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경 (1827~1871)

全周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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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이 관변측 기록에는 베드로로 나오고, 교회측 자료에는 요한 또는 사도 요한으로 나온다. 그는 본래 송도(松都) 사람으로 농업으로 생활하다가, 1863년 같은 고을에 사는 이문홍(李文弘, 바오로)의 전도로 천주교를 배워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지었다. 그 후 계명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 그는 견진성사도 받고, 고해성사도 세 차례나 받았다.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강원도 평강(平康)으로 이주하여 훈장 노릇을 하며 살았다. 거기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박해를 피해 그곳으로 이주해 온 이효신(요한)을 만나 서로 의탁하며 지내다가, 그와 함께 포졸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끌려와 1871년 6월 6일 포도청에서 심문을 받았다. 이때 그는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사실 등을 순순히 자백하였으며, 비록 형벌을 받다가 죽더라도 배교할 수 없다고 진술하여 신앙을 굳게 지켰다. 결국 그는 이효신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45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좌포도청등록》 신미 4월 19일/ 《치명일기》/ <병인치명사적》 5권 p. 23. 〔徐鍾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