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 3리 327번지 소재. 1957년 4월 12일 영월(寧越)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골룸바노. 관할 구역은 정선군 정선읍, 동면, 북평면, 북면, 임계면, 명주군 왕산면 고단리 일부 지역. 〔교 세〕 1963년 633명, 1970년 1,131명, 1975년 1,346명, 1980년 1,275명, 1985년 1,118명, 1990년 1,170명, 1995년 1,587명, 2000년 1,490명. 〔역대 신부〕 초대 페리(F. Ferrie, 황) 프란치스코(1957. 4~1962. 11), 2대 스미스(P. Smyth, 천) 바드리시오(1962. 11~1963. 2), 3대 퀴르케(C. Quirke, 具) 고르넬리오(1963. 2~1968. 11), 4대 케네디(O. Kennedy) 올리버(1968. 11~1969.9), 5대 브레난(R. Brennan, 安) 로베르토(1969. 9~1970. 7), 6대 새퍼(W. Schaefer, 기영수) 월리암(1970. 7~1971.9), 7대 브레난(1971.9~1979. 11), 8대 김종인(金鍾仁) 마태오(1979. 11~1982. 5), 9대 김성훈(金誠勳) 스테파노(1982. 5~1983. 9), 10대 이규영(李揆榮)마르코(1983 9~1987.9), 11대 신현봉(申鉉奉) 안토니오(1987. 9~1990. 8), 12대 조규덕(曹奎德) 마태오(1990.8~1993. 2), 13대 김영진(金榮鎭) 바르나바(1993.2~1999. 2), 14대 조규남(曹奎男) 구니베르토(1999.2~2003. 1), 15대 신현만(申鉉萬) 시몬(2003. 1~현재).
〔전사 및 공소 설립〕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이 순교한 후 그의 손자 이재의(李在誼, 토마스, 일명 在容)는 박해를 피하고자 강원도 정선 땅으로 이거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지리적으로 험준한 산간 오지인 정선 지역에 최초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은 정선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임계면이다. 대원군의 박해를 피하여 산중으로 이사온 선조들의 후예들이 이곳에서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을 이어 나갔다. 이후 1953년 평창 본당의 신자 정영복(안드레아) 부부가 정선으로 이사옴으로써 공동체가 구성되었다. 1954년 4월 10일 강릉(현 임당동) 본당 주임인 부르크(P. Burke, 表) 신부는 정영복의 집에서 첫 판공 성사를 집전하였고, 1955년 5월 현 본당의 바로 옆집에 정선 공소를 설립하였다. 1955년 7월에 정선 공소는 강릉 본당에서 영월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8월에는 경제적 · 가정적 사정으로 인하여 정선읍 봉양리 339 소재의 신자 이태욱의 사랑채로 이전하였다.
〔본당 설정 및 발전〕 1956년 3월 정선 공소 신자들은 본당을 설립하기 위해 본당 설정 및 성당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한 후 교구장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1956년 10월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이듬해 4월 12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페리 신부는 관할 공소인 남면 · 고단 · 임계 · 골지 공소 외에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남평 · 동면 · 장평 · 숙암 · 장열 공소를 새로 설립하는 등 공소 사목에 진력하였다. 2대 주임 스미스 신부 재임기인 1965년 원주교구가 춘천교구로부터 분리 · 설립됨에 따라 정선 본당은 신설된 원주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3대 주임 퀴르케 신부는 교구에서 설정한 사목 지침에 부응하여 가정 기초 공동체 활성화 운동에 주력하였다. 1970년대 들어오면서 J.O.C 교육, 꾸르실료 교육에 해마다 참가한 정선본당은 7대 주임 브레난 신부 재임기인 1971년 10월 8일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수녀가 본당에 부임함으로써 본당 운영이 한층 원활해졌다. 한편 1957년에 설립되었던 철근 콘크리트 콘센형 성당은 춘천의 미군 기지에서 사용되었던 자재로 건축하였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되었다. 이에 브레난 신부는 1974년 5월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로 재건축 공사를 시작한 후, 12월 4일에 공사를 완료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76년 5월에는 지역 주민들의 진료를 위하여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설립하여 무의촌 순회 진료 활동을 전개하였다. 1977년에는 교황 사절인 도쎄나(L.Dossena) 대주교를 초빙하여 '근로와 하느님' 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8대 주임 김종인 신부는 M.B.W 성령 세미나 등을 열어 신자 재교육 운동에 중점을 두었으며, 10대 주임 이규영 신부는 1984년 1월에 주보 편집 위원회를 구성하여, 3월 4일부터 주보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1대 주임 신현봉 신부는 1988년 2월 29일 이 지역에 보건소 지소가 개설되자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폐쇄하고 지체 부자유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으로 전환시켰다. 12대 주임 조규덕 신부는 1990년 4월 15일 성당 내에 교육관과 수녀원의 신축 기공식을 거행한 후, 8월 21일 벽돌 슬라브 2층 건물로 완공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3대 주임 김영진 신부는 부임 이후 정례적으로 새신자 초대의 날 행사를 매년 봄 · 가을로 개최하여 예비신자 영입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1996년 5월 24일 꾸르실료 교구 울뜨레아 행사를 본당 단위로는 처음으로 정선 문화 예술 회관에서 거행하여 교구 내 각 본당의 호응을 얻었다. 같은 해 성전 가꾸기 운동을 전개하여 성전내 · 외부를 수리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한편 북면 여량 공소가 도시 계획에 의해 구 건물이 철거하게 되자 거시적 안목으로 본당을 분리 ·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1997년 10월 5일 아우라지 성당 착공식을 거행한 후 이듬해 11월 17일 완공하여 원주교구장 김지석(金智錫,야고보) 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현재정선 본당은 15대 신현남 신부의 사목 아래 공소 사목에 중점을 두고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본당상 정립에 노력을 하고 있다. (→ 원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신문>/ 천주교 원주교 30년사 30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白秉根〕
정선 본당
旌善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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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