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동 본당

店村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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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문경시 점촌동 440 소재. 1922년 9월 23일에 설립되었으며, 명칭은 공평에서 점촌, 충현동, 점촌동으로 변경되었다.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문경시 점촌동, 공평동, 흥덕동, 신흥동, 반곡동, 산북면, 동로면, 용궁면, 산양면. 관할 공소는 3개. 〔교세〕 1969년 3,158명, 1975년 3,579명, 1980년 2,981명, 1985년 2,487명, 1990년 2,541명, 1993년 2,724명, 1998년 2,763명, 2002년 3,011명. 〔역대 신부〕 초대 김문옥(金紋玉) 요셉(1922. 3~1936. 6), 2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36. 6~1938. 6), 3대 서형석(徐亨錫) 프란치스코(1938. 6~1940. 6), 4대 이기수(李己守) 야고보(1942.6~1948.6), 5대 최영호(崔榮浩) 비안네(1953. 11~1956. 7), 6대 렌하르트(A. Lenhard, 노도주) 아놀드(1956. 7~1969. 12), 7대 김욱태(金旭泰) : 레오(1970. 1~1973.4), 8대 펠리스(M. Péisse, 裴世榮) 마르철로(1973. 4~1974. 12), 임시 린츠(C. Lintz, 인향성) 가롤로(1974. 12~1975. 10), 9대 이정모(李廷模) 요셉(1975. 10~1981.2), 10대 오성백(吳盛柏) 요아킴(1981. 2~1986. 1)11대 Gaztambide, 韓尚德) 안토니오(1986.1~1993. 5), 12대 이상복(李相福) 비오(1993. 5~1999. 1) ,13대 정상업(鄭相業) 바오로(1999. 1~현재).
1911년 김천(金泉, 현 황금동) 본당에 부임한 김문옥 신부는 매년 2회씩 문경, 상주, 안동 지방을 방문하면서 문경과 안동에 새로운 성당을 마련하고자 1917년 점촌에 1,200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하지만 당시 점촌에는 신자가 겨우 2~3호에 불과하여 성당을 건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점촌보다는 신자가 30여 호나 거주하고 있던 공평에 새 성당을 마련하는 것이 더 적합하였다. 이에 김문옥 신부는 1921년 3월 공평에 부지를 마련하고 장차 성당으로 사용할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22년 부활 축일에 성당으로 사용할 건물이 완공되자 9월 교구에서 공평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김문옥 신부를 임명하였다. 1925년 8월에는 김 신부의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기념하는 동시에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김문옥 신부는 14개의 공소를 마련하였고, 또한 사립학교를 세워 문맹 퇴치에 앞장서는 등 교육 사업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2대 주임인 김준필 신부는 성가대와 청년회를 조직하여 본당 활성화에 노력하였고, 청년 활동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20여 개에 이르는 공소를 오가면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김 신부는 20여 개 공소에 춘추 판공 성사를 하는 가운데 피로가 쌓여 몸이 쇠약해졌다고 한다. 1938년 3대 주임으로 서형석 신부가 부임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전임하면서 공평 본당은 신부가 공석인 상태로 남게되었다. 게다가 1942년에는 본당을 함창(咸昌)으로 옮기면서 공평 본당은 공소로 전락하여 1954년까지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이와 같이 공평 본당이 공소로 전락하면서 점촌에 새로운 성당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1948년 문경군의 공소 회장단과 본당 내 각 단체장들은 성당 이전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여 옛 일본의 신사터 1,800여 평을 매입하고, 공평 성당의 벽돌을 그대로 옮겨 점촌에 새로운 성당을 건설한 끝에 1949년 11월 구(舊) 점촌 성당을 준공하였다. 새로운 성당을 마련하게 되면서 1953년 11월 5대 주임 최영호 신부가 부임하였고, 이로써 신부 공석 사태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1954년 점촌 본당이 대구교구에서 베네딕도회로 사목 권한이 위임되자 이에 따라 1956년 베네딕도회의 렌하르트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렌하르트 신부는 본당 이주를 계획하여 현(現) 본당 부지를 매입하였고, 1959년 6월 신축 공사에 착공하여 다음해 12월 완공하였다. 렌하르트 신부는 1956년 9월 오룡 공소를 시작으로 1966년 막곡 공소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 공소를 설치하는 데 진력하였고, 무주택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게 하는 한편 농암에 상신원을 설립하여 음성 나환자 100명이 자활하게 하는 등 활발한 사회 활동도 펼쳐 나갔다.
1969년 7월 안동교구가 설정되면서 점촌 본당은 다시 베네딕도회에서 안동교구로 이관되었다. 7대 주임 김욱태 신부는 부임 직후 사목회를 조직하였고, 1971년 상지유치원을 개원하였다. 9대 주임 이정모 신부는 1979년 성소 후원회를 발족하였으며, 1980년 1월 공평리 산580평에 공동 묘지 부지를 확보하였다. 10대 주임 오성백 신부는 1982년 9월 모전동(茅田洞) 본당을 분리하였다. 11대 주임 가즈탕비드 신부는 1986년 10월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1987년 8월 건평 60평 규모의 수녀원을 완공하였으며, 1990년 11월 건평 150평 규모의 상지유치원을 준공하였고, 1992년 10월 본당 70주년 행사를 가졌다. 12대 주임 이상복 신부는 1993년 6월 본당 식당 공사를 완공하였고, 10월에는 유치원 3층을 증축하였으며, 1994년 10월 100평 규모의 노인회관을 건립하였다. 13대 주임 정상업 신부는 2000년 11월 낙후된 본당 지하실 및 본당 뒤편 테니스장과 주차장을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2002년 10월 본당 설립 80주년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다.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안동교구, 《안동교구사 자료 6집 ㅡ 본당, 활동수도단체 , 교구단체, 기관》, 1997.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