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머리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천상 성부께 드리는 공적 경배인 동시에 신자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즉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의 공적 예배이다. 가톨릭 교회의 모든 공적 경신 예배 또는 경신례(敬神禮)이다.
〔어원적 고찰〕 '전례' 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리투르지아' (Liturgia)는 그리스어 '레이토우르기아' (Λευτουργία)에서 유래하였다. 이 그리스어는 '백성' 이란 의미인 '라오스' (Λάος)의 형용사인 '레이톤' (Λέιτον)과 '봉사, 일, 사업' 이라는 뜻을 갖은 '에르곤' (ἔργον)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따라서 '레이토우르기아' , 즉 전례의 어원적 의미는 '백성이나 군중의 공공 이익이나 관심사를 위한 봉사 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국민의 공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들을 '레이토우르기아 라고 했다. 예를 들면 부유한 사람들이 공적인 봉사를 위하여 자금을 지불하는 행위, 또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를 수호하기 위하여 전함을 구축하는 데 자금을 부담하는 행위, 혹은 시민들을 위한 음악 공연회를 개최하도록 악단에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 경기장에서 경기를 주관하는 행위를 '레이토우르기아'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의 공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을 '레이토우르고스' (Λειθουργός)라고 했다.
그러나 그 뜻이 차층 변화되어 자기 부족이나 백성들에게 향연을 베푸는 행위를 뜻하다가 기원전 2세기에는 종교적 의식(儀式)이나 그 의식을 준비하는 것을 뜻하였다. '레이토우르기아' 라는 용어는 어느 개인의 유익을 떠나서 공적인 봉사를 뜻하였고, 처음에는 정치 · 사회적 의미로 사용되다가 차츰 종교적 의미로 변하였다.
종교적 의미에서 전례는 성전에서 공적 봉사를 한다든지 제관으로서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동양에서도 의례나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을 전례자(典禮者)라고 하였다. "전례 주관자에게 명하여 때와 달을 고려하고 날을 잡아 예악을 같은 율동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의상을 단정하게 하도록 하라"(命典禮, 考時月定日 同律禮樂制度 衣服正之 : 《乖豊言》, <王制>.
〔교회 전용어로서의 전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교회에서는 경신 예배, 특히 미사를 '레이토우르기아' 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 '레이토우르기아' 를 라틴화하여 전례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한 것은 16세기 인문주의 학자들이었으며, 19세기에 일반화되었다.
16세기 이전 서방 교회에서 '전례' 를 어떤 용어로 표현했는지 살펴보면, 원시 교회와 초기 교회에서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사용되던 '레이토우르기아' 를 일반적 ·사회적 의미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교의 경신 행위와 그를 수행하는 직무를 뜻하는 말로 활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레이토우르기아' 는 하느님을 위한 봉사(Hermes 9, 27. 3)인 동시에 정치적 · 사회적 의미로 단체에 대한 봉사(1Clemens 44, 3 ; Didache 15, 1)를 뜻하였다. 또한 세례, 저녁 기도(Vesperae), , 참회의 설교 등 모든 경신적 행위들도 '레이토우르기아' 라고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성찬례에 국한시켰다.
그 후 그리스 문화권에서 벗어나 로마 문화권에 도입된 초대 서방 교회에서 '레이토우르기아' 는 본래 지녔던 그리스적 의미에 상응한 라틴어들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즉 직무(Ministerium) 성무(Officium) 예식(Ritus) , 예절(Ceremonia), 일(Opus), 직분(Munus) , 봉사(Servitium) , 행위(Actio), 거행(Celebratio)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었고, 교부 시대에는 대부분 신비(Mysterium)와 성사(Sacramen-tum)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들을 시대적으로 요약하면 초대 교회와 교부 시대부터 성사의 개념이 확정되는 12세기까지는 '신비' 와 '성사' , 중세부터 17세기까지는 '경배' (Cultus)와 '성무' , 18~19세기까지는 '예식' 과 '예절' 이라는 용어가 주로 활용되었다. 19세기 말부터 '전례' (Liturgia)라는 용어가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난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문적 용어로써 전례를 교회의 모든 공적 경신 예배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J.A. Jung-mann). 전례가 '교회의 모든 공적 경신 예배다' 라는 정의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와 문제점을 고찰하기에 앞서 교회의 공적 경신 예배인 전례 행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모든 전례 행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두 개의 방향선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신례의 행위 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인간에게 내려오는 하강선(下降線, 하느님 말씀 · 은총)과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상승선(上昇線, 제사 · 기도 · 감사와 찬미)이다. 전례 행위 안에서는 하느님이 자신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에 은총과 말씀과 생명의 진리를 내려 주고 은총과 진리에 감싸인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께 제사와 감사와 찬미의 기도로 경배를 드린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공동으로 하느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은총을 받아가며 찬미의 제사와 감사의 기도를 바칠 때에는 언제나 전례가 거행된다.
이러한 전례 행위의 중심 사상은 '예' (禮)라는 동양 사상에도 잘 나타난다. 이 글자의 본래 의미도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이를 실천한다' 라는 뜻이다. 이 글자를 풀이하면 '시' (示)는 상천(上天)이 해와 달과 별〔日月星〕의 상(象)을 내리어 길흉을 계시한다는 뜻이고 '풍' (豊)은 사람이 땅에 무릎을 끓고 경건하게 계시를 받아 그대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라는 용어나 동양 사상의 '예' 의 근본 정신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신 행위라는 점에서 일맥 상통한다. 하지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신 예배 행위 안에서 두 개의 방향선이 서로 교차되고, 교차되어 통과해야만 하는 지점이 바로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난 전례 : 20세기 전례 운동과 함께 '전례란 무엇인가? 라는 정의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등장하였다. 이때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전례의 본질과 전례를 정의하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중요한 회칙들을 공포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 (Mystici corporis Christi, 1943. 6. 29)라는 회칙과 <메디아토르 데이>(Mediator Dei, 1947. 11.20)라는 회칙이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임을 천명하면서, 다른 조직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신앙과 진리와 사랑으로 신비롭게 묶여진 신자 단체라는 바오로 사도의 신비체론(1고린 12,12 ; 에페 1, 22-23)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메디아토르데이>에서는 그동안 전례의 정의를 놓고 분분하였던 잘못된 개념들, 다시 말해서 전례는 경신 예배의 순수 감각적이고 외적인 부분들을 장엄하고 장중하게 진행시키는 예절 및 예식만을 지칭한다거나 교회의 교계 제도로부터 거룩한 예식이나 예절을 절도있게 하도록 세부적으로 규정한 규범들(Rubrca)이라고 하는 견해를 배격하였다. 그리고 전례의 올바른 정의를 위한 신학적 논거를 제시하였다. "교회는 그의 창시자로부터 받은 위임과 명령에 충실히 순종하면서 특히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거룩한 전례를 통하여 수행한다"(《AAS》 39, 1947,p. 522, No. 3).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이 지상에서 완수해야 할 이중의 위탁을 받았다. 그 하나는 전 인류의 구원을 원하는 하느님이 당신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인간들에게 외치면서 전달할 복음 선포의 사명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느님께 최상의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릴 사명이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한 분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인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 사명을 완수하신 행위가 곧-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직과 신자들을 가르치고 봉사하는 왕직을 포함한-그리스도의 사제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사제직을 전례로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행위의 근본 바탕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근거하면, 전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거룩한 전례는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천상 성부께 드리는 공적 경배인 동시에 또한 신자 공동체가 그의 창시자와 또 그분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이다. 이를 간략히 표현하면 전례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의 공적 경배이다"(《AAS》 39, 1947, pp. 528~529,No.20).
전례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철학적 개념이나 논리 정연한 근거에 의하여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들로 인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이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두 개의 방향선의 교차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전례를 통하여 수행한다고 한다면, 전례를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의 공적 경배라고 정의한다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공적 예배인 전례의 요소들을 요약하면, ①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② 그의 창시자나 공동체의 이름으로 천상 성부께 드리는 공적 경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직접적으로 문제가 제기된다. '외형상으로 볼 때 교회 공동체인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회의 기도서나 예식을 통하여 경신례를 거행했다면 위에 언급된 전례의 요소들을 충족한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적 행위도 전례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예부성성(현 전례 성사성)은 1958년 9월 3일자로 공포한 지침서를 통해 '전례적 행위가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이 지침서에는 "전례적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나 교회가 설정하고 또한 그들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성인들 그리고 복자들에게 그들 각각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를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로부터 합법적으로 임명된 자들이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전례서에 의하여 거행하는 거룩한 행위를 말한다" (S.C. Rit., Instructio musicae sacrae, 3.9. 1958, No. 1). 이 지침서에서 규정한 전례적 행위의 요소들을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과 연결하면 ③ 교회로부터 합법적으로 임명된 성직자가 ④ 교황청 인준 전례서에 의하여 거행해야 한다. 이러한 전례 행위의 규명은 누가 교회의 공적 예배를 주관하고 거행할 수 있으며(구교회법 1256항), 또 공적인 경배로서 전례를 규정할 권한은 교황청에만 있다(구교회법1257항)는 교회법을 재천명한 것이다.
<메디아토르 데이>와 성음악 지침서가 공포된 후, 전례에 대해 좀더 명확한 서술적 정의를 하고자 노력하면서 주안점을 두는 것들이 있다. 첫째, 전례의 본질적 부분은 원성사(元聖事)인 교회와 성사들로서 거룩한 표지〔標識〕이다. 즉 전례 행위는 그 행위가 상징하는 초자연적 실재성을 구현하는 표지이다. 이러한 관점과 의미에서 교부들은 전례를 '신비' 또는 '성사' 로 표현하였다. 둘째, 전례 행위는 하느님께 올리는 교회의 공적 경배나 기도뿐이 아니라, 구원의 은총과 진리를 교회로 불러내린다. 이러한 하강 · 상승의 움직임은 전례 행위를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중점을 두는 관점이며, 종전의 전례 정의에서 매우 소월히 했던 점이고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있다. 셋째, 구약의 예식들은 신약 전례의 예형으로서 전해져 왔다. 신약의 전례는 하느님 아버지가 이 세상에 보낸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 십자가상 제사를 봉헌하였고, 다시 세상으로부터 하느님 아버지께가심으로써 완성된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보는 신비의 증표 안에서 거행된다. 넷째, 전례는 교회의 교도권으로 구현되지만, 하느님의 백성은 세례를 통하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위임과 권한을 받고 있다.
전례의 바탕과 근원은 전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구현하고자 이 세상에 온 예수 그리스도가 특히 당신의 죽음과 부활인 파스카 신비로 이룬 역사적구원 행위이다. 이 구원 행위는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인간에게 구원의 은총을 구현할 뿐 아니라(은총과 하느님의 말씀), 은총으로 충만한 인간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행위(찬미의 제사와 기도)이다. 그리스도는 이 구원 행위를 성령의 힘으로 계속 기념하며 재현하도록 이 신비에 교회를 참여시키기를 원하였다(전례5항 이하) . 이는 특히 그리스도가 구원을 이루면서 현존하는 전례적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 당신 말씀 안에 ··· 끝으로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 (마태 18, 20)라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전례 7항). 이와 같이 전례는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구현이며 현존이고 적용이다. 전례는 인간의 성화와 하느님 공경을 위한 대사제인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합작이다. 따라서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따라서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전례 7항). 이렇게 모든 전례는 중개자 그리스도를 통한 대화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향해 작용하며,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경배한다. 이러한 지상의 전례는 우리 순례의 목적지인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 전례를 미리 맛보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다(전례 8항). 전례 행위는 교회의 몸인 공동체 전체에 관계되고 각 지체는 각자 전례 행위 본질상 그리고 전례적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부분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하도록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전례 26~28항)
전례의 범위 : 인간을 성화시키고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전례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을 받은 사람이 교황청 인준 전례서에 의해 거행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채우지 않고 이루어지는 단체적 예배행위들 및 공동 기도들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도 전례라고 할 수 있는가? 엄격하고 법적인 의미로는 전례라고하지 않고 신심 행위(信心行爲)라고 한다. 예컨대 교황청에서 신심 행위로 인정한 '십자의 길' , '묵주 기도' , '성시간' 과 기타 '말씀의 예배' , '신심 단체의 기도들' 등 여러 가지 기도이다. 이러한 신심 행위는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을 받은 성직자가 있건 없건 관계없이 거행될 수 있다. 또한 교황청에서 인준한 전례서의 제재를 받지 않으며, 규정된 예식에 따라 거행될 필요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의 관습이나 풍습에 따라 자유롭게 거행할 수도 있으며 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유로운 말로 거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심 행위나 신심 단체들의 신심 행위 중에 사용될 내용과 기도는 교구장의 인준과 감독을 받아야 한다(교회법 839조 2항)
그런데 교황청 인준 전례서에 의해 거행되는 공동체적 예배 행위만을 전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전례가 교회의 공적 경배라고 한다면, '교회' 란 역사적 · 신학적 의미로 주교를 중심으로 모인 신자 단체를 뜻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에는 '에페소 교회' , '스미르나 교회' , '베르가모 교회' , 티아디라 교회' , '사르디스 교회' , '필라델피아 교회' , '라오디게이아 교회' 등 7개의 교회(묵시 1, 11)도 의당 교회라고 불렀다. 이것이 지역 교회의 시초이며, 초기 교회의 활발했던 전례 행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 교회에 의해서 창안되고 발전되었다. 실제로 로마 교회의 단일적인 보편 전례란 교회의 창설과 함께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기를 거쳐 여러 지역 교회들에서 시행되던 여러 가지 전례 형태의 영향을 받아 혼합된 것이다.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의 전례 쇄신 이전에는 통일된 단일 전례서가 없었다. 이러한 전례 정의에 대한 논란을 고려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Sacrossanctum Concilium)에서는 지방 교회나 교구 주교의 권위로 지방 관습에 따라 합법적으로 인준된 기도서나 예식에 의해 거행되는 공적 경배 행위를 '거룩한 신심 행위' (Sacea Exercitia)로 그 급수를 한 단계 높였다. 이와 같이 <전례 헌장>은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인 전례를 서술 · 정의한 후(전례 5~10항) 13항에서는 '신심 행위' (Pia Exer-citia)와 '거룩한 신심 행위' 를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백성의 신심 행위는 교회의 법률과 규범에 부합하는 한 적극 장려하며, 특히 사도좌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질 때에 그러하다. 또한 주교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고 합법적으로 승인된 관습이나 예식에 따라 거행되는 개별 교회의 거룩한 행위는 특별히 존중된다. 그러나 거룩한 전례는 그 본질상 이러한 신심 행위를 훨씬 앞서 가는 것이므로, 전례 시기를 고려하여, 전례 행위들을 어떤 모습으로든 전례에서 이끌어 내고 백성을 전례로 이끌어 들여 전례와 조화를 이루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역 주교의 합법적 권위로 거행되는 거룩한 신심 행위는 교구 전례라고 할 수 있다.
〔보완적 개념〕 전례와 외적 예식 : 전례는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경배로서 공동체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적 형식인 예식은 필연적이다. 사적으로 하는 기도와 행위는 외적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사적 기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강한 심향(心向)과 헌신이다. 물론 신앙의 실질적 표현이며 '신앙과 진리' 안에서 거행되는 전례도 내적인 지향이 외적인 형식과 부합되어야 한다. 전례를 거행하는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관심사를 눈으로 함께 보고 귀로 함께 듣고,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단체적이며 공통적인 형식을 필요로 한다. 그 중요성은 전례인 성사를 집전할 때 잘 드러난다. 그 집전자나 참여자가 비록 내적으로 적극적 참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사 집전시에 교회가 뜻하는 대로 하겠다는 지향을 갖고 외적 예식을 완결했다면 그 성사는 유효하다. 전례의 외적 형식인 예식의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전례를 '예식' 또는 '예절' 로 규정짓기도 하였다. 사실상 20세기 초까지 전례라고 하면 예식이나 예절 또는 어떤 절차와 행위 동작으로 거행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규범들을 생각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전례는 예식과 예절 및 규범들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정확한 외적 예식과 규범이 없었던 초대 교회의 전례를 생각할 때 이러한 외적 예식들을 전례라고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외적 예식은 우리의 내적 심향과 신앙과 진리의 공동체적 표현이요 행위이니만큼 경건하면서도 명료하고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전례와 예술 : 종교는 늘상 예술에 있어서 모체의 역할을 하였다. 구약에도 장막을 짓고 제단을 쌓고 여러 가지 제구나 장식을 구비하면서 고귀한 물질적 피조물을 사용했다(출애 35-39장). 이러한 물질적 피조물들이 그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조물주 하느님을 찬미하는 경신례에 기여하는 데 있다. 신약 시대에 와서 하느님의 아들이 육화하고 죽은 자들 가운에서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에서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데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공동체의 공적인 경신 예배로서의 전례는 수 세기를 거치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양식으로 노래, 제구, 성물뿐 아니라 신심의 발전과 함께 교회 건축과 예식, 예절, 성 음악과 성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자립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조물주 하느님을 경배하는 근본 목적에서 벗어나 순수 세속적인 화려함에 치중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교회가 예술성에 대하여 제한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노래 곡조나 성 음악, 성당 건축이나 제구들이 예술성과 화려함에만 치중한다면 경신 예배에는 합당하지않으며, 신자들을 침묵으로 이끌고 방관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 교회의 예술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는 경건한 봉사를 해야 한다는 근본 정신을 언제나 되새기고 늘 그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오늘날 전례를 쇄신하면서 공동체가 쉽게 부를 수 있는 대중 성가를 장려하고 교회의 전통적 그레고리안 성가나 모국어로 된 성가를 막론하고 전례의 각 직무에 따라 합당하게 발전 육성시킨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교회 건축이나 제구나 성 음악은 모든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어야 한다(전례114, 122-123항).
전례와 언어 : 언어란 의사의 표현이며, 이해의 매개체다. 어느 종교의 경신 예배든 시공을 초월하는 각 종교의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현재는 사어(死語)가 된 용어를 경신 용어로써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특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또 공동체의 일치와 통일성의 이유에서 가톨릭 교회의 전례 용어도 사어인 라틴어를 고수하였다. 그러나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에는 전례를 이해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그를 표현하는 매개체인 언어가 중요하다. 가톨릭 교회는 전례에 대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와 이해라는 전례 쇄신의 근본 정신에 따라 경신 용어로 모국어를 허용하였다. 전례 역사가 증언하듯이 실제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 용어는 문화권을 따라 변경되어 왔다. 원시 교회에서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그리스어를, 로마 문화권에서는 라틴어를, 후대 슬라브 문화권에서는 슬라브어를, 소아시아 동방 문화권에서는 각 지역의 모국어를 사용하였다.
〔전례의 발전〕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례문들은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어 1고린 6, 20-24 ; 에페 5, 14 ; 필립 2, 6-11). 묵시록에 표현된 천상 전례에 대한 서술은 현세 지상 전례의 모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외에 초기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례문들도 있다. 시리아 교회에서 "12사도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디다케》에 실려있는 감사 기도ㅡ어떤 학자는 성찬례를 위한 식탁기도로 생각한다(Quasten, Patrologia I, p.32f).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Audet) -와 로마에서는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의 《제1 고린토 서간》 59장 이하에 있는 '보편 기도' (Jungman, MS 1,616)가 있다. 215년경 히폴리토(170~236)는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서 처음으로 성찬 기도문을 제공해 주고 있다(Jungman, MS I, 38). 이 세 가지 경우는 규범적인 전례 형식이 아니라, 전례 집전자의 즉흥적 임무를 해결할 수 있는 예문이었다(Traditio Apostolica, 10, 4). 교회의 고정된 양식 내지는 양식의 핵심을 위한 첫 번째 지침은 3~4세기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났다. 모든 곳에서 전례의 근본적 요소들과 감사 기도가 가장 먼저 고정되었다. 사제의 전반적 직무 기도를 위해서 로마에서는 600년경 '성무 집전서' 들의 출현과 함께 의무를 지우는 양식들이 확고하게 제시되었다.
모든 전례 발전의 공통적인 모체는 신약 시대의 전례다. 전례의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신약 시대의 전례 연구는 근자에 매우 발전되었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전례가 구약과 후기 유대교의 경신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와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전례 발전에 있어 전례 거행에 즉흥성이 보장된 자유와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겸한 초기 시대가 지난 후 4세기부터 종교 자유를 얻고 정치적으로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되면서 총주교좌(Patriarch)들을 중심으로 여러 전례 형태들이 생겨나 발전되었다. 이러한 전례 형태들은 동방 전례와 서방 전례로 대분된다. 이러한 형태들은 전례의 본질적 골격을 유지하면서 지방이나 지역의 전통과 관습들이 가미되어 상당히 큰 차이점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형성된 여러 전례 그룹들이 후에 지역과 교구를 중심으로 각기 통일성을 이루며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전례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신심의 중심지'(Baumstark)인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예루살렘 전례이다.(⇦ 경신덕 ; 경신례, 가톨릭의 ; 예배 ; 예절 ; ← 공소예절 ; 동방 전례 ; 서방 전례 ; 성화 임무 ; 아멘 ; 전례력 ; 전례 미술 ; 전례서 ; 전례 예규 ; 전례 운동 ; 전례음악 ; 전례학)
※ 참고문헌 J.A. Jungmann, Liturgie und pia exercitia, 《LJ》 9, 1959,pp. 79~861 - Der Gottesdienst der Kirche, Innsbruck, 3rd ed., 1962 pp.1~8/ 一, The Early Liturgy, Notre Dame, 1959/ W. Schmidt, Der Ursprung der Gottesidee. Eine historisch-kritische und positive Studie Ⅱ, Münster, 1929, PP. 47~871 A.-G. Martimort, Handbuch der Liturgiewissenschaft Ⅰ, Freiburg, 1963, pp. 3~10. 16~46/ 0. Casel, Das chriistliche Kultmysterium, Regensburg, 1960⁴/ C. Vagaggini, Il senso teologico della Liturgia, Roma, 1957/ R. Schnackenburg, 《FThH》, pp.162~165/ G. Deling, Der Gottesdienst im NT, Bonn, 1952/ A.Baumstark,Liturgie comparee, Chevetogne, 3rd ed., 1953/ H.-J. Dalmais, Initiation a la Liturgie, Paris, 1959/ 張基權, <禮와 禮敎의 本質〉, 《東亞 文化》 9선(1970. 5), pp. 61~62. 〔崔允煥〕
전례
典禮
〔라〕liturgia · 〔영〕litu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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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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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중에 성직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대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