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동정녀. 정광수(鄭光受, 바르나바)의 여동생.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 가마실에서 태어나 1795년에 오빠 정광수 부부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이들 부부가 1799년 서울 벽동(碧洞, 현 종로구 송현동)으로 이사를 하자 그녀도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정순매는 교리를 공부할수록 믿음이 깊어졌으며, 동정을 지키고자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의지가 비신자들에게 알려지면 소동이 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허가(許哥)라는 가공의 인물과 혼인을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머리를 올리고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정순매는 서울에서 오빠 내외와 함께 천주교 서적과 성물들을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자신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진행할 때면 언제나 정성을 다해 준비하였다. 1800년 10월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이후 그녀는 올케 윤운혜(尹雲惠, 마르타)의 언니인 윤점혜(尹點惠, 아가타)와 함께 강완숙(姜完淑, 골롬바)의 집에서 동정녀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활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정순매는 윤점혜, 강완숙을 비롯한 여러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포도청에서 심한 고문과 형벌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녀는 1801년 7월 2일 사형 판결을 받고, "고향으로 돌려보내 처형하여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 는 명령에 따라 여주로 이송되어 다음날인 7월 4일(음 5월 24일)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시복 시성 대상자 126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 참고문헌 《邪學懲義》/ 《달레 교회사》상, pp. 509~510/ 윤민구역,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자료집》 3집, 천주교수원교구시복 시성 추진위원회, 1997. 〔洪延周〕
정순매 (1777~1801)
鄭順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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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동정을 지키며 신앙 생활에 전념한 정순매 바르바라(탁희성 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