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본당

貞陵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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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 677-1소재. 1968년 10월 12일에 미아리(彌阿里, 현 길음동)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구역은 정릉2동, 정릉3동. 〔교세〕 1969년 1,118명,1974년 2,916명, 1980년 4,094명, 1986년 6,234명,1991년 6,486명, 1996년 5,522명, 2001년 3,105명. 〔역대 신부〕 1대 유봉준(兪鳳俊) 토마스(1968. 9~1970.1), 2대 장익(張益) 십자가의 요한(1970. 1~1972. 1), 3대서우석(徐祐錫) 요한(1972. 1~1973. 10), 4대 김철규(金哲圭) 바르나바(1973. 10~1976. 5), 5대 이종환(李鍾煥) 미카엘(1976. 5~1981. 8), 6대 고명철(高明哲) 아우구스티노(1981. 8~1986. 8), 7대 김창만(金昌滿) 안드레아(1986. 8~1991. 8) , 8대 전용선(田溶先) 요한(1991.8~1995. 9), 9대 이경훈(李庚薰) 바르톨로메오(1995.9~2001. 9), 10대 김용화(金容華) 바오로(2001. 9~2003.3), 11대 윤재한(尹在漢) 보니파시오(2003. 3~현재).1968년 4월 미아리 본당의 이종환 신부는 미아리 본당에서 매입한 대지 위에 간이 천막을 치고, 첫 미사를 봉헌한 후 임시 성당 건립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1968년 10월 정식으로 본당 인가를 받음에 따라서 본당설립에 많은 공헌을 하였던 이종환 신부는 일산 본당으로 전임하였고, 유봉준 신부가 정릉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유 신부는 본당 설립 초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신심 단체들을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여 나갔는데, 1969년 여성 신자들의 신심 강화와 친교 및 선교를 목적으로 '성모회' 를 조직하였고, 1970년에는 새롭게 세례를 받은 여성 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명도회' 를 조직하였다. 1971년에는 구역장, 반장, 각 활동단체 대표들이 본당 운영회를 결성하여 성당 건물을 신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72년에 신축 성당의 기공식을 가졌고, 1973년 9월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76년에는 사제관을 마련하였고, 신자 모금으로 수녀원 건물을 매입하였으며, 1977년부터는 5대 주임 이종환 신부의 주도로 전통적인 전례인 성시간을 매월 첫 번째 금요일마다 갖는 등 활발한 신심 활동을 벌여 나갔다.
1978년에는 주일학교 운동장을 마련하고, 본당 시설을 개조하는 등 본당의 주위 환경을 개선하였다. 같은 해에 교세의 증가에 따라 구역장 반장 조직을 새롭게 개편하여 본당을 10개 구와 26개 반으로 나누었다가, 1981년 반조직을 재편성하면서 한 반장이 10세대 내지 15세대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1985년에는 새롭게 마련된 교육관, 사제관, 수녀원 성모 동굴에 대한 축복식이 있었고, 1987년에는 본당의 행정 구역을 전년의 13구에서 14구로 확대하였다. 1988년에는 본당 설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보 축일인 삼위 일체 대축일(5월 29일)에 기념 미사와 기념식을 가졌고, 본당 설립 20주년 기도문을 작성하여 봉헌하였다. 1993년에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성가 경연 대회, 본당의 발전 상황을 담은 사진 전시회, 청소년의 밤 등을 개최하였다. 1996년 7월부터는 정릉4동 지역에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10월에 성당을 완공하고 정릉4동 본당을 분리시켰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本堂 二十五年史》,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릉동 교회, 1994.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