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絶望

〔라〕desperatio · 〔영〕desp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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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절망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당면한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 또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려는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 결국 체념하는 것으로 대신덕(對神德)의 하나인 망덕(望德)에 위배된다. 영원한 구원과 그것에 필요한 방법들을 하느님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의지적인 불신으로서,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대한 확신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동 기〕 절망의 동기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자신을 완성해야 할 수고 앞에서 주저하는 것일 수 있고, 이웃과 하느님보다 오히려 세속의 재화를 더 먼저 생각하는 도덕적 게으름일 수도 있다. 또한 이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드러난 하느님의 뜻에 승복하기를 거부하게 하는 불완전한 신뢰심일 수도 있다.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도저히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믿는 심한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서도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죄스러움 때문에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은총 없이도 스스로 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교만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절망의 동기는 중대한 운명적 사건들이나, 무의미한 고통과 반복되는 실패, 또는 죽음의 체험이 너무 커서 자신이 무력하고 한계에 부딪쳤다고 느끼며, 하느님께 대한 신뢰마저 잃고 절망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대개는 죄책감과 한계 체험에 대한 인식이 작용해 절망하게 된다.
〔의 미〕 신학적인 의미 : 이 경우 절망은 모든 주관적이고 억압적인 공포와 체념의 감정보다도 더 심오하다. 신앙의 위기에 빠져드는 것을 온전한 의미의 절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도 많은 영적 저술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신적 가난과 하느님 뜻과의 합일로 가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절망은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의문시하고 부인하는 태도이다. 현존하거나 앞으로 가능한 희망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는 것은, 결국 자신과 이웃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마저도 끊어버리는 죄가 된다.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반대하고 이를 끝까지 고집하며, 자신의 완성과 구원을 추구해야 할 인간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절망은 모든 죄의 핵심이다. 절망의 본질은 당연한 것으로 알면서도 자유로이 자기 완성을 거부하는 반항이어서, 보속과 용서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주어진 은총에 대한 모든 반항은 심각한 절망의 행위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절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절망의 죄는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절망 속에는 하느님 은총의 상징인 그분의 음성을 들을 기회도 동시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탄원 시편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 (S. Kierkegaard)으로서의 절망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새 생명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성서에서의 의미 : 이스라엘 백성이 지녔던 계약 사상은, 하느님이 자신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뽑아주고, 그 대신 이스라엘은 야훼를 자신들의 하느님으로 섬기는 것이었다. 법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이 계약을 통해 선사해 준 약속을 성취하고,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점에 대한 신뢰 가득한 인정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아브라함의 삶이 대변해 준다(창세15, 1-21 ; 로마 4, 18-25). 절대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눈을 돌려 내일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도록 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라고 성서는 가르친다(에스 14,19). 그리스도교의 복음도 본질적으로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려는 것이며(로마 5, 6),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구원을 바랄 수 있는 것이다(2고린 4, 8).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 사건 자체가, 죽음의 절망마저 넘어서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를 잘 드러내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망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복음과는 양립할 수 없다.
〔절망의 극복〕 절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완덕과 구원을 위한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게 한다. 그래서 절망의 결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을 도외시하는 내세적 현실 도피나 죽음에 대한 가짜 영웅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서 모든 의욕을 잃고 자살로 끝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세상 속에 빠져 인생의 환락으로 도주하는 세속주의 내지는 쾌락주의를 택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현상학적으로 볼 때 정서적 장애나 심리적 질병의 형태들과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어, 때때로 이것들과 혼동되기도 한다. 일정한 형태의 우울증, 과도한 양심의 가책, 병적인 망상 그리고 강박관념 등도 절망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인간의 관계 능력을 지속적이고 압도적으로 저하시키고 마비시켜서, 결국 자살로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신 질환의 경우 자유 의지의 행사가 제한된 상태이기에 죄의 책임을 따지기 어렵고,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병으로 취급하여 치료해야 한다.
절망을 극복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으로써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망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를 먼저 도와야 하며 희망의 덕〔望德〕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 체념 ; → 대신덕)
※ 참고문헌  P. Fonk, 《LThk》 10, pp. 750~751/ W. Molinski, 《SM》 IV, p. 1175ff./ C. Schiitz Hg., Praktisches Lexikon der Spiritualitiät, Herder, 1992, p. 1056ff./ K.H. Peschke, 김창훈 역,《그리스도교 윤리학》 2, 분도출판사, 1992, pp. 102~104. 〔柳京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