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

傳承

Ⅰ. 의미와 기원 · Ⅱ. 내용 · Ⅲ. 전승과 성서의 관계 · Ⅳ. 주체 · Ⅴ. 발전 · 〔라〕traditio · 〔영〕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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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빵을 쪼개는 예식은 성전에 근거해 시작되었다.

미사 중 빵을 쪼개는 예식은 성전에 근거해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 교회의 신앙과 실천, 교리적 가르침만이 아니라 전례, 행동 규범, 경험, 거룩함 등 전체를 의미하는 용어. 좁은 의미에서는 성서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기 교회 공동체 때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을 의미한다.
'전승' 을 뜻하는 라틴어 '트라디시오' (traditio)는 '전달하다 · 주다 · 부여하다 · 넘겨주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트라데레' (tradere)에서 파생된 낱말이다. 즉 어떤 사람이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로 그 물건의 소유권은 넘겨주는 사람에게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로 넘어간다. 이것이 전승이 내포하는 일반적인 의미이며,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적 계시의 통교와 전달을 의미한다.
I. 의미와 기원
성서는 '전승' 이란 개념을 통하여 신적 구원 경륜이 하느님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은 '행적' 과 '말씀' 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과 통교하고 내어 주셨음을, 즉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성서는 확인하여 준다(계시 2항). 그리고 "당신의 친아드 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넘겨주신 하느님"(로마 8, 32)에 대하여,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갈라 2, 20)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증거하고 있다. 구원 경륜은 따라서 '내어 주는 것' 으로, 다시 말하면 '신적 전승' (tradino divina)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신적 전승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통교' ,'사랑의 대화' , '일치' 가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신적 계시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Dei Verbum)은 거룩한 전승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이 영구히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매우 자비로이 배려하셨다"(계시 7항). 계시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이기 때문에 계시의 전달은 필연적이다.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원의에 의한 것이며,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에게, 교회에 주어진 본질적 사명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2고린 1, 20 ; 3, 16-4,6 참조) 사도들이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면서,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명하셨다"(계시 7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자' ,'계시 자체' , 계시의 '중심' , '충만함' , '완성' 으로,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 로 제시하고 있다. "이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 구원에 관한 심오한 진리가 중개자이시며 동시에 모든 계시의 충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밝혀진다"(2항).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의 신적 계시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전달되어야만 하는 구원의 '복음' 이다. 이러한 계시의 전달에 있어서, 사도들은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적 증인들이다. 이들은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증거하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달하여 주고 있다. 그들은 계시 전달의 방법이었으며 생생한 통교 수단이었다. 이들이 선포하는 '복음' 은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위한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앞으로 도래할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복음' 을 선포하였으나, 사도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복음' 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에 그리스도와의 삶 안에서 전해 받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 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7항).
그들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신적 계시에 대한 증거였으며, 그들이 선포하는 말은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들의 체험을 우리에게 밝혀 주는 것이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공동체의 그리스도께 대한 특별한 체험은 사도 시대 이후로 이어지는 모든 세대가 갖는 신앙 체험의 규범이다. 사도들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신앙 체험과 삶과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규범으로서 남았다. 이렇게 하여 '신앙의 유산' (depositum fidei)이 형성되었다. 기초적 계시(공적 계시)가 사도 시대로 끝났지만, 사도들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신앙의 유산' 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또 다른 형태의 계시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초월하는 새로운 계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실현되었고,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도들의 신앙과 삶을 통하여 모든 것이 인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1디모 6, 14 ; 디도 2, 13 참조)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계시 4항) .
전승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어떤 것이 전달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에 전달해 주는 사람은 그 물건의 소유권과 사용권까지도 넘겨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넘겨지는 것이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영신적인 것, 정신적인 것일 때에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교수가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현실을 전달하여 줄 때, 그 교수는 무엇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수가 이해하고 있는 것,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학생들 안에 폭넓게 통교되며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더욱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교가 전달하여 주고 있는 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이 교회에 전달하도록 위탁한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쁜 소식, 즉 '복음' 이며 그 구원 현실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하느님과의 '일치' , '통교' , '친교' 를 목적으로 하는 구원 현실을 선포하며 전달하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전승이란 교회가 자신의 살아 있는 신앙을 통하여 '복음' 을 넘겨주고 전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선물이 물리적으로 격리된 시공간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교되고, 따라서 똑같은 유일한 구원 현실이 역사 안에 지속된다.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신적 구원 현실, 구원의 '복음' 은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전승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역사 안에 드러나고 현실화된다.
Ⅱ. 내용
전승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를 '능동적 전승' (traditio activa)이라 하고, 전달되는 내용들(tradita)을 '수동적 전승' (traditio passiva) 또는 '객관적 전승' (traditio objectiva)이라고 한다. <계시 헌장>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고, 그것을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명령은 충실히 이행되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 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또한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은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 (7항).
이 내용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하는 방법과 그 본성을 밝혀 준다. 사도들은 '복음' 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두 가지 방법으로 실행하였다. 즉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성전)과 기록된 가르침(성서)이다. 이전의 공의회 문헌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성전(聖傳)을 통한 가르침이 성서보다 먼저 제시되고 있다. 시간적으로 성전이 성서를 선행하고 있으며, 기록된 것은 필연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과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가 전해지는 집약적이며 우선적인 경로는 '전승' 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전승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 (7항), 즉 인간 역사 안에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복음' 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복음' 이란 구세사 안에 드러난 계시 전체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예언자들로부터 선포되었고 기다려졌으며,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고 사도들로부터 시작하여 교회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선포되고 통교되는 '복음' 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선포되고 성취된 '복음' 은 그분의 '말씀' 만이 아니라 그분의 구원 업적, 그분의 삶 전체, 존재 자체를 포함한다. '복음' 이란 역사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승의 유일한 내용은 계시의 '충만함' 이며 '계시자' 이고 동시에 '계시 자체' 인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성 전〕 신 · 구약성서가 기록되기 이전에 '복음' 은 구전(口傳)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삶을 통하여 전달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사도들은, 하느님에 의해 역사 안에 계시되었고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되고 준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의 현실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사도적 증거에 의해 태어난 이러한 공동체의 심장부에는 주님과의 내적인 체험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행동 양식과 삶의 방법을 배웠다. 스승과 언제나 함께 있었고, 그분이 병자를 치유하는 것을 보았으며, 하느님 아버지께 함께 기도하고 찬양과 감사를 드렸으며, 스승이 최후 만찬을 거행할 때도 함께 있었다. '빵의 쪼갬' 에 대하여 말하는 본문이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들은 자연스럽게 '빵을 쪼개는 예식' 을 거행하였다. 이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을 목격한 후에 그분의 뜻에 따라서 그러한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으며,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필요치 않았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그분께 대한 내적인 체험을 생활로써 전달하여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도들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삶 속에서 거행하면서 성체성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 리스도에 의하여 사도들에게 통교되었고, 그 후 교회에 통교된 모든 것을 오늘날에도 교회는 지속적으로 선포하고 거행하는 가운데,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하면서 다음 세대에 다시 전달하여 주고 있다.
전승은 말씀을 통한 가르침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모든 현실 자체를 의미한다. 사도들이 교회에 전해 준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모든 것이다. 그분의 말씀과 행적,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삶 안에서 갖게 된 체험들, 그분과의 긴밀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깨닫게 된 신비, 성령을 통하여 기억하게 되었고 더욱 새롭게 이해된 모든 것을 내포한다. 다시 말하면, 믿어지고 사랑되고 거행되고 생활화된 모든 구원 현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믿고 사랑하고 거행하는 살아 있는 삶의 전달이 아니라면, 결코 이해될 수도 소유될 수도 없는 현실들이다. 따라서 왜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 분과 함께한 공동 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 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7항) 전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가르침으로써, 삶으로써, 제도로써 전하였다. 이와 같이 계시의 전달은 '복음'의 선포와 선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 현실, 즉 전체 그리스도교 현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계시의 전달도 계시에서처럼 '행적' 과 '말씀' 을 통하여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받은 것을 삶을 통하여 전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보존할 수도 이해 할 수도 다음 세대에 올바로 전달할 수도 없다.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것 안에는 하느님 백성의 삶을 거룩하게
이끌고, 신앙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리하여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과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리고 그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8항).
〔성 서〕 사도 시대의 초기 교회는 교회 전체 역사의 어느 시기와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시기로서, 교회의 역사적 존재와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였다. 이때 역사의 모든 순간을 위하여 교회 삶의 영원한 규범이 될 성서가 기록되며 신앙의 유산이 형성된다. 신약성서는 교회 신앙의 확인을 통하여 글로써 새롭게 태어난 사도들의 유산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교회의 '거룩한 책' 이다. 교회 안에서 기록되었고 교회를 통하여 존재하게 된 성서는 교회 신앙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올바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보존될 수 있다.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의 영원한 삶의 규범인 성서를 받았다. 교회는 성령의 감도(inspiratio)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적 말씀인 '성서' 를 태어나게 해 주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규범으로 보존하고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성서는 교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태어나게 되었지만, 교회의 역사적 설정 요소가 되며 교회 삶의 영원한 규범으로서 교회를 역사 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하며 생활하게 해 준다. 이렇게 성서와 교회 사이에는 내적인 긴밀한 관계, 변증법적 관계가 존재한다.
성서 저자들은 당시 여건에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가르침을 자신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록하였다. 사도 공동체가 체험하고 생활하고 있는 '복음' 을 '글' 로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하고자 한 것도 아니며, 사도 공동체의 모든 체험을 완전하게 기록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리스도께 대하여 갖고 있는 일부 체험을, 구원의 신비에 대한 체험과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일부 기록하였을 뿐이다. 기록된 가르침은 그 개념의 의미로 볼 때 쓰여지지 않은 가르침의 결과이며 그 표현이다. 따라서 성서는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신앙과 삶 속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구원 현실을 충실히 보존하기 위하여, 그들이 '가르침' 과 '삶' 을 통하여 전하고 있는 '복음' 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교회의 영원한 기초가 될 수 있도록, 그 '복음' 을 일정한 형태 안에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성서를 '기록된 전승' 이라고도 부른다. 성서는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기록된 '신앙의 유산' 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달하여 주고 있는 '신앙의 유산' 은 말이나 글을 통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구원 현실, 신앙의 체험과 이에 대한 이해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구전(口傳)과 다르다.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에게 전달되었고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에 전달되고 있는 모든 것, 그들이 전하여주고 있는 '신앙의 유산'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사도 전승' (traditio apostolica)이라고 부른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역사의 그리스도로부터, 그분의 존재와 삶을 통하여 받은 모든 것, 그리고 부할한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받은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승의 내용은 역사 안에 준비되고 드러났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신적 계시이며, 이 계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즉 기록된 가르침(성서)과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성전)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계시와 성서는 구별된다. 그 차이점은, 계시는 하나의 현실이고 성서는 그 현실이 기록된 것이다. 계시에 대한 체험과 그 증거는 계시 자체와는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시와 성전도 구별된다. 전승은 계시에 대한 모든 체험을 정확하게 전달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체험을 해석하고 표현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전달하여 주는 것과 구별된다. 사도들로부터 교회가 이어받은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것 특히 그분께 대한 여러 체험들, 신비에 대한 이해, 구원 현실 등 글로써 전달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교회의 양심 속에서, 교회의 삶과 신앙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Ⅲ. 전승과 성서의 관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은 성서와 성전의 공통점에 대하여 둘 다 똑같은 신적 기원과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성전과 성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9항). 이러한 내적인 관계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성서와 성전은 상호 긴밀한 관계 속에서 '복음' 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서 안에 구원의 모든 신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서 외에 어떠한 다른 권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오직 성서만으로' (Sola Scriptura)라는 원칙에 대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6년 4월 8일 신적 계시는 성서와 성전을 통하여 전해진다고 재확인하였다(DS 1501~1508).
〔성서가 태어난 장소〕 신 · 구약성서는 사도 전승과 히브리 전승에 의한 결과이다. 그러한 전승이 없었다면 성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사도 시대의 교회는 성서의 본문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본문 내용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로부터 전달된 구원의 현실을 이미 생활화하고 있었다. 교회가 믿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성서의 본문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도들의 믿음과 체험, 그분과의 내적인 관계, 살아 있는 삶에 의한 것이었다. 성서는 '복음' 을 전달하고 있는 사도 전승의 일부가 기록된 것이다.
〔성서와 위경의 식별〕 어떤 책들이 성령의 감도하에 기록된 거룩한 책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서가 기록된 장소, 방법, 동기, 목적, 내용 등 모든 것을 우리에게 밝혀 주며, 그 원천을 설명하여 주는 것은 전승이다. 그래서 전승을 통하여 교회는 어떤 것이 경전이고 어떤 것이 위경(僞經)인지 식별할 수가 있었다.
〔복음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전달〕 전승의 가치와 필요성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시가 긴밀히 연결된 행적과 말씀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 인격적 관계라는 것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계시는 말과 글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 인격적인 관계, 심오한 내적 체험을 전제로 한다.
성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문헌이다. 그리고 성서는 구원의 '복음' 이 전달되는 가장 확실한, 고정된 '길' 이다. 그러나 성서는 그 자체로 계시에 대한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계시자이며 계시 자체인 그리스도와의 내적인, 존재론적인 관계 속에서 사도들이 갖게 된 체험과 이해는 이것을 증거하는 '글' 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적 계시를 표현하고 있는 인간의 언어 역시 한계성을 갖고 있다. 성서는 '글' 의 형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 을 전달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성전은 어떤 문헌이나 고정된 체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 안에서 교회를 구체화하는 모든 가르침과 삶을 통하여 '복음' 을 전달하여 준다. 따라서 성전은 성서보다 더 온전하게 신적 계시를 전달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계시 헌장>도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7항)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서는 자신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이 온전하고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성전' 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복음의 충만한 이해와 확실성을 제공〕 성서의 내용이 수학 원칙처럼 고정된 것이라면, 신적 계시에 대한 체험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언제라도 일치를 이루게 될 것이다. 만일 계시가 인간의 언어를 통한 단순한 진리의 통교라고 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 이성의 활동,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쉽게 그 진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는 추상적 진리의 통교 또는 철학 체계가 아니다. 성서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 외에 여러가지 비유 · 영신 · 신비적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성서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전승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계시 헌장>은 "성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서에 기록되기를 원하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 없이 가르친다고 고백해야 한다"(11항)라고 한다. 하지만 만일 성전의 도움이 없다면 성서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 확실성을 증명할 수도 없다. 따라서 "오로지 성서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9항)라고 가르친다. 초기의 여러 이단들은 신적 계시를 성서에만 의존하여 해석함으로써 등장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편지들 안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대목이 들어있는데, 무식하고 경박한 자들은 저 다른 성경(말씀)들을 곡해하듯이 그런 대목도 곡해함으로써 스스로 멸망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자들의 속임수에 휘말려 자기의 확신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시오"(2베드 3, 16-17).
그러므로 성서 전체의 내용과 그 충만한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전승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성서 본문들의 뜻을 올바로 알아 내기 위해서는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과 신앙의 유비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 않게 성서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12항). 전승과 성서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의 유산' 안에 내포된 신적 진리에 대한 확실성을 얻기 위하여 성전 또는 성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성서와 성전 모두에 의존한다. 사도들이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하여 받은 전승이나 글을 통하여 받은 전승이나 똑같이 따를 것을 신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을 신자들에게 전해주면서, 설교나 서간을 통해서 그들이 배웠던 전통들을 고수하며(2데살 2, 15 참조) 또 단 한 번 영원토록' 그들에게 전해진 신앙을 위하여 투쟁하라고(유다 3장 참조) 권유한다"(8항). 두 가지 모두 다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성서와 전승을 분리시켜 놓거나 상반되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복음' 전파에 역행하는 것이며, '복음' 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 (9항).
IV. 주체
거룩한 전승의 원천은 하느님이다. 그리고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신적 계시가 전달되도록 마련하였으며,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는 분도 하느님이다(7항). 특히 하느님의 계시가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올바로 통교될 수 있도록 예언자들과 사도들 안에 작용하였으며, 구원의 역사 처음 시작부터 역사 안에서 활동하는 분은 성령이다. 사도들이 '신앙의 유산' 을 형성하는 데 작용하였으며, '신앙의 유산' 의 수취인, 전달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역사 안에 존재하게 하는 분도 성령이다.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을 위하여 구원의 역사 내부에서 끊임없이 활동하는 성령은 전승의 '내적인 초자연적 주체' 가 된다.성령은 '전승의 영혼'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적 계시의 전달은 하느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파견된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역사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계시 전달은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특히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해하고 보존하며 전달하여 주는 '역사적인 가시적 주체' 이다.
〔전승의 초자연적 · 형상적 주체인 성령〕 성령은 구원역사 전체를 주관하며 모든 세상 만물과 인류를 하느님아버지께 인도한다. 성령은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드러나고 통교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성령을 통교하여 주며, 그들을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당신의 뜻을 전달하고 역사적 구원 사건의 의미를 깨닫게 하였다. 하느님의 성령은 어떤 사람을 자극하고 사로잡고, 그의 말과 행위가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표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출애급 사건도 구원 역사 안에 드러나고 실현되는 계시의 실제적인 도구로 선택된 백성을 인도하고 축성하는 성령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다(출애 12-15, 19장 ; 민수 27, 13). 특히 예언자들은 특별한 하느님 체험을 이야기하며, 그분의 성령의 힘에 의하여 자신들이 받은 사명이 역사 안에 성취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사야(6장)와 예레미아(1, 4-10), 에제키엘(2, 1-3, 27)은 각자 자신의 성소에 대한 내적 체험, 즉 성령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체험과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경우에 따라서 성령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되어 있지 않은 때라도, 구약성서는 상징적으로 또는 함축적으로 구원의 역사 안에 작용하는 성령의 힘을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이 역사 안에 실현될 수 있도록 예언자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성령에 대한 신적 체험을 통하여 특별한 사명을 주며 이들을 인도한다. 이들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역사 안에 통교된 것이다.
예언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의 수난과 부활, 영광에 대하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신적 체험, 즉 성령이 그들 안에서 직접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령에 의하여 움직여진 사도들은 예언자들에 의하여 주어진 약속이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선포한다. "예언자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총에 대해서 예언했을 때 바로이 구원을 찾고 연구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서 미리 증언한 것이 무엇을 두고 혹은 어떠한 때를 가리켜 말한 것인지 연구했던 것입니다. 사실 영은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거기에 이어서 올 영광을 미리 증언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것으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계시 받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늘로부터 파견된 성령에 힘입어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해서 지금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천사들도 들여다보고 싶어했던 것입니다"(1베드 1, 10-12). 예언자들에 의하여 약속되고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원의 계시를 선포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인도하는 성령의 업적이다. 실제로 사도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성령의 힘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체험하였다. 예를 들면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서 말씀을 설명하여 주며 그 의미를 통교하여 주셨을 때, 이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고 비로소 성서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루가 24, 13-49). 이들은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증인이며 선포자였다. 그러나 이들의 선포는 개인적 능력 또는 일시적 감정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무상으로 받은 사명에 의한 것이다. 이들의 선포 내용은 따라서 인간적이거나 개인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신적 계시의 통교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알아 두시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예언은 인간의 뜻에서 나온 적이 없고 오히려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으로부터 (넘겨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2베드 1, 20-21). 성령은 구원 역사의 내부에서 계시적 기능을 수행하며 구원의 역사를 인도하고 있다.
이렇게 성령을 통하여 구원적 계시의 전달을 사명으로 하는 교회가 역사 안에 설정되었다. 성령 강림은 구원의 새로운 시기, 즉 교회의 시기를 선포하는 하느님의 역사안으로의 개입이다. 성령의 감도에 의하여 인도되고 있는 사도 시대는 교회의 존재와 정체성이 확립되고 기초적 계시(공적 계시)가 막을 내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사도들은 역사의 예수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선포하고 증거하면서 '신앙의 유산' 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교회 삶의 영원한 규범이 될성서가 태어났다. 이와 같이 성령의 감도는 교회 창설의 근거가 되었다. 성령 감도의 은사는 교회의 창설을 위한 계시적 사건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특별한 신적 활동이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와 정체성이 확립된 다음, 즉 사도 시대 이후에는 성령 감도의 은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 시대 이후에도 똑같은 성령이 작용하지만, 교회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신앙의 유산' 이 더욱 올바로 이해되고 선포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그리고 교회가 올바로 성장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성령은 교회 삶의 영원한 규범인 성서와 사도로부터 이어받은 모든 것을, 교회가 올바로 이해하고 보존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회를 비추어 주고 인도하며 교회를 오류에서 보호하여준다. 신적 계시의 통교와 이해를 위한 창조적이고 활동적인 성령의 행위는 오늘도 교회 안에 지속적으로 작용 하고 있다.
〔전승의 역사적 · 가시적 주체인 교회〕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를 통하여 준비되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하여 역사 안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구원의 결실이며 신적 사랑의 결실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즉 "교회를 사랑하시어 그를 위해 자신을"(에페 5, 25) 바치셨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기르고돌보는" (에페 5, 29) 당신의 '몸' 이며 당신의 사랑스런 '정배' . '신부' 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당신이 사랑하는 이 교회와 함께하실 것이며, 이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업적을 계속할 것이다. 교회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분의 지속적인 구원 활동에 대한 가시적인 표징, '부활한 그리스도의 성사' 이다. 따라서 교회는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신부' 로서, '그리스도의 몸' 으로서 언제나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교회 안에 항상 현존하고 당신의 은총, 성령의 도움을 주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교회의 겸손된 믿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난을 거쳐 나아가는 교회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여 주신 하느님 은총의 힘으로 위로를 받고,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완전한 신의를 지켜 자기 주님의 어엿한 신부로 살아가며, 성령의 활동 아래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쇄신하여 마침내 십자가를 통하여 결코 꺼질 줄 모르는 빛에 이를 것이다"(교회 9항).그리스도가 사도들 위에 세운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자신의 교회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진리, 그리스도 '복음' 의 증거자, 선포자로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이 항상 교회 안에 현존하며 교회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께 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협조자를 여러분에게 붙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요한 14, 16-17). "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4, 26). "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은 나에 관해 증언할 것입니다"(요한 15, 26). "진리의 영, 그분이 오시면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자기 나름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자기가 듣게 될 일을 말씀하실 것이며 또한 (앞으로) 올 일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요한 16, 13). 성령은 교회가 사도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을 올바로 이해하고 온전하게 보존하도록 하여 준다. 신적 계시를 역사 안에 지속적으로 육화시키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성령은 사도들과 교회와 일치하여 함께 행동하는 분이다. 성령은 '교회의 영혼' 이라 할 수 있다.그러므로 사도들은 교회의 신앙과 삶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린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과 우리의 결정입니다" (사도 15, 28). "우리는 이 일의 증인들이며, 하느님이 당신께 복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입니다"(사도 5, 32). 이렇게 성령의 보증을 갖고 있는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1디모 3, 15)이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모든 '신앙의 유산' 은 믿고 기도하는 교회,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에 위탁되었으며, 교회는 이'신앙의 유산' 을 올바로 역사 안에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 '그리스도의 성사' , '하느님 백성' 인 교회는 전승의 '역사적인 가시적 주체' 이다.
교회는 자신이 믿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신앙을 통하여 더욱 올바로 이해하고 삶을 통하여 증거하고 선포하는 가운데,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모든 '신앙의 유산' 을 영구히 보존하며 다음 세대에 다시 전달하여 준다. 이러한 교회의 행위를 '교회 전승' (traditio ecclesias-tica)이라고 부른다. '교회 전승' 은 사도적 기원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기원을 둔 전승을 의미한다.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것을 이해하고 선포하고 보존하기 위한 교회의 '가르침' 이며 '삶' 이고 '행위' 이다. 따라서 '교회 전승' 이 '사도 전승' 과 일치하지 못할 때, 그것은 저지되어야만 한다. 신적 기원을 갖고 있는 '사도 전승' 의 내용은 변화되거나 삭제되거나 첨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볼 때 전승은 '사도적 가르침'을 운반하는 거대한 '강' 과도 같다. 그 안에는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신앙의 유산' 뿐만 아니라, 이것을 더욱 잘 이해하고 설명하고 보존하여 주는 교회의 체험, 삶과 해석, 그리고 '사도적 증거' 를 왜곡하고 부인하는 "사람의 전통" (마르 7, 8)도 함께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전승들 중에서 '사도들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신앙' , '복음의 순수함' 을 어떻게 식별하고 보존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콜린스(G.O'Colins, 《기초 신학》, pp. 331~357)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V. 발전
교회는 전승의 역사적 · 가시적인 주체이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서 구원의 '복음' 이 더욱 올바로 이해되고 보존되며 지속적으로 발전된다. 전승은 특히 믿는 이들의 관상과 연구, 신앙심, 교도권, 전례, 교부들의 가르침 등에 의하여 발전한다. 여기에서는 전승의 이러한 여러 발전 요인들 중에서, 특히 믿는 이들의 관상과 연구, 신앙심, 그리고 교도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전승의 발전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도들에게서 이어 오는 이 성전(聖傳)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발전한다. 마음 깊이 그것을 새겨 간직하는(루가 2, 19. 51 참조) 신자들의 명상과 공부로써, 영적인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인식을 통해 쌓이는 경험으로써, 그리고 주교직 계승을 통해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이들의 설교로써, 전해진 것들과 말씀들에 대한 이해가 증진된다. 곧 교회는 그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완성될 때까지 세기에 걸쳐 하느님 진리의 충만을 향하여 꾸준히 나아간다" (8항).
〔믿는 이들의 관상과 연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복음' 의 증거자이며 전달자이다. '복음' 은 그리스도의 몸인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위탁되었다. 교회는 자신이 믿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전달하여 주는 주체이다. 따라서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모든 것은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실생활 가운데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러므로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교 현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배우고 생활할 때, 그리스도의 구원 현실을 믿고 생활할 때, 비로소 그 충만한 의미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모든 것' 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고 성취된 신적 계시, 그리스도의 사건, 구원 현실 전체이다. '말' 이나 '글'로써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의 사건을 삶으로 체험하고 그 신비를 관상하며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
〔신앙심〕 하느님 백성의 직관이 진실되다는 것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Lumen Gentium)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령께 도유를 받는 신자 전체는(1요한 2, 20. 27 참조)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다. 교도권에 충실히 따르는 백성은 그 가르침을 이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1데살 2, 13 참조), '성도들에게 한번 전해진 믿음' (유다 3장 참조)을 온전히 지키며,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 더욱 충만히 적용한다"(12항).
<교회 헌장>이 믿는 이들의 직관이 진실되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신앙심"이다. 이 신앙심(sensus fidei)은 '그리스도의 몸' 으로서의 교회의 신앙, 백성 전체의 신앙심이다. '그리스도의 몸' 인 교회가 역사 안에 존재하기 시작한 처음부터 그 지체들인 전체 하느님 백성은 성령의 초자연적 선물인 일치된 신앙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믿음과 삶에 대한 공통된 이해(consensus fidelium)를 소유하고 있었다. <교회 헌장>은 성령의 선물인 이 신앙심의 효력을 몇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식별하고 그 의미를 깨닫도록하여 준다. "우리도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로부터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전해 받았을 적에 여러분은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믿는 여러분 안에서 효력을 내고 있습니다"(1데살 2, 13). 이 구절은 <교회 헌장> 12항이 교도권에 대하여 말하면서 언급하는 성서 구절이다. 데살로니카인들이 바오로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음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성령의 선물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인 '초자연적 신앙심' 이란 전체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정신, 공통된 이해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판단하고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하여주는 신적 은총의 선물이다. 이러한 신앙심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 밖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격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교회의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 가능하다.
둘째, 잘못된 믿음과 삶에서 보호하여 주며 사도들로부터 이어 오는 신앙에 충실하게 하여 준다. 이것은 전체 하느님 백성의 무류적 특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령의 선물 때문에 '신자들의 총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는' 것이다. '초자연적 신앙심' 은 진리와 오류를 식별하고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일종의 판단력이다.
셋째, 바른 판단으로 신앙을 더욱 북돋아 주며 그 신앙을 실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하여 준다. 하느님 백성 전체의 '신앙심' 으로부터 얻어진 확신은 순수한 지성적 · 신학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전해진 '복음' 의 순수함을 믿고 사랑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초자연적 신앙심' 에 의하여 얻는 확신이다. 이러한 신앙심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며, 그리스도를 보다 많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된다.
〔교도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7항). 사도들은 주교들에게 가르치는 직무를 넘겨주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사명을 통교하여 주었다. 주교들의 사명은 사도들처럼 정치적 · 사회 · 문화 · 인종적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의 모든 순간에 항상 새롭게 육화된 구원 현실로서 '복음' 을 증거하고 제시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공의회는 교도권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있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 (10항) .
교도권의 사명은 첫째, 신앙의 유산을 거룩히 보존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직의 중요한 기능은 증거의 기능이다. <계시 헌장>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인 "성전과 성서"(10항)를 의미한다. 따라서 교도권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르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가르침과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교회 자신의 모든 것과 교회가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뿐이다(8항). 사도들과 일치하여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신적 계시를 증거하며 보존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하여 '주교' 또는 '감독자' 로서 불린 사람들의 첫 번째 의무이다(사도20, 28).
둘째, 신앙의 유산을 올바로 판단하고 성실히 해석하 는것이다. 교회가 이어받은 수많은 전승들 중에서 '사도적 유산' 을 올바로 판단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비록 하느님 백성 전체는 그들의 일치된 신앙심에 의하여 확고한 판단을 향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각 개인은 어느 전승이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통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며 또 앞으로 계속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인도하여 줄 수 있는 참된 전승인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공통된 이해를 확립하기는 더욱 어렵다.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모든 전승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주는 참된 전승이라고 할 수 없으며, 모든 전승들이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전해져 내려온 어떤 전승에 자신을 투신하고자 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이며 거기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들 각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면서 교회의 전승을 구성하고 있으며, 실제로 다음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달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을 올바로 판단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참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은 전체 교회의 책임이다. 어떠한 것이 교회의 삶에 의하여 첨부된 것이며, 어떠한 것이 '신앙의 유산' 에 속하는 것인가? 어떠한 것이 개인적인 또는 일부 사람들의 이론인가? 교도권은 '사람의 전통들' 이 '사도 전승' 을 질식시키지 못하도록 하면서 교회의 신앙을 보호한다. 교회 내의 모든 전승들을 분석하고 식별하고 보존하는 책임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의 교도권에 속한다.
셋째, 신앙을 정의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계시 헌장> 10항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알아 내는 것이다. 전체 교회의 삶을 위하여 '신앙의 유산' 안에 내포된 어떤 자료적 전승에 신앙의 규범과 형식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여 교의(dogma)가 태어나게 된다. 교의란 "신적으로 계시된 진 리로서, 교도권의 무류적인 가르침의 권위에 의해 장엄하게 선포된 진리이며,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따라야 하는 진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정의는 '복음' 의 완전성과 순수함이 더이상 보존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판단될 때, 교회의 신앙이 위협받고 있을 때 교회 신앙의 보호를 위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신앙의 유산' 을 충실히 보존하기 위한 사목적 교도권 의 행사이다. 그러므로 "성전과 성서와 교도직은 하느님의 지극히 지혜로우신 계획에 따라 각기 독립되어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셋모두 함께 고유한 방식대로 성령의 활동 아래 영혼의 구원에 효율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10항).
교도권의 세 가지 본질적 사명을 고찰하면서 주시해야할 것은, 교도권은 '신앙의 유산' 에 대하여 아무런 자율성도 소유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도권은 신앙의 유산에 대한 단순한 '증거자' , '전달자' , '선포자' 일 뿐이다. 교도권은사도 전승' 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도권은 교회의 모든 전승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면서도 교도권 자신이 그 전승에 종속된다. 교도권은 교회의 신앙과 삶을 위한 하나의 기능이며 교회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교도권은 어떠한 전승이 교회의 참된 전승인지 판단한다. 그러나 어떤 전승이 참된 것으로 인식되면 그 순간부터 교도권은 그 전승을 자신의 규범으로 존중하게 되고 그 전승에 종속된다. 인간의 양심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선한 것인지 추구하며 판단하지만, 어떤 것이 진리이며 선이라고 한번 깨닫게 되면 그순간부터 그 진리와 선에 복종하게 되는 것과 같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10항).
교도권은 이러한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하여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을 경건히 들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회로 있기 전에 먼저 배우는 교회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신앙심을 존중하고 그 신앙심 안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어받은 전승이 하느님 백성의 정신과 마음의 일치를 도모하며 성령의 가시적인 열매들(갈라 5, 22 이하)
을 맺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참된 전승은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일치를 이루는 성령의 흔적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단순히 교도권이 제시하는 것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신앙 안에 일치하여 믿고 있는 바를 교도권에 제시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도권의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교회의 양심 안에,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이미 믿어지고 삶으로써 전달되고 있는 것을 식별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의 신앙에서부터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이 있게 되고,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은 바로 교회 신앙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은 교도권의 가르침에 실제적으로 능동적 참여를 한다. 교도권이 교회의 신앙을 정의할 때 하느님의 백성은 그러한 교의적 정의 안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교의적 정의를 통하여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신앙심이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하느님의 백성 모두는 교회의 신앙에 충실하기 위하여 교도권의 가르침을 요구하고 있으며, 교도권은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하느님의 백성이 교도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 안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들이 이미 믿고 사랑하고 있는 신적진리에 대한 인식이다. 셋째, 교도권은 또한 신학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교도권과 신학자들은 '복음' 을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고 선포하는 똑같은 목적을 수행하면서 교회에 봉사한다. 그러나 교도권의 첫 번째 기능은 신앙의 신비를 파헤치고 연구하면서 그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신학의 과제이다), 교회 신앙의 순수함을 보존하고 증거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신앙 고백에 적합한 개념들을 찾고 신앙의 문제들을 제시하고 신앙의 신비를 학문적 방법을 통하여 연구한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은 교도권의 가르침을 인도하고 풍요롭게 하여 줄 수 있다. 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교도권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또한 신학자들은 정의되고 선포된 교도권의 가르침을 항상 새롭게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더욱 충만한 의미를 교회에 제시하여 준다. 교도권과 하느님 백성 사이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는, 교회의 신앙에 충실한 신학자들의 연구는 필연적이다.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리스도께 충실한 신학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봉사직을 성실히 수행하는 주교들과 신학자들을 교회는 언제나 요구하며 그들의 협력을 위해 기도한다. (⇦ 성전 ; → 교도권 ; 교의 ; 신학)
※ 참고문헌  Y.M.-J. Congar, La tradizione e le tradizioni, vol. 2,Roma, 1964~1965/ 一, La Tradizione e la vita della Chiesa, Roma,1983/ U. Betti, La dottrina del Concilio Vaticano II sulla trasmissione della Rivelazione, Roma, 1985/ J.R. Geiselmann, The Meaning of Tradition, Questiones Disputatae 15, New York, 1966/ K.-H. Weger,《SM》 6, pp. 269~2731 R. Latourelle, La Révélation et sa transmission selon la Constitution Dei Verbum, Gregorianum 47, 1966, pp. 1~40/ --, Teologia della Rivelazione, Perugia, 1976/ K. Rahner, Scripture and tradition, 《SM》 6, pp. 54~57/ ㅡ, Inspiration in the Bible, Questiones Disputatae 1, Edinburg · London, 1961, pp. 39~50/ F.A. Sullivan, Magisterium, Teaching authority in the Catholic Church, Dublin, 1985, pp. 4~51 G. O'Collins, Fundamental Theology(김광식 역, 《기초 신학》, 분도출판사, 1994). 〔金光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