 필요한 원조를 계획하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하에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 주일로 주관하여 모든 지역의 교회들은 세계 선교를 위한 특별 기도와 헌금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상호 정보 교환을 장려하고, 영적 가치를 나누며 교회들 간의 형제애를 강화하고 있다. 전교회 회원의 의무는 성실한 신자 생활로 이웃선교에 힘쓰고, 선교 지역의 선교사를 위해 주님의 기도 · 성모송 · 영광송 · 인류 복음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정해진 회비를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회원들은 선교지역의 신자들과 선교사들이 바치는 미사와 기도, 희생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 전교회의 연혁] 한국에서 전교회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전으로 추정된다.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가 1857년 9월 14일 르그레즈와(PiereLouis Legrégeois)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최 신부가 181명의 신자들을 전교회에 가입시켰다고 한다. 이편지 이외에 1857년 11월 23일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가 자신의 활동 사항을 전교회에 보고하였다는 기록도 전교회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검토해 볼 때 한국의 전교회 회원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한 1836년에서 1857년 사이에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82년 이후의 교세 통계표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전교회 회비의 납부 상황이 기록되었다. 이것은 전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1886년 한불조약 이전에도 전교회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전교회의 회원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경향잡지》에 소개된 통계를 보면 1920년에는 549명 , 1928년에는 400명, 1930~1931년에는 400여 명이었다. 회원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거두는 회비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전교회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31년 전 조선 주교 회의(全朝鮮主敎會議)에서는 전교 주일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10월 마지막 전 주일인 전교 주일을 첨례표에 기록하고, 신자들이 특별히 기도하도록 하였다. 이후 조선의 주교들은 전교회의 내용을 《전 조선 성교회 법규》에 수록하였고, 전교 주일을 즈음하여 통첩이나 특별 훈시의 형태로 전교회의 가입을 적극 장려하였으며, 《경향잡지》도 사설을 통해 전교회의 가입을 권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33년 이후 전교회에 가입하는 신자들이 상당히 증가하였다.
한편 전교회는 교황청 베드로 사도회(Pontifical Societyof St. Peter Apostle), 교황청 어린이 전교회(Pontifical Missio-nary Society of the Holy Childhood), 교황청 전교 연맹(Pon-tifical Missionary Union)과 함께 교황청 전교 기구에 속하게 되었다. 원래 이들 기구들은 그 창립 시기와 설립자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교황청 에서 이들 기구를 통합 · 운영하려고 하나의 단일 기구로 재편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에서도 1957년 교황청 전교 기구의 한국 지부를 처음으로 조직하였고, 1960년 인류 복음화성에서는 한국 지부장에 파디(J.Pardy, 巴智) 주교를 임명하였다. 하지만 활동이 미진하여 한동안 퇴조하였다가 1965년 6월 전교회와 베드로 사도회가 재발족됨과 동시에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가 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전교 연맹이 조직되었고, 1974년 어린이 전교회가 발족되었다. 이후 어린이 전교회는 1987년 10월에, 전교 연맹은 1989년 4월에, 전교회는 1989년 10월에, 베드로 사도회는 1990년 5월에 각각 재설립되었다. 현재 한국의 전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선교 의식 고취와 선교 사업 후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교황청 전교 원조회; 전교 주일)
一 ※ 참고문헌  《한국가톨릭대사전) 方相根, <전교회>,《교회와 역사》 314호, 한국교회사연구소, 2001.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