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 분리

政教分離

〔라〕Separatio status ab ecclesia · 〔영〕Separation of politics and religion, Separation of State an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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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의 정부 정책 비판은 정교 분리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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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의 정부 정책 비판은 정교 분리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종교와 정치가 동맹 관계를 포기하고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금지하는 것 또는 그러한 정책.
〔의 미〕 현대 사회의 국가와 교회가 인간 사회의 초기에도 존재한 현상은 아니지만 정치와 종교는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그 형태가 상이하고 변한다 해도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교 분리는 인간의 전체 역사 안에서 발견되고 정치와 종교 사이에 맺어졌던 세 가지 관계 중 하나이다. 즉 정교 용해' (政敎鎔解), 정교 일치', 정교 분리' 등이다.
가장 초기부터 존재했고 가장 오랫동안 존재했던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정교 용해' (政敎溶解)이다. 이는 정치와 종교가 거의 하나로 뭉쳐서 용해되어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사상이나 의식, 조직의 측면에서 어디까지가 정치이고 종교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종교가 하나밖에 없던 미개 사회와 고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반면 '정교 일치' 는 적어도 두 개의 종교가 존재하던 농업 사회 혹은 전통 사회, 계급 사회에서 발견되던 정치와 종교의 관계로 : 정교 용해' 다음에 나타난 것이다. 정교 일치' 는 정치와 종교가 형식상 사상이나 의식, 조직의 측면에서 분리되었으나 국가가 한 종교 단체와 동맹과 밀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양자가 일치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국가가 한 종교 단체와 일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종교 간의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되지 못하고 종교 독점과 종교 탄압이 이루어진다. '정교 일치' 는 세계 종교라고 불리는 유대-그리스 도교, 이슬람, 불교와 유교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정교 관계이기 때문에 3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다.
〔정교 분리의 출현과 의미〕 '정교 분리' 는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최근에야 발전한 정치와 종교의 새로운 관계이다. 어떤 이들은 정치와 위정자의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특정 종교 단체의 입장과 정교 분리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양자는 서로 무관한 것이고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한 종교 단체의 입장은 정치 불간섭주의 혹은 정치 무관심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교 분리는 종교 단체의 정치 불간섭주의나 정치 무관심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등장과 역사 : 정교 분리는 1776년 미국의 독립 이후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나 1791년 수정 헌법 제1조에 의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법률적 · 제도적으로 확정되었다. 미국 헌법의 입안자들은 거의 3천 년 동안 종교 역사 안에 존재하던 정교 일치를 배격하고 새로운 정교 관계인 정교 분리를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 헌법은 새로운 창조였고 인간 사회에 있어서 중대한 발전이었다. 정교 분리는 종교와 정치가 동맹 관계를 포기할 때에 나타나는 새롭고 신선한 정교 관계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교 분리가 출현한 데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작용되었다. 첫째, 독립 이전의 각 주에는 이미 여러 개의 종파들이 존재하였고 그들은 제각기 국교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서 국교의 선정은 불가능했다. 둘째, 미국 헌법 제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유럽과 특히 영국에서 종교 탄압으로 고통을 받은 이들 이었다. 그래서 국교의 선정에서 발생할 종교 탄압을 우려하여 종교 자유에 방해되는 국교의 선정을 반대하였다. 셋째, 정교 일치는 성직자가 정치 권력에 참여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성직자의 정치 권력 참여를 반대하는 반성직주의(anticleri-calismus)가 팽배하여 있었고 미국 헌법의 제정자들도 그 사상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정교 분리는 현재 모든 사회에서 완전하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정교 일치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정교 일치를 포기하고 정교 분리를 도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국가에서는 모든 종교에 관용을 허용하여 종교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 조항을 갖고 있지만 국교를 폐지하지 못한 국가도 있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공산주의와 무신론이 국교처럼 취급되고 국가가 그것을 옹호하면서 종교를 억제하는 나라도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시작된 정교 분리가 거의 완벽하게 시행되는 국가는 오늘날에도 그리 많지 않다. 호주와 캐나다가 그 제도를 일찍 도입하였으며 프랑스는 1905년에 도입하였다. 필리핀, 일본과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정교 분리를 도입하였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브라질과 칠레가 19세기 말에 이 제도를 도입하였다. 한국에서는 1948년에 제정된 건국 헌법에서 정교 분리가 채택되었다. 현행 헌법 제20조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담고 있다.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우리의 헌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정교 분리를 표방하는 이 조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내용과 의미 : 정교 분리가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종교 자유이고 다른 것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혹은 비종교성이다. 종교 자유와 국가의 종교 중립성은 서로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지닌다. 종교 자유가 목적이라면 국가의 종교 중립성은 수단에 해당한다. 국가의 종교 중립성은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국가의 종교 중립성이 철저하게 이루어질수록 종교 자유는 그만큼 보장된다. 반대로 국가의 종교 중립성이 유지되지 않을수록 종교 자유는 감소하고 유린된다. 국가의 종교 중립성은 종교 자유만이 아니라 무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과 비종교성을 추구하는 정교 분리가 실현될 수 있는가? 한마디로 국가는 여러 종교 중 어떤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해서 특권을 부여하거나 특별히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동맹을 맺거나 두둔하지도 않아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어떤 특정 종교를 탄압하거나 무신론을 두둔하며 종교 전체를 억압하지도 않아야 한다. 따라서 무신론을 두둔하며 종교를 일반적으로 억제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교 분리는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정교 분리상태의 국가는 직접 어떤 종교 활동도 일체 하지 않으며 특정 종교의 종교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 특정 종교에의 가입이나 그로부터의 탈퇴를 강제할 수 없다. 그리고 국가는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이고 어떤 것이 사교인지에 대한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국 · 공립학교를 종교 교육에 이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는 종교의 교리 내지 신앙의 내용에 개입하거나 종교 단체 구성원의 선임과 징계 등 구성원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에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종교 단체를 규제하고 감독하기 위해서 특별한 법률을 제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정교 분리와 종교의 자유 : 정교 분리가 추구하는 종교자유란 개인 신앙의 자유, 종교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와 선교의 자유를 의미한다. 종교 자유는 물론 종교 선택의 자유와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도 포함한다. 국가는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종교 문제를 개인에게 온전히 맡기고 전혀 관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정교 용해 상태보다 정교 일치 상태에서 획기적으로 신장된다. 개인은 부족이나 민족의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또한 민족과 부족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도 종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교 일치 상태에서는 국가와 동맹을 맺은 종교를 마음놓고 신봉할 수 있지만 다른 종교를 자유롭게 신봉할 자유는 크게 제한된다. 그 종교에 대한 국가의 억압과 탄압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정교 분리 상태에서는 종교 자유가 훨씬 더 신장된다. 국가는 특정 종교를 선택하여 동맹을 맺고 그 종교를 우대하고 지원하면서 다른 종교를 탄압하기를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에서도 종교 자유는 신장된다. 국가와 종교단체의 동맹과 종교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우대는 반드시 동맹 관계에 있는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간섭권을 내포하게 된다. 특권을 부여하고 보호를 제공하는 국가는 종교 단체의 인사 행정이나 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힘을 갖게 된다. 국가의 특권이나 지원을 받는 종교 단체는 국가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가의 간섭이나 개입을 거부하고 뿌리치는 데 필요한 자율권이나 힘을 갖지 못한다. 국가의 지원과 특권 부여는 동시에 일종의 올가미인 것이다. 그래서 정교 분리는 동맹의 포기와 특권의 상실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자율성의 신장과 올가미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교 일치 상태에서는 국가가 특정 종교를 보호하고 다른 종교를 억압하기 때문에 선택된 종교의 독점 체제가 형성된다. 국가는 자신을 지원하는 종교의 독점을 바라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교 분리 상태에서는 국가의 보호가 사라지기 때문에 특정 종교의 독점은 유지될 수 없다. 오히려 모든 종교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경쟁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고 성장하거나 소멸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정교 분리는 종교들의 자유 경쟁 체제를 만들어 주고 종교를 위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정교 분리에서는 모든 종교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국가와 종교 : 정교 분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간여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앞에서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국가에 종교가 개입하거나 간여하지 말아야 하는가? 1972년 유신 헌법이 제정된 이후 제5 공화국을 거치면서 군사 정부의 독재가 자행되고 인권이 극심하게 침해되어 종교인들과 종교 단체가 사회 참여에 뛰어들고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추진하였던 적이 있다. 이때 정교 분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특히 <조선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KBS 방송이 비판적인 종교인들을 질타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헌법의 정교 분리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자주 주장하였었다. 그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행동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정교 분리 헌법 조항을 위반하는 행위이고 정교 분리 조항이 종교인들의 정부 비판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종교가 국가에 개입하려면 종교인인 성직자나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으로 어떤 정치 행위를 함으로써 국가에 간여하게 될 것이다. 먼저 '협의적 정치 활동'인 선거 운동이나 정당 활동이 종교인에게 허용되는가를 살펴보자. '협의적 정치 활동' 이란 정치 권력의 획득이나 유지 또는 행사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은 공무원과 교사의 정당 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인의 당적 자격 제한 규정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일반 국민과 동등하게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선거법은 선거 사무원에게만 선거 운동을 허락하고 있는데, 종교인이 선거 사무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종교인인 성직자도 선거 운동이나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의적 정치 활동' 은 종교인에게 허용되는가? '광의적 정치 활동' 이란 정부의 행동이나 정책에 대한 지지 견해와 비판 견해의 표현을 의미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정치 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주고 있다. 특별히 종교인의 정치 활동이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규정을 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 헌법이 종교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기본권의 침해가 될 것이다. 헌법이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종교 관련 조항인 제20조에서 종교인의 비판적 견해의 표현을 금지한다면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한편, 교회와 같은 종교 단체의 예배 행위 도중에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것은 어떠한가? 그것에 대한 규제 조항도 없다. 그런 행동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여 규제할 적극적인 이유와 이익을 찾기 어렵다. 교회가 자칫 정치의 와중에 휘말릴 것을 염려한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국가가 법률로써 규제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발언을 통한 교회의 내분은 교회 자신의 문제이지, 국가의 문제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헌법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치 활동을 허용한다 해도 그들의 정치 활동으로 인해서 발생할 교회 내부 문제를 염려하여 교회법상 규제를 두고 있다. 교회법 285조 2항은 성직자가 국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287조 2항은 성직자가 정당이나 노동 조합의 지도층에 능동적 역할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317조 4항은 정당의 지도직에 있는 평신도가 교회의 공립 신자 단체의 회장을 겸직하는 것을 금지한다.
종교인이나 종교 단체의 정치 활동에 대한 제한을 두는 현행 실정법의 규정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제한을 두어야 하는 법리적 논리도 발견하기 어렵다. 만약 종교인과 종교 단체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특별법이 제정된 다면 그것은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이 될 것이다. 그리고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 법률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정교 분리 원칙은 종교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금지하는 것일 뿐이고 그 반대까지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교 분리의 결과〕 앞에서 종교 자유가 정교 분리의 가장 중대한 결과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런데종교 자유라는 결과 외에도 세 가지의 결과를 더 지적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결과들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정교 분리 상태에서는 종교가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기 때문에 종교의 독립성이 크게 제고된다. 종교는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독립성을 얻으며 국가는 종교의 행동을 제약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정교 일치 상태에서 선택된 종교는 국가의 보호, 지원 그리고 특혜를 받지만 동시에 자립력이 약한 종교는 자율성과 독립성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재정적 의존은 종교의 자율성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소이다. 따라서 종교는 위정자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된다. 정교 분리는 종교 자유를 보장하는 까닭에 종교의 행동의 자유가 크게 향상되는 것이다.
둘째, 종교의 독립성 제고와 자유의 보장은 종교의 비판 기능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경제적의존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위정자의 부당한 행동이 장기적으로 자행되어도 전혀 비판적 발언을 하지 못하던 종교가 정교 분리 상태에 있으면 비판적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정교 분리가 종교의 비판 기능을 자동적으로 이끌어 내는 충분 조건은 아니겠지만 필요 조건은 된다. 정교 분리 상태의 종교가 항상 비판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니라도, 정교 분리 상태에 있는 종교만이 비판적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60~1980년대 중남미 여러 국가에 독재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교 일치를 유지하던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보다 정교 분리를 도입한 브라질과 칠레의 가톨릭 교회가 정부의 강력한 비판자로 부상했다. 미국의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는 자주 정부 정책을 비판하였다. 무하마드 알리 시대(1805~1849)에 국교의 지위를 상실했던 이집트의 이슬람과 영국의 점령하에 국교의 지위를 상실했던 스리랑카와 미얀마의 불교는, 불교가 가장 비정치적이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민족 운동 세력으로 활동했다. 정교 분리 상황이 1970~1980년대 한국과 필리핀 가톨릭 교회의 비판적 활동을 위해서 필요했던 변수라고 생각한다. 셋째, 정교 분리는 종교 다원화와 아울러 종교 간의 경
쟁을 유도하고 종교 간의 경쟁은 종교 인구의 증가와 종교 참여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최근에 미국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사회학자 스타크, 그릴리, 흰케, 베인브리지 그리고 이안나콘 등이 강력하게 제기하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영국 학자들이 있지만 종교 시장론이나 합리적 선택론이라고 알려진 이 주장은 종교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타크에 의하면 정교 분리와 종교 다원화라는 두 가지 이유로 종교 인구와 종교 참여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첫째, 정교 분리는 각 종교들을 경쟁 관계에 놓이게 하여 더욱 분발하게 만든다. 그와는 달리 정교 일치가 가져오는 종교 독점 체제는 경쟁의 환경도 분발의 필요성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교 일치 상태에서는 종교인들이 안이해지고 게을러진다. 그러나 정교 분리 상태에서는 각 종교가 전력 투구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보호 없이 각 종교는 자력으로 생존하든지 소멸하든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통제와 억제가 없으니 모든 종교는 분발할수록 더욱 세력을 확대하고 팽창할 수 있다. 정교 분리가 초래하는 종교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이 결국 종교 인구와 종교 참여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교 분리는 종교 단체의 활동을 활성화하고 그 활성화된 활동이 종교 인구와 종교 참여의 증가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교 분리는 종교들의 차별화와 특별화를 이끌어 내기 때문에 종교 인구와 종교 참여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 종교는 일정한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복잡한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정교 분리 아래에서는 종교들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차별화의 경향을 보인다. 다양한 성격의 종교와 차별화된 종교들이 종교 인구와 종교 참여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미국의 종교자료를 제시하였다. 미국에서 정교 일치가 실시되던 독립 이전에 종교 인구는 대략 15%였다. 미국 독립과 함께 정교 분리가 정착하면서 종교 인구가 증가하였고 현재는 65% 선에서 안정을 유지한다. 그들은 유럽에서 종교 참여 인구가 20% 선을 넘지 못하고 대체로 10% 선을 밑도는 것은 유럽의 정교 분리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그들은 경쟁 체제에서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듯이 경쟁 체제에서 종교 활동도 활성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정교 분리와 가톨릭 교회〕 가톨릭 교회는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종교 자유는 정교 분리가 철저해야만 보장되고 것이고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를 주장하거나 부정하면 다른 것을 주장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된다. 토마스아퀴나스(1124/1225~1274)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주장인 "불신앙자 중에는 유대인이나 이교도처럼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도 있다. 이 사람들이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억압해서는 안 된다. 믿는 것은 자유의지의 행위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기도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교회는 언제나 그 누구에게든 신앙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종교 자유 12항)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정책과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유대인과 이교도에 대해서는 관용의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관용을 베푸는 것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다른 것이다. 종교 관용의 태도는 종교 억제를 부당하게 보지 않지만 종교 자유의 인정은 종교 억제를 부당하게 보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 교회는 이단자에 대해서는 완전한 종교적 불관용의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이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재판받고 처형받았다. 이단자 박해는 가톨릭 교회의 원리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복음에 어긋난 잘못된 행동이었고 교회의 어두운 측면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잘못을 인정하며 "하느님 백성의 삶에서 때로는 복음 정신과 덜 맞거나 심지어는 반대되는 행위도 있었다"(12항)라고 고백하였다.
유럽인들의 신대륙 진출과 종교 개혁으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종교 다원화가 뚜렷해지고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1789) 이후 인권과 자유가 강조되면서 유럽의 교회 안팎에서는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를 옹호하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19세기 가톨릭 교회 안에는 '정설' 과 '가설' (thesis-hypothesis)이라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정설' 은 가톨릭 신자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에 적용되는 것으로 국가는 가톨릭 교회를 참다운 종교로 인정하고 이를 법률로써 보호하며 다른 종교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상적인 정교 관계라는 것이다. 반면 '가설' 은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경우와 한 때의 아일랜드와 폴란드처럼 가톨릭 신자가 다수이지만 비가톨릭 정권이 들어선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가톨릭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황 그레고리오 15세(1831~1846)의 회칙 <미라리보스>(Mirari Vos, 1832.8. 15), 교황 비오 9세(1846~1878)의 <오류표>(Syllabus, 1864. 12. 8), 1905년에 제정된 프랑스의 정교 분리법에 항의하여 발표된 교황 비오 10세 (1903~1914)의 회칙 <베헤멘테르 노스〉(Vehementer Nos,1906. 2. 11)는 가톨릭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소위 가톨릭 국가의 정교 분리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자신만을 위해서 종교 자유를 주장한다는 인상을 주는 듯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재 정부가 무너지고 유엔의 인권 선언(1948)이 발표된 후 정교 분리와 종교 자유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변했다.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이탈리아 법조인 전국 대회(1953)에서 행한 연설에서 종교 다원화의 국가가 많아진 현실에서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사이비 종교라도 허용될 수 있고 공동선이 지극히 중요하므로 모든 경우에 국가가 사이비 종교를 억압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종교 자유와 정교 분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문서는 교황 요한 23세(1958~1963)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 4. 11)이다. 이 회칙은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지침서로 발표된 것으로 종교 자유와 정교 분리를 분명하게 주장하였다. 교황은 "인간은 올바른 양심의 명령에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할 권리가 있는데, 바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권리이다"(14항)라고 말하고 "그러므로 공권력의 중요한 책무들은 무엇보다도 이런 권리들을 인식하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이다"(60항)라고 하였다. 정교 분리가 실현되고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국가가 종교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증진시킬 수 없는 것이므로 교황은 회칙을 통해서 정교 분리를 명확하게 지지한 것이다.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고 숙고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선언은 종교 자유의 근거는 진리 가 아니고 개인의 존엄성이라고 말함으로써 종교 자유의 기틀을 더욱 공고히 했다. "종교 자유의 권리는 참으로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그 존엄성은 계시된 하느님 말씀과 이성 그 자체로써 인식된다. 종교 자유의 이러한 인간 권리는 사회의 법적 제도 안에서 인정을 받아 시민권이 되어야 한다" (2항). 또한 국가가 종교 자유를 보호할 책임이 있고 법률적 ·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종교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정교 분리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강조하였다. "불가침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국가 권력의 의무다. 따라서 국가 권력은 시민들이 종교의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고 종교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또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한 뜻에 충실함으로써 얻는 정의와 평화의 혜택을 바로 그 사회가 누릴 수 있도록 정당한 법률과 다른 적절한 수단으로써 모든 시민의 완전한 종교 자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여야 하며 종교생활의 증진에 유리한 조건들을 마련하여야 한다" (6항). (← 세속화 ; → 교회와 국가 ; 교회와 정치 ; 반성직주의 ; 보호권 ; 정교 조약)
※ 참고문헌  오경환,<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교회와 국가》, 인천가톨릭대학 출판부, 1997, pp. 11~40/ 양건,<국가와 종교에 관한 법적 고찰>, 《국가 권력과 기독교》, 민음사,1982, pp. 32~62/ E.S. Gaustad, The Emergence of Religious Freedom in the Early Republic, Religion and the State, ed. James E. Wood,Jr., Waco, Texas, Baylor Univ. Press, 1985, Pp. 25~421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교황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94/ M.R.P. McGuire · D.J. Herlihy · M.J. Havran ·J.N. Moody eds., Church and State, 《NCE》 2003, pp. 630~643. 〔吳庚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