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
貞淑
〔라〕pudor · 〔영〕mod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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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특히 여자의 말이나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맑은 것. 〔어원 및 개념〕 '정숙' 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푸도르'(pudor) 외에도 '베레쿤디아' (verecundia)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조심성 · 수줍음 · 신중 · 절도 · 경외심 · 존경 · 수치심 · 염치 · 부끄러움 · 겁 · 소심 · 겸허' 등을 뜻하며, '말의 신중성' 혹은 추한 소문에 대한 조심성' 등과도 연관된다. 또한 '모데스티아' (modestia)는 '절도(節度) · 절제 · 중용 · 알맞음 · 조심성 · 신중 · 자제 · 평범 · 소박 · 수수함 · 단정함 · 얌전함 · 수줍음 · 겸손 · 온화 · 순함'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숙은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맑은 것을 의미하는데, 여자의 말이나 행동과 관련하여 사용한다. 정숙은 의용(儀容)이 정체(正體)하고 엄숙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정숙' (整肅)과도 매우 가까운 말이다. 성서에 의하면 육체와 성(性)의 구조는 악의 원리가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육체와 성은 당연히 선(善)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가치있는 것이다. 성은 항상 창조적 능력을 표출시키고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통제되어야 한다. 성을 곡해하거나 남용하면 곧바로 노예화 · 좌절 · 증오 · 이기주의 · 멸망의 원인이 된다. 성을 보고 인식하는 균형적 시각, 바람직한 성숙이 실종되면, 미성숙한 성적 습관과 습성 · 성적 탈선 행위 · 성 도착증 등에 떨어져 인생과 삶 전체를 고통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죄를 정화하는 은총을 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육체의 사욕(邪慾)과 부당한 탐욕과의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정숙과 정결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결은 정숙을 통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정숙 없는 정결은 있을 수 없다. 정숙함은 절제를 구성하는 중요하고 긴박한 요소이다. 정숙을 통해 사람들의 내밀하고 은밀한 부분과 자존심이 보호된다. 정숙은 감추어진 채로 보호받아야 할 것을, 결코 외적으로 드러내 보이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숙은 정결을 지향하고 목표로 하여 정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 우아함을 표출시킨다. 정숙한 인간은 다른 이의 품위를 존중하고, 다른 이의 상황과 분위기를 고양하고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생각과 말 · 행동 복장(服裝)을 조절하고 절제한다. 정숙한 인간은 인간과 사랑의 신비를 하느님 앞에서 거니는 심정으로 보호하고 펼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이런 의식은 부부 관계 안에서도 부단한 절제와 인내를 실천하는 데 기여한다. 결코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 태도를 용납하지 않고, 진정한 희생과 봉사를 전제로 한 자세와 태도를 견지한다. 정숙한 태도를 지향하는 남녀와 부부는 서로를 인격적인 친교 안에서 주고받는 결정적 헌신을 생활화한다. 그러기에 정숙한 인간은 외적인 단정함을 유지한다. 이런 태도는 자연히 복장과 외모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정숙한 인간은 불건전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위험이 있을 때, 침묵 속에 침잠(沈潛)하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정숙한 인간은 자신을 과시하여 이목(耳目)을 끌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광고하거나 선전함으로써 우쭐거리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와 본분에 성실하며 늘 한결같고 변함없는 자세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긴다. 정숙에는 외적으로 육체와 관계되는 사항도 있지만,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내적 정숙도 있다. 감정이 정숙한 인간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변태적인 호기심을 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광고물과 상품을 멀리하고, 다른 이의 사생활을 들추어내는 대중 매체의 행태와 유혹을 거부한다. 대중 홍보 수단들은 다른이를 존중하는 신중한 보도를 통해 사회 분위기의 정화를 위해 힘쓰고, 사람들이 정숙한 태도를 갖도록 가르치고 배려해야 한다. 자연히 감정이 정숙한 사람은 유행의 해악과 유혹, 사회의 정신적 풍조를 주도하는 반사회적인 사상과 이념의 압력에 저항한다. 〔정숙의 덕과 실천〕 정숙은 성에 있어서 수치심 · 부끄러움과 함께 생성된다. 부끄러움은 책망받을 열등한 일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일, 장한 일,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을 이웃이 보았을 때에도 겸손한 마음과 더불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심층부에 닿는 내적 행위와 형언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비밀로 보존하고 싶어 하는 경향과 본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부끄러운 감정은 자동적으로 다른 이의 간섭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상 생활 가운데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 중 하나가 성(性)에 대한 것이다. 이 부끄러움은 부부애를 표현하고 교환하는 합법적인 행위에서도 나타난다. 깊고 짙은 부부애를 표현할 때는 언제나 둘만의 장소와 공간을 필요로 하며, 이 행위는 부모 · 자녀 · 형제 · 친지 · 친우 · 이웃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의 친밀함과 친교 · 사랑을 다른 이들의 호기심,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부당한 침입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부부사이의 통상적 애정 표현은 동서양이 다르고, 국가별로 문화 · 역사 · 풍습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서구 세계에서는 가벼운 포옹이나 입맞춤 등을 공개된 장소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교환하고 있다. 이렇게 정숙의 형태는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정숙은 언제나 인간이 고유하게 간직하고 있는 내적 존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습성임을 전제하고 있다. 정숙은 주체 의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정숙한 태도를 갖도록 가르치고 독려하는 것은 인간 존중과 사회 의식 계발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부끄러운 감정은 인간이 타고난 선천적인 것이다. 마치 양심이 선악을 구분하면서 선행에 대해 흡족해 하고, 악행에 대해 가책을 느끼는 것과 같다. 수치감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보호 본능에서 나온다. 부끄러움이라는 방벽과 방어 수단을 통하여 육체적 욕망과 유혹을 제어하는 것이다. 또한 지성의 작용을 무력화시키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치닫는 성급한 성 행위를 통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성적 수치심은 5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는 없기에 옷을 모두 벗고 다닌다. 성적 수치심은 몸과 마음이 성장한 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청년기 ·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면 수치심과 체면이 퇴화하는데, 이는 내분비선에 분비되어 체액과 같이 체내를 순환하며, 모든 기관에 여러 가지 중요한 작용을 행하는 물질인 호르몬의 감소로 인해 성적 자극에 대한 감응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남성에 비하여 여성은, 같은 여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을 남자에 비해 더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종족들은 이성(異性)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나체(裸體)나 그와 유사한 의상 착용이 그 지역의 문화적 풍습이므로, 그런 행동들이 성욕(性慾)을 자극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숙은 사람들에게 생각이나 말 · 행동을 순화시켜 성적인 고결함을 지키게 한다. 수치감이 결여되거나, 이를 도외시하면 쉽게 정숙의 덕을 거스르게 된다. 〔정숙을 거스르는 행위들〕 어떤 행위들이 정숙을 거스르고 있는가? 퇴폐 풍조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인간의 자유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한다. 도덕률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는 한, 자유는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구원의 진리와 정숙한 마음을 갖도록 사회와 교회는 계속적인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정숙의 저해 요인들을 점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화를 통해 정숙이 침해를 당할 수 있다. 성에 대한 저속하고 상스런 언어 표현인 음담패설(淫談悖說)은 정숙의 지혜와 생명의 원천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거스른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사랑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에 대한 대화와 체험을 나누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다. 제3자 앞에서 한 편이 자기의 부부 행위나 구체적 성적 경험을 신중하지 못하게 유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부부애에 해악과 위화감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와 미술품 감상도 정숙을 저해할 수 있다. 도색적 문학지, 외설적 잡지와 만화를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해롭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위해 이것들을 접촉하는 것은 정당하다. 나체화를 그리거나 감상하는 것은 도색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순수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는 동기와 이유가 있다면 원칙적으로 정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극장 · 라디오 · 영화 · 텔레비전 등의 매체들을 무분별하게 접하고 사용하는 것은 정숙에 큰 해를 줄 수 있다. 부정하고 외설적이며 폭력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출입하는 행위는 정숙을 거스르는 것이다. 학문적 연구나 윤리적 평가를 위한 관람은 허용된다. 청소년들과 미혼자들에게 금지되는 내용을 기혼자들이 관람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허용될 수 있다. 정숙을 지향하는 인간은 만연된 선정적 풍토에서 해방되고, 변태적인 호기심과 환상을 일으키는 공연을 피해야 한다. 춤도 정숙을 거스를 수 있다. 춤은 원칙적으로 합법적인 것이며, 건전한 남녀 교제를 위해 좋은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춤이 동일하게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춤의 성격에 따라서 이성(異性) 사이의 율동이나 몸의 접촉과 음악에 의해서 성적(性的) 격정(激情)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정숙하지 못한 행위이다. 개인의 감응도 · 적응 능력 · 조건 · 상황 · 방어 능력에 따라 춤으로 인한 정숙의 유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성적 충동을 유발하는 성격을 가졌던 춤도 풍습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으면, 정숙에 해악을 끼치는 문제는 사라지게 된다. 의상(衣裳)과 유행(流行)도 정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자들은 좋은 풍습에 맞게 그들의 의상과 유행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여성이 자연스럽고 성적 자극을 주지않는 외적 치장과 복장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산뜻하게 만들어 주는 한도 내에서, 얼굴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염색하는 일 등이 허용될 수 있다. 팔과 다리를 선정적으로 노출시키는 복장, 가슴을 거의 드러내거나 들여다보일 정도의 투명한 옷, 실낱 같은 수영복 등의 착용은 주변 사람들에게 악 표양을 주기 쉽고, 정숙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런 행위들이 성적 범죄를 양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정결) ※ 참고문헌 주교 회의 교리교육위원회 , 《가톨릭 교회 교리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2003/ 이용훈, <성적 탈선>, 《이성과 신앙》21, 수원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1 pp. 85~86/ K.H. Peschke,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 Vatican II, C. Goodliffe Neale, Alcester and Dublin, 1986(김창훈 역,《그리스도교 윤리학》 2권,분도출판사, 1992, pp. 388~394). 〔李容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