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사제. 세례명은 레오. 1883년 12월 17일 충북 충주군 동양면 용대리에서 정의묵(鄭義默, 야고보)과 남 씨(이사벨라)의 4남 중 3남으로 출생. 병인박해시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鄭殷, 바오로)의 후손. 장호원 본당 부이용(Bouilon, 任加彌)신부에게 신학교 예비과 정 을 교 육 받 고 ,1897년 9월 예수성심신 학 교 에 입 학 하여 1913년 5월 17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되었다. 서품 후 용인전대리(압고지) 본당 창설 신부로 부임하여 용인 · 광주 지방 20여개 공소 800명의 신자를 관할하면서, 지방민의 문명 퇴치를 위하여 삼성 강습소(三聖講習所)를 설립 · 운영하였다. 1924년 부여 금사리 본당 3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본당 사랑채에 2년제 '계명 여자 학술 강습회' 를 설치하여 주민 교육에 공헌하였으며, 1928년 5월 원주 본당(현원동 주교좌 본당) 9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교회 묘지를 조성하고 1931년 4년제 강습소인 소화학원과 소화유치원을 설치한 바 있다. 소화학원은 1937년 일제 교육 당국에 의하여 폐쇄되었다. 정 신부는 금사리 본당에 재임하던 1927년 병인박해의 순교자 처형지인 보령 갈매못 토지 20평을 최종철(崔宗哲, 마르코) ·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와 공동으로 구입하여 천주교 재단으로 만들었고, 원주 본당 재임 시에는 배론 성 요셉 신학교 터 부근의 임야 100만 평을 이희연(李喜淵, 프란치스코) 신부와 사비로 구입하여 천주교 재단으로 만들어 성지 개발의 기초를 세웠다. 1937년 1월 아산 공세리(貢稅里)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뒤에는 내포 지방 순교지를 답사하여 달레(Ch. Dallet) 신부의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I'Église de Corée)에 인용된 지명과 현실의 지명을 대조하는 지도를 제작한 바 있었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1946년 9월 16일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순교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1948년 8월 용산 본당 2대 주임으로 전임되어 관할 구역 조정과 교적 정리를 하며 본당 발전에 진력하던 정 신부는 6 · 25 전쟁 중에도 피난하지 않고 성당을 지키다가 1950년 7~8월경 폭격으로 상처를 입었다.
1952년 10월 7일 폭격 당시 받은 후유증인 심장병으로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정 신부는 신자들의 양잠과 감자 재배 등을 부업으로 장려하여 '뽕나무 신부' , : '감자 신부' 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韓龍煥 · 徐相堯 편,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徐相堯, <鄭圭良 신부>,《교회와 역사》 82호(1982. 5)/《原州教區 三十年史》, 천주교 원주교구, 1996/ 《공세리 본당 100년사》, 천주교 대전교구 공세리 교회, 1998/ 《용산 본당 60년사》, 천주교 용산 교회, 2002. [崔起榮]
정규량 (1883~1952)
鄭圭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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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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