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소유물을 그 사람의 정당한 의사를 거슬러 은밀하고 불법적으로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행위. 십계명의 일곱째 계명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만일 이것이 공공연하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강도질이다. 강도질은 절도가 악화된 것이다.
〔정 의〕 인간은 자신의 물리적인 생명 유지와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자신에게 속해 있으며 개인의 책임하에 처리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재물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물질적인 재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여 사용하지 않고서 전체적인 생존을 생각할 수 없다. 어떤 것이 나의 소유라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제외된 상태에서 재화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나 자신의 포괄적인 권리를 의미하는데, 극단적인 견해에 의하면 그것을 마음대로 없애 버릴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된다. 그리고 절도란 타인의 소유에 대한 취득이다. 이 같은 취득은 빚을 갚지 않는 경우나 특허권과 저작권이 침해당하는 경우, 잃어버린 재산이 부당하게 억류되어 있는 경우에도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침해는 절도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빌려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행위, 횡령과 착복, 공공물의 불법 사용,임금의 체불 등과 같이 교환 정의를 훼손하는 행위들도 역시 절도로 이해될 수 있다. 한 가지 예외는 다른 사람에게서 총과 같은 흉기를 치움으로써 범죄를 막을 필요가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그 물건을 치우는 것은 의무이다.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지불되어야 하듯이 노동자는 지불받은 임금에 상응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거나 공장에서 작업 중에 기계나 다른 도구들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여 훼손시키는 행위, 자동차 사고시 그 사고로 야기되지 않은 고장 따위를 자동차 보험으로 처리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절도에 해당된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이 가진 것을 헐값으로 팔도록 경제적으로 굴복시키거나 생명을 위협하여 재산을 포기하도록 만들거나 혹은 큰 이익을 약속하여 다른 사람의 재산을 양도하도록 유혹하는 등 불순한 간계를 통하여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 절도이다.
내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분실하였느냐 아니면 도둑맞았느냐 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경우에는 단지 물질의 손실을 의미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인격적으로 손상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웃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며 자신의 존재가 위협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절도를 금지하는 규정의 본질적인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가격의 폭락을 막기 위하여 완전히 수확하지 않고 후에 없애 버리려 했던 토마토를 몰래 따왔다거나 누군가가 팔지 못하여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파기할 책들을 지불하지 않고 몰래 가져왔다면 이것이 절도 금지 규정을 어긴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 행동으로 농부들과 가게 주인과의 신뢰를 파괴하였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 절도의 또 다른 불의는 사적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아무런 제재 없이 타인의 재화를 임의로 차지할 수 있다면 사회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발전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공동 소유라는 공산주의의 주장을 내세우는 국가들조차 절도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해하고 절도범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절도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중대하지는 않다. 좀도둑질이 은행 강도와 같은 정도로 공동선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절도가 중대한 불의일 때와 아닐 때를 판단하는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한데,전통적으로 상대적 기준과 절대적 기준으로 구분한다. 윤리 신학자들은 절도를 중대한 문제로 보는 상대적 기준을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하루 임금이나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이 하루 생계에 충분한 금액으로 잡는다. 그리고 적당히 충분한 수입을 가진 사람의 한 주간 임금에 맞먹는 금액이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본다.
〔절도 금지 규정의 문제점〕 절도 금지 규정은 게으르고 무분별한 자들로부터 부지런하고 분별 있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유 재산의 권리를 수호하는 강제력으로 간주되어 왔다. 성서도 절도의 죄악성을 되풀이해서 언급하였다. 절도는 십계명이 열거한 기본적인 죄악이다. 일곱째 계명은 "도둑질하지 못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며(출애 20, 15 ; 신명 5, 19), 열째 계명은 이웃의 집이나 전답,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아무것도 탐내서 안 된다고 명한다(출애 20, 17 : 신명 5, 21). 그리고 예수의 재림이 곧 이루어지리라고 예상한 까닭에 노예제도, 가난한 사람의 경제적 권리, 사회 개혁 등과 같은 문제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바오로도 절도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죄들 중 하나로 열거하고 있다(1고린 6, 10).
다른 사람의 소유를 존중하기 위해 절도를 금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계명을 윤리적으로 적용하는 데 따르는 어두운 면도 있을 수 있고 이 어두운 면이 서구 문명에 상처를 남겼다. 개인의 소유를 보호함으로써 개인을 보호하고자 마련된 이 계명은 서구 문명에서 사유 재산의 불가침성을 밑받침하는 구실을 해 왔다. 그래서 이 계명은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다. 네것으로 만족하라" 고 큰소리치는 자들에게 신학적인 이론 근거만 제공한 셈이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사회가 다원화되고 경제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도둑질을 금하는 규정은 사유 재산, 무한정한 부의 축적,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심화되는 격차를 정당화하는 규정이 되어 버렸다. 물론 가톨릭 신학자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가하는 부당한 억압을 2천 년 동안 줄곧 비난해 왔다. 하지만 대중적인 신앙 해석은 도둑질을 금하는 계명을 부의 축적과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작태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 결국 이 계명은 남의 재화를 횡령하려는 이기적인 충동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사람에게 재물을 축적하는 이기심을 부추기는 구실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곱째 계명의 고찰〕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일곱째 계명은 축재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개혁가들이 사회 계층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제안한 수많은 제도들을 살펴보면 사정은 다르다. 삼 년마다 바치는 십일조, 휴경년, 안식년 해방, 희년 등은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이스라엘 땅에 경제적 화합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제도들이었다. 이런제도들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소수의 수중에 쏠리는 부의 축적을 일곱째 계명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고 해석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제도들로 미루어 볼 때 도둑질을 금하는 계명은 식량, 돈, 자유 또는 토지 등과 같은, 다른 사람이 사회에서 독립적이고 유익한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손대지 못하게 막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다시 말해서 이 계명은 부가 소수의 수중에 과중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방지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것이 누구에게 속해져 있든지 소유는 불가침의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소유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일곱째 계명을 통하여 우리의 소유를 다른 사람의 침해로부터 보호하려고 하였다면 자신의 소유 중에서 다른 사람이 생존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하여 더이상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소유자의 재산권은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침해할 때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도둑질하지 말라' 는 계명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서 물건을 훔치는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제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부자의 우월성이 사실인가 아니면 가상에 불과한가 묻고 있고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질을 부자가 망쳐도 좋은 것인가 아닌가를 따지고 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많은 범죄를 사형으로 다스렸던 구약의 이스라엘이 재화나 물건을 도둑질한 사람들을 사형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행사권 요구, 즉 소유권은 다른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위하여 그것을 꼭 필요로 할 때 한계를 가진다. 극도로 필요해서 남의 것을 가지는 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다. 또 아내나 자식이 사회적 처지에 따라 생계에 필요한 것을 가지는 것도 절도가 아니다.
물질적인 재화는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큼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공정한 분배에 대한 인간의 요구는 물질적인 재화의 영역에서 만큼 절실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상 강한 자들의 권리를 위해 분배의 원칙을 정한다면 그 결과 약한 자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일곱째 계명은 이러한 사물을 잘 반영하여 강한 자들에게 자신의 임의대로 소유를 사용하는 것이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둑질하지 말라' 는 계명은 분명히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령들이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심을 촉진하는 신학적 표현들은 그런 해석을 방지해 준다.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일곱째 계명은 사회에서 도둑질을 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사실상 단죄하고 있다.
〔교부들의 가르침〕 바실리오(329~39)는 남의 옷가지를 훔치면 그를 도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줄 수 있음에도 그것을 마다하는 사람 역시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반문하면서욕심으로 쌓아 놓은 재물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 그리소스토모(344/354?~407)는 성서는 남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만 아니라 재산을 남들과 나누지 않는 것 역시 강도질이요, 탐욕이요, 도둑질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부를 사회적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의무가 부자들에게 주어져 있으며 그렇지 못할 때 그들이 계속 움켜쥐는 탐욕스런 부는 또 다른 강도질이 된다고 가르쳤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extrema necessitas)이라면 비록 다른 사람에게 속하긴 해도 그 사람이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모르게, 혹은 불가피한 경우에는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도 이러한 관점을 따르고 있는데, 타인의 재물을 그의 정당한 의사를 거슬러 빼앗는 것을 분명한 절도 행위로 보지만 동의가 추정될 수 있거나 거절이 타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물의 보편적 사용 목적에 어긋난다면 절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긴급하고 필수적인 의식주를 조달하기 위해서 타인의 재물을 차지하고 사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되는, 급박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한다(2408항). 그리고 빌려 온 재물이나 습득물을 일부러 간직하고 있거나 장사할 때의 속임수, 부당한 품삯을 지불하는 행위, 타인의 무지나 필요를 틈타서 물건 값을 올리는 행위 등도 절도라고 하였다(2409항). 또한 저지른 불의에 대해 배상하려면 훔쳐 온 재물을 그 소유주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타인의 재물을 빼앗은 사람은 그것을 돌려주거나, 그 물건이 없어졌을 경우에는 현물이나 돈으로 동등한 가치만큼 돌려줄 의무가 있으며 그 소유주가 그것으로 마땅히 얻었을 결실과 이익도 돌려줄 의무가 있다. 어떠한 형태로든 도둑질에 가담했거나 훔쳐 온 물건인 줄을 알고 그것을 이용한 모든 사람도 자신의 책임과 이득에 비례하여 반환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면 도둑질을 명했거나 도와 주었거나 장물을 은닉해 준 사람들이 그렇다"(2412항).
〔신앙인의 자세〕 절도 금지 규정은 양날을 지닌 칼과 같다. 이 계명은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이용해서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다른 사람의 생계를 망치면서까지 부를 탐하는 탐욕스런 욕망을 합리화하는 개인을 단죄한다. 또한 이 계명은 인간의 생명과 불행을 무시하면서 대대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려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교조적인 이데올로기들도 단죄한다. 이 계명의 목표는 개개인이 전체 사회의 안녕을 위하고 전체 사회를 책임지는 가운데 자신의 능력과 소망에 따라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재화와 소유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베풀기 위해서는 먼저 소유해야 하며 부나 물질적 소유를 모두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우리의 경제 체제가 재화의 분배를 허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가 소유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세상의 재화와 재물은 그것의 근원과 본성에 따라 창조주의 의지에 맞도록, 모든 사람들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 십계명)
※ 참고문헌 F. Scholz, 《LThK》 3, pp. 374~3751 A. Exler, In Gottes Freiheit. Die Zehn Gebote, Freiburg i. Br., 1981 pp. 160~181/ 로버트 뉴즈, 성찬성 역, 《너희는 도둑질을 하지 못한다. 성서와 전승에 나타난 공동체와 재산》, 가톨릭출판사, 1995/ K.H. 페쉬케, 유봉준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의한 가톨릭 윤리신학》, 분도출판사, 1986, pp. 199~203. 〔具經國〕
절도
竊盜
〔라〕furtum · 〔영〕th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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