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하 (1863 ~ 1943)

鄭圭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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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863년 8월 18일 충남 아산군 신창면 남방리에서 정기화(鄭基化, 마태오)와 한 씨(마르타)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병인박해로 가족과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충주에 정착하여 성장하였으나 화재로 경기도 광주로 이사하였다. 광주에서 블랑 주교의 신학교 입학 허락이 내려 명동 한문학당에서 예비 공부를 하다가 1884년 인천에서 배를 타고 페낭(Penang, 彼南)에 유학하여, 1891년 귀국할 때까지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용산 예수성 심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896년 4월 26일 약현(현 중림동) 본당에서 뮈텔(Mutel, 閔德孝)주교의 집전으로 강성삼(姜聖參, 라우렌시오), 강도영(姜道永, 마르코)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들은 김대건, 최양업 신부 이래 처음 서품된 한국인 사제였다. 정규하 신부는 원주 본당(현 원동 주교좌 본당)을 분할한 풍수원 본당의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43년 선종할 때까지 오직 풍수원 본당에서만 사목하였다. 정 신부는 1905년부터 서양식 성당 건립을 계획, 1907년 11월 성당을 기공하여 1909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연와벽돌 건물 120평을 신축하였고, 1912년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910년에는 삼위 학당(三爲學堂)을 설립하여 성당 사랑방에서 한글과 한문을 비롯하여 수학 · 역사 등 신학문을 가르쳤는데, 이 학당은 광동(光東)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또 1920년 6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맞아 성체 거동 행사를 시작하여 매년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성체 거동 행사를 거행하였다. 1920년 9월 춘천 곰실 공소를 춘천 본당(현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 본당)으로, 1923년 6월 홍천 송정 공소를 홍천 본당으로, 1930년 3월 횡성 공소를 횡성 본당으로 승격 분할하였다. 1939년 4월 춘천 지목구의 설정으로 풍수원 본당이 춘천교구에 편입되자 춘천교구로 전출되었고, 1942년 5월 김학용(金學用, 시몬) 신부가 보좌로 부임하자 본당 운영을 보좌 신부에게 위임하였다. 1943년 10월 23일 선종하여, 본당 뒷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韓龍煥 · 徐相堯 편,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1 徐相堯, <鄭圭夏 신부>, 《교회와 역사》 76호(1981.12)/ <풍수원>, 《교회와 역사》 205호(1992. 6)/ 《原州教區 三十年 史》,천주교 원주교구, 1996.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