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박제원(朴齊元, 요셉)이 구술(口述)하고 김만수(金萬壽, 베드로)가 필기(筆記)한 전라도 지방의 전교사(傳敎史)
구술자인 박제원은 원래 경상도 거창 사람으로 1885년 초에 전라도 방각리(전북 진안군 부귀면 방각리)에 와서 교리를 배우고 조스(Josse, 趙)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가족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모두 세례를 받게 하고, 자신은 본격적인 복사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사망하기까지 조스(Josse, 趙) , 라푸르카드(Lafourcade, 羅),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 등 모두 9명의 신부들의 복사가 되어 전라도 지역의 전교에 힘썼던 인물이다.
이러한 활동을 했던 박제원의 구술에 의해 1933년 2월부터 3월 14일까지 총 102장의 분량으로 쓰여진 《전라도전교약기》는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내용은 박제원이 입교한 1885년부터 약 10년간의 내용으로, 박해로 인해 침체되었던 '전라도 지역교회의 재건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는 다시 박제원의 입교와 복사 피임, 조스 신부와 박제원의 전교 활동, 라푸르카드 신부와 베르모렐 신부의 활동, 죠조 신부와 순창 사건 등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서는 특히 당시의 전교 활동 모습과 전라도 지역 본당 · 공소들의 현황 등을 알 수 있으며, 조스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의 선종과 이장 사실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순창 사건을 통해서는 당시 교 · 민(敎民) 사이의 갈등 모습과 전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두 번째 내용은 '동학과 전라도 교회' 를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동학 농민군의 교회 침탈, 죠조 신부의 순교,보두네(Baudounet, 尹沙勿) · 비에모(Villemot, 禹一模)신부의 피신, 보두네 · 베르모렐 신부의 화적 참상, 죠조 신부의 시체 반장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특히 당시 동학군이 교회와 신자들을 침탈하고 선교사들도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서 박제원이 선교사들의 상경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되는 자세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 내용은 '전라도 각지의 성당 건립' 을 주로 다룬 것으로 1895년에 비에모 신부가 건립한 고산의 되재[升峙] 성당, 보두네 신부가 1891년에 매입한 전동 성당터, 라크루(Lacrouts, 具) 신부가 1896년에 건립한 수류(水流) 옛 성당, 베르모렐 신부가 1897년에 건립한 나바위〔華山) 옛 성당 등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성당 건물에 대한 설명보다는 본당들이 설립된 초기 현황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전라도전교약기》는 주로 전라도 교회의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전교 자유기 한국 교회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연대적으로나 내용 면에서 오기된 사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이 기록이 갖는 자료상의 가치는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전라도전교약기》. 〔白秉根〕
<전라도전교약기>
全羅道傳敎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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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