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음력이나 양력,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에 근거하여 각 달과 주, 날자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 · 죽음 · 부활과 관련된 축일 일정과 교회가 인정한 성인의 축일 및 기타 기념일들이 적혀 있으며, 매일 미사중에 읽는 독서와 복음이 표시되어 있는 표. 예전에는 교회력' (Annus ecolesiasticus)이라고도 하였다.
〔역 사〕 기원 : 초기 교회의 구성원들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대교에서 정한 축제 일정을 따랐다.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과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천 이후 더 이상 유대교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던 이들에게 과월절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의 파스카였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매주 기념하던 신앙인들은 유대인들의 파스카 행사를 자신들의 신앙의 빛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이라는 사실 그대로 새 반죽이 되시오. 실상 여러분의 파스카(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묵은 누룩을 쓰지 말고, 곧 비행과 악습의 누룩을 쓰지 말고,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법시다"(1고린 5, 7-8).
그러나 2세기 초반까지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부활 축제는 거행되지 않았다. 적어도 3세기 초반부터 예수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은 50일로 연장되었으며, 4세기 이후부터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성대하게 기념하였다. 4세기 후반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에 기원을 둔 파스카 삼일이 나타났다. 한편, 파스카 전례는 매우 일찍부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날에 단식을 하도록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 단식 기간이 연장되었다.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에 이집트에서 단식 기간이 40일 동안으로 발전하면서(사순 시기), 이 시기는 파스카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다. 교황 빅토르 1세(189~198) 시기부터 부활 대축일 날짜에 대해 이견을 보였던 동방과 서방 지역의 교회들은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를 통해 모든 교회가 알렉산드리아 책력 계산법을 따르도록 결정하였다. 그리고 춘분 다음의 보름 뒤에 오는 주일(3월 22일~4월 25일)에 부활 대축일 거행토록 하였다.
초기 교회는 단 하나의 축일만을 갖고 있었다. 즉 주간 파스카인 주일과 연중 파스카인 부활 대축일이었다. 그런데 4세기경에 로마에서는 12월 25일, 이집트에서는 1월 6일에 거행되던 이교도의 동지 축제를 그리스도교화하기 위해 이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좁은 의미의 연중 기념일로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신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로마에서는 4세기 중반부터 1월 6일을 공현 대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12월 25일에는 예수의 탄생과 목동들의 경배만을 기념하게 되었다.
대림 시기는 갈리아와 스페인에서 4세기 말과 5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고행하면서 성탄과 공현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3주간의 이 준비 기간은 공현 때 베풀어지는 세례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6세기에 로마 교회에 도입된 대림 시기는 처음에는 6주, 나중에는 4주를 준비 기간으로 정하였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지닌 전례가 만들어지고 거행되었기 때문에, 각 지역 교회는 고유의 전례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표적인 축일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들은 모든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거행되었다. 또한 각 시기에 대한 기간에도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각 지역 교회와 다른 예법(ritus)에서 거행하는 성인의 기념 축일(festum memoriae)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각 지역의 전례력에는 그 교회가 기리는 성인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으며, 그 지역 교회가 기념하는 특별한 날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전례력들은 초기부터 있었는데, 로마 교회 성인록의 기초가 된 4세기경의 두 전례력이 대표적이다. 354년의 달력은 그리스의 예술가인 필로칼로(Furius Dionysius Filocalus)가 그림을 그리고 아름답게 글씨를 쓴 달력으로 발렌티노라는 부유한 신자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달력에는 세속에 관한 수 많은 정보들 외에 주교들의 기념일 목록(Depositiones epis-coporum)과 순교자들의 기념일 목록(Depositiones marty-rum)이 수록되어 있다. 첫째 목록은 달력 순서에 따라 루치오(253~254)부터 실베스테르(314-335)까지 교황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순교자 목록은 12월 25일에 예수 성탄을 제시한 다음 로마에서 기념하고 있는 순교자들의 목록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축일, 날짜, 묻힌 장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363년경에 편집된 니코메디아(Nicomedia)의 달력 그리스어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411년 시리아어로 씌여진 요약판이 전해진다. 이 전례력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 이전의 순교자들 이름 외에, 313년까지 동방에서 순교자들을 배출한 대박해와 320~321년의 박해, 율리아누스 황제(361~363) 때의 박해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을 전해 주고 있다.
발전 : 4세기경부터 순교하지 않은 성인들까지 포함되어 순교자들의 목록에 담긴 성인 수가 증가하고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독서집, 복음집 등의 전례서들이 등장하면서, 특히 카롤링거 왕조 때 축일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또한 해당 축일의 기도문이 수록된 성무집전서의 보급으로 인해 그 안에 수록된 축일을 모두 거행하였으며, 성무 집전서가 축일표의 역할을 하였다. 12세기 말은 전례력의 역사에서 전환점을 이룬 해이다. 왜냐하면 전례력이 동 시대의 성인에게도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옛 순교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 중 일부 인물 외에는 축일을 지내지 않았었다. 이러한 전례력의 기초는 8~9세기 프랑크 지역에서 사용된 전례력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와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 나와 있는 성인들 외에 성베드로 주교좌 축일과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및 각 사도들의 축일들이 수록되었다. 11세기에는 교황들에 대한 공경이 확산되었다. 그로 인해 밀라노 칙령(313)이 발표되기 이전의 모든 교황들은 순교자로 여겨져 공경되었다. 12세기에는 성인들에 대한 전설이 확산되었고, 이 전설들은 중세의 교리 교육을 위해 사용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간행된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로마 성무 일도서》(Breviarium Roma-num, 1568)와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 1570)에 수록된 전례력은 12세기 전례력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전례력에는 12세기 이후 4세기 동안의 자료들이 첨가되었는데, 전설적인 인물들 뿐만 아니라 13세기의 성인들도 포함하였다. 로마 지방의 옛 전례력은 성인 축일 목록에 자료를 계속 공급하였으며, 전례력은 교회 생활을 반영하면서 보편화되었다.
16세기 말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사이의 전례력 내용은 크게 과장되었다. 1568년의 전례력에는 200개 이하의 축일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1960년에는 145개의 새로운 축일이 더 수록되어 있었다. 13개가 16세기에 첨가되었고, 17세기에는 49개, 18세기에는 32개, 19세기에는 25개, 그리고 1900~1960년 사이에 26개가 첨가되었다. 이러한 축일들 중에는 근대의 성인 축일들이 있었다. 특히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이후 사람들은 위대한 선교사들과 동방 교회 교부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전례력의 개정 : 1969년 2월 14일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에 따라 개혁한 '로마 보편 전례력' 을 반포하였다. 전례력 개정의 주요 목표는 옛 관행에 따라 축일은 성인이 죽은 날 지내고, 성인 축일 목록을 줄이면서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었다.
새 전례력은 동방 교회의 성인들을 그들 지방에서 지내는 날에 축일을 지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기념하도록되어 있는 수를 180개 이하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들의 이름을 삭제하였다. 그리고 순교자의 이름 · 장소 · 날짜에 대한 자료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로마 지방 순교자들과 로마 내 옛성당들의 수호 성인들의 이름을 제외시켰다. 가장 눈에 띄게 삭제된 것은 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어느 특정 지역이나 수도회에만 관련되어 기념되는 수많은 성인들이었다(전례 111항). 그리고 세계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성인들의 이름을 전례력에 도입하였다. 또한 이를 '축일표'(calendarium)에 수록하도록 하였다.
로마 보편 전례력에 수록된 모든 성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기념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념은 선택 기념이다. 그리하여 성인 공경을 선택적으로 지낼 수 있는 자유를 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로마 보편 전례력 외에 전통에 따라 교구 · 지역 · 수도회에서 사용하는 특수 전례력도 있다. 이 외에도 의무적으로 지내야 하는 날이 아닌 경우에는 순교록에 나와 있는 각 성인들의 기념일을 지낼 수 있다.
전례력의 개혁은 성인 축일 수의 조정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전례 규정들에 있어 유연성이 도입되었고, 미사와 시간 전례의 전례문들을 개정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미사의 기도문들과 성인에 관한 독서를 통하여 각 성인의 영적 전언(傳言)을 드러내고자 시도한 것이다. 또한 새로운 독서집의 간행으로 연중 시기(年中時期) 동안 주제의 조화를 이루면서 준연속 독서 원칙(準連續讀書原則)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고유 특성을 지닌 시기 외에 1년에 33주간이나 34주간으로 이루어진 연중 시기가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 관련된 다른 시기처럼 특정 의미를 지니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며 생활하면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달력과 연도 표기〕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달력은 교회의 필요성에 의해 개정된 것이다. 이것이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에 의해 만들어진 '그레고리오력' (Calendarium Gregorianum)이다 본래 로마 제국 내에서는 율리우스 체사르(Julius Caesar)가 기원전 45년에 만든 '율리우스력' (Calendarium Julia-num)을 사용하였었다.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하여 4년마다 한 번씩 윤년을 두었는데, 이 달력이 교회력의 기초였다. 하지만 이 달력의 계산법으로 인해 중세 때에는 계절의 날짜들과, 특히 춘분 후 첫번째 만월 후에 오는 주일에 거행하기로 되어 있는 부활 대축일의 날짜가 맞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를 달력에서 지우도록 하여, 10월 4일 다음날이 10월 15일이 되었다. 이 개혁으로 인해 35세기에 하루의 오차만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그레고리오력은 새해 첫날을 1월 1일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이 개정 때 서력 기원(西曆紀元)을 바로잡지는 않았다. 서력 기원은 로마에서 활동한 수도자인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 470?~550?)가 525년에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를 서기 1년으로 만들어 계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건국으로부터 754년 되던 해의 12월 25일에 탄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계산은 잘못된 것이었다. 성서는 예수가 헤로데 대왕 생존시에 탄생하였다고 전하는데(마태 2, 1. 19 ; 루가 1, 5), 헤로데 대왕은 로마 건국750년, 즉 기원전 4년에 예리고에서 병사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보다 앞서 탄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연대 표기는 디오니시오가 계산한 것에 근거하여 사용되었다.
'기원전' (紀元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비시' (B.C.)는 영어로 그리스도 전에' (Before Christ)의 약자이다. 이는 라틴어로 '기원전' 이라는 의미인 '그리스도 탄생전'(ante Christum natum,a.Chr.n.)과 같은 의미이다. 반면 '서기 (西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약자 '에이디' (A.D.)는라틴어로 '주님의 해" (Anno Domini)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로 이 땅에 주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국의 신자들은 '천주 강생전' (天主降生前) 또는 '천주 강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연도 표기를 하였다. (⇦ 교회력 ; 기념 축일 ; 달력, 교회에서의 ; 연중 시기 ; → 대림 시기 ; 대축일 ;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 ; 마리아 축일 ; 부활 시기 ; 사순시기 ; 성주간 ; 성탄 시기 ; 전례 주년 ; 축일표 ; 파스카 삼일)
※ 참고문헌 L.E. Boyle eds., 《NCE》 8, pp. 641~643/ J.P. Lang,OF.M., Dictionary of the Liturgy, Catholic Book Publishing Co., 1989, pp.77~781 주교 회의 전례 위원회, 《미사 경본의 총지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8/ I.H. Dalmais · P. Jounel, L'Église en priere, Intro-duction a la Liturgie, IV. La Liturgie et le temps(김인영 역, 《전례 주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편찬실〕
전례력
典禮曆
〔라〕annus liturgicus · 〔영〕liturgical calendar
글자 크기
10권

초대 교회의 전례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