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4일 절대 다수의 찬성(찬성 2,147표, 반대4표)으로 통과되어 발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첫 번째 문헌. 총 7장, 130항과 1개의 부록으로 구성된 이 문헌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가 끝난지 정확히 400년 뒤에 반포되어 전례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전례의 본질과 의미를 근본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전례 쇄신과 올바른 전례 거행의 방향을 설정하였다.
[배 경] 20세기 중반까지 그리스도교 전례는 신중하게 쌓아 온 교회의 거룩한 유산으로 간주되어 어느 누구도 그 보존에 대해서 감히 의심을 하거나 과감한 쇄신을 시도할 수 없었다. 대다수의 전례서나 전례 제도는 동서방을 막론하고 초기 교회의 생활에서 서서히 시작되어 초기 교회 시대가 거의 끝날 무렵에 확고한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로마 전례는 8세기 이후 갈리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또 다른 성장 시기를 맞이하였다. 이것은 초기 전례 형태 위에 첨가된 제2의 성숙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전례 특징은 대부분의 기도들이 전례를 거행하는 주례자의 신심을 돕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져서, 가시적인 기도의 양식들은 신자들이 그 깊은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주도한 전례 개혁은 주로 공적으로 잘못 거행되고 있는 전례를 정화시키고, 외부로부터 오는 전례에 대한 공박을 막는 일이었다. 이때에 개정된 전례 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확고한 전례 규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상황은 많이 변화되었다. 전례에 사용되는 공식 언어인 라틴어는 물론 전 서방 교회에서 거행되는 로마 전례의 본질적인 신심 형태는 신자들에게 아주 낯설게 되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신심운동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로 부차적인 신앙 요소들에 몰입하게 되었다. 또한,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듣고 이해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이 명확하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교회 안에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함께 모여 전례를 거행하는 주일에,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는 전례 거행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기 시작하였다.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걸쳐 특별히 프랑스와 독일에서 전례의 쇄신이 절실히 필요함을 공감하였지만,뚜렷한 결실을 거두지 못하였다. 19세기에 신심과 신학에 새로운 토대가 생겨나면서 성서와 교부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스콜라 신학의 쇄신, 교회론의 새로운 토대, 수도원 제도의 개혁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전례 운동' (motus liturgicus)의 기초가 되어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 특히 독일어권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로 인해 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많은 본당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전례 운동' 은 수많은 반대와 저항을 극복해야 했고, 교황청에 이를 고발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각 주교회의들이 이 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로마의 호응에 힘입어 '전례 운동' 의 위기는 점점 극복되기 시작하였다.
'전례 운동' 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계기는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회칙 <메디아토르 데이>(Mediator Dei, 1947. 11. 20)를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이 회칙은 '전례 운동' 의 노력과 지향을 근본적으로 인정하였다. 이에 힘을 얻어 많은 나라에서 전례 연구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수많은 전례 회합과 국제적인 전례 연구 모임들이 개최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1956년 9월 22일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개최된 세계사목 전례 대회는 무엇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황 비오 12세는, "전례 운동은 현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섭리와 같은 표시로 빛나고 있다. 이 운동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이며 우리 인간들을 신앙의 신비와 은총의 풍요로움으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은총의 풍요로움은 다름이 아닌 신자들이 전례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 얻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환영사에서 '전례 운동' 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반포 과정〕 '전례 운동' 초기의 전례 참여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이 점점 전례 자체의 개혁과 쇄신의 필요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전례 개혁과 쇄신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게 되었다.그 계기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다. 1959년 1월 25일 교황 요한 23세(1958~1963)가 공의회를 개최하겠다는 발표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교황은 공의회가 올바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 자유스럽고 진정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공의회 개최 발표 자체에는 전례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곧 '전례 운동' 의 여러 가지 관심사들을 모아서 전세계 교회를 위해 시대에 맞는 해결점을 찾는 것이 공의회의 과제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하지만, 공의회 개최 발표이후 교황청을 중심으로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다.이들은 전례의 고정적인 규정과 중앙 통제성, 불변성과 고착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전례 쇄신을 위한 공의회 이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 증거로 1960년 7월 26일에 발표된 《전례 규범집》(CodexRubricarum)과 1961년과 1962년에 발표된 성무일도서와 미사 전례서의 '표준판' (Editio typica) 등을 통해서 잘 이해할 수 있다.
전례와 쇄신에 대한 주제는 공의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의회 전에 전 세계에서 교황청에 보낸 9천 쪽이 넘는 제안들 가운데 4분의 1이 전례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1961년 1월 15일 교황 요한 23세는 10개의 준비위원회와 2개의 사무국으로 구성된 전체 위원회 발족을 발표하였다. 10개의 준비위원회 중 하나가 전례 준비 위원회(Pontificia Commissio de Sacra Liturgia Praeparatoria Con-cilii Vaticani Ⅱ)였다. 이 위원회는 1960년 11월 12일 로마에서 13개의 소위원회로 나누어 임무와 과제를 분배하고, 전례 쇄신의 방향을 설정하는 첫 회합을 가졌다. 1961년 4월 12~22일까지의 두 번째 전체 회합에서는 소위원회에서 작업한 결과들을 모아 전체의 윤곽을 잡는 작업을 하였다. 세 번째 전체 회합은 1962년 1월 11일~13일까지 개최되었다. 이 회합에서는 공의회 전체 위원회에 제출할 최종적인 문안을 작성하였으며, 1962년 2월 1일 전례 준비 위원회 의장의 인준을 받았다.
1962년 10월 16일 전례에 관한 문헌이 공의회의 첫 안건으로 22일부터 토의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것은 '전례 운동' 의 노력과 전례 준비 위원회의 작업 결과에 대한 인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많은 주교들 이 전례의 근본적인 쇄신을 반대하였고, 어쩌면 전면적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야 될 위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전례 문안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토의를 시작함과 동시에 이 문안에 대한 심각한 반대에 부딪쳤다. 반대 주장은 동방 교회의 원칙대로 공의회에서는 일반적인 원칙만 취급하고 실제의 전례 쇄신은 교황에게 위임하여야한다고 밝혔다. 특별히 제1장에 나오는 신학적인 설명들은 전례 문안 전체를 모두 신학 위원회에 일임하여 다루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야기시키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1962년 11월 14일 문안 전체를 모두 기본 토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단지46표가 반대하였다. 같은 해 12월 7일 첫 회기를 마감하면서 제1장을 통과시킬 것인지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는 11표가 이를 반대하였다.
전례 준비위원회에 부가된 작업들이 2차 회기가 시작되기 전 1963년 4월 23일~5월 10일까지 로마에서 이루어졌다. 이 작업에서 문안에 대한 교정과 재검토가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1963년 10월 8일~31일까지 개최된 2차 회기에서 찬반투표에 부쳐졌다. 그 사이 2~7장까지의 내용에 대한 재검토가 실시되었고, 수 많은 논란과 반대가 있었다. 특별히 문헌의 상세한 부분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대단히 많은 수정안들이 제시되어 힘든 작업과정을 또 한 번 겪게 되었다. 결국 1963년 11월 22일 마지막으로 전체 전례 문헌에 대한 결정 투표가 실시되어 찬성 2,158, 반대 19의 결과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1963년 12월 4일 성대하게 개최된 전체 회합에서 이 문안이 <전례 헌장>(Consti-tutio de Sacra Liturgi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날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공의회 교부들과 함께 이 헌장을 인준하고 장엄하게 반포하였다. "이 날은 전례 역사에서 귀중한 날로서 소중한 수확을 얻은 날이며, 그 전 몇 십년동안 성령의 입김으로 자라서 열매를 빚고 결실을 거둔 귀한 소득의 날이다."
〔내 용〕 전례의 본질과 의미를 밝히고 전례 쇄신과 올바른 전례 거행의 방향을 설정한 <전례 헌장>은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처음부터 의도한 전체의 목표 안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교회의 문헌이다. 공의회는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특별히, "신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 생활을 나날이 발전시키고, 변경할 수 있는 그 제도들을 우리 시대의 요구에 더 잘 적응시키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의 일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증진하고, 또 모든 이를 교회의 품으로 부르는 데에 이로운 것은 무엇이든 강화하려고 하므로, 특별히 전례의 쇄신과 증진을 위한 배려도 자기 소임으로 여긴다"(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목표와 과제를 지닌 <전례 헌장>을 통해서 전례는 물론, 올바른 전례 거행을 통해서 신자들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목표에 따른 구분 : <전례 헌장>의 일반적인 목표 설정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전례에 대한 새로운 가치 평가를 하였다. 즉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 (7항).
둘째, 능동적인 전례 참여의 촉진을 언급하였다. "거룩한 전례의 쇄신과 증진에서는 온 백성의 완전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위하여 최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14항).
셋째, 전례학과 전례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15~19항) "거룩한 전례에 관한 학문은 신학교와 수도자 신학원의 필수 전공 과목이어야 하고, 대학 신학부에서는 주요 과목이어야 한다"(16항).
넷째, 변경 가능한 부분에 대한 전례 쇄신의 일반 원칙을 제시하였다(21~40항). 예를 들면 "교회에 참으로 확실한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개혁을 하지 말아야 한다"(23항). 특히 성서 봉독에 대한 귀중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전례 거행 안에서 더 풍부하고 더 다양하고 더욱 적합한 성서 봉독이 마련되어야 한다" 고 하였다(35항). 그 밖에도 전례 거행의 공동체성, 전례의 단순성과 명료함(34항), 엄격한 형식의 통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여러 민족의 전통과 특성에 대한 적응(37~40항), 모국어사용에 대한 허가와 방법(36항)에 관해서 구체적인 설명과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일반적인 규정과 지침들이 제2장부터 제7장에 걸쳐(47~130항), 해당항목별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부록에서는부활 축일을 어느 특정한 주일에 고정시키자는 주장과영구적 달력을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해 공의회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목차에 따른 구분 : 목차에 따라서 <전례 헌장>의 내용을 살표보면, 다음과 같다. 42개 항으로 구성된 1장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전례의 쇄신과 증진을 위한 일반 원칙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부분(5~13항)은 전례의 본질과 교회 생활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과 승천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설명하면서, 전례는 이것을 현재화시키는 교회의 활동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 부분(14~20항)은 전례 교육과 능동적인 참여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전례의 본질과 특별히 모든 신자들의 일반 사제직에 근거하여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전례 참여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 전례 교육은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21~40항)은 전례 쇄신에 관한 전체적인 규범을 일반 규범(21~25항)과 교계와 공동체의 고유 행위로써 전례의 특성에 따른 규범(26~32항)과 전례의 교육적 · 사목적 특성에 따른 규범(33~36항)과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대한 적응 규범(37~40항)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거룩한 전례에서 풍성한 은총을 더욱 확실히 받도록 전례 자체의 전면 쇄신을 적극추진하고자 한다" (21항). 변경할 수 있는 부분 중에서 쇄신이 필요한 모든 부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공의회는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번째 부분(41~42항)은 교구와 본당 안에서 전례 생활의 증진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교를 자기 교구의 대표적인 전례 거행자로 지칭하면서, 주교좌 성당의 전례 거행을 중요시하고 있다. 동시에 본당 공동체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교회를 드러내기 때문에, 본당의 전례 생활과 주일 미사의 거행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섯 번째 부분(43~46항)은 전례적 사목 활동의 증진에 관한 설명으로서, '전례 운동' 은 성령께서 안배하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전국 전례 위원회와 교구 전례 위원회는 사목적 전례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자기 지역의 전례 사목 활동을 조절하고 필요한 연구와 실험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2장은 12개의 항(47~58항)으로 구성되어 주로 성체 성사의 신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성체성사의 신학적인 설명과 함께 십자가 희생 제사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3장은 총 24항(59~82항)으로 구성된, 성사와 준성사에 대한 설명이다. 먼저 성사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 몸의 건설"(aedificatio-nem Corporis Christi)이라는 표현으로 교회론적인 관점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 나아가 성사들과 준성사들의 집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예식서는, 성사들의 특별한 사회적 중요성을 지닌 지시들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4장은 19개의 항(83~101항)으로 구성되어 시간 전례의 본질, 구성 요소, 거행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개정 규범에 대한 해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시간 전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기도의 계속으로 간주하면서, 수도 생활의 전통과 관습처럼 낮과 밤의 모든 시간의 흐름이 하느님 찬미를 통하여 성화되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장은 총 11항(102~111항)에 걸쳐서 전례 주년의 의미와 개정, 성인들의 축일을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대한 기념을 한 해를 주기로 3번 지내는데, 주일과 부활 축제와 육화와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의 축제력이 바로 전례 주년이다. 이런 구원 역사의 기념을 통해서 구원의 신비가 모든 시기에 신자들 사이에 현존한다고 여기고 있다. 6장은 10개항(112~121항)에 걸쳐서 교회 음악을 다루고 있다. 성음악에서 순수 예술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되어 전례의 본질과 전례 쇄신의 근본 원칙과 쉽게 일치될 수 없기 때문에, '전례 운동' 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공의회는 이 문제에 대해 결말을 지어 화합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공의회는 교회음악에 대한 높은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7장은 9개 항(122~130항)에 걸쳐서 성미술, 전례에 필요한 의복과 기물에 관한 설명을 다루고 있다. 예술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출발점으로 하여 공의회는, 교회를 미술의 애호가로 찬양하면서 성미술에 대한 교회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전례 헌장>은 달력 개정과 관련하여 한 개의 부록을 첨가하고 있는데, 여기서 달력 개정에 대한 두 개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로마로부터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찬성한다면 부활 축일을 그레고리오력의 어떤 주일에 고정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둘째, 주일과 함께 칠일로 구성된 주간이 지켜지고 보호된다면, 공의회는 영구 달력의 도입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다. 단, 중대한 문제들이 발생하여 사도좌가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경우가 아니라야 한다고 조건을 첨가하였다.
〔평 가〕 <전례 헌장>은 교회 구성원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에 대한 열망으로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것이며,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교회의 큰 선물로 간주될 수도 있다. (→ 바티칸 공의회, 제2차 ; 전례 ; 전례 규범 ; 전례서 ; 전례 운동 ; 전례학)
※ 참고문헌 J.A. Jungman, Einleitung und Kommentar zur Liturgiekonstitution, Das Zweite Vatikanische Konzil 1, Freiburg, 1966, pp. 10~109/ EJ. Lengeling, Die Konstitution des Zweiten Vanikanischen Konzils über die heilige Liturgie, Münster, 1964/ H. Schmidt, Die Konstitution über die heilige Liturgie, Freiburg, 1965/ K. Rahner · H.Vorgrimler, Kleines Konzilskomperdum Freiburg, 1985 pp. 37~90. 〔金錫中〕
<전례 헌장>
典禮憲章
〔라〕Sacrosanctum Concilium
글자 크기
10권

<전례 헌장>의 반포로 전례 거행의 공동체성이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