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의 중앙 집권적 권위와 절대 주권을 군주에게 부여하는 정치적 주장 또는 정치 형태.
〔개 념〕 정치적인 의미에서 절대주의는 첫째, 권력을 소유하고 행사하는 통치자(the ruler)의 권력은 절대적이며, 피지배자(the govemed 혹은 the ruled)는 맹목적으로 그의 권력 행사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절대주의는 통치자와 피지배자의 확연한 구분을 전제로 하며, 통치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통치자의 권력 그 자체가 법의 원천이 되어 통치자의 권력 행사는 평가, 비판, 처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게만 책임을 질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주의는 법 밖의, 법 위의 초법적 통치를 정당화한다. 일반 시민 혹은 신민(the subject)은 통치자의 권력 행사에 도전할 아무런 법적 도덕적 권리나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절대주의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통치자의 손에 절대적이고 통합적이고 집중화된 권력이 주어 진다는 것이다. 분할이 불가능한 절대적 권력이 존재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구조적 측면에서 3권 분립과 같은 형태의 권력의 분립(the separation of power)이나 권력의 분산은 없다. 권력의 분할을 통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간의 상호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이루게 만드는 독재 예방 장치도 없다. 다시 말해 절대주의는 권력의 집중(the concentration of power)을 옹호하는 이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론이다. 따라서 집중된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는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고 집중된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독재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형태의 권력 집중 현상에 가장 적합한 예로 16세기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확립되기 시작한 절대 왕정 체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이 실질적으로 한 사람에게 장악된 회사나 단체, 정당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이 집중되어 행사되는 체제 역시 절대주의라고 불린다. 절대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정부를 수립하여 사회 질서 유지와 다른 목적을 위해 법제정권은 물론 해석, 집행권을 동시에 소유하는 무소 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최종 책임자로서 프랑스의 루이 14세(1643~1715)와 같은 강력한 통치자를 상정한다.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절대주의의 모형에 가장 적합한 예이다. 셋째, 절대주의의 사상적 · 이론적 토대는 프랑스의 보댕(J. Bodin, 1530~1596) , 영국의 홉스(T. Hobbes, 1588~1679), 독일의 푸펜도르프(S.F. von Pufendorf, 1632~1694)등에게서 찾을 수 있다.
넷째, 절대주의는 '왕권 신수설' 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왕은 하늘로부터 권력을 위탁받았기에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라는 상정과 함께 신민들에게는 책임을 질 일도 없음은 물론, 신민들의 맹목적인 복종은 당연하다는 논리와 연결되었다. 즉 여러 가지 형태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절대적이고 주권적인 국왕의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로 인해 교회는 국가에 종속되고 교회의 재산은 몰수되는 등 여러 가지 고통을 겪었으며, 군주는 교회의 수장이 되려고도 하였다. 왜냐하면 중세의 군주는 또 다른 권력의 중심이었던 교회와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 경] 첫째, 1789년 자유, 평등, 박애란 기치로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절대 왕정과 같은 종류의 절대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절대주의는 나침반, 활자, 화약 등의 발전을 가져온 과학 기술의 발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항해와 탐험으로 개척한 해외 시장을 통한 교역의 증대, 국내 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온 상업의 발전, 제조업의 등장과 발전, 귀족과 봉건 영주에 적대적인 부르주아의 출현 등을 촉발시키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배경하에서 절대주의가 태동되었던 것이다.
둘째, 절대주의는 자본주의의 발달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자본가 계급은 왕권의 강화로 얻게 되는 강력한 중앙 정부의 지배하에서 안전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국왕을 지원하고, 또한 국왕이 필요로 하는 전비(戰費)를 세금이란 형태로 제공하여 상호 이익을 취하였다. 자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 사장의 확보가 이루어진 것이다.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무역 정책이나,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해외 원료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강력한 국왕과 군사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끝으로, 절대주의는 민족 국가의 출현, 즉 민족주의의 등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절대주의는 중세의 질서가 와해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민족 국가의 강력한 개별 지도자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들 민족 국가의 권력은 왕의 권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 때문에 민족 국가와 왕의 권력을 동시에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봉건 영주들, 중세의 일반적인 관습이 중앙 집권적인 정부에 가하고 있었던 제한들을 철폐시킬 필요가 있었다. 종래의 제한들에 대항하여 군주는 국가의 절대적 권위를 옹호하고 국가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절대 권력을 주장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 절대 군주제는 서유럽의 대다수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17~18세기에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는 국가의 부국 강병 정책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민족주의의 발흥을 자극하고 경쟁적으로 해외 시장, 원료 공급처, 식민지 개척 및 확보를 위해 상호 간 전쟁을 포함한 격렬한 경쟁을 치렀다.
〔최근의 연구 동향 및 의의〕 현대에 와서 절대주의의 연구는 일본의 군국주의,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소련의 전체주의적 독재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구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과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민주화의 여파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부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국가들도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어, 국왕의 위치는 명목상의 국가 원수로만 지위를 유지하고있다. 따라서 절대주의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체제와 주장이 되었다. (→ 왕권신수설 ; 전체주의)
※ 참고문헌 C.W. Cassineli, Autocracy, 《IESS》, edited by David L.Sills,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and the Free Press, 1968/ J.Morrow, A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 A Thematic Introduction, NewYork Univ. Press, 1998/ G.H. Sabine · T.L. Thorson, A History ofPoliticalTheory, Revised by TL. Thorson, Hinsdale, Illinois, Dryden Press, 4th ed.,1973/ J.P. Sommerville, Absolutism and royalism, The Cambridge HistoryofPolitical Thought 1450~1700, edited by JH. Burns with the assistance of Mark Goldie,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1991. 〔朴炳垣〕
절대주의
絶對主義
〔라〕absolutismus · 〔영〕absolu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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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