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존재하면서 그 자신만으로 완전한 존재. 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리스와 중세 철학] 그리스 철학에는 '절대적' 이라는 표현에 상응하는 정확한 용어가 없다. 다만 여러 용어들이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 ,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또는 '존재와 앎의 총체성' 을 의미하였다.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의 선의 이데아, 절대적인 선은 '전제가 없는 것' 이란 의미로 이해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근원' (ἀρχή)을 '전제가 없는 것'(Arist.,1005 b 14 ; 853 b 4)으로 이해했다. 그리스 철학에는 다수의 절대자들이 있다. 즉 자연(φύσις) , 로고스(λόγος,Herakleitos) , 정신(νοῦς, Parminides), 존재(Pamenides) , 선의 이데아(Platon) , 부동의 동자 또는 순수 현실태(Aristoteles), 일자(-者, Plotinus) 등이다.
고전 라틴어에서 '절대적' 은 '상대적' 이라는 말과 대비되어 사용되었으며, '완전한' (perfecte) , '충족된 · 풍부한' (plene)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였다(Cicero, Orator 171 ;Topica34 : Definibus 3, 26 : Seneca, Ep. 52, 1). 코르니피치우스(Q. Comificius)는 '절대적인 것' 을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 으로 규정하였다(1, 24). 치체로(M.T.Cicero, 기원전 106~43)는 '절대적인 것' (absolutus)을 '완전한 것' (perfectus)의 의미로 사용했다(Tus. 4, 38). 세네카(L.A. Seneca, 기원전 4?~서기 65)는 또한 '절대적인 것'을 '선' (bonum)과 연결시켰다. (De fin. 4). 그리고 플리니우스(Plinous, 23~79)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을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 의 의미로 사용했다(Seneca, Ep. 1, 20, 10).안셀모(1033-1109) 이후 '절대적인 것' 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동일한 것으로 사용되었다(Monologion 1, 29. 31 ;1, 46 ; 2, 9. 24. 31). 그러나 라틴 교부들은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절대적인 존재라 부르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그리스도교 신앙(christiana credulitas)이 '단순하고 절대적' (simplex et absoluta)이라고 말했다(Contra Faust.12, 1).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아무 것도 덧붙여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 (De natura 58, 68)이라고 하였다. 그 역시 하느님을 절대적인 것과 동일시하지 않고, "신은 그위에, 그의 밖에, 그리고 그 없이는 아무 것도 없는 자"라고 말했다(Soliogquia Ⅰ 4).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분리된 영혼' (ani-ma separata : S. Contra Gent. IV, 79)의 동의어로 '절대적 영혼' (anima absolut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절대적' 이라는 말을 '상대적 · 관계적' (relative) 또는 '조건적' (subconditione)이라는 용어와 대비해서 사용하였다. 그리고 존재, 본질, 실체를 지시할 때는 '단순한' (simpliciter)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로 이해하였다(De Verit.I,1 : De Ente, cap.1 ; In Sent. (1d) 9 q.1, 1, 2). 그는 자주 '절대적으로' 라는 표현을 확실성(certitudo), 인식(cognitio), , 필연성(necessitas), 실체(substantia), 총체성(totalitas) 등과 결합해서 사용하였다.(In Sent. 38, 1, 5c : 27, 2, 3 ad 3 ; S.Th.,I,19, 3 : Quaest, Disp. de Pot. 7. 9 ad2 ; S.Th.,Ⅱ-Ⅱ, 184, 2). 쿠사의 니콜라오(1401~1464)는 하느님을 가장 절대적인 것(absoluta maxima), 절대적 존재성(entitas absoluta) 절대적인 선성(bonitas absoluta) 등으로 명명했다(DeDova.gomananconaⅠ, 2, 5 : I, 5, 14). '절대자' 는 "명명할 수 없게 명명되는 것처럼 파악할 수 없게 파악" (I, 5, 13)되지만, 절대자는 "하나이고 전체이거나 하나로써 모든 것" (I, 24, 75)이라고 하였다.
〔근대 철학〕 근대에 이르러 절대자라는 표현은 스피노자(B. de Spinoza, 1632~1677)에 의해 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야코비(FH. Jacobi, 1743~1819) 멘델스존(M.Mendelssohn, 1729~1786) , 레싱(G.E. Lessing, 1729~1781), 칸트(I. Kant, 1724~1804), , 피히테(J.G. Fichte, 1762~1814)와 헤겔(G.W.F. Hegel, 1770~1831),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 등의 철학자들은 절대자 개념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을 제시했다.
스피노자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실체"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능력을 통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절대적으로 무한하고 불가분리적이며 절대적인 제1 원인이고, 원인 그 자체인 실체라 불렀다(Eth. I,Def. 6 : I. Propos. XI, Schol. ; Prop. XⅢ Prop. XVI, Coroll. Ⅲ). 이성이나 의지가 속하지 않고 연장과 사유라는 인간에게 알려진 속성들만이 속하는 절대자의 본질로부터 모든 사물들이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며 어떠한 사물도 본질상 있는 그대로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 결과 신 또는 자연은 증명된 기하학적 질서 안에 있을 수 있다(Eth. I. Prop. XVII, Prop. XXXII. Coroll. I ; Prop. XXIX ; Prop. XXXII ;IV,Prefatio) .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는 절대적인 것을 기하학적인 필연성과의 유비를 통해 형이상학적인 필연성, 즉 '그것의 반대는 모순을 함축하는' 절대적인 필연성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신의 속성들이 완전하며 "신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이다" (Discour de met. Ⅰ)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완전한 자는 "엄밀하게 점유된 긍정적 실재의 크기"이다(Monadologie 41). 절대자의 이데아는 크기의 이데아와 다르지 않다(Nou-veaux essais Ⅱ,2, 17, parag, 3). 그러한 절대자의 이데아는 우리 안에 내재적이다(Discours de met.,16). 절대자가 신의 빛보다는 혼합된 것으로 단자 안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주관성 철학 및 미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바움가르텐(A. Baumgarten, 1714~1762)은, 인간은 절대자의 희미한 빛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르면 천재는 미술에서 절대자를 보고 느끼게 된다(Aesthetica I) 그를 따라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은 동일성의 철학의 시기에 예술을 주관과 객관을 매개하는 도구로 생각했다. 볼프(Ch. Wolff, 1679~1754)는 신을 최고의 절대적인 자로서 군주라 부르며, 그의 제국은 철저히 무제한적이고 무한하다고 하였다. 그는 신을 '국가의 최고의 권위' 라 명명했으며, 유일신만이 절대적인 군주일 수 있다고 하며 신은 유일함으로부터 무한함을 얻는다고 하였다.
스피노자를 둘러싼 범신론논쟁(Pantheismus-Sreit)은 1774년경에 시작되었다. 이 논쟁은 주로 야코비와 멘델스존 사이에 벌어졌지만, 레싱, 하만(J.G. Hamann, 1730~1788), 괴테(J.W. von Goethe, 1749~1832)칸트 등도 합류하였다. 이 논쟁은 관념론의 절대자 개념에 기초를 놓게 되었다. 야코비에 따르면, 성서의 하느님은 사람들이 아무리 장식하고 장신구로 휘감아 놓아도 단지 절대자인 신보다 더 장엄하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고 불변하며, 스스로 안에 존립하는 절대적인 것' 을 추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절대자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 ,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의 이성주의적인 체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철학과 종교의 제일 근거로 증명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는 감정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야코비는 이것을 또한 '정신의 감정' (Geistes-Gefuhl) , '이성' (Vernunft) 또는 '직관' (An-schauung)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우리는 절대자를 결코 볼 수 없으므로 다만 믿는다고 말했다. 야코비에 따르면, 스피노자주의는 무신론이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절대자를 '이성을 갖춘 세계의 인격적인 원인' 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내재적인 것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야코비는 피히테나 셀링이 언급한 절대자의 지적 직관을 '이성의 궁핍한 거짓말 로 간주하며, 그들의 철학을 새로운 스피노자주의로 간주하였다. 야코비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절대적인 동일성의 체계' 의 선행자 내지는 발명자이다.
〔독일 관념론〕 칸트는 절대자를 '인식에 있어 제한되지 않은 것' 이라는 인식론적인 의미에서만 이해하였다. 그는 '무제약자' 는 이성의 범주들에 의해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선험적 분석' 에서 보여 주려 했으며, 또한 '선험적 변증론' 에서 제약되지 않은 가능성의 조건은 '어떤 주어진 제한된 것이 되는 조건들의 총체' 라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칸트는 절대자를 '절대적으로 가능한 모든 의도와 모든 관계에서 가능한 것' 으로 이해하였다. '절대적인 총체성' 이라는 이념은 이성의 개념을 통해서 '모든 오성의 행위들을 절대적인 전체 속으로 함께 파악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한다. 이성의 개념 또는 선험적 이념들은 '절대적 (무제약적인) 사유하는 주체의 통일성, 일련의 현상 조건들의 절대적인 통일성, 사유의 모든 대상들의 절대적인 통일성' 을 가능하게 한다. '객관적인' , 즉 세 가지 선험적 이념들의 형이상학적인 사용은 심리학에서의 '오류 추리' , 우주론에서의 '이율 배반' ,그리고 신학에서의 '모순' 으로 이어지게 된다. 최고 존재의 이상 은 이론 이성에게는 '감각 세계의 체계적인 통일성을 위한 규제적인 원리' 이다. 비록 무제약자가 의지의 결정을 위해서는 이성 안에 주어지지만, 실천 이성에는 "순수 실천 이성 대상의 무제약적인 총체성은 최고선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 도덕성과 행복에의 욕구는 규제적이다. 총체성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과 관련해서 사유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표상 불가능하다.
칸트 이후 절대자는 논리적인 의미와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고려됨에 따라, 그리고 절대자가 오성, 이성 혹은 감정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형되었다. 결과적으로 절대자 문제는 이론 철학 · 종교 철학 · 실천 철학 · 미학에서 신이 필연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18세기의 사상가들도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 슐레겔(F. von Schlegel, 1772~1829)은 사유의 자유를 위한 조건과 '증서' 로서의 절대적인 진리의 인식 불가능성을 가르쳤다. 비록 관념론이 절대적 지성의 상징적 지식을 가져야 하지만 '철학의 철학' 의 첫 번째 명제는 '진리는 상대적이어야만 한다' 는 것이다. 실러(J.C.F. von Schiller, 1759~1805)는 미학 · 철학적 저작에서 상상력을 '절대자의 묘사' 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예술을 통해 절대자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실현되며, 절대자의 실현은 질료 충동과 형상 충동을 화해하려는 관점에서 검토되었다. 피히테에 의하면 절대자는 "그 자신 그 자체이며, 있기 때문에 이것 자체이다". 그의 '학이론' 의 대상은 절대자가 아니라 절대적인 지식이다. 모든 개별자들로부터 추상된 이 지식은 어떤 의미에서 절대자의 형상이다. 그것은 단지 절대자의 말해질 수 없는 속성들을 묶어 준다는 의미에서만 절대적이다. 피히테는 지적 직관에서 대립자들의 '절대적인 통합' 의 능력으로 절대자를 요구하였다. 지적 직관은 자기 자신을 절대자에 적합한 것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그에 의하면 '자아' 는 자신 안에 실재의 절대적인 총체성과 비아(非我) 안의 부정의 절대적인 총체성을 결합하는 선험철학의 원리이다.
셀링의 철학 전체는 절대자의 개념을 설명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철학의 원리로서 자아로부터 '우리의 인식 일반의 궁극적인 실제 근거의 연역' 과 함께 시작된다. 이것을 그는 피히테처럼 절대적인 자유를 통해 절대적인 자아 안에서 발견해낸다. 절대자의 무한한 영역 안에서 신은 절대적인 자아와 다르지 않다. 절대자에 대한 지식은 '이론 철학' 안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절대자에 대한 실천적인 접근"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독단론과 비판론에 대한 철학적 편지》(Philos. Briefe über Dogmatis-mus und Kriticismus)서 동일성 철학을 구성하였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독단론과 칸트의 비판론의 통일이 '절대자의 관점으로부터' 시도되며 '절대 이성' 으로서의 이성에게 절대자는 인식과 존재 및 주관성과 객관성의 총체적인 무차별성으로 존재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절대적인 우주' , '절대적인 총체성' 또는 '절대자' 이다. 절대자 안에는 인간에게는 상실된 동일성이 있다. 절대자로부터 완전한 단절로서의 타락 이후 자유 안에서 절대적인 이분화가 철학의 원리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씨앗은 하느님과 세계의 분리의 감정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변을 통해 보다 높은 능력에서 이분화의 지양에 도달하고자 한다. 타락 이후절대자 안에서 완성된 화해와 재소멸(Wiederauflösung)이 역사의 궁극적인 의도이다. 전체로서의 역사는 동일성, 또는 순수한 부정으로서의 차이 안에서 동일성의 지양과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회귀라는 세 단계 안에서 진전하면서, 점차로 자신을 드러내는 절대자의 계시이다. 그의 '동일성 철학' 에서 '지적직관' 은 '절대자의 인식 양태'이다. 선험 철학은 이상적인 것 밑에 있는 실체적인 것을 정돈하는 임무를 갖는다. 반면 자연 철학은 실제적인 것으로부터 이상적인 것을 설명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그런데 두 학문들은 모두 같다.
그리고 그의 '선험적 관념론' 에서 예술은 '절대자 안에 있는 그대로 사물들의 형태들' 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유기체의 상관자이다. 예술은 '무한한 이분화' 를 '미적인 생산' 속에서 극복한다. '시적 능력' 또는 '상상력' 으로서의 '미적인 직관' 은 단지 객관화된 선험적인 직관이다. 그 결과 예술은 유일하게 참되고 영원한 철학의 도구이며 동시에 철학의 기록이며 철학자에게는 최고의 것이다. 《신화와 계시의 철학》에서 그는 뵈메(J. Böhme, 1575~1624)의 신지학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선험적 경험론' 으로서의 '부정신학' 과 '경험적 선험주의' 로서의 '긍정 철학' 을 구분하였다. 여기서 그는 유신론을 범신론과 일신론의 결합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절대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초기의 언급과는 달리 신을 전통적인 개념인 '존재 자체' (ipsum Ens), 실체, 기체, '모든 것인 하나' 등으로 규정하였다.
헤겔의 철학은 정신의 철학(Geistphilosophie)으로서 절대자 또는 절대적인 지식의 철학이다. 절대자는 정신의 역사로서의 역사를 기억, 극복하고 매개의 결과로서 이해된다. 그의 저서인 《논리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객관성과 주관성의 매개에서 행했던 바를 제시하였다. 헤겔은 반성을 위해 선행하는 철학들의 '도야' 를 전제함으로써, '절대자의 관계를 갖는 한에서' 이성이 되는, 이성을 전개시킬 수 있다. 헤겔은 '이분화' (Entzweiung)를 '철학의 욕구의 근원' 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교와 계몽주의, 주관성과 프랑스 혁명을 통한 정신의 필연적인 '자기 외화의 형식' 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가능했던 신화, 종교, 예술의 직접적인 동일성이 시민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하였다. '절대자의 감성적인 묘사 로서의 예술이나 '주체의 내면성으로 전치된 절대자인 종교 도 내용과 형식에 따라서 정신에게 그의 참된 관심을 의식하게 만드는 최고의 그리고 절대적인 방식이아니다. 이러한 관심과 '철학의 과제' 는 '지양' (Aufhe-bung)에 대한 전형적인 헤겔식 이해에서의 '이분화의 지양' 이다. 단지 대립을 절대자로 통합시키거나, 타자를 무화시키도록 그것을 절대자에 정립시키는 피히테와는 달리, 그리고 절대자가 '모든 소들이 검게 보이는 밤 과같은 동일성 체계를 세운 셀링과는 달리 헤겔의 철학은 절대자의 목적 전제와 이분화의 사실성 통합과 인정 안에서만 가능한 철학이다.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모든 술어들의 부정' 과 '공허' 는 논리학의 변증법적 원환 운동의 총체성으로 긍정적으로 이해될 뿐이다. 이 원환 운동속에서 '절대적인 절대자 는 자신의 모든 부분들이 전체이거나 각각의 규정들이 전체인 그러한 동일성이다.
[독일 관념론 이후의 철학]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에서는 절대자를 결단과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급진화된 주관성 이론에서 만날 수 있다. 조건은 '현존재의 다양성은 절대자에서의 통일성에 깊은 근거를 갖는다' 라는 것과 절대자의 이해는 '어떤 사람에게도 거부되지 않는다' 라는 믿음이다. 개별자들은 '절대자와 절대자적인 관계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매개되지 않으며, '절망' 이라는 절대적인 선택에서 도달된다. "내가 절대적으로 선택을 함으로써, 나는 절망을 선택한다. 절망 속에서 나는 절대자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자를 정립하고 또한 나 스스로가 절대적 존재이다. 나는 나를 선택한 절대자를 선택한다. 나는 나를 정립한 절대자를 정립한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관념론의 절대자에 대한 직접적인 이성적 직관을 '이상향' (Wolkenku-kuksheim)으로, 야코비의 감정의 이성을 '영역에 속하지 않는 이성' (reichsunmittelbare Vernunft)으로, 그리고 헤겔의 체계를 '텅빈 소리' 로 간주하였다. 반면, 러셀(B.Rus-sel, 1872~1970)과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1889~1951)에게로 이어지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영국에서는 절대자에 대한 사변이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자를 경험의 총체로 규정하는 브래들리(F.H. Bradley)의 형이상학은 콩트적인 의미의 실용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지나고마는 반동일 뿐이었다. 브래들리는 절대자를 신이 없는 모든 현상들로 정의했다. "신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기 전에는 신이 아니고,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인 신은 종교의 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은 단지 양상이다. 절대자는 신의 현상이다. 형이상학의 임무는 절대자의 현상들의 등급과 등위를 실재의 체계 안에 확립시키는 데 있다." 한편 니체(F.Nietzsche, 1844~ 1900)는 절대자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존재자를 믿는 것, 무조건자 순수한 정신 · 절대적인 인식 · 절대적인가치 · 사물 자체 등을 믿는 것을 '미신' 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절대자의 오류' 는 지성의 창조, 시작 행위를 통해서 생겨난다. 그것을 근거짓기 위해 사람들은 허구를 만들어내며, 정립하는 힘을 통해서 무조건 자의 개념을 발명해야 하며, 그가 창조해 낸 것을 참된 것으로 믿어야만 한다. 하르트만(E. von Hartmann, 1842~1906)은 '절대 정신의 비인격성' 을 주장하며 유신론에 대항하여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절대 정신으로서의 신성은 하나이고 단일성으로서 동시에 세계의 절대적인 근거이고 절대적인 본질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가 절대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그는 절대자를 '절대적인 윤리적 가치 질서와의 동일성' 으로 간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르부르크 신칸트학파의 코헨(H. Cohen, 1842~1918)은 절대자의 개념을 윤리학을 정초하는 데에 도입하였다. 그에게 절대자의 본래적인 내용은 논란의 여지없이 신 개념안에 있다. 신으로서의 절대자는 '자연의 창조자이고 인륜성의 원인자' 그리고 자연과 인륜성 모두의 근거이다. 나트로프(P. Natroff)는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통일성 속에서 절대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또는 미적인)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성, 절대자, 무한자의 요구' 를 감정 위에 정초하였다. 좁은 의미의 감정 개념에 대한 코헨의 비판에 대한 답으로 나포르프는 슐라이어마허(FE.D. Schleiermacher, 1768~1834)를 따라서 감정을 '영적 삶의 내면성의 심리적인 근본 능력' 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신칸트주의의 서남학파에 속하는 리케르트(H.Rickert)는 20세기초에 절대자를 가치 철학의 맥락에서만 고려하였다.
아도르노(T.W. Adorno, 1903~1969)는 후설(E. Husserl, 1859~1938) 이후 거의 사용되지 않는 절대자를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 이후의 존재론에서 '절대자에 대한 낡은 철학의 두 번째 재연' 을 보았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절대적 주어짐은 최종적인 것' 이며, 절대적인 의미에서 존재자에 대한 학문을 위해 봉사한다. 현상학의 절대자, 즉 선험적 의식은 형이상학의 절대자가 아니다. 후설은 이러한 절대자 안에서 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관적인 진술들' 은 신학에 속하는 일이지 현상학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셀러(M. Scheler, 1874~1928)는 '형이상학적 종교적 불가지론' 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신을 절대적이고 불변하며 고정적인 일자(一者)로, 한편으로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교와 형이상학의 일치 체계' 를 받아들인다. "참된 신은 형이상학의 신처럼 그렇게 공허하지도 고정적이지도 않다. 신은 순수한 믿음의 대상인 신처럼 그렇게 좁지도 살아 있지도 않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에 대한 두 가지 개념과 그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가치 윤리가 기초를 얻는다. 그에게 '가치의 소여' 는 '존재의 소여' 보다 우선성을 갖는다. 가치의 '상대성' 과 '절대성' 은 순수한 감정에 주어진다. 가치의 최소한의 가능한 상대성으로서 절대자로의 접근은 판단과 이해가 아닌 단지 새롭고 직접적인 감정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는 무비판적으로 새로운 형이상학을 정초한다는 오해를 회피하고 관념론에서 전개된 절대자와 타자의 개념을 비판 이론에서의 상관 개념으로 보존하고자 시도했다. 비판 이론은 절대자가 표상될 수 없기 때문에 유대 전통과 변증법적 신학에 기초지으려고 한다. 호르크하이머는 이것을 합리적인 사회 이론에 적용 가능한 신학적인 착상으로 이해하였다. 비판 이론은 전승되어 온 것으로부터 부정적인 것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부정의 변증법' 의 말미의 '형이상학에 대한 명상들' 에서 아도르노는 '부정적인 인식들의 총화' 로서의 변증법을 조건으로 형이상학의 임무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부정의 변증법은 총체성이 되지 않고, 항상인간화하는 변형의 형태인 신인 동형설로서 '절대자의 동일화' 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종적인 단계에서는 자신에게 거슬러야만 한다.
※ 참고문헌 F. Copleston S. J., A History of Philosophy, vol. I, The Newman Press, Westminster, Md., 1960/ E. Gilson, Elements of Christian Philosophy, Doubleday and Co. Garden City, New York, 1960/ W.K.C. Guthrie, A History ofGreek Philosophy, vols. I~V,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4/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 1, Mcmillan, pp. 6~91R.M. Mcinerny, 《NCE》 1, 2003, pp. 40~441 Historisches Worterbuch der Philosophie, vol. I, Schwabe & co. Basel, 1998/ Notions Philosophiques,Encyclopedie Philosophique Universelle,vol. I, Pr. Univ. de France, Paris,1996, pp. 6~9. 〔張昱〕
절대자
絶對者
〔라〕Absoluns · 〔영〕the Absol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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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절대자는 하나이고 전체이거나 하나로서 모든 것"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