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복

典禮服

〔라〕Vesimenta liturgica · 〔영〕Liturgical vest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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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와 영대(18세기,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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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와 영대(18세기, 중국)

공식적으로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거나 미사를 비롯한 교회의 예식을 집전하는 동안 성직자들이 착용하는 옷.
〔의 미〕 전례 집전에 특별한 복장을 함으로써, 개인적인 특징을 덮어두고 교회의 공식 봉사자로서 예식을 거행함을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직무의 다양성은 전례 중에 예복의 차이로써 외적으로 나타난다. 전례복은 재료, 형태, 색깔 등이 전례 행사와 봉사자의 직무에 적합하도록 고상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복음적인 단순성을 간직해야 한다. 전례 복장은 여러 가지 기능과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전례 주년과 축일 및 예식의 의미를 드러낸다. 또한 각 직책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며, 거룩한 전례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도 이바지한다. 지역 주교 회의는 토착 전례복을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지만, 사전에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기 원〕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전례복의 형태는 초기 교회 때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례복은 그리스도교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변천과 함께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형성되어 왔다. 초기 교회의 전례 예식과 오늘날의 예식 사이에 현저한 차이점이 있듯이 콘스탄틴 대제(306~337) 이전 시대의 경신례 때 사용하던 전례복과 오늘날의 전례복 사이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다.
전례복의 기원을 유대교에서 추론하기도 하지만, 전례복은 구약의 제관 옷에서 기원하지 않았다.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에서도 서로 다른 직책을 의복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이 입던 옷을 그대로 입었다. 그 당시 그리스인들이 입던 대표적인 복장은 키톤(Chiton)과 히마티온(Himation)이라는 겉옷이었다. 그리고 로마인들이 입던 대표적인 복장은 토가(To-ga)와 팔라(Palla)라고 하는 큰 수건 모양의 겉옷이었다. 당시 로마의 일반 시민들이 입던 이러한 복장에서 전례복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오늘날 사용하는 장백의는 로마인들이 입던 속옷(Tunica)에서 유래되었으며, 축제 때 목도리를 두르고 다닌 데서 개두포(Amictus)가 유래되었다. 패눌라(Paenula, 겉옷)에서 변형된 것이 제의이며, 고귀한 귀족들이 장식과 품위를 나타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이 수대(手帶, Manipulus)이다.
이와 같이 초기 교회의 전례복과 세속적인 복장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도 없었으며, 더구나 교회 내에서 직무가 구별된 것은 원시 교회부터였지만 서로 복장의 구별은 없었다.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초기 교회는 평상복으로 경신례를 거행하다가 4세기경에 와서 일반 시민들이 축제 때 입던 예복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 이후 전례의 형식이 풍부하게 발전되면서 전례복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역사적 변천〕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입던 옷과 전례 때 사용하던 옷이 구별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의 시작부터이다. 고대 그리스도교와 북쪽의 게르만 민족이 혼합하는 중세 시기는 유럽의 역사적 발전에 있어서 기초가 되었다. 특히 복장에 있어서 게르만 민족이 입던 짧은 복장은 유행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성직자는 게르만 민족의 영향을 따르지 않았고, 생활과 전례 예식에서 전통적인 로마식 복장을 착용하였다. 즉 긴 투니카를 띠로 묶었고, 겉옷을 입었다. 로마의 시민들이 입던 전통적인 옷이 외래 양식의 영향으로 변화되었을 때, 교회는 더욱 전통적인 옷을 유지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일반 시민들이 입던 옷과 구별되었다.
4~11세기 : 4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전례복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에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는 전례복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용하는 주요 전례복들이 결정되었다.
패눌라와 긴 투니카는 평상 시 입던 옷과는 다른 성직자의 복장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였다. 이것은 3세기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때 입었고, 6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일상 생활에서 좀 더 짧고 편리한 투니카로 바뀌었다. 6세기에 신부는 달마티카(Dalmatica)와 패눌라를 입었고, 주교는 그 위에 영대 대신 팔리움(Palliun)을 걸쳤으며, 부제는 달마티카를, 차부제는 투니카만을 입었다. 8세기에 처음으로 캅파(Cappa)가 나타났는데, 그 당시 캅파의 모양은 어깨 넓이에 맞추어 재단되어 목둘레가 파여 있었으며, 몸 전체를 싸서 덮는 효과는 없었다. 이 옷은 본래 농민, 군주, 기사 모두가 입었던 망토였으나, 수세기가 흐른 후에 전례복이 된 것이다. 전례 복장의 발전에 있어서 8세기 전까지는 로마의 영향이 별로 작용하지 않았으나 8세기에 와서는 사정이 달랐다. 콘스탄티노플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12세기까지 비잔틴 예술이 서방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제의의 장식들이 풍부하고 섬세하게 발달했으며, 성직자들의 복장을 표현해 주는 자수는 직물의 짜여진 형태뿐만 아니라 복장의 장식, 형태의 변화도 가져왔다. 실크와 보석은 물론 금실과 은실이 풍부하고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때때로 본래의 천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바탕이 장식으로 가득 찼다.
1 1 ~15세기 : 9~13세기에 걸쳐 서유럽에서 성직자 옷의 발전은 종결짓게 된다. 시종자가 제의, 영대, 수대를 착용하는 관습은 끝났고, 투니카는 차부제의 전통적인 옷이 되었다. 제의는 미사 때 입는 옷이 되었고, 캅파는 그 외의 예식에 사용되었다. 11세기경에 나타난 새로운 전례복으로 중백의가 있는데, 이것은 튜닉의 일종으로 장백의를 조금 짧게 변형한 것이다.
11~12세기에 로마의 쇠퇴로 북방 게르만 민족의 침투가 시작되자 당시 복장의 특색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소위 로마네스크이다. 당시의 로마네스크는 고전적인 것, 북방적인 것 또는 십자군에 의해 들어온 동방적인 것 등 여러 요소가 일부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결합된 결과로 본다. 12세기에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전례복을 창조하는 데 극치를 이루었고, 유행의 변화와 함께 상징적 의미가 강조되었다. 그리고 십자군의 원정에 자극받은 일관성 있는 복식 양식이 형성되었다. 제의를 수놓고 짜는 디자인은 당대의 다른 예술 작품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15~17세기 : 중세 말기에 사용된 현란한 재료들은 보기 좋은 주름이 잡혀 드리워지는 모양이었으나 의복의 기능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원형이었으며 한때 더욱 넓어졌던 제의는 새로운 유행에 따라 좁게 재단되고 그 후 점차 폭이 좁고 길이가 짧아져 17세기에는 고대 제의의 여유있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졌다. 결국 오랜 시기가 지나서야 그 길이와 어깨의 넓이를 회복하였지만, 제의의 참된 모양과 특성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반면 제의의 여러 부분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으며, 단순했던 천의 짜임이 무늬를 넣어서 짜거나 아름다운 자수를 놓아 장식의 목적과 기술 면에서 극히 종교적인 경향을 나타내었다.
15세기 재료에 나타났던 무늬는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세속적인 주제가 성행하였다. 즉 천연의 꽃이나 나뭇잎, 독수리의 머리, 비둘기, 매 등이 등장하였다. 그래서 14세기 말엽과 15세기의 자수는 초기의 완벽성을 상실하였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에 제의는 일반적으로 어깨가 노출될 정도로 짧아지고 폭도 줄어 비로드(veludo, 羽緞)로 장식된 앞부분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연상시켰고, 아래쪽 둥근 부분은 철판처럼 뻣뻣해졌다. 16세기에는 레이스(lace)가 발달했으며 장백의에 많은 장식을 하였다.
17~20세기 :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는 한마디로 보편화된 유행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화려하면서도 훌륭하게 만들어졌던 전례복은 18세기에 자연적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레이스 등의 지나친 장식으로 인하여 주요한 상징이 드러나지 못한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신-고딕 운동으로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에게 아름다운 형태의 전례복을 착용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고딕식 제의가 유행하게 되었다.
〔종 류〕 개두포 : 개두포(Amictus)는 사제가 미사 때 가장 먼저 착용하는 아마포로 된 장방향의 흰 천으로, 양쪽에 긴 끈이 달려 있어 어깨 위로 걸치게 된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도리에서 유래된 개두포는 라틴어로 '아믹투스 (Amictus)인데, 이는 '아미우레' (Amiure : 둘러싸다, 씌우다)에서 파생하였다. 개두포는 좁다랗게 긴 천 조각이 위쪽 목덜미로부터 어깨, 그리고 겨드랑이 아래쪽을 지나면서 코르셋과 같은 방법으로 복장을 좀 더 몸에 밀착시키게 만들어 양팔의 움직임을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개두포는 전례 예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예식을 집행하는 동안 투니카(Tunica, 로마인들의 속옷)의 거추장스러운 주름을 몸에 부착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개두포의 재료는 아마포나 삼으로 만들어지고, 끈은 비단이나 다른 천으로 만들어서 달았다. 두 개의 끈이 부착된 장방형의 개두포는 중앙에 작은 십자표를 수놓아 장식하였다. 그리고 미사 집전 사제는 개두포를 착용하면서 "주님, 제 머리에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개두포는 그리스도가 수난 때 안면을 가리고 놀림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표시이고 '구원의 투구' 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장백의 : 장백의(Alba)는 사제가 미사 때 개두포 위에 입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백색의 긴 옷이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입던 어깨에서 발등까지 내려오는 소매없는 평상복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제국 초기에는 넓은 가운과 같은 형태로 넓은 소매를 달아서 입었으며 길이가 짧아졌다가 5세기경 유행이 바뀌어 다시 길어졌고
좁게 변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모양의 장백의가 성직자들이 계속 착용하여 왔는데, 수단을 가 위해 길이가 길어졌고 무릎을 꿇을 때 용이하도록 넓어졌다. 만일 장백의를 입는 성직자가 평복을 입옷의 목 부분을 장백의가 다 덮지 못하면 장백 입기 전에 개두포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성직 신분을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면 개두포를 하지않아도 된다. 중세 때 최초의 장백의는 모(毛)였었가끔 린넨이나 실크(비단)로 된 것도 있었다. 개두포와 마찬가지로 장백의 역시 10세기 이후에 자수와 귀한 천으로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데 편하기 위해 허리와 소매 부분을 밴드나 리본 모양으로 돌려서 꾸몄다. 15세기 이후에는 레이스 장식이 확산되면서 중세 시대의 고전적인 장신구들이 사라졌다.
장백의는 사제가 미사 때 가져야 할 육신과 영혼의 결백을 상징한다. 또한 이 옷은 마음의 순결을 상징하고 새로운 생활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사제는 장백의를 입을 때 "주님, 저를 결백하게 씻으시어 제 마음을 조찰하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어린양의 피로 결백하게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장백의를 조금 짧게 변형한 것이 중백의(中白衣, superpelliceum)이다. 옷의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소매 폭이 넓으며 소매 끝과 아랫단에 수를 놓기도 한다. 주로 유아세례 등의 성사를 미사 없이 집전할 경우에 수단 위에 입으며, 미사의 입장 행렬 때 입기도 한다. 장백의와는 달리 띠를 매지 않고, 중백의 위에 영대를 걸친다. 12세기경 로마에서 처음 착용하기 시작한 이 옷은, 장백의 대신 입지만 제의를 입을 경우 장백의를 대신할 수 없다.
띠 : 띠(Cinctura)는 사제가 장백의를 입을 때 길이가 긴 장백의가 끌리거나 벌어지지 않게 허리에 매는 끈이다. 띠는 비단, 목면, 또는 모직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고 길이는 3~4m이며 양쪽 끝에 장식 술이나 고리가 달려 있다. 띠의 색은 보통 흰 색이나 그날에 해당하는 제의색과 일치시킬 수도 있다.
띠는 일, 싸움 등에서 나타나는 결의의 상징으로 악마와의 투쟁, 극기의 필요성을 각성하게 한다. 또한 장백의가 사랑으로 감싼다는 의미가 있는 데 반해, 띠를 묶는 것은 금욕 생활을 뜻한다. 그래서 사제는 띠를 매면서 "주님, 조찰함의 띠로 저를 매어 주시고, 제 안에 사욕을 없이하시어 절제와 정결의 덕이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영대 : 영대(Stola)는 성직자가 자신의 성무 집행의 표시로 목에 걸쳐 무릎까지 늘어지게 매는 좁고 긴 띠를 말하는데, 고대 동방의 상류 사회에서 상용하던 장식술이 달린 화려한 목도리에서 유래하였다. 4세기에 처음으로 부제들이 명예를 표시하는 휘장으로 사용했고, 주교와 사제들이 목에 걸고 미사를 드렸다. '영대' 라는 공식 용어를 사용한 것은 6세기부터였다. 영대는 길이 약 2.5m, 넓이 약 15cm 정도로 제의와 같은 천으로 만들어지는 데, 13세기 이후 넓이가 4cm 정도로 좁아졌다.
영대의 중앙과 양쪽 끝에 십자가로 수를 놓고 그 끝을 술로 장식하였다. 영대의 착용법은 매우 다양한데, 부제는 미사 중의 동작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왼편 어깨에서 오른편 허리 밑으로 맨다. 또 사제는 과거에 X자형으로 가슴에서 교차해 매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교와 같이 가슴 앞에서 평행하게 내려 맨다. 영대는 성직자의 직책과 의무 그리고 성덕의 상징으로 전례복의 주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사제는 영대를 착용할 때 영대에 입을 맞추며 "주님, 주님께 봉사하기에 합당히 못하오니 원죄의 타락으로 잃은 불사불멸의 영대를 제게 도로 주시어 주님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제의 : 제의(Casula)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장백의 위에 마지막으로 입는 반추원형의 옷인데, 이 옷은 로마인들의 옷인 패눌라에서 유래하였다. 이 옷은 동양과 서양에서 남녀가 함께 착용한 겨울 외투이며, 여행용 외투로도 착용되었었다. 오른팔에 걸쳐서 넓게 파동치며 움직이는 주름이 잡힌 이 옷은 외관이 훌륭하고 고상한 맵시를 준다. 4세기에 로마 원로원의 제복이 되었고 귀족들의 집회에서 유행하였으며 자연히 성직자들에게 도입되어 미사 때에 제의로 착용하게 되었다. 이 제의는 원래 머리를 넣고 뺄 수 있게 중앙에 구멍을 뚫고 몸 전체를 감싸서 두 팔이 모두 보이지 않게 하거나 오른팔 한 쪽만 나오게 되어 있는 넓은 망토와 같은 종(鐘)처럼 생긴 외투였다. 13세기까지는 앞 뒤 양쪽면의 길이가 1.6m였는데, 그 후 경제적 이유와 유행에 따라 형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즉 길이가 짧아지고 손등을 덮고 치렁치렁 하던 부분이 어깨가 노출될 정도로 짧아졌다. 그러나 16세기 말엽에 다시 길이가 길어지고 팔 부분만 제외하고는 여유 있는 모양이 되었다.
제의는 예수의 멍에를 상징하고 애덕을 표시하는데, 처음에는 제의를 '사랑의 옷 이라고 하였다. 9세기에는 '온유하고 가벼운 그리스도의 멍에' 라고 했으며, 12세기에는 '순결의 옷' 이라고 불렀다. 제의의 재료는 보통 실크와 면, 혹은 아마포나 모가 섞인 천 등의 고귀한 옷감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십자가, 비둘기, 물고기, 밀이삭, 포도 등 여러 상징으로 장식된다. 제의의 앞면에 새겨진 십자가는 사제 자신의 십자가를 상징하며, 뒤에 새겨진 십자가는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성덕, 십자가에서 보여 준 그리스도의 희생,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상징한다. 거룩한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는 제의를 입을 때에 "주님,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내 멍에는 달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신지라, 저로 하여금 주님 성총을 얻어누리도록 이를 잘 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한다. 미사를 집전하는 모든 사제는 반드시 장백의와 영대와 제의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 집전 미사 등으로 제의가 부족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주례자 외의 공동 집전자들은 장백의와 영대만 착용할 수 있다(전례성사성,Tres abhinc annos, 1967,27항 ;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161항). 그러나 영대만 메고 미사를 집전하거나 사제 수품식 때 안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전례 성사성, Litur-giae instaurationis, 1970, 78항 3절).
달마티카 : 달마티카(Dalmatica)는 부제가 미사와 행렬 등의 장엄한 예식 때 입는 옷이며, 서구의 복식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옷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중세 유럽에 걸쳐 착용된 투니카계의 표의(表衣)로서, 특히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복식이다. 달마티카는 원래 로마인들의 옷이 아니라 반모(半毛)생산지인 현재 유고슬라비아의 달마티카 지방에서 착용되었던 옷으로, 3세기경 로마로 전해져 귀족 계급에서 유행하였다. 프리쉴라(Priscilla) 카타콤바에 있는 3세기 벽화에서 처음 성의(聖衣)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벽화에는 교황이 한 동정녀의 축성식에서 패눌라와 달마티카를 입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교황 만이 입었고, 특전으로서 교황이 다른 이들도 입도록 점차 허용하였다. 4세기에는 로마의 부제들이 처음 입었고, 12세기까지는 모든 부제들이 입게 되었다. 그리고 주교가 주교 미사 때에 제의 안에 입기도 하였다. 달마티카는 앞과 뒷면에 어깨 위에서부터 아래로 은색 또는 자색의 실로 두 줄의 무늬를 아름답게 수놓은 것이 특징이며, 조금 좁게 소매 끝과 목둘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옷은 실크, 목면, 모직 등으로 만들었으며 처음에는 백색으로만 만들었고, 자색과 녹색 등의 줄무늬를 수 놓았으나 12세기부터는 교회법에서 정한 색의 영향을 받아 전례색을 입게 되었다.
12세기 이후 이 옷의 크기와 모양에 변화가 와서, 16세기부터는 소매를 갈라놓고 끈으로 매든가 아니며 단순한 날개 모양처럼 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줄무늬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장식하는 데 정해진 규제도 없어졌다.이 옷의 형태는 커다란 십자가를 연상시키므로, 이 옷은 거룩한 십자가를 의미하고 앞과 뒤에 장식한 두개의 줄무늬는 그리스도의 성혈을 상징한다. 그리고 백색 달마티카에 적색의 줄무늬는 기쁨과 하례(賀禮)를 상징하고, '정의의 옷' 이란 의미도 갖는다. 이 옷 자체가 일종의 축제복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대한 예식 때에 사용하며, 평일 미사 때나 부제가 직접 어떤 예식을 주관할 때에는 착용하지 않는다.
캅파 : 캅파(Cappa)는 특별한 예식 때 주교나 사제가 입는 소매가 없는 외투 형태의 긴 옷인데, 9세기 초부터 착용되었다고 한다. 캅파의 앞은 터져 있으나 가슴 부분에 쇠단추로 죄어지게 되어 있고, 뒤에는 납작한 두건이 달려 있거나 방패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 옷은 수도자들과 사제들의 외투를 예식에서 사용하여 전례복이 된 것인데, 11세기 말에 미사를 제외한 전례 예식, 즉 행렬과 성체 강복 등의 전례를 집전할 때 착용하였다. 끈이나 고리가 달린 가장 자리는 장식이 화려하며, 주교는 금속으로 만든 주교용 표시의 십자가로 고리 단추를 달 수 있고 보석을 달아 치장할 수 있다.
캅파는 원래 모양인 종형(鐘型)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모자의 모양은 다양하였으며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즉 처음에는 모자 모양이던 것이 13세기에는 삼각형의 천으로 되었으며, 14세기부터는 커지기 시작하여 방패 모양이었다가 다시 반원형의 크기로 어깨를 덮었고, 18세기에는 반신(半身)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장식도 다양해져서 중세기에는 금실과 은실로 모자와 캅파 전체를 수놓았다.
〔색 상〕 전례복의 색은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 특성과 전례력에 따라 그 정신을 표현하는 신앙 생활의 뜻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목적을 가졌다. 초기 교회에서는 일정한 전례색이 존재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성서에 관련 지어 전례에서 백색만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그 축일의 특별한 의미를 제의 색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예를들어 예수가 돌아가신 날의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서 검정색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를 주교가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즉 시기와 목적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하여 일정한 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색채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받아들여 다양한 색상의 제의를 입는데, 전례력의 각 시기에 있어 제의나 그 밖의 전례 용품에 일련의 색상을 사용한 것은 12세기부터이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때에 전례 축일과 각 시기에 따라 특수한 색상을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발표되었으며(De sacro altaris mysterio 1, 65 ;PL 217, pp. 799~802),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로마 미사 경본》에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다. 현행 규정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대축일, 예식미사, 기원 미사, 신심 미사 등에 알맞는 색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은 달라진 점이다. 각 주교 회의는 민족 문화와 전통에 맞는 전례 색상을 결정하여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다음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 회의는 위령 미사나 장례 예식용 삼베색을 전례 색상에 추가하였다. 하지만 현재 교회가 지정한 색상은 오랜 관습에 따라 다음과 같다.
백색 : 이 색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축일의 환희가 충분히 표현되어야 할 전례에 있어서는 항상 이 색을 사용하며, 금색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결백과 영광, 그리고 빛과 기쁨을 상징하는 이 색은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 주님의 축일(수난에 관한 축일은 제외), 성모님의 축일, 천사들의 축일 및 순교자들을 제외한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된다.
적색(홍색) : 이 색은 뜨거운 사랑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순교자들의 축일에 사용된다. 적색은 언제나 피와 불과 관련되는 축일에 사용되므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파스카 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행사,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의 축일, 순교자들의 축일 등에 사용된다.
녹색 : 이 색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중간색 ' 이라하여 교회에서 특별한 축일의 특징이 강조되지 않는 보통 주일에 사용되었다. 녹색은 자연 속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색으로 나뭇잎의 싹, 식물의 성장, 열매의 희망, 신자들의 생활과 소망을 상징한다. 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색은 연중 주일과 연중 평일에 사용된다.
자색 : 이 색은 색 자체가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아 회개의 뜻을 잘 표현한다. 이 색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 그리고 고행과 금식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사용되며 또한 위령 미사에 사용되기도 한다.
흑색 : 이 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죽은이를 위한 장례 미사와 위령 미사 때에 사용된다. 오늘날에는 죽음의 파스카적인 의미에 따라 장례 미사 때에도 점차로 흰색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장미색 : 이 색은 자색의 슬픔과 백색의 기쁨에 대한 중간 색으로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의 기간에 성탄과 부활의 서광을 앞두고, 기뻐하며 휴식한다는 의미로 대림 제3 주일과 사순 제4 주일에 사용된다.
금색 : 이 색은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때 입으며, 백색, 적색(홍색)을 입을 때 사용할 수 있다. (⇦ 영대 ; 장백의 ; 제의 ; 중백의 ; 캅파 → 개두포 ; 수대)
※ 참고문헌  AA.VV, Liturgia, Milao, 2001/ - The dictionary of the Liturgy, New York, 1989/ ㅡ, Encyclopedia of Catholicism, New York, 1985/ M. Righetti, Manuale di Storia liturgica, Milano, 1950. 〔鄭義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