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그는 본래 금산(錦山) 주리 사람으로 부친에게 천주교를 배워야고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리에 밝은 교우로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도 교리에 밝았으며 신자들 사이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를 무사히 넘긴 뒤 주리를 떠나 여러 곳으로 두루 떠돌아 다니며 살다가, 중년에 현 프란치스코와 함께 공주 산유리로 이사 가서 살았다.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박해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숨겼으나, 1867년 2월 현 프란치스코 부자와 함께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신자가 아니라고 배교하였다. 포졸들은 주리를 틀고 매를 무수히 때리며 재물과 천주교 서적을 내놓으라고 추궁하였으나, 그는 끝내 재물도 주지 않고 천주교 서적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그와 현 프란치스코 부자를 공주감영으로 끌고 가면서 무수히 형벌을 가하였다.
진영장(鎭營將)이 그를 심문하면서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과연 천주교를 믿는다고 대답하였다. 순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죽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옥으로찾아왔다. 그는 깜짝 놀라며 위험하게 옥으로 찾아온 아내를 책망하고 자식과 집안 사정을 물은 뒤, 집에서 잡힐 때 배교한 것을 후회하고 이미 감영에서 모든 것을 자백 하였으니 다시는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멀리 피난 가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잘 살다가 이 다음에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기뻐하는 낯으로 아내와 작별하였다. 결국 그는 1867년 4월 4일에 현 프란치스코 부자와 함께 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58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현 프란치스코)
※ 참고문헌 《치명일기》 《병 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병인 치명사적》 8권 p. 20. 〔徐鍾泰〕
전성백(1810~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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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