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의

傳統主義

〔라〕Traditionalismus · 〔영〕Tradi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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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에서는 단편적으로 과거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입장에서 보수주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좁은 의미에서는 보다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과거의 전통을 방어하려는 것이다. 교의신학사적 의미에서는, 특히 19세기 초에 유럽의 계몽주의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합리주의와 회의주의에 반발을 하는 일종의 반이성적 철학 · 신학적 입장을 일컫는다.
〔배경과 전제〕 일반적으로 신학 전통에서 신앙은 이성적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전통주의는 계몽주의의 진행 과정과 프랑스 혁명에서 제시된 이성적 세계관을 용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18세기에 등장한 이성주의와 계몽주의적 인간 중심론은 신적 세계 질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계몽주의와 이와 관련한 인간의 자기 규정에 관한 인간학적 관점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세계 질서와 그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하느님의 개입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서, 전통주의자들은 정치, 사회 그리고 모든 측면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길로 완전히 돌아설 것을 강조하였다.
전통주의의 입장에서는 이성과 전통의 관계를 올바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 입장의 추종자들은, 우선 이성이 역사적 계시와 전통으로부터 분리되어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여기서 성서와 전통은 역사적 계시의 원천 또는 역사적 전승의 보편적 원천으로서 전제되고, 이성과 그 신앙의 역사적 전승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게 된다. 이러한 전제 속에서 볼 때 전통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하느님과 세계, 인간의 자연적 인식과 신적 계시, 그리고 지식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이고 호교론적 문제들이다. 물론 여기서 하느님의 인식 가능성과 존재 증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론적 전개〕 이상과 같은 기본 전제를 지닌 전통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전개되었지만, 그 주요 주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데카르트(R. Descartes,1596~1650)에 의해 특징 지워진, 소위 근대의 주체적 개인이 지닌 이성은 전통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진리인식을 위해서는 적절한 것이 못 된다. 즉 인간의 이성은 결정적으로 인류의 원죄를 통하여 약화되었기 때문에, 진리 접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통주의의 기본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개인적 이성은 형이상학적 그리고 종교적 · 윤리적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진리 인식에 도달하기 위하여 인간은 '원계시' (原啓示)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즉 초자연적 질서의 진리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 도덕적 · 종교적 질서인 근본적 질서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도 원계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존재, 정신그리고 영혼의 불멸성,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도덕률의 발생을 위해서,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전달되어 올 수 있었던 '원계시' 안에서 기초 지워진 말씀' 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전승을 하느님의 권위 또는 인류의 보편적 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원계시는 '전승'(傳承)이라고도 하는 전통(Tradition)을 통해 계속적으로 인류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확실성은, 오직 세상 창조 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던 원계시가 세대를 지나면서 중개된 전통에 의해 확보된다. 이렇게 최초의 인간에서부터 중단 없이 모든 인간에게 전달되어 온 원계시가 전통주의의 핵심적 관건이다. 따라서 하느님 계시의 인식을 위한 단순한 인간의 이성적 인식은 전통주의자들에게 수용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은 수동적이고 수용적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원계시 안에 정초되어 전달되는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엄격한 전통주의와 완화된 전통주의〕 전통주의는 특히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영향권 아래 있던 프랑스 문화권에서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전통주의를'엄격한 전통주의' 와 '완화된 전통주의' 로 구분할 수 있다. 엄격한 전통주의는 모든 인식의 유일한 원천은 오직 신앙에 근거한다는, 소위 '신앙주의' (Fideismus)의 입장이다. 이는 메스트르(J.M.C. de Maistre, 1753~1821)와 보날드(L.-G.-A. vicomte de Bonald, 1754~1840)가 기초하였고, 라므네(H.F.R. de Lamennais, 1782~1854)에 의해 발전되었다. 보날드에 의하면 사회 질서는 하느님에게 기초하는 도덕적 질서에 의해 영향을 받고, 원계시를 통하여 계속 전달된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이 세상에 준 언어와 사회의 영향 아래에서의 지적인 삶을 강조하였다. 라므네는 인간 이성의 오류 가능성에서부터 논증을 시작하였다.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류 없는 이성을 찾아야한다. 이러한 무오류성은 논증 없이도 자명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확실성을 추구해야 하는 인간 이성은 본성적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요구에 직면해서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 신앙 증거들의 원천으로서 보편 이성(sensus communis)에 의존하고 있다. 즉 인간의 자연적 신앙이 바로 유일한 확실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계시된 종교의 진정한 요구를 증명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한 보편 이성이다. 이 보편 이성이 진리의 연속성과 보편성을 보장해 준다. 따라서 보편 이성의 권위는 개인적 이성 앞에 놓여져야 하고또한 진리의 봉인이 된다. 가장 확실한 진리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현존은 전적으로 인류의 보편적인 전통을 통하여 증거되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고유한 증거 방식에 따라 하느님의 자기 전달과 함께 시작한다. 이로써 원계시로부터 기원하는 신앙의 진리는 정신의 변할 수 없는 자산이고, 사회와 현 존재의 근간이다. 인간은 수용된 진리를 조합할 수 있을 뿐 새로운 진리를 찾을 수는 없다. 엄격한 전통주의로서의 신앙주의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지만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았다. 단죄된 중요한 이유는 모든 신적인식을 단지 계시의 권위 위에 기초시켰기 때문이다. 즉 극단적으로 신적인 신앙(fides divina)을 이성적 신앙 앞에 내세우는 것이 문제되었다.
반면 '완화된 전통주의' -이탈리아의 벤투라(G. Ven-tura) · 프랑스의 보네티(A. Bonnetty) · 벨기에 루뱅 학파-는 엄격한 신앙주의의 내용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두었다. 즉 모든 사고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고만이 계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성은 수용적일 뿐만 아니라 인식 행위에 있어서는 능동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죄스러운 상태에서, 이성은 보다 확실한 하느님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외부의 매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사회적 매개가 원계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신적인 신앙(fides divina)이 인간의 자연적인 하느님 인식에 앞서지 않는다는 조건 속에서, 완화된 전통주의는 단죄받지 않았다. 이로부터 엄격한 전통주의와 완화된 전통주의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비판과 교도권의 입장〕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은 가톨릭의 신앙 개념, 즉 하느님과 교회의 근거를 규정 짓는 신앙과 계시에 관한 진술 등을 전제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전통주의의 관심사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 인간적 ·사회적으로 최상의 가치를 강조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진행 과정에서 철학과 신학의 근본을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즉 존재 법칙과 존재 유비를 부인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계시인데, 그 계시를 이해하거나 자유로이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고 단순히 맹목적인 동의를 해야 하는 신앙에만 권위를 부여한 것이 오류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전통주의는 창조 질서와 구원 질서, 신앙의 계기와 그 범주, 하느님의 권위와 사회의 권위, 계시와 영감, 계시 내용과 성서의 지혜 내용, 신앙과 지식, 논리와 역사적 질서 그리고 심지어 신학과 일반 학문과의 대화를 의미 없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염두에 둘 것은, 전통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신적 계시가 보다 높은 인식의 유일한 원천이라면, 그 하느님 계시는 본래적인 속성으로서 계시의 역사적 성격을 상실한다. 하느님의 역사적 말씀이 책임 있는 인간의 판단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계시와 그 전통을 수신하는 인간의 이성이 필요한데, 전통주의는 이를 무시하였다. 인간의 자연적 이성의 권위를 약화시킨 것이 전통주의에 대해 교도권이 판단하는 관건이었다. 따라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분명하게 인간의 자연적 신(神) 인식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전통주의를 이단으로 결정하였다. "하나이고 진정한 하느님, 우리의 창조주 그리고 주님에 대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을 통하여 확실히 인식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단죄되었다" (DS 3026, 3004). 공의회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을 비관주의로부터 막고,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자유로운 신앙의 동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하는 긍정적인 신앙의 원리를 통하여 전통주의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로부터 단죄된 엄격한 전통주의는, 이성의 종교적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종교 개혁적 입장과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주의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교회 전통을 매장한 것이다. 즉 인간이 더 이상 하느님 말씀에 대해 내적으로 진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전승은 말씀의 계속적 전달을 위한 능력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전통주의는 명분을 상실하였고 더이상 설득력이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학의 가능성, 즉 하느님은 외적으로 인간에게 말을 걸어 오고 인간은 내적으로 응답할 수 있음이 분명하게 되었고, 이제 신앙은 인간의 진정한 능동적 행위로 남게 되었다. (→ 라므네 ; 메스트르 ; 신학사)
※ 참고문헌  R. Aubert, Vaticanum Ⅰ, Mainz, 1965/ W. Breunig, W. Beinert ed., Lexikon der katholischen Dogmatik, Feiburg · Basel · Wien, 3rd ed., 1991 p. 517/ N. Hötzel, 《LThK》 10, pp. 299~301/ H.-J. Pottmeyer, Der Glaube vor dem Anspruch der Wissenschaft, Freiburg, 1968/ P.Poupard, 《SM》4, pp. 966~969/ M. Schmaus, Katholische Dogmatik I, 6th ed., 1960, pp. 216ff. 272f./ E. Schott, 《RGG》 6, pp. 984~986/ H.H.Schwedt, 《LThK》 10, 2000, p. 159f./ H. Vorgrimler, NeuesTheologischesWörterbuch, Freiburg · Basel · Wien, 2000, p. 628f. 〔吳敏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