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188-4 소재. 1980년 4월 17일 전의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전의면 · 소정면전 지역과 전동면 · 천안시 목천읍 · 광덕면 · 풍세면 일부 지역. 〔교 세〕 1981년 339명, 1986년 657명, 1990년 497명, 1994년 664명, 1998년 780명, 2001년 676명. 〔역대 신부〕 초대 김순호(金順浩) 프란치스코(1980. 4~1982. 9), 2대 이은진(李恩鎭) 도미니코(1982.9~1985.8), 3대 크랭컹(J. Cinquand, 강진수) 요한(1985.8~1987.8), 4대 이원순(李元淳) 마티아(1987. 8~1988. 2) , 5대 황용연(黃龍淵) 바오로 예레미아(1988. 2~1995. 2), 6대 김기범(金基範) 폰시아노(1995. 2~1999. 2), 7대 이의정(李義晶) 마티아(1999.2~현재).
〔공소 시기와 본당의 설립〕 조치원 본당 소속의 전의 공소는 1957년 전의면 동교리에서 발족되었다. 당시 공소 신자들은 별도의 공소 건물을 갖지 못하고 신자들의 가정집을 임시 공소로 삼아 동교리 이수필의 집을 비롯하여 1958년 읍내리 최인혁의 집, 1969년 읍내리 황태희의 집, 1973년 읍내리 현창순의 집 등에서 공소 예절을 드렸다. 그러던 중 1974년 1월 서울에 사는 최동분(베로니카)이 공소 신축 기금 70만 원을 봉헌함에 따라 공소 강당 건립 계획이 구체화되어 공사를 시작하였고, 4월 공소 건물을 완공하였다. 공소 건물을 갖게 된 신자들은 공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점차본당 설립에 대하여 논의하였으며 1977년 7월에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였다. 이어 위원회는 성당 건립 계획서를 교구 당국에 제출하여 승인 받았으며 1979년 11월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1980년 4월 전의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김순호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순호 신부는 기존의 강당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며 본당의 기초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1980년 7월 전의 지역을 휩쓴 홍수로 인하여 목조 성당이 유실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전국의 본당으로부터 받은 수해 의연금 및 본당 신자들의 성금과 노력에 힘입어 1981년 3월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고, 10월 단층 성당(119평)을 완공하였다. 이어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은진 신부가 공사를 시작하여 1984년 10월 강당과 사제관을 마련하였고, 이듬해 6월에는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던 중 1987년 8월에는 1983년 5월부터 본당 사목을 도왔던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본당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하여 철수하였다.
〔본당의 성장〕 1988년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황용연 신부는 1990년 4월 15일 성당 보수 공사와 조경 사업을 완성하고 본당 1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으며, 이듬해 4월 회의실(25평)을 완공하였다. 이어 1993년에는 '무의탁 노인을 위한 거주 시설 건립' 을 계획한 뒤, 신자들과 함께 바자회와 지역 특산품인 메주 생산 판매를 통해 건립 기금을 마련하여 1994년 5월 단층 건물 '요셉의 집'을 완공하였다. 1995년 2월 관할하던 소정리 공소가 폐쇄되자 공소에서 활동하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은 1998년 2월 까지 본당 사목 활동을 도왔다. 1999년 2월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의정 신부는 8월 강풍으로 파괴된 본당 주보 성인상을 재건립하여 10월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2001년 6월 분원의 철수로 사용되지 않고 있던 수녀원 건물을 교육관 및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하여 수리하였다. 이와 함께 이의정 신부는 매주 금요일 구역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등 소공동체 모임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대전교구 ; 조치원 본당)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 대전교구 홍보국 역편, 《대전교구 교세 통계 자료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0. [편찬실]
전의 본당
全義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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