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節制

〔라〕temperantia · 〔영〕temp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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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이성에 따라 감정과 욕정, 행위를 조절하는 덕목. 영성의 발전을 위해 음식이나 욕망, 쾌락의 유혹을 적절하게 조절하거나 억제하고, 나아가 창조된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균형을 유지하게 해 주는 윤리적 덕.
〔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에서 절제는 자주 칭송을 받는다. "네 정욕을 따라가지 말고 네 욕망을 억제하여라" (집회 18, 30). 주로 분별 있게 행동하고 삼가한다는 의미로 절제가 강조되는데(신명 11, 16 ; 판관 13, 4 ; 집회28, 24-25), 잠언에도 이러한 개념으로 자주 등장하였다. 함부로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의미로 절제의 덕이 강조되는데, 바로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였다(잠언 4, 23 ; 16, 32 ; 25, 28). 그 밖에도 특별히 정욕의 억제(집회 5, 2 ; 18, 30)와 탐식 등을 피할 것(집회31, 20 ; 37, 27-31)을 강조하는 내용에서 절제의 사상을엿볼 수 있다.
신약성서는 절제를 '중용' 또는 '소박함' 이라고 부른다. 바오로는 정의와 미래의 심판과 함께 절제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로 가르쳤다(사도 24, 25).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절도 있고 바르고 경건하게"(디도2, 12)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갈라 5, 23)이며 하느님의 사람이 갖출 덕목(1디모 3, 2 ; 디도 1, 8)으로 제시된다. 즉 감독이나 장로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절제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바오로는 강조하였다. 그래서 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 선수를 비유로 들어 이를 설명하였다(1고린 9, 25-27).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절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1디모 4, 7-8). 혀를 억제하지 못하면 신앙 생활이 헛것이 된다는 경고(야고 1, 26)나, 믿음에 이어 네 번째 중요한 덕목으로 절제를 언급한 베드로의 편지(2베드 1,5-7)도 신약성서에서 절제에 대한 사상을 대변한다. 절제의 중요성에 대한 초대 교회 신자들의 확신은, 실제로 그들이 절제의 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고 여겼을 만큼 강했다.
〔신학적 의미〕 교회는 전통적으로 절제를 사추덕(四樞德)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중요한 덕목으로 인정해 왔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절제는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올바른 이성과 의지의 도움을 받아 극기로 제어함으로써 중용을 유지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인간의 감각적 욕망이 선을 향하게 하고, 건전한 조심성을 지키도록 해 준다. 인간행위의 균형을 유지시켜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이 덕의 목표인데, 이때 균형의 기준은 이성에 있다. 지나치지 않도록 모든 충동과 행동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마음가짐이란 점에서 모든 윤리덕에 공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에 따르면 절제는 모든 덕들의 구성 요소이고 일반적 조건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그는 절제의 덕을 음식과 음주, 그리고 성적 욕망을 조절하는 특별한 덕이라고 언급하였다. 절제의 덕이 감각적 기쁨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성숙에 봉사하도록 적절히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제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특성을 갖는다. 즉 음식과 성에 의한 쾌락을 조절하여 인간에게 알맞게 해 주는 덕이다. 먹고 마시고 성을 사용하는 것이 자기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지만, 절제하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고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절제의 실현을 구체적으로 절식(節食, abstinentia)과 절주(節酒, sobrietas) 그리고 정결(貞潔, castitas)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절식은 식탐(食貪)을 금지하는 것이고, 절주는 술에 대한 욕구를 순화시키는 것이며, 정결은 성적 쾌락에 대한 욕구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며 독신으로 살라는 완전한 금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방 법〕 절제는 욕구를 억압 또는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방법이나 초자연적 방법으로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성적으로 절제의 덕을 닦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스도교적인 의미에서 절제는, 인간이 덕을 닦기 위해 노력할 때 은총으로 주어지는 주입덕(注入德)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교적인 절제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노력으로서 일종의 자기 부정이라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자연적 절제의 덕에 의한 자기 부정과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절제는 은총과 더불어 주입된 덕과, 은총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습득된 덕〔習得德〕으로 이루어진다.
은총에 협조하는 인간의 자기 노력을 돕기 위해, 교회는 여러 가지 참회 고행과 신심의 실천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매주 금요일에 금육을 실천하고 소비 행위를 자제한다든가, 기호품을 포기하고 이웃 사랑과 신심을 실천하는 전통이 이에 해당된다. 교회는 신자들이 교회법에 따라 금식과 금육을 지켜 자신을 극기하도록 가르친다(1249조). 교회법에 따르면 대축일과 겹치지 않는 한 신자들은 연중 모든 금요일에 금육을 지켜야 하며, 재의 수요일과 파스카 금요일에는 금육과 금식도 함께 지킨다(1251조). 만 14세부터 만 60세까지의 모든 성인들은 금식을 지킨다(1252조). 물론 금육과 금식을 다른 형태의 참회 고행, 특히 애덕 사업과 신심 수련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1253조).
절제의 덕은 반드시 식욕이나 성욕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 욕망에 좌우되는 물욕이나 명예욕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절제의 덕은 음식, 술, 담배, 약물의 남용 등 온갖 형태의 과잉을 피하게 한다. 술 취한 상태에서나, 속도에 대한 무절제한 취미로 도로나 바다, 하늘에서 타인과 자신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은 중죄를 짓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90항). 절제는 특히 사회적 책임과도 관련이 깊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려면, 현세 재물에 대한 애착을 조절하기 위해서 절제의 덕을 발휘해야" (2407항) 한다. 예를 들어 부의 분배 문제나 환경 문제 등과 연관시켜 볼 때 더욱 명백해진다. 제한된 부의 총량을 고려할 때, 오늘날 빈부 격차의 심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고, 이때 과도한 물질적 소유욕 내지 소비 욕구는 그리스도교적 정의와 애덕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절제의 덕이 중요하게 강조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절제의 실천은 결과적으로 부와 소비 기회의 정의로운 분배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 · 실현시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환경 위기가 인간의 무절제한 소비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절제의 덕은 오늘날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무절제한 소비로 인해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지 않도록 하는 자기 제어와 절제는 현대 소비 사회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욕구를 무조건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의식 속에서 욕구를 지배해 나가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절제는 오늘날 인류의 생존 전략에 속한다. 절제를 통해 자신의 희망을 개별적으로 극복할 수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의 실현도 돕는 것이다. (→사추덕 ; 윤리덕)
※ 참고문헌  Katholischer Erwachsenen-Katechismus 2, Hg.v. der Deutschen Bischofskonferenz, 1995, pp. 73~741 K. Demmer, Praktisches Lexikon der Spiritualität, Herder, 1992, pp. 842~844/ P.Lippert, 《LThK》 1, 1993, p. 92/ H.J.F. Reinhardt, 《LThK》 1, 1993, pp.92~93/ H. Vorgrimler, Neues Theologisches Wörterbuch, 2000, p. 405/T. Gilby, 《NCE》 13, pp. 794~7951 R. McBrien, 《Catholicism》, 1994,pp. 949~951/ 유봉준, 《기초호윤리신학》, 가톨릭 출판사, 1978, pp.200~203/ 차동엽 · 홍승모, 《말씀의 네트워크》, 풀빛미디어, 2001,pp. 1191~1194/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가톨릭교회 교리 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2003. 〔柳京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