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

貞潔

〔라〕castitas · 〔영〕chas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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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을 지키려다 모함을 받은 수산나.

정결을 지키려다 모함을 받은 수산나.

성(性)이 인격 안에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고 이로써 육체적이고 영적인 측면이 온전한 통합을 이루고 있는 상태. 윤리덕 중 하나로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이며 성령이 맺어 주시는 열매이다. 정결의 덕은 완전한 인격과 온전한 헌신을 내포한다. '정덕' (貞德)이라고도 한다.
〔의미 및 개념〕 라틴어 '카스티타스' (castitas)는 '정결' . '순결' (純潔) · '정덕' (貞德)을 의미한다. '정결' 은 정조(貞操)가 굳고 행실이 결백함을, '순결' 은 마음과 몸이 깨끗함을, '정덕' 은 정숙의 덕을 뜻한다. 정덕은 인간의 성적(性的) 질서를 수호하는 윤리적 능력이다. 이러한 정덕은 온전한 인격과 헌신을 제외하고 논의할 수 없다. 과거에는 정덕을 부당한 성적 욕구나 쾌락을 자제하고 억제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덕은 자제만이 아니라 그보다 한결 상위의 덕이다. 바로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고 배우자의 인격적인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해링(B. Haering, 1912~1998)에 의하면 정덕은 성을 경멸하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숭배하지않으며, 정덕의 참된 본질은 성적 신비의 깊은 의미를 통찰하고 그것을 궁극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 인간이 자기의 성적 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욕구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다. 인간의 성적 특성을 인격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동물의 수준으로 하락시킴으로써 성적 충족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합법적 부부 사이의 행위라고 해도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성적 쾌락을 쫓는다면 이는 정덕의 정도(正道)를 거스르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성생활에서 자아 통제를 크게 강조하였다. 예수는 행동으로뿐만 아니라 생각으로도 정결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 '간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어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제 마음으로 그와 간음했습니다"(마태 5, 27-28).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가장 완전한 정덕과 동정 생활을 권고하였다(마태 19, 10-1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애덕을, 그 다음으로는 정덕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쉽게 획득되지 않는다. 끈기 있는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며. 정덕의 높은 가치에 마음을 두고 자기를 변화시켜야 한다. 정덕에 대한 기본적 자세를 갖고 항구히 노력한다면 그가 실수를 하고 잘못에 떨어진다고 해도 정덕을 지키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덕은 그것을 목표로 하는 마음과 그 덕의 기본적인 자세를 포기할 때만 상실되기 때문이다.
〔성적 규범과 정결 교육〕 정덕을 거스르는 죄는 사춘기 때부터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자기의 성기(性器)를 만지는 것은 흔히 있는 현상이다. 이를 '유아수음' (infantmasturbation)이라고 하나 성적 절정감(orga-sm)을 체험하지는 못한다. 특히 3~6세의 어린이들은 자기 성기에 호기심을 보인다. 이는 죄가 되는 행위가 아니다. 유아 수음에 대해 부모와 상담자가 너무 엄격한 질책을 하거나 금지시키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고 해(害)가 될 수도 있다. 가끔 어린이들은 의사 놀이를 하면서 자신들끼리 성기를 검사하고 부모 놀이를 하면서 성교(性交)를 흉내내거나 시도한다. 이런 부정한 행동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경고하고 정결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야 한다.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 완전한 죄책(罪責)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인격적 성숙도는 부족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그가 자기의 성적충동을 제어하려는 실제적인 노력 없이 그 충동에 자기를 내맡겼는가, 아니면 자기 성적 능력의 질서를 지키고 자제하려고 성실히 노력했느냐 하는 것이다. 감각적 성적 요구를 아무렇게나 충족시키는 사람, 쾌락주의적 방법으로 성을 즐기는 사람,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근본적으로 악한 자세와 지향을 지닌 사람이다. 선의(善意)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성(性)을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은 그의 나약성 때문에 관대한 판단을 받을 것이다.
이성(異性) 사이의 매력은 육체적인 행위를 지향한다. 그렇다고 미성숙하거나 사악(邪惡)한 형태의 성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간은 성(性)을 순전히 이기적 욕망 충족의 대상과 가치로만 인식하고 자기의 성을 무질서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인간은 합법적 배우자의 몸에 대한 권리, 인격체로서 합당한 예의 범절과 존경을 주고받을 권리, 책임 있는 보살핌을 주고받을 권리를 수행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교회는 일정한 규범과 척도의 적용 없이 개인이 성(性)을 제멋대로 사용하도록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곧 성행위는 사회 규범에 의해 구속을 받는다.
〔정덕과 실천〕 정결한 생활의 결핍에는 성적 일탈이 따른다. 본래 정결은 욕정을 바로잡아 건실하게 사는 태도이며 정결은 하나의 덕행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가르침에 따라 "의롭지 않은 사람을 덕을 갖출 수 없으며 신앙 없이 산다면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 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성실한 사람 안에는 참된 정결도, 다른 덕들도 있을 수 없다. 그런 자는 합당한 삶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결은 그 성격에 따라 덕의 본성을 지닌다. 또한 정결은 해로움을 끼치는 다양한 쾌락이나 하느님 아닌 것에 탐닉하지 않도록 은밀하게 욕정을 바로잡고 통제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국가 사이 혹은 하느님과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언급할 때 혼인의 모습을 들어 설명하였다. 이런 전망에서 보면 모든 죄는 불성실 · 간음 · 간통의 행위처럼 나타난다.
다른 한편 정결은 불순한 쾌락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는 특수한 덕이다. 육신적 쾌락의 사용은 먹고 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감각적인 것과 일치되어 있으나 다른 덕이 되어야 한다. 음식을 먹는 일은 육신적인 쾌락을 지향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 이미 육신 생명의 보존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끄러움' 은 수치심을 지시하는 말이다. 곧 부끄러움은 수치심을 유발하는 인간의 일을 본질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므로 수치심은 정결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 구분된 덕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상황을 지시하는 데 있어서 완성이나 마무리 역할을 하는 덕이다. 곧 인간은 부부 행위, 옷을 입고 벗는 행위, 성기관의 움직임 등으로 수치심을 느낀다. 이렇게 수치심은 건전한 성도덕과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시키고 정결의 덕을 연마하는 촉진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정결한 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생명과 사랑에 대한 능력을 온전히 보전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인격의 손상을 줄 수 있는 온갖 언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이중적 · 위선적 생활과 언어를 멀리하게 된다. 정결은 늘 자제력을 요청한다. 이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희생 · 노력이 필요하다. 한 순간에 이 덕을 이룰 수는 없다. 인생의 모든 시기와 단계에 따라 늘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인내가 요청된다. 아동기 · 청년기 · 중년기 · 노년기 등을 맞아 끊임없이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덕은 자주 죄로 얼룩진 단계들을 거쳐가는 성장의 법칙을 통해 자리를 잡는다. 인간은 선택에 따라 불행과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 맹목적 본능과 외적강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인격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면, 정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금욕 실천, 하느님 계명에 대한 순종, 윤리적 덕행의 실천과 기도 생활 등에 충실해야 한다.
정결은 윤리덕의 하나이기도 하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순결을 따르도록 은총을 내린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정결한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곧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신분에 따라 적합하게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동정이나 봉헌된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덕률에 따라 혼인하거나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혼인한 이들은 부부로서 정결을 지켜야 하며 그외 다른 이들은 금욕을 통해 정결을 유지해야 한다. 약혼자들도 혼인할 때까지 부부 사랑의 고유한 애정 표현을 보류해야 한다. 곧 약혼자들은 금욕으로써 정결을 지키도록 요청 받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시험 과정을 거쳐 서로 존경하고 신의를 배우게 된다.
〔정결을 거스르는 행위들〕 성애의 쾌락에 대한 부당한 욕망이나 문란한 탐닉으로 정결을 거스르게 된다. 성적 쾌락이 부부 일치와 자녀 출산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유리(遊離)되어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될 때 윤리적 문란상태가 되고 정결이 훼손된다. 먼저 자위 행위(自慰行爲)는 성적 쾌락을 위해 생식기를 고의로 자극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성교(性交)가 아닌 자위 행위를 통해 적어도 외적으로는 완전한 성적 충족과 절정감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고유한 성욕의 불만족, 절망감, 인격적 장애가 발생하기에 정결을 거스르게 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위를 본질적으로 지극히 난잡한 행위라고 확언하고 있다. 곧 동기에 관계없이 부부의 정상적 관계를 벗어나서 성기능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궁극 목적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고 사목 활동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정서의 미숙함, 몸에 밴 습관, 심한 불안 상태나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여러 요인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요소들은 도덕적 책임성을 감소시키며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사음(邪淫)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의 육체적 결합이고 한 편이 혼인한 사람이라면 간음(姦淫)에 해당한다. 둘 다 정결을 거스를 뿐 아니라 혼인의 정의(正義)와 부부의 신의(信義)를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인간의 품위와 본래 부부의 선익과 자녀 출산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성적(性的) 품위에도 크게 어긋난다. 더욱이 젊은이들의 타락을 가져오는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춘화(春畵)의 피해도 심각한데, 이는 부부들의 사생활인 성관계를 실제적이거나 모방하여 고의적으로 제3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은밀하게 자기를 선물로 내어 주는 부부 행위를 왜곡하므로 춘화는 정결을 모독한다. 이 일에 관계된 모든 이들(배우 · 상인 · 기업가 · 대중)의 품위를 크게 해친다. 이는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원초적 쾌락과 불의한 이익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접하는 모든 이가 가상적인 환상의 세계에 빠진다. 이것은 중죄이므로 정부와 사회는 춘화 작품들의 배포와 제작을 막아야 한다.
이 외에도 매춘(賣春)은 몸을 파는 사람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켜 그 사람의 품위를 해친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도 자신에게 중죄를 짓는 것이다. 그는 세례로 약속한 정결을 깨트리고 성령의 성전인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1고린 6, 19-20). 매춘은 사회적 재앙이다.이 재앙의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나, 남자나 어린 아이, 청소년일 수도 있다. 매춘에 몸을 맡기는 것은 항상 중죄이나 빈곤과 협박 사회적 압력이 가해질 때 죄에 대한 책임은 경감될 수 있다. 또한 강간(强姦)은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여 어떤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향유할 권리, 육체와 정신이 합치되는 온전성에 대한 개인의 권리에 극심한 상처를 입힌다. 무엇보다도 강간은 피해자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피해를 입힌다.
마지막으로 동성애(同性愛)는 동성의 사람들에 대해 우세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의 관계를 말한다. 동성애를 심각한 타락으로 여기는 성서에 따라(창세 19, 1-29 ; 로마 1, 24-27 ; 1고린 6, 10 ; 1디모 1,10) 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는 본질적으로 문란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자연법에도 어긋나는데, 생명 전달과 무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수의 남녀가 동성애의 타고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사회 활동에서 제거시켜서는 안 된다. 이들은 사심 없는 우정의 도움을 받아서, 기도와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단호하게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기술한 것들은 모두 정결을 거스르는 죄이다. 정결한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해 성적 충동을 전인격을 통해 승화시키고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 간음 ; 동성애 ; 동정성 ; 부정 ; 성 윤리 ; 수도 생활 ; 자위 행위 ; 정숙)
※ 참고문헌  주교 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역,《가톨릭 교회 교리서》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이용훈, <성적 탈선>,《이성과신앙》 21, 2001 , 수원 가톨릭대학교, 2001 , pp. 77~861 B. Haering, La legge di Cristo Ⅲ, Morcelliana, Brescia, 1972, pp. 339~369/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 q. 151 a. 1-4. 〔李容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