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축일은 9월 20일. 일명 기식(基植).
충청도 임천(林川, 현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양반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수령으로 지내던 정문호는 천주교를 믿게 된 후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손선지(孫,베드로)가 살고 있던 전라도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에 정착하였다. 정문호는 평소 행동이 바르고 학식이 높아 동료 교우들에게 교회의 예법이나 교리를 자세하게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정문호는 전주 지역까지 박해가 진행될 것을 예감하고 오사현을 보내어 박해에 대한 전주 감영의 정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오사현은 비신자이기는 했지만 그 고을의 관직을 갖고 있어 감영을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평소 교우들을 많이 도와 주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문호는 그가 감영의 소식을 알려오기도 전에 전주 감영에서 파견된 포졸들에 의해 1866년 12월 5일(음 10월 29일) 한재권(韓在權, 요셉) ·손선지와 함께 체포되었다. 정문호는 다음날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감영 앞 구류간에 갇혔고, 3일 후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는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한 데다가, 험한 몸고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고문을 당할 때에는 배교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함께 문초를 받던 조화서(趙, 베드로)로부터 순교의 격려를 받고는 순교의 결심을 굳혔다. 결국 그는 12월 13일(음 11월 7일) 조화서, 손선지, 한재권, 이명서(李, 베드로), 정원지(鄭, 베드로)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장대(將臺, 군 지휘소)가 있는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순교 직전 그는 "오늘 우리는 천당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니 즐겁구나"라고 말하며 자신의 순교를 기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천호 성지(天呼聖地, 전북 완주군 비봉면)에 안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치명일기》 김옥희 《한국 천주교회103위 성인》 Ⅲ, 계성출판사, 1997, pp. 58~6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병인박해 순교자 증언 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Ⅰ,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洪延周〕
정문호 (1801~1866)
鄭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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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자신의 순교를 기뻐하는 정문호 바르톨로메오(탁희성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