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나 죽은 이를 염습하는 것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의무로 인해 부정의 상태에 있게 되었을 때, 정결하게 함으로써 경신례를 통해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예식. 이는 위생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전례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종교적 행위이다.
〔의 미〕 구약성서의 입장에서 볼 때, '부정함과 정결함' 은 물리적 의미에서 청결하다 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넘어선다. 일차적으로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사물이 성전이나 성전에서의 경신례와 관련된 모든 것과의 접촉이 허용 또는 금지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와 같은 물리적 의미를 뛰어넘는 정신적-영적 의미에서의 부정 또는 정결의 개념은 유대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정결에 대한 이해는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기 훨씬 이전의 셈족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그 외의 다른 문화권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정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종교사적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관점을 통한 고대 종교에 대한 연구에서 정결의 개념은 거룩함이라는 개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이 우선적으로 밝혀진다. 거룩함이란 근본적으로 인간 또는 사물이 신성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나 사물이 신성과 맞닿아 있을 때 그 상황을 '거룩하다' 고 부르게 되는 것이며,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 즉 신성과 맞닿을 수 있는 상태에 돌입하기 위한 인간-사물의 전제 조건이 바로 정결함이다. 반면 정결이라는 개념은 고대 종교에서는 일차적으로 초자연적 힘과 연관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왜 그 연관 내지는 접촉이 고대 종교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 지 종교사적 · 사회학적 해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거룩함이 오히려 '정결하지 못함' 과 더 공통점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념(거룩함과 부정함)은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 사용되던 금기(tabu)라는 개념에 속한다.
〔성서에서의 규정과 의미〕 구약성서 : 구약성서가 정결의 개념을 인류 문화에서 최초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는 정결의 개념을 자신들의 종교적 신관 안에서 수용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하느님께 나아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그 무엇과 접촉한 인간은 정결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는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도, 경신례에 참석할 수도 없고 하느님이 성별한 물건들을 만져서도 안 된다. 이렇게 어떤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을 정결하지 못하다고 언급하는 모세 오경의 관점은 이스라엘의 민족형성 출발 과정부터 이미 존재해 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새로운 이해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622년경 요시야(기원전 640~609)의 종교 개혁 시기로 여겨진다. 이 시기에 스스로를 성별된 '거룩한 민족' 으로 선포하는 이스라엘은 그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도덕적, 그리고 전례적 의미에서 정결한 삶을 살 것을 새로이 규정하게 된다.
구약성서는 레위기 11~17장과 민수기 19장에서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결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전례적인 것들과 도덕적인 것들이 함께 연관되었고(신명 14, 1-2 : 21, 22-23 ; 23,11-12 ; 27, 20-23) 우상 숭배, 살인, 문란한 성 문화 등 이 나라를 정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로 언급되었다 (레위 18, 6-30 ; 신명 21, 1-9 ; 에즈 36, 16-36). 다음과 같은 사항들은 특별히 부정한 것으로 명시적으로 규정되었다.
첫째, 이스라엘에는 옛 관습으로부터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는 몇몇 동물들이 있었다. 신명기 전승은 이 관습을 더 발전시켜 어떤 특정한 표시를 지닌 동물들은 부정하다고 규정하였다(레위 11장 ; 신명 14장). 둘째, 정결한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 항문은 부정하다. 항문을 만지거나 먹는 사람은 그 저녁까지 부정하다(레위 11, 24-28 ; 17, 15). 정결하지 못한 동물들이라 할지라도 그 항문과의 접촉은 사람을 정결하지 못하게 할 뿐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단 두더지, 쥐, 각종 도마뱀 등은 그릇, 옷, 음식, 음료수와의 접촉을 통해 부정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들과의 접촉을 통해 샘, 물 웅덩이, 마른 곡식이 부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레위 11, 29-40). 셋째, 시체를 만지거나 혹은 죽은 사람의 뼈 등을 만지는 것은 7일 동안 부정하다. 장막 안에서 사람이 죽은 경우에는 그 장막에 있던 사람과 그 안에 있던, 뚜껑이 닫혀 있지 않은 모든 그릇들은 부정하다(민수 19, 11.14-15)
넷째, 성기에서 고름이 나오는 남자와 월경이나 하혈하는 여자는 부정하며 그 기간 동안 그들과 접촉한 모든 사람은 물론 사물들도 부정하다. 월경하는 여인은 7일간 부정하며 다른 경우는 피나 고름이 나오는 기간 동안 부정하다. 산모의 경우 아들을 해산한 후에는 7일간 부정하며, 딸일 경우는 14일간 부정하다. 산모는 아들을 해산한 후에는 33일간, 그리고 딸을 해산한 후에는 66일 간 전례적 행위에 참여할 수 없다(레위 12, 1-8 ; 15, 16-18). 다섯째, 나병 환자들은 부정하다. 그들은 마치 상을 당한 사람처럼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수염을 기르며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쳐야 한다. 그들은 진지나 도시 안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병에 걸렸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사제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은 적어도 7일간 사회적 · 전례적으로 타인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부정한 나병은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의복에 나타나기도 한다(레위 13, 47-59 14, 33-48). 누군가 나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집에 들어갔다면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먹거나 잤다면 그는 옷을 빨아야 한다(레위 14, 46-47).
그러나 구약성서는 정결과 부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내리지 않으며 또한 왜 특정한 동물들, 사물들, 질병만이 정결함과 관련되어 언급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법이 나오게 된 데에 위생적 · 의학적 이유와 함께 종교적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2~13세기의 중요한 유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인 마이모니데스(M. Mai-monides, 1135~1204)는 정결한 것들과 부정한 것들을 구분하는 것은, "거룩"한 분께 대한 경외심을 갖기 위해 출발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네부킴》) Ⅲ, 47). 반면 현대의 학자들은 이 정결법의 출발을 이스라엘의 성별(聖別)이나, 생명 또는 죽음, 혹은 죄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 관념적 해명이 아직까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상적 해명의 시도는 모든 정결법의 출발을 하나의 동일한 동기에서 보아야 한다는 고정된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다. 각각의 정결 규정을 개별적으로 관찰한다면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신을 부정하다고 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선조들에 대한 제사 등을 통해 시신
을 숭배하는 다른 종교 전통과의 대립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이렇게 시신을 부정하다고 규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자신의 민족 종교가 갖는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항문을 부정하게 보는 것은 정결 규정의 후대 발전으로 볼 수 있으며 월경과 성병을 부정하게 보는 것은 비단 유대 문화만의 일은 아니다. 나병은 고대로부터 신의 형벌로 간주되었으며, 악령의 영향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동기에서 출발한 정결함에 대한 규정들이 율법과 함께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 라는 단일한 종교적 동기 이유로 묶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결 규정의 동기에 대한 가장 타당한 이해일 것이다.
구약성서는 일단 부정하게된 것을 다시 정결하게 만드는 전례적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구약성서의 정결 예식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나 사제계 전승에서 하나의 체계를 지니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성병에 의한 부정은 사람일 경우는 목욕, 사물일 경우에는 세탁을 통해 다시 정결하게 된다(레위 15, 16-18).월경 중인 여성, 하혈하는 여성, 그리고 해산한 여성은 속죄 제물과 번제물을 바쳐야 한다. 해산한 여인의 경우는 해산 후 40일 또는 80일 되는 날, 월경과 하혈의 경우에는 피가 멈춘 후 7일이 지나서 이 제물을 바쳐야 한다(레위 12, 6-8 ; 15, 28-30). 여기서 속죄 제물은 부정을 통해 생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을 하며 번제물은 이렇게 속죄한 죄인이 하느님께 대해 드리는 경배의 제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신과 의 접촉을 통해 부정하게 된 사람은 목욕과 세탁에 앞서서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붉은 암소를 태워 만든 재를 물에 타서 3일째와 7일째에 뿌려야 한다(민수 19, 1-13). 나병의 경우에는 2단계에 걸친 다소 복잡한 정결례규정(레위 14, 1-32)이 언급되어 있다.
신약성서 : 구약성서에서 언급한 정결과 부정에 대한 이해는 신약성서에서 도전을 받는다. 신약성서 시대의 유대교는 당시 지중해 지역에 큰 영향력을 지녔던 헬레니즘을 수용하며 정결의 개념을 과거보다 좀 더 영적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구약의 여러 규정들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초대 공동체의 믿음과 삶을 조명하는 신약성서에서는 유대의 전통적인 정결에 대한 이해가 도전 받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구약의 잔과 접시를 닦는 정결례(마태23, 25)와 나병 환자의 정결해짐에 관한 예수 시대의 이해를 관찰할 수 있다(마태 8, 2-4 ; 10, 8 ; 11, 5 ; 루가 4,27 ; 17, 14. 17). 구약과 신약의 정결 이해에 대한 특징적인 대조는 바오로의 사상에서 드러나는데, 특히 그는 금지된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가르치고 있다. "음식물 때문에 하느님의 업적을 파괴하지 마시오.모든 것은 정합니다. 그러나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면서까지 먹는 사람에게는 해롭습니다" (로마 14, 20). 이와 비슷한 이해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도 진술되며(사도10, 15 ; 11, 9) 마르코 복음은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예수께로 소급됨을 전하고 있다(마르 7, 19). 이러한 신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모든 음식들이 거룩해지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가르치고 있다(1디모 4, 3-5).
그러나 신약이 정결의 개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약은 구약의 정결을 종교적 의미에서 보완하고 있다. 신약과 구약에서 정결 개념의 가장 큰 차이는 구약의 정결은 법적 · 전례적 · 형식적 외양을 띄고 있는 반면 신약의 정결은 윤리적 · 실존적 · 내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절정은 마태오 복음서 5장 8절에서 드러나는데, 정결한 사람, 즉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복음사가는 장엄하게 전하고 있다.
당시의 유대교에서 정결 개념은 신학적 중심에 있었지만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에서는 정결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전 받고 보완되면서 사상적 · 신학적 중심에서 이탈되었다. 당시의 유대교에서 정결함이 중시되었던 것은 예수 시대를 전후한 메시아 사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유대교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결함을 유지 · 확보함으로써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앞당길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관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에서 정결 개념은 당시 유대 사상과의 대조라는 측면에서 언급될 뿐 어떤 신학적 주제를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그 외의 신약성서에서 이 개념은 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당시 유대교와의 대조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야고보서는 유대교에서의 정결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특징으로서 보다 본질적인 정결(4, 7. 8)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정결(1, 27)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베드로 전서는 마음의 정결과 형제적 사랑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1, 22).
〔정결 예식〕 정결 예식은 제관들을 통해 제물을 바치는 경신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대교 경신례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당연히 이 정결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정결례의 실천은 점점 약해졌다. 서기 100년경에도 이런 정결례가 실제로 행해졌음을 《미쉬나》(משנה) , 《토세프타》등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적어도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곧 재건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결과 부정에 대한 여러 규정들은 대부분 효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정화시킬 수 있는 성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성전에 대해 갖는 어려움의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갈등이 있다. 즉 부정한 민족으로서 성전을 재건할 수 없으며 반대로 성전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자신을 정화할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다시 정화시켜 줄 수 있는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한다.
유대교 경전과 전통을 자신의 일부로 갖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메시아 도래의 기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어졌다고 고백한다. 특히 히브리서에서 대사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를 봉헌하였기에, 매년 성전에서 반복하는 유대인들의 성전전통을 뛰어넘어 단 한번으로도 충분한 제사, 완성된 제사였다고 고백한다. 이를 통해 유대교의 정결 제사와 그리스도의 정결 제사를 대조시키고 있다(히브 9, 23-10,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성사와 전례는 여러 면에서 유대교 전통과 구약성서의 정결례와 형식 · 내용적인 면에서 연결되 어 있다. 고해성사나 미사의 참회 예절, 또는 제물 봉헌때 사제가 손을 씻는 예식은 그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 나병 ; 레위기 ; 성결법)
※ 참고문헌 H.L. Strack · P.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I, 1961 pp. 695~704/ F. Hauck ·R. Meyer, 《ThWNT》 Ⅲ, pp. 416~432/ W. Brandt, Die juedischen Baptismen oder das religioese Waschen im Judentum, 1910/ W. Brandt, Juedische Reinheitslehre und ihre Beschreibung in den Evangelien, 1910/ G.W. Buchanan, The Role of Purity in the Structure of the Essene Sect, 《RdQ》 4, 1963, pp. 397~406/ A. Buechler, 《REJ》 62, 1911, p.20115 ; 63, 1912, p. 3050/ A. Buechler, 《JQR》 17, 1926, p. 181/ J.Dller, Die Reinheits und Speisegesetze des AT in religions-geschichth-licher Beleuchtung, 1917/ J.L. Katzenelson, Ha-Talmud ve-Hokhmat ha-Refuah, 1928, p. 30482/ J. Preuss, Biblisch-talmudische Medizin,1923, pp. 369413, 595600/ P. Reymond, L'eau, sa vie, et sa signification dans 'ancien testament, 1958, p. 22834/ S. Weinfeld, Mappat ha-Tohorah, 1965. 〔崔昇晶〕
정결 예식
淨潔禮式
〔라〕purificatio · 〔영〕purification
글자 크기
10권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을 찾아온 마리아와 아기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