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 본당

丁峰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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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회. 황해도 신계군 고면 정봉리에 위치한 본당. 1928년 5월에 설립되었다가 1950년 7월에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 마리아. 〔교 세〕 1937년 689명, 1944년 738명. 〔역대 신부〕 초대 이보환(李普煥) 요한(1928.5~1933. 5), 2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1933.5~1935.6), 3대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1935.9~1950.7).강원도 이천군에 인접한 신계 지방의 공소들은 포내(浦內) 본당의 부이수(P. Boyssou, 孫以燮) 신부의 관할하에 있었다. 1928년 신계 지방의 공소들은 포내 본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삼차동에 본당이 설정되었고, 초대 주임으로는 이보환 신부가 부임했다. 이 신부는 현지 주민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자모학원(慈母學院)이란 이름의 학교를 설립하고 원장을 겸임하여 학원 운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청년 신자들은 1930년경 당시 교구의 방침이던 가톨릭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 가톨릭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본당이 설립되고 이보환 신부와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사목 활동은 그리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본당이 자리잡은 삼차동이 교통이 불편하여 본당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대 주임 김원영 신부는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 본당을 정봉리로 옮기기로 결정하였고, 본당 신자 김한영(바오로)이 기증한 성당 부지에 새 성당을 지어 1935년 11월 19일 라리보(A.Larri-beau, 元亨根)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다. 칠순에 가까운 김원영 신부는 성당 신축 등 본당 사목에 매진하다 몸이 많이 쇠약해졌으며, 그 여파로 1936년 가을 성직자 피정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병석에 누워 다시 정봉 본당에 오지 못하고 결국 그해 10월 7일 주교관에서 선종하였다. 김원영 신부의 뒤를 이어 3대 주임이순성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순성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식량 부족을 겪었고, 성당에 있던 종은 전쟁 물자로 징발당하였다. 광복 후에는 공산 정권의 반종교 정책이 점차 강화되었는데 이순성 신부는 성당을 인민 위원회에 양도하라는 공산주의자들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순성 신부는 1950년 7월 5일 신계읍 정치 보위부원 2명에 의해 트럭에 태워져 사라진 후 행방 불명되었고, 본당은 폐쇄되어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 침묵의 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黃海道 天主教會史 刊行事業會,韓國敎會史研究所 編, 《黃海道天主教會史》 1984.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