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봉포》

正教奉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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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학자 신부 황백록(黃伯錄, 1830~1909)이 한문으로 저술한 중국 천주교회사. 책 제목은 바른 종교〔正敎인 천주교를 삼가 받들어 칭송(奉褒)한다는 뜻이다. 저자 황백록은 세례명이 베드로, 자(字)가 비묵(斐默)으로 강소성(江蘇省) 해문(海門) 출신이다. 일정한 수도회에 속하지 않은 강남교구(江南敎區) 신부로, 상해 서가회(徐家匯)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학식이 높고 외국어 특히 라틴어, 프랑스어에 능통하여 한문 저술, 프랑스어 논문, 한역 서학서의 번역 · 간행 및 중국 서적의 라틴어, 프랑스어 번역 등 많은 업적을 남겨 청나라 말기 강남교구의 서양인, 중국인 신부를 통틀어 가장 탁월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저서로 《정교봉포》, 《집설전진》(集設設兵),(정교전)(正教奉傳)이 있다. 《정교봉포》는 1883년 상해 자모당(慈母堂)에서 2책으로 처음 간행되었고, 1894년에 중간(中刊)되었다. 한지로 만든 이 책은 1면당 10행, 1장이 총 20행, 1행이 32자로 되어 있다. 서문 2장, 범례 2장, 목록 17장, 본문 142장의 총 163장으로 분량이 상당히 많은 책이다. 중국에 천주교의 일파인 경교(景敎, Nestorianism)가 전래된 당나라로부터 청나라 도광(道光) 6년(1826)까지의 중국 천주교회사가 당(唐) · 원(元) · 명(明) · 청(淸) 왕조로 나뉘어 서술되어있고, 부록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 108명의 이름이 라틴어와 한자로 함께 표시되어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정교봉포》의 저술 목적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즉 천주가 세상에서 친히 세우신 성스러운 교회가 중국에도 전해져 당 · 원 · 명 왕조를 거치며 명철하고 현명한 자들이 천주교를 믿고 받들며 빛내었다. 청 왕조에 와서는 드디어 그 기틀이 안정되어 천주교는 더욱 융성하고 소중함이 가중되었다. 그리하여 성당 건립과 전교에 필요한 경비를 특별히 나라에서 하사하고, 또한 선교사들은 조정에서 중용하고 총애하여 천주교는 파격적으로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선교사들의 재능과 학문을 소중히 여겨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드는 종교까지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바른 종교 인 천주교를 삼가 '받들어 칭송' 한 역대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저술 목적은 일러두기에서도 덧붙여 쓰고 있다. 즉 15개 항의 범례 중 첫째 항에서 저자는 이 책이 본래 천주교가 역대 왕조에서 융성하고 소중하였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사이 간혹 겪었던 어려움이나 곤욕은 담지 않으며 혹시 기술하더라도 간략하게 써서 본뜻에 부응하고자 하였고, 고의로 피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본문에서는 항목을 편년체(編年體)로 열거하며 서술하였는데, 당 왕조 8항목, 원 왕조 7항목, 명 왕조 35항목, 청 왕조 232항목 등 총 282항목으로 특히 청 왕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청 왕조에서는 순치제(順治帝) 시대 33항, 강희제(康熙帝) 시대 152항, 옹정제(雍正帝) 시대 5항, 건륭제(乾隆帝) 시대 31항, 가경제嘉慶帝) 시대 6항, 도광제(道光帝) 시대 5항 등 총 232항목으로 강희제 시대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60년 동안 재위한 호학(好學) 군주 강희제가 천주교와 서양의 학술에 개방적이고 관대하였으며 따라서 많은 선교사들을 중용하였고, 1691년 3월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주교를 공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옹정제는 1724년부터 금교(禁敎) 정책을 시행하였고, 역시 60년을 재위한 건륭제 치하에서도 금교가 지속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기록이 적다.
《정교봉포》는 인물 위주, 특히 서양 선교사들의 전교활동을 중심으로 중국 황실과의 관계를 정확한 날짜까지 고증하여 상세히 서술하였다. 황실의 천주교 및 선교사들에 대한 정신적 · 물질적 예우, 선교사들의 조정 봉사를 통한 공적, 그에 대한 황제들의 포상, 선교사 및 봉교(奉敎) 사대부들의 각종 호교론 및 상소문, 상소문에 대한 황제의 답변, 조정의 천주교 정책, 황제의 천주교에 대한 상유(上諭), 교회 및 선교사 개인의 축일에 답지한 황제와 사대부들의 축하문, 천주교 반대 상소문, 그에 대한 조정의 처분 등이 주된 내용이다. 저자는 주요 항목 아래에는 상세한 주석을 달아 역사적 사실과 그 배경 및 의의를 설명하였고, 종래에 왜곡된 사항의 경우 오류를 바로잡았다. 특히 그때마다 실증적 방법으로 검증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려 하였다. 저자는 이 점도 역시 범례에서 밝히고 있는데, 즉 예전에 간행된 책은 그 편수나 글자들이 탈락된 것들이 많은데 이 경우에는 여러 서적을 구해 상호 비교, 검증한 후 기술하여 완벽을 기하였고, 빗돌(碑碣)에 새긴 사료의 경우 마모 등으로 글자가 희미하여 뜻이 모호하면 주변 자 료들을 모아 반드시 인증 후에 본문에 기입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서양 문자로 기록된 자료들의 경우에는 원문을 번역하여 인용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였다고 밝혔는데 이런 사실들로 저자가 《정교봉포》를 저술하면서 사료의 채택, 검증에 극히 신중을 기하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정교봉포》의 내용이 역대 조정의 대 천주교 정책과 관련이 있고 특히 황제들과 직결되며, 저술 시기도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탈기로 조심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정교봉포》는 중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영광스럽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특히 실증적, 객관적 저술 방법에 의해 개관한 소중한 역사서이다. (→ 중국)

※ 참고문헌  方豪, 《中國天主教士人物傳》 3권, 香港 公教真理學會, 1973. 〔張貞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