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지각, 감정, 기억, 욕구, 여러 형태의 추론, 동기, 선택, 인격적 특색, 무의식 등으로 반영되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것. 인간을 '자연적 인간' (homo natu-ralis), 즉 동물과 다르다고 볼 때 그것은 정신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포유 동물에 속하면서도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정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은 사람다움을 특징지어 주는 것이다.
〔개념의 역사〕 정신이라는 용어는 철학사적으로 너무도 많은 형이상학적 규정과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근세 이후 철학자들은 정신이라는 말의 엄밀한 일의적(-義的)인 개념 정의를 피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H. Wein,A. Gehlen, H. Plessner 등).
정신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는 우주를 질서 짓는 원리라고 하였고, 헤라클레이토스(Heracheitos, 기원전 540?~ 480?)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이성, 즉 로고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해석들은 그 후 유럽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은 세계 이성으로서의 정신은 이데아들 중에서 최고의 이데아가 영원히 '스스로 직관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 이성으로서의 정신은 '스스로 직관하는 것' 에 참여하는 영혼의 최고 부분이라고 하였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정신을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사고(思考)' 라고 이해하였다. 신의 존재 방식인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사고' 는 모든 존재자에 의해 추구된다. 죽어 버릴 인간의 영혼 속에서 유일하게 영원한 것인 정신이 '밖으로부터' 밀고 들어옴으로써, 인간은 관조(觀照), 즉 이론(理論, θεωρία)으로서 철학을 완성해 가면서 이러한 사고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스스로 움직이는 정신의 불길' 이 모든 사물들의 최고 원리라고 하였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정신은 일자(一者)를 최초로 구체화한 것이며, 사고하면서 일자로 귀의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견해는 인간의 영혼(anima)과 구별되는, 영원한 진리의 빛인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빛을 비춰 주는 것〔照明說〕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명은 인간의 영혼과 만나는 존재자들을 비춰주며, '정신의 통찰' 로서 인간과 하느님의 만남의 점이기도 하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에게 인간의 정신은 자연의 빛, 즉 지성(intellectum)의 빛으로서 무한한 하느님의 창조 정신에 유한하게 참여하는 것이며, 이렇게 참여하는 것은 인간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따라서 정신은 모든 피조물들의 절대적인 존재 근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근세에 들어와 존재와 정신, 물질과 사고(思考), 객관과 주관이 분리됨으로써, 인간의 정신은 점점 더 자기 자신과 그 주관성, 즉 '의식' 의 세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를 비롯하여 칸트(I.Kant, 1724~1804)가 그러하였다. 해겔(G.W.F. Hegel, 1770~1831)은 자신의 정신 개념에서 이성에 거스르는 유한성에만 고정(固定)된 오성을 추상적으로 분리시켜 놓은 것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즉 그에 의하면 정신은 역사적-변증법적으로 해석된 절대자이다. 이 절대자는 주관적인 정신으로서는 개별적인 인간에게서, 객관적인 정신으로서는 공동체의 형식에서(예 : 법, 사회, 국가), 절대적인 정신으로서는 역사적인 운동의 커다란 근본 방식(예 : 예술, 종교, 철학)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는 절대적인 '앎' 에서 정신이 절대적으로 '스스로 곁에 있는 존재' (Beisichsin)로 완성되면서 정신은 자기의 '달리있음' (Anderssein)으로부터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고 하였다.
헤겔 이후 이와 같이 정신을 앞세우고 높이 평가하는 일은 시들해졌다. 포이어바흐(L. Feuerbach, 1804~1872)는 정신을 인간의 보편적 감성의 완성 방식으로 보았다.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과 역사가 다루어 온 정신이란, 인간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이 세상의 소외된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조화로운 듯이 속이고 있는 통일적인 저 세상(피안)으로 들어가는 형상이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저 세상은 이미 있는 현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며, 또 이세상(차안)의 현실을 승인해 주도록 이용될 뿐이라고 하였다. 비합리주의 철학이 등장한 후 형이상학적 정신은 더욱쇠퇴해 갔다.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는 정신을, 개인이 신앙을 수행할 때만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실존의 양태라고 보았다. 그로 인해 정신의 사실성, 즉 현존의 계기를 강조했고, 정신은 논리학으로 풀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니체(F. Nietzche, 1884~1900)는 이성으로서의 형이상학적 정신은 삶을 부정하는 형상이며, 모든 생성을 정지시켜 버린다고 강변했다. 더욱이 선험적인 존재론을 거부하는 심리학과 유물론적인 자연주의 및 진화론은, 물질적인 것만이 존재하며 심리적인 것과 영혼 심지어 정신까지도 물리 화학적인 반영에 불과한 것으로 환원시키고 정신의 고유성을 부정했다. 예컨대 행태주의(behaviorism)를 제창한 윗슨(J.B. Watson,1878~1958)과 신마르크스주의자들 및 유물론자들, 그리고 '심리 분석' (psychoanalysis)을 제창한 프로이트(S.Freud, 1856~1939) 등의 주장이 그러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프로이트의 '심리 분석' 을 '정신 분석' 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심리적(psychisch)인 것과 정신적(geistig)인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이를 혼용하고 있고, 정신은 결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이켄(R.C. Eucken, 1846~1926)은 정신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맞서서 '정신적 삶의 자립' 을 부르짖었다. 그에 의하면 정신은 내용이 없는 순수한 형상이거나 비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활발한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부활이 고조되고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기위하여,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철학적 인간학이 대두되면서 정신의 의미가 다시금 활발히 논의되었다. 셀러(M. Scheler, 1874~1928)에 의하면, 정신은 인간의 특수지위, 즉 '사람다움' 을 의미한다.
〔특 징〕 정신은 '초월 의식' 과 '활동' (Aktualität)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초월 의식' 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삶과 육체의 한계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초감각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가치, 인격, 사실의 순수한 내용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기관 기능으로부터 실존적인 해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험적인 본질에 참여하는 능력을 가진다. 그래서 인간은 정신에 의해 진리와 가치의 절대적인 영역에 대하여 본질 직관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셀러는 "인간의 선험 통찰, 즉 본질 인식을 부인하는 자는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정신의 초월 의식에 의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정신 활동은 종교적 활동이다.
초월 의식은 '활동' 과 밀착되어 있다. 초월 의식은 활동 속에만 있고, 활동을 통해서만 있다. 이러한 정신의 활동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고 대상화될 수 없으며, 측정할 수도 없고 지각될 수도 없으나 지향성(intenio)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무엇을 듣는다(聽)고 할 때, 무엇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는 경우는 지향성, 즉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가 바로 정신의 활동이다. 그러나 단순한 청각 작용에 의해 우리가 듣는 것은 생리 기능에 불과한 것이다. 정신 활동의 본질은 지향성이며, 이를 수행할 때만 체험된다.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정신의 활동에 의해서 가능하다. 절대적 가치 판단을 하는 것, 믿는 것, 희망하는 것,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정신의 활동이다. 이러한 정신 활동들이 나의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활동들의 구체적인 수행자인 인격에 의해서 가능하다. 인격은 구체적인 정신이 드러나는 유일한 실존 형식이다. 그러므로 인격은 정신 활동이 수행될 때만 존재하고 우리에게 체험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독립해서 각자의 정신적인 인격 중심체를 가지고 있으나, 인격이 관찰될 수 없고 기술(記述)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정신 활동이 관찰이나 설명으로는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격은 모든 정신 활동을 설립하고 모든 정신 활동속에 인격이 깃들어 있다. 인격은 정신 활동의 공허한 출발점이 아니며 또한 상이한 정신 활동들의 합계도 아니다. 인격 그 자체는 모든 정신 활동 속에 살아 있으면서도 모든 정신 활동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인격 속으로 꿰뚫고 들어간다. 인격은 상이한 방식의 정신 활동들의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존재 통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의 개념을 논리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단지 소극적인 표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정신활동의 의미를 추측하고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신(信), 망(望), 애(愛) 등의 세 가지 덕(德)은 정신 활동의 발로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인간의 사람다움, 즉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 사상에서의 의미〕 동양 사상에서도 정신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에 의하면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단을 인격 가치로서 정신의 발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절대적인 인격 가치는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명(自明)하고 명증적이며 선천적이며 보편적인 가치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정신적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맹자는 사단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듯이 사단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단언하였다. (→ 인간학 ; 정신 분석)
※ 참고문헌 A. Gehlen, Der Mensch, Berlin, 1944/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이을상 . 금교영 역,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 서광사, 1998/ H. Dreyer, Der Begriff Geist in der deutschen Philosophie, von Kant bis Hegel, Berlin, 1968/ K. Rahner, Geist in der Welt, München, 1957/ L. Brunschwieg, Introduction a la vie de 'esprit, Paris, 1932/ M. Müller · A. Halder, Kleines Philosophisches Wörterbuch, Freiburg · Wien, 1972, pp. 94~96/ M. Scheler, Die Stellung des Menschen in Kosmos(진교훈 역,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아카넷,2001/ P. Haberlin, Der Geist u. die Triebe, Basel, 1924/ P. Wust,Dialektik des Geistes, 1925/ W. Cramer, Grundlegung einer Theorie desGeistes, Freiburg, 1957/ 진교훈, 《의학적 인간학》, 서울대출판부,2002/ 一, 《철학적 인간학》 I . II, 경 문사, 1982 · 1994. 〔秦敎勳〕
정신
精神
〔그〕vois, vonous, vonoeus · 〔라〕mens · 〔영〕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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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