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4동 294-3 소재. 1965년 12월 18일 청량리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창설 당시의 명칭은 답십리 본당이었다. 주보는 성모 칠고. 관할 구역은 전농1 · 2 · 3 4동, 답십리1 · 2 · 3 · 5동 일부 지역. 〔교 세〕 1965년 2,500명, 1970년 1975년 6,105명, 1980년 4,293명, 1985년 5,318명, 1990년 3,233명, 1995년 3,944명, 2000년 3,857명. 〔역대 신부〕 초대 최광연(崔光淵) 모세(1965. 12~1966. 12) , 2대 백일성(白日星) 도미니코(1966.12~1971. 5), 3대 최석호(崔奭浩) 바오로(1971. 5~1973.10), 4대 황인국(黃仁國) 마태오(1973. 10~1979. 6), 5대 이석충(李錫忠) 사도 요한(1979. 6~1984. 8), 6대 홍인수(洪仁壽) 세례자 요한(1984. 8~1990.8), 7대 조군호(趙群鎬) 요셉(1990. 8~1994. 8), 8대 봉재종(奉載鍾) 마르코(1994. 8~1999.9), 9대 송천오(宋千五) 사도 안드레아(1999.9~현재). .
1960년대 중반 청량리 본당은 관할 구역이 광활하였으며, 성당 또한 나날이 증가하는 교우들을 수용하기에는 협소하여 사목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이에 성당과의 거리가 멀었던 장안동, 전농동, 답십리에 거주하는 신자들의 요구로 청량리 본당 4대 주임인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 신부는 본당의 분리를 교구장에게 청원하였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없었고, 더구나 당시 이 지역 신자들 대부분이 농사와 노동으로 어려운 생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어서 본당 신축을 위한 모금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1965년 12월 18일 청량리 본당에서 전농동 일부 지역과 답십리, 장안동 지역을 관할로 하는 답십리 본당이 분리 · 설립되었다. 하지만 미사를 봉헌할 장소와 주임 신부가 거처할 숙소도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분할이었다. 이에 신자인 오상돈(돈보스코)으로부터 전농동 53번지 5호 소재 2층 건물 40여 평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광연 신부는 부임 직후 성당 대지 구입을 1차 목표로 삼아, 전농 4동 294번지 3호 소재(현 성당 위치)의 대지를 성당터로 확정하였다. 그리고 1966년 4월 우선 기존 건물을 수리하여 미사를 봉헌할 임시 성당과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 백일성 신부가 부임하면서 실질적인 본당 신축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우선 본당 대지의 형태가 약간 경사를 이루었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여 터고르기 작업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백일성 신부는 총회장과 함께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한 가정 한 평 짓기' 모금을 전개하였다. 이에 1967년 7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한 후, 1969년 6월 29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견진성사를 겸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3대 주임 최석호 신부는 부임 즉시 본당 신축 공사의 마감 작업을 서둘러 성당 내부 장치와 방음벽을 시설하는 등 주위의 미관 작업을 끝내고, 유치원과 본당 일을 수행하던 수녀들을 위하여 수녀원 건물을 구입하였다. 1971년 7월에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 산 27번지 소재의 임야를 매입하여 본당 묘원을 마련하였고, 12월 5일에는 안나유치원을 개원하여 신자 자녀들의 영육간의 교육은 물론 비신자 자녀들도 받아들여 지역 사회에 공헌하였다. 또한 신자들의 의식 계발을 위해 본당 최초로 꾸르실료 운동에 참여하게 하여 본당 신자들에게 확고한 신앙관을 심어 주었고, 미사 참례의 뜻을 높이기 위하여 손수 본당 주보를 발행하였다. 본당 내의 장년층을 대상으로 서로의 친목을 통해 교회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고자 대건 친목회를 조직함과 동시에, 운영 위원회를 사목 위원회로 개편 · 보강하여 체계적인 본당 운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황인국 신부는 나날이 발전되어 가는 답십리, 장안동, 전농동 3개 지역의 신자수 증가에 대비하여 새 본당 설립 계획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였다. 1975년 5월 9일 답십리 본당을 분리 · 승격시키면서 본당 명칭을 전농동으로 바꾸었으며, 1978년 8월 18일 장안동 본당을 분리 · 승격시켰다. 또한 전임 신부 때 구입해 놓은 묘원 공사를 계속하여 도로 및 조성 공사와 관리 사무소 신축 등 공원 묘원으로서의 설비를 갖추었고, 대건 친목회에서 기증한 성모상의 제막식과 묘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사목회를 개편하고 레지오 조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신자 가정에 '교우의 집' 문패 달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신자 배가 운동과 교무금 현실화 운동을 적극 펴나갔다. 1977년 9월 4일에 젊은이들의 성가 봉사 단체인 청년 성가대를 창단하였고, 1978년 7월 16일 주일학교 교사단을 후원키 위해 주일학교 자모회를 결성하였다.
5대 주임 이석충 신부는 부임과 동시에 사목 위원을 개편 · 보강하여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본당 운영을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하였고, 만성적인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묘원 사업과 본당 운영을 과감히 현실화하여 흑자 운영으로 바꾸어 놓았다. 또한 신자들의 의식 계발과 신앙의 활성화를 위해 구역 반장을 보강 · 정예화하였다. 반상회를 통해 매월 내지는 격월제로 반모임을 갖게 함으로써 교회와 신자가 일체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본당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본당 제1의 목표인 신자 배가 운동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성당 건물을 세운 지 30여 년이 지나자 낡게 되고, 그동안의 신자수 증가에 따라 성당 신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8대 주임 봉재종 신부는 1998년 2월 우선 신규 매입 부지의 가옥을 철거한 후 회합실용 조립식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후 9대 주임 송천오 신부는 2001년 4월 15일 새 성전 건립을 발표하여, 이듬해 1월 19일 성당 및 부속 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한 후, 2월 3일 황인국(黃仁國, 마태오) 몬시놀의 집전으로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이처럼 현재 전농동 본당은 성당 신축 공사에 전념하는 한편,2001년 2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선교의 날 미사' 를 실시해 오면서 교세 증가에 주력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白秉根〕
전농동 본당
典農洞本堂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