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그는 본래 금산(錦山) 사람으로, 1858년 무렵에 자기 아버지한테 천주교를 배워 베르뇌(Bemeux, 張敬一) 주교가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뒤에 서천(舒川) 산막골로 이사하여 살다가 1867년 2월 2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으나 배교하고 석방되어 나왔다. 그는 남포(藍浦) 간재로 가서 살면서 친구들은 다 순교하였으나 자기만 혼자 배교하고 나와 살고 있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들을 불러 "나는 잡히면 순교할 것이니 내가 죽은 뒤에 라도 네 모친을 잘 공경하여라" 고 부탁하였다. 이와 같이 순교할 마음을 이미 굳히고 있던 그는, 1868년 3월 31일 서울의 포졸들이 와서 그를 붙잡고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주저하지 않고 신자임을 자백하였다. 또한 남포관장이 그를 심문하면서 천주교를 믿느냐고 묻자 십계명을 외워 신자임을 증명해 보였다. 서울로 압송되어 4월 7일 포도청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그는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사실 등을 순순히 자백하였다.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42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좌포도청등록》 정묘 3월 15일/ 《치명일기》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병인 치명사적》 6권, p. 72 ; 21권, p. 44. 〔徐鍾泰〕
전춘서 (1826~1868)
田春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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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