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정립하고,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유지하는 기능을 가진 원리 또는 일군의 원리. 윤리적인 덕으로서,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 하느님을 향한 정의를 '경신덕' (敬神德, virtus religionis)이라 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각자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하고, 사람들에 대한 공평과 공동선을 촉진시키는 조화를 인간 관계 안에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이다.
I. 성서에서의 정의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는 시민법(Iustitia Civilis)에 근거한 정의보다는 하느님의 법(Iustitia Dei)에 근거한 정의이다. 성서에서 '정의' 라는 단어는 '거룩함, 올바름, 완전함' 등과 유사한 개념이며, 정의라는 말에서 '의인' (義人), '의화' (義化) 등의 말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성서에 나타나는 정의는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성서 전반에 드러난 사상에 의하면 정의는, 첫째 윤리적 덕을 의미하며, 적용 범위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의 정확한 준수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 덕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을 의로운 자로 만드는 덕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하느님 편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스스로를 의로우신 분으로 계시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이 완전 무결한 전형이라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는 심판하는 활동 속에 나타나며,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갚아 주는 활동 속에 나타난다. 둘째는 정의에 대한 보다 넓은 의미를 보여 주고, 종교적 가치를 보여 준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정의는 하느님의 승고한 정의, 즉 우주를 통치하고 피조물을 은혜로 채우는 하느님의 배려의 반영이며 결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의 자비와 일치하는 것이다.
〔정의와 심판〕 공동체의 정의 : 이스라엘의 율법은, 심판하는 자가 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도록 요구하고있다(신명 1, 16 ; 16, 18. 20 ; 레위 19, 15. 36). 또한 가장 오래된 격언 중에는 왕의 정의를 찬양한 것도 있다(잠언 16, 13 ; 25, 5). 이와 유사한 성서 본문에서는 의로운자는 권리를 가지는 자(출애 23, 6-8), 드물기는 하지만공정한 재판관(신명 16, 19)을 의미한다. 심판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든지 죄없는 사람을 의로운 자로 선언하고, 그 혐의를 풀어 권리를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신명25, 11 ; 잠언 17, 15).
바빌론 유배 이전에 활약한 예언자들도 심판하는 자의 불의, 왕의 탐욕,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를 통렬하게 규탄하고, 그로 인한 질서의 문란 때문에 재앙이 올 것이라고 예고하였다(아모 5, 7 ; 6, 12 ; 이사 5, 7. 23 ; 예레 22, 13. 15). 예언자들은 불의가 종교적 · 윤리적 차원까지 미치는 악이라고 일깨워 준다. 예언자들은 의인을 가난한 자, 폭력에 의해 희생된 자 등으로 구체적 상황 속에서 묘사한다(아모 2, 6 ; 5, 12 ; 이사 5, 23 ; 29, 20-21). 예언자들은 흔히 이와 같은 탄핵에 "법과 정의를 실천하라" (예레 22, 3 ; 호세 10, 2)는 적극적 권고를 첨부하고 있다. 그들은 언젠가는 메시아가 정의의 왕으로 와서 온전한 정의를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이사 9, 6 ;11, 4-5 ; 예레 23, 5).
율법에 대한 성실로서의 정의 : 바빌론 유배 이전부터, 정의는 율법에 따라 행동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사실은 잠언에 잘 나타나있으며(11, 4-6. 19 ; 12, 28), 그 외에도 창세기(18, 17-19)나 에제키엘서(3, 16-21 ; 18, 5-24)에도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성서의 문맥에 따르면 의인이란 경건한 사람,잘못이 없는 하느님의 종, 하느님의 벗을 가리킨다(잠언12, 10 : 창세 7, 1 ; 18, 23. 32 ; 에제 18, 5-26). 이와 같이 정의를 율법에 대한 성실과 연결짓는 생각은, 바빌론 유배 이후 특히 비탄의 노래(시편 18, 21, 25, 119, 121)와 시편의 찬미가(시편 15, 1-2 : 18, 21-25 ; 24, 3-4 ;140, 14)에 남아 있다.
보상으로서의 정의 : 율법에 따르는 행위가 의로움과 행복의 원천이라고 하는 사상은 바빌론 유배 이전부터있었고, 마침내 정의가 다양한 보상을 지칭하게 되었다.따라서 선행은 야훼 앞에 정의가 되는 것이며, 정의는 '의로움' 이라고 번역해도 될 정도였다(신명 24,13). 또한 "정의와 자애를 추구하는 이는 생명과 정의와 명예를 얻는다" (잠언 21, 21)라는 잠언의 구절에서, 생명 · 정의 ·명예는 사실상 서로 동의어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정의(시편 24, 3-4)도 순례자의 깊은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서 하느님의 축복이다.
정의와 지혜, 자선 : 후대에 씌어진 구약성서에는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 대한 엄밀한 의미의 정의(욥기 8, 3; 35, 8 ; 전도 5, 7 : 집회 38, 33) 외에도,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나고 있다(지혜 1, 1. 15 등). 즉 정의는 실천되는 지혜라는 관점이다. 또 그리스 사상의 영향으로 엄격한 의미의 정의가 나타나기도 한다(지혜 8, 7). 즉지혜는 절제 · 현명 · 정의 · 용기의 네 가지 주요 덕을 의미한다. 반면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 (집회 3, 30 ; 토비 12, 8-9 : 14, 9-11)라는 구절은 정의를 자선으로 이해하였다. 정의라는 단어에 대한 이러한 변천에는 근거가 있다. 즉 셈족에게 있어서 정의는 비당파적이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따라서 중립적으로 처신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권리를 가진 자를 변호하는 재판관의 적극적인 개입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심판의 결과를 요구하게 된다. 정의에 대한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의인은 선량하고 자애로운 사람(토비 7, 6 ; 9, 6 ;14, 9), 사랑이 풍부한 사람(지혜 12, 19)이다.
예수의 가르침 : 법률적인 의미의 정의에 대한 권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중심과는 무관하다. 복음서에는 정의의 의무에 관한 규정도,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변호도, 공정한 심판을 행하는 메시아에 대한 묘사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예수 시대에 정의는 대부분 로마인들에 의해 조종되었고, 예수는 사회 개혁자나 민족적 메시아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당시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은 사회적 불의가 아니라, 형식주의나 위선 등 종교적인 영역의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설교 가운데 나타나는 바리사이파에 대한 탄핵은, 예언자들의 사회적 부정에 대한 투쟁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예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정의를 실천하도록 권고해야 했지만, 성서에는 이에 관한 흔적이 없다. 예수는 윤리적 생활을 참된 정의로, 그리고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정신적인 순종으로 규정지었다. 예수의 이 말에는 두 개의 중요한 사상이 있다. 첫째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거짓 정의를 비난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율법의 위선적 준수 속에는 인간적 동기에서 기인하는 오만한 종교 생활이 있음을 과거의 위대한 예언자들 이상으로 민감하게 간파하고 비난한다(마태 23). 둘째로 예수는 제자들의 정의, 즉 참다운 정의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밝힌다(마태 5, 17-48 ; 6, 1-8). 이와 같이 제자들의 삶은 계명에 대한 자구적(字句的) 해석에서 해방되지만, 율법에 대한 충실, 즉 정의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는 남아 있다. 예수가 새로이 선포한 이 율법은 하느님의 참되고 완전한 뜻인 모세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사도 시대 교회 :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 엄밀한 의미의 정의는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초대 교회의 당면 과제는 사회 정의의 실천보다 유대인의 불신앙과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사는 항상 있었다(1디모 6,11 ; 2디모 2, 22).
초대 교회에서는 거룩함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개념도 발견된다. 율법에 충실한 요셉(마태 1, 19)이나 시메온(루가 2, 25)과 같은 의인은 율법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메시아의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 15)라고 한말은 구약의 정의, 즉 율법을 토대로 한 종교 생활을 예수가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마태오 복음사가의 사상은, 유대인의 정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스도교에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마태 5, 6. 10).구약성서에서 정의가 지녔던 특수한 용례도 사도들의 편지 속에 드러난다. 예를 들면 정의란 율법의 준수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열매(필립 1, 11 : 히브 12, 11 ; 야고 3, 18), 월계관(2디모 4, 8),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본체(2베드 3, 13)로 묘사된다.
하느님의 정의 : 구약성서는 구체적 사실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를 찬양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적에 대해 벌을 내리신다든지(신명 33, 21), 혹은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경우가 그렇다(판관 5, 11 ; 1사무12, 6-7 ; 미가 6, 3-4). 이때 정의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 예언자들도 이러한 어투를 사용하고 그것을 더욱 심화시켰다. 하느님은 처벌, 즉 정의를 단순히 이스라엘의 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이더라도 죄인에 대해서 행사한다(아모 5, 24 ; 이사 5, 16 ; 10, 22 이하). 한편 하느님의 정의는 권리를 가진 자를 해방한다는 온정에 넘친 판단이기도 하다(예레 9, 23 : 11, 20 ; 23, 6)."의로운 이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리시어 그 의로움에 따라 그에게 갚아 주십시오" 라는 말도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1열왕 8, 32). 탄원의 기도 속에서도 심판과 자애라는 정의의 이중 의미가 드러나 있다. 탄원하는 자는 하느님이 당신의 성실로 자신을 해방시켜 주도록 청원하며(시편 71, 1-2), 어떤 때는 하느님이 벌을 내려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고(다니 9, 6-7 ; 바룩 1, 15 ; 2, 6), 당신을 의로운 분으로 나타내도록 탄원한다(에즈 9, 15 ; 느헤 9,32-33 ; 다니 9, 14). 여러 시편들도 정의에 대한 자애의 측면을 찬양하고 있다(시편 7, 18 ; 9, 5 ; 96, 13). 의로운 하느님은 자애에 충만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시편 116,5-6 ; 129, 3-4).
반면 신약성서는, 하느님이 믿는 이들과 공동체의 생활에 개입하여 판결을 내린다는 법적인 정의에 대해서 역설하지 않는다. 신약성서는 오히려 최후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은 최후의 심판에서 자신을 의로운 분으로 나타내지만, 정의에 대한 단어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가 최후의 심판에 관한 종래의 표현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마태 12, 36-37. 41-42) ,구원은 믿고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계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 시대의 교회도 이러한 표현을 충실히 답습하지만(요한 16, 8. 10-11 ; 2디모 4, 8) , 행위의 윤리성에 따라 심판 받는다는 생각으로 돌아가(마태 7, 13-14 ; 13, 49 ; 22, 14 ; 루가 13, 24) 심판과 신앙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쁜 소식을 어느 정도대립시키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바오로의 경우에도 이러한 이원성이 발견된다. 바오로는 신앙과 은총에 대한 가르침을 충분히 전개하지만, 여전히 유대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각자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는(2데살 1, 5-6 ; 로마2, 5)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정의와 자비〕 인간의 정의 : 율법의 준수를 정의와 동일시하는 것이 율법주의이다. 이 동일화는 바빌론 유배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율법은 이스라엘인의 도덕생활의 규범이며, 율법에 대한 충실에서 발생하는 정의는 그들의 번영과 영예를 보장한다. 그런데 오래된 성서본문은 약속된 땅의 정복에 대해 묘사하면서, 신앙에 의한 구원이라고 하는 바오로적 개념을 암시하고 있다. 즉"너는 마음 속으로 '내가 의롭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데려오시어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라고 생각해서는안 된다" (신명 9, 4-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것을 정의로 인정해 주셨다" (창세 15, 6)라는 구절도 동일한 의미로 설명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믿음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수단으로 찬양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정의를 근본적으로 연결시키는 생각은, 바오로도 분명하게 강조하듯이 정의를 율법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 창세기의 이러한 생각은 마카베오 상권(2, 52 ; 14, 35)에 인용되었다. 후자의 경우(14,35) 시몬 마카베오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지킨 성실이 정의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상에 대한 가르침을 의문시하는 욥의 질문이나 전도서의 비관적인 고찰도 보다 높은 차원의 정의에 대한 계시를 준비하고 있다."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죽어 가는 의인이 있고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오래 사는 악인이 있다" (전도 7, 15 ; 8, 14 ;9, 1-2). "하느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욥기 9, 2 ; 참조 : 4, 17 ; 9, 20 이하).
예수는 율법의 준수보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예수는 정의란 단어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대신 가난, 겸손, 죄인 등과 같은 표현에 새로운 의미와 내용을 부여한다. 따라서 신앙을 참다운 정의라 하고 죄인을 참다운 의인으로 부르며(마태 9, 13), 의화(義化)를 겸손한 자에게 약속된 용서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루가 18, 14). 바오로는 회개하기 전에는 율법의 정의를 추구하였다(필립3, 6). 인간은 이 정의를 그가 행하는 선행에 비례해서 획득하게 된다(로마 9, 30-31: 10, 3). 이 정의를 율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의(로마10, 5 : 갈라 2, 21 ; 필립 3, 9), 혹은 행위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의(로마 3, 20 ; 4, 2 ; 갈라 2, 16)라고 부른다.
바오로의 회개가 이러한 정의에 대한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티오키아에서의 논쟁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바오로는 의화에 대한 두가지 이론을 서로 대조하면서(갈라 2, 11-21), "의롭게된다" 라는 말에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어떠한 사람도 율법의 행업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업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의롭게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어떠한 사람도 율법의 행업으로써는 의롭게 되지 못하겠기 때문입니다" (갈라 2,16). 이로써 바오로가 지니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변하였다. 인간은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하느님과 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며, 신앙에 의해서 구원의 보증을 얻고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이른다. 따라서 정의와이 단어에서 나온 파생어들은 믿는 자의 구원의 현실을 가리키게 된다. 결국 성령(갈라 3, 2)과 생명(갈라 2, 19-21)은 의화를 보증하는 것인 동시에 의화를 구성하는 요소를 이룬다. 이로써 정의에 관한 고찰이 최후 심판에서 구원의 현실로 옮겨졌다. 이 정의는 인간의 현재 상태를 고려하면서 천상적인 보상을 성취하고 있으므로 종말론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 : 하느님이 법적인 의미의 정의를 행사할 때, 대개의 경우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한다. 이러한 해방은 그 자체로 사랑의 행위이며, 하느님의 정의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한편 구약성서는 인간이 자신의 정의만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획득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신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하느님 자비의 증거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발견되며, 의화론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된다.
구세사에서 자비를 나타내는 정의의 개념은 일찍부터 있었다. 신명기에 의하면, 하느님은 고아를 보호하는 것만으로 만족치 않고 외국인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음식과 옷을 준다(신명 10, 18). 또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백성과 정의, 공정, 그리고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으로 계약을 맺으실 것을 약속한다(호세 2, 21). 탄원의 노래를 통해 하느님의 정의에 호소하는 탄원자들은, 옳은 판결 이상의 것을 기대하여 "당신의 정의로 저를 살려주소서"(시편 36, 11 ; 119, 40. 106. 123)라고 기원하면서, 죄를 용서하는 정의까지도 희망하고 있다(시편 51, 16 ; 다니 9,16). 그런데 죄인의 의화는 역설적인 행위이며 공평한 판결에 대한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이 있는 자를 무죄로 판단하는 것은 재판에 있어서 위법이기 때문이다. 시편에서도 이와 비슷한 역설이 여러 번확인된다. 하느님은 여러 가지 조건 없는 은혜를 베풀고 더구나 때로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베품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밝히지만, 이 은혜는 인간이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능가하는 것이다(시편 65, 6 ; 111, 3 ;145, 7. 17).
이사야서 40-60장에 언급된 '하느님의 정의' 는 중요한 표현으로, 그 안에는 바오로의 중심 사상이 나타나 있다. 경우에 따라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의 자비나 성실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의 하사품으로서 단순한 해방이나 보수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결국 야훼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적도 없는 백성에게 평화와 영광 등 천상적 축복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이사 45, 22-24 ; 46, 12-13 ; 51, 1-3. 5. 8 ; 54, 17; 56, 1 ; 59, 9).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민족은 의화된 것이다. 즉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시편 45, 25). 이와 같이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를 나타내고 약속을 성실히지킴으로써(시편 41, 2. 10 ; 43, 6. 21 ; 45, 13. 19. 21),스스로 의로운 자비심을 증거한다.
바오로에 의해 세워지지 않은 지방 교회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현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계시를 표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정의'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이와는 달리 바오로는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사상을 아주 분명하게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바오로의 활동 초기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구원에 관한 바오로의 최초 선포는 초대 교회의 복음 선포처럼 매우 종말론적인 색채를 띤다(1데살 1, 10). 또한 하느님의 분노보다도 해방에 확실히 더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해방은 심판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의 법적 정의의 테두리 내에 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과의 논쟁은, 바오로로 하여금 참된 정의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은총이라고 규정짓게 하였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교적 삶을 하느님의 정의로 규정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느님의 의' 라는 표현은 구원이나 하느님 나라의 개념과 분리할 수 없다. 동시에, 그것은 행위에 따른 정의와 대립하기 때문에 지금 이미 주어진 은총을 강조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의(義)' 란 하느님의 은총을 의미하며, 그 자체로 종말론적이고 묵시론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교적 생활 속에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금 이미 성취되고 있다. 하느님의 정의는 하늘에서 내려와(로마 1, 17 ; 3, 21-22 ; 10, 3)본질적으로 하느님에게 속하는 선물로서, 천상적인 특성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바오로는 말하였다.
아울러 바오로는 하느님의 정의가 주어지는 까닭은 계약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 즉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명백하게 표명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하느님의 정의에 대해 바오로가 지닌 두 번째의 의미 내용, 즉 자비라고 하는 하느님의 속성이 분명하게 도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상은 "하느님께서는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또한 당신이 의로우시고 예수께 대한 신앙으로 (사는) 이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로마 3, 26)라고 하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또 "실상 그들은 하느님의 의로움을 알아보지 못한 탓으로 제 나름의 의로움을 세우려고만 했지 하느님의 의로움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로마 10, 3)라는 내용에서는,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의 내용이서로 결합되어 있다.
〔평 가〕 정의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두 가지 관점을 암시하고 있다. 즉 역사의 흐름 안에 완성되는 하느님의 심판과 관련해서 인간은 정의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의무는 항상 내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영적으로 참되게 드리는 예배에 귀착된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관련해서 인간은 정의가 자신의 힘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하느님의 정의는 심판의 행사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비에 넘치는 성실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그것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대로의 정의를 인간 안에 만들어 간다 (→ 아모스서 ; 의화론)
※ 참고문헌 HJ. Boecker, Law and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in the Old Testament and in the Ancient Near East, Minneapolis, 1980/ T.LJ. Mafico, just, justice, 《ABD》 3, pp. 1127~1129/ W. Kornfeld · H. Vorgrimler, 《LThK》4, pp. 711~713/ 4, pp. 1417~1510/ R. Albertz, Religionsgeschichte Israels in alttestamenticher Zeit 1-2, ATDE 8,Göttingen, 1992/ P. Böhlemann, Jesus und Täufer, Schlüssel Zur Theologie und Ethik des Lukas, 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99, Cambridge Uni. Press, 1997/ A. Finkel, Gerechtigkeit Ⅱ, 《TRE》 12, pp. 411~414/ M. Schramm, Gerechtigkeit, 《LThK》4, 1995, pp. 498~500. 〔편찬실〕
Ⅱ. 사회학에서의 정의 (⇨ 사회 정의)
Ⅲ. 윤리 신학에서의 정의
〔성서에서의 의미〕 사회적 가치 기준과 일치 : 족장 시대에는 주어진 대상이나 행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기준과 일치하는 것을 정의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계약조건의 준수(창세 30, 30), 올바른 상도의(商道義 : 레위19, 36 ; 신명 25, 15), 공정한 재판(신명 16, 18-20) 등과같이 사회적으로 공인된 기준을 지키는 것이 정의였다.하느님의 속성 : 모세 이후 정의는 하느님의 속성으로 나타난다.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바위이신 그분의 일은 완전하고 그분의 모든 길은 공정하다" (신명 32, 4)라는 말로써 정의가 하느님의 속성임을 밝히고 있다. 정의의 하느님은 언제나 완전하고 올바르다(스바 3, 5 ;시편 89, 14). 그래서 천사들은 하느님을 "의롭고도 참되십니다"(묵시 15, 3)라고 찬양한다. 특히 욥이 "하느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욥기 9, 2)라고 자신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에게 물은 것은 곧 하느님만이 정의로우며, 정의가 하느님에게 속하는 것임을 고백한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행위를 헤아리는 기준 :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창세 6, 9)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켜야하며, 이때 그는 의로운 사람이 된다. 즉 하느님의 율법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율법대로 사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다(로마 2. 13). 따라서 정의란 하느님의 계명과일치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구약성서에서 왕과 족장 그리고 재판관 등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는 죄의 반대 개념(전도 7,20)으로 나타나는데,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한 사람"(마태 27, 19 ; 사도 3, 14)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는 정의 그 자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느님의 처벌 기준 : 정의는 하느님이 인간의 부도덕한 행위를 처벌할 때 드러난다. 하느님은 악에 대해 무관하게 있는 분이 아니라, 악을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세운다. 하느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죄를 범할 때 혹독한 처벌을 내린다. 이때 "내가 죄를 지었다. 주님께서는 옳으시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르다" (출애 9, 27)라고 이스라엘은 고백한다. 하느님의 처벌의 심판은 죄를 정화하는 불과 같은 것이다. 하느님의 의로운 행위 : 판관 시대 이후 정의라는 말은 야훼 하느님의 의로운 행위를 입증해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구든지 자신앞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행위에 야훼 하느님이 개입해 계심을 선포한 것이다(2사무 15, 4). 또한 솔로몬이 "의인들의 거처에는 그분께서 강복하시는도다"(잠언 3, 33)라고 노래한 것은, 옳은 이의 삶에 하느님이 개입함을 의미한다. 이제 정의는 하느님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여 인간의 행위나 삶의 올바름을 입증해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정의가 인간의 윤리적인 선업(善業)에 대한 표현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은총에 참여하도록 인간을 이끄는 것으로도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의 정의는 다윗이 바세바와 정을 통한 다음 예언자 나단이 찾아왔을 때 드린 기도에서 최초로 나타나고 있다.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죽음의 형벌에서 이 몸을 건져 주소서. 이 혀로 당신의 정의를 높이 찬양하리이다"(시편 51, 14). 다윗의 간구는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용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즉 죄로 인해 죽을 몸이 된 다윗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그 용서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 베푸는 정의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이제 정의는 구원론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구원론적 의미는 이사야서에 매우 잘 나타나고 있는데, 하느님을 "정의를 세워 구원을 이루는 하느님"(이사 45, 21)으로 표현한 데서 절정에 달한다. 신약성서에도 죄를 용서해 주고 구원해 주는 하느님을 정의로운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면 그분은 진실하시고 의로우시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온갖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1요한 1, 9). 하느님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를 고백하는 자를 의롭게 하는 분이다.
믿음에 의한 인간의 정의 : 하느님의 속성이었던 정의가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전가된다. 모세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의롭다는 여김을 받았듯이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 것이다"(로마 1, 17 ; 하바 2, 4).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인간은 의로운 자가 되는데, 이는 인간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다. 달리 말해서 야훼 하느님의 속성인 정의는 그분의 무상의 은총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지는데, 인간의 정의는 완벽하지 못하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로움,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게 되는(필립 3, 9)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을 은총을 통해 의롭게 만드실 뿐 아니라 백성들이 의를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이 억눌린 자를 풀어 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줄 것을 요구하셨다(이사 1, 17). 정의를 펼치는 것은 가난한 자, 불쌍한자를 돌보는 것(예레 22, 15-16) 그리고 선과 사랑의 배려를 뜻한다. 특히 바빌론 유배 시대 이후 정의는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것과 자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다니 4, 27).
예수의 정의 :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정의'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하느님이 인간의 생활에 개입하여 판결하신다는 법적 정의에 대해서도 강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신약성서에서 법적 정의에 대한 권고는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의 중심에 있지 않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정의가 율법에 대한 충실이라는 성서적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정의가 복음의 중심은 아니지만, 예수는 하느님의 계명에 대한 내적 순종인 윤리적 생활이 참된 정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삶을 설파한 산상 설교를 통해 예수는 당신 제자들의 참된 정의를 규정하였다(마태 5, 17-6, 18). 제자들은 예수로 인해 율법 규정들의 참된 의미, 참된 정신을 깨달았으며 이를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의 삶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정의의 개념과 특징〕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는 "정의란 확고하고 변함없는 의지가 각자에게 각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태도"(《신학 대전》 I · Ⅱ,q58,a1), 즉 각자에게 그의 권리를 돌려주는 확고하고 항구한 의지라고 하였다. 반면 정의를 "우리의 이웃이 엄격한 권리로 가지고있는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 (K.Horman) , "각자의 권리로 가지고 있는 것이나 그에게 마땅한 것을 돌려주는 것" (Otto A. Bird)이라고 정의한 이들도 있다. 이들의 의견을 좇아 페쉬케(Karl H. Peschke)는 "각자의 권리로 소유하는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도 정의이고, 그가 아직은 소유하지 않았지만 교환 · 분배 · 분담 등의 균형 원칙에 따라 그에게 마땅한 권리로 돌아가야 할 것을 주는 것도 정의"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정의는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본 성상이든(per natura) 정당한 사회 제도에 의해서이든 각자에게 속한 것을 정당하게 돌려주는 사회 생활의 규범이라는 것이다.
정의에 관한 어떤 정의(定義)를 따르든 정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정의는 사회적규범이다. 정의는 개인의 개별적인 행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사회 전체, 사회 전체와 개인의 상호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지시해 주는 사회적 규범이다. 따라서 정의의 의무는 사회적 규범이며, 개인적 덕의 특별한 수준과 관련 없이 객관적으로 결정된다. 둘째, 정의는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행동의 정당성을 승인해 준다. 정의는 개인이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와 관련하여 어떤 행동을 할 때, 그행동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정의는 개인 행동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승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정의는 의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은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다. 달리 말해서 정의는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선(善)이기에 강제력을 지니고 있다.
〔분 류〕 정의는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귀속 정의' (歸屬正義, attribuiivejustice)는)는 각자의 권리로 지닌 것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각자의 인격, 소유,명예, 발견, 자격 등과 관련된 권리들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주로 권리와 관련된 것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비례 정의' (比例正義, proportional justice)는 각자가 아직 소유하지 않았지만 각자에게 권리로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 또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의 부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선이나 부담은 일반적으로 교환, 분배, 분담의 균등 원칙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비례 정의' 는 어떤 균등 원칙이 적용되느냐에 따라 교환 정의, 분배 정의, 분담(법적) 정의, 사회 정의로 나뉜다. 셋째, '응보 정의' (應報正義, 형벌의 정의, 보상 정의)는 인류 사회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위한 규범인 정의를 침해하였을 때, 사회 질서의 위반과 급박한 사태에 비례하는 처벌을 통하여 손상된 정의와 질서를 정당하게 복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가해자에 대한 형벌의 형태로실행된다. 여기서는 비례 정의에 속하는 네 가지 정의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교환 정의 : 교환 정의(iustitia commutativa)의 주체는 개인과 윤리적 인격체인 공동체들이다. 이 정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두 상대의 유익성을 목적으로 한다. 즉 재화나 봉사의 교환이 엄격한 가치 균등에 따라 이행되기를 요구하는 정의이다. 교환 정의는 상거래, 물가 조정, 노동 임금, 보험 계약 등에 적용되며, 교환 정의를 위반하는 것은 도둑질, 사기, 불의, 손상 등이다.
분배 정의 : 분배 정의(iustitia distributiva)는 공동체와 공동체의 구성원인 각 개인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이 정의는 봉건 시대와 전제주의 시대에는 정부에만 해당되는 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모든 시민들이 책무나 특권(혜택)의 정당한 분배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모든 이의 관심사로 확장되었다. 분배 정의는 공동체의 권위에 의해 이행되는데, 공동체에 속한 개인이나 단체들의 능력과 공로 그리고 필요성에 따라 비례적으로 재화, 명예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분배 정의를 위반하는 것은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 및 계급을 이기주의로 옹호할 때 발생하게 된다.
분담 정의 : 분담 정의(iustitia contributiva)란 공동체의 일반적인 선을 위하여 공동체 구성원이 정당하게 담당해야 할 몫을 의미한다. 공동체 특히 정치 공동체에 있어서 분담 정의는 국민들에게 공동체의 일반적인 선을 위해 요청되는 세금과 사회 의무 및 국방의 의무 등을 지키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공동체의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당한 법률에 따를 의무를 부과하고있다. 이와 같이 분담 정의는 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기에 법적 정의(iusititia legalis)라고도 부른다.
사회 정의 : 사회 정의(iustitia socialis)의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는, 정의에 대한 전통적인 삼중 구분(교환 정의, 분배 정의, 법적 정의)과의 연관 속에서 사회 정의를 살펴보는 경향이다. 이 경향에서는 사회 정의를 법적 정의와 동일시하는 학자들도 있고(B.A. Vermeersch, J. Höffner, 사회 정의가 공익에 대한 자연적 요구로서 세 가지 정의, 즉 교환 정의, 분배정의, 법적 정의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B.Häring). 또한 사회 정의가 분배 정의와 법적 정의를 포함한다고도 하고(H. Pesch, E. Welty), , 올바로 이해된 법적정의, 분배 정의, 교환 정의 간의 조화로 사회 정의를 보기도 한다(B.Mathis,F.Cavallera). 둘째로, 사회 정의를 정의에 대한 전통적인 삼중 구분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의, 즉 정의의 덕의 새로운 변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J. Messner, G. Gundlach, K.H. Peschke 등).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사회 회칙에서 사회 정의는 세 가지 정의의 의미를 포함하면서도 그 의미를 초월하는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사회 정의가 교회의 공식 문헌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교황 비오 11세(1922~1939)의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이다. 여기서 사회 정의는 교환 정의와 확연히 다른 것으로, 모든 인간 사회의 "공동선의 요청"(43항)이다. 또한 사회 정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하는데, 이는 공동선에 필요한 것을 각 개인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이 사회 정의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정의는 올바르고 건 전한 경제 활동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원리(37항)가 된다. 이와 같이 교황 비오 11세는 사회 정의를 경제적 영역과 관련하여 제시하였다.
한편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회칙 <어머니와 교사>(Materet Magistra, 1961)에서 교황 비오 11세의 가르침을 확인하면서, 40항을 제외하고는 사회 정의를 정의라는 용어로 대치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교황이 사회 정의의 개념을 정의라는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아울러 교황은 정의의 개념을 경제 분야를 넘어서서 정치공동체 내의 문제뿐 아니라 국제 문제에까지 확장하였다. 이로써 사회 정의는 한층 폭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후임 교황들과 공의회 문헌 특히 <사목 헌장>(Gaudi-umetSpes)을 통하여 평화의 개념과 연결되었다. 즉 평화는 단순히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 즉 "항상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 (사목 78항)인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을 통하여 '국가 간의 사회 정의를 고취' 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선진국과 발전 도상국 사이의 '진보' 를 위해 정치적 · 경제적 영역에서 연대성의 의무에 입각한 사회 정의의 실현을 갈망하였다. 이로써 사회 정의는 인류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제거하고 진정한 발전과 진보를 위해 국제 경제와 국제정치 영역에서 실현되어야만 하는 올바른 질서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의 문헌인 <메데인 문헌>(Medellin Documents, 1968)은 사회 정의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일치하면서 복음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즉 사회 정의는 인간의 총체적 해방을 위한 복음의 요구이며, 하느님의 요구라 보았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팔십 주년>(OctogesimaAdveniens, 1971)은 <메데인 문헌>의 영향을 받아 사회 정의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제2차 총회 문헌인 <세계 정의에 관하여>(Convenientes exUniverso, 1971)는 사회 정의의 개념을 교의적으로 다루기보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따라서 이 문헌은 사회 정의의 구현과 교회의 사명을 연결하였다. 즉 하느님은 불의한 사회에서 정의 실현을 요청하는 분이며, 정의와 사랑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요청이기에 정의의 실현은 인간이 실천해야 할 의무이다. 따라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복음의 신빙성을 확보해 주는 척도이다. 그렇기에 정의를 위한 활동은 교회활동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 )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과 <백 주년>(CentesimusAnnus, 1991)을 통하여 사회 정의에 대해 가르쳤다. 교황은 "정의에 대한 투신은 평화에 대한 투신과 밀접하게 연결"(<노동하는 인간> 2항)되어 있으며, 교회의 정의에 대한 가르침은 각 국가들 내의 노동자 문제에서 전세계적 차원의 노동자 문제로, 한 사회의 계급 문제에서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로 관심이 변화되어 왔음을 밝혔다. 여기서 정의는 곧 사회 정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 정의에 관한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다. 아울러 교황은 사회 정의에 대한 국가의 의무(<백 주년>10~11항)와 노동 쟁의가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노동하는 인간> 11~15항 ; <백 주년> 14항)일 때 정당하며, 사회정의를 추구함으로써 폭력과 원한을 극복하고 민주 사회를 건설하는 도구가 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회 정의를, 노동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적 ·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사회 정의는 현대의 복잡한 사회 문제와 함께 탄생한 개념으로, 사회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정의와 사랑〕 정의와 사랑 중 어떤 것이 우선적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사람들이 맺는 관계를 외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하면, 외적 질서를 규제하는 정의를 강조하게 된다. 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자신과 근본적인 관계를 지닌 인격으로 본다면, 상대는 자신과 함께 인격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되기에 사랑이 우선하게 된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은 사랑으로 당신 외아들을 파견하였고, 인간에게 당신의 최고의 인격적 사랑인 성령을 파견하였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루가 15, 11-32)에서처럼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묻고 처벌하기보다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는 분이며, 심지어 당신 아들 예수를 보내어 인간을 사랑으로 구원한 분이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정의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하느님이 완전하듯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이 세상에서 정의보다 사랑을 우선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관점을 바탕으로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첫째, 사랑이 정의보다 더 기본적이다. 둘째, 사랑은 정의의 완성을 가장 잘 보장한다. 셋째, 정의의 목적은 사랑의 정신에서 완성된다. 넷째, 사랑은 정의에 충만함과 명확한 전망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정의와 사랑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윤리적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의문이 있을 때 사랑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사랑에 기초를 둘 때 사람들은 이웃과 공동체의 실제적 필요를 근본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이는 곧 사랑이 정의보다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의는 최소한의 사랑의 요구이기에 정의의 요구는 사랑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의무들 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에 의한 의무는 어떠한 애덕 행위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 (↔ 불의 ;→ 가톨릭 사회 교리 ; 교환 정의 ; 돈 ; 법적 정의 ; 분배정의 ; 비밀 ; 비밀 배상 ; 사회 정의 ; 사회 회칙)
※ 참고문헌 A. Descamps · L. Cerfaux, 《DBSuppl》 4, pp.1417~1510/ A. Descamps, Les Justes et la justice dans les évnailes er lechristianisme primitif hormis la doctrine proprement paulinieme, Louvain, 1950/ B. Häring, The Law ofChrist : Moral Theology.for Priests and Laity, trans. by E.G. Kaiser, Westminster, Md., 1961/ E. Brunner, Gerechtigkeit, Zurich, 1943/ F. Heidsieck, La vertu de justice, Paris, 1959/ F. Horst · E. Schweizer, 《RGG》 3rd ed., 2, pp. 1403~1407/ F. Ruwet, Misercordia et justitia Dei in V.T., 《VerDom》 25, 1947, pp. 35~42, 89~98/ G. Del Vecchio, Justice : An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Essay, ed., A.H. Campell, trans. by T.O. Martin, Washington, 1953/ J. Messner, Social Ethics : Natural Law in Modern World, trans. by JJ. Doherty, new ed., St. Louis, 1964/ J. Pieper, Justice, trans. by L.E. Lynch, New York, 1955/ J. Raws,A Theory ofJustice, 1971/ K. Hormann, An Introduction to Moral Theology, London, Bums and Oats, 1961/ O.A. Bird, The Idea of Justice, New York · London, F.A. Praeger, 1967/ P. Tillich, Love, Power and Justice, New York, 1960/ R.Niebuer, Love and Justice, ed., D.B. Robertson, Philadelphia, 1957/ J. 피이퍼 , 강성위 역, 《정의에 관하여》, 서광사, 1995/ K.H. 페쉬케, 김 창훈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3권, 분도출판사, 1992/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브라이언 배리, 이용필 역, 《정의론》, 신유, 1993/ 《세계 철학 대사전》, 교육출판공사, 1985/ 《정치학 대사전》,박영사, 1975/ 카렌 레바크, 이유선 역, 《정 의에 관한 6가지 이론》, 크레파스, 2000/ 한용희,《가톨릭 정치 윤리》, 분도출판사, 1980.
〔金明顯〕
IV. 철학에서의 정의
〔의 미〕 그리스 사상에서 정의는 윤리적 · 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은 정치적 및 개인적 영역에서 정의의 개념을 '네 가지 주요 덕'〔四主德〕에 포함시켰다. 그에 의하면, 지혜 · 용기 · 절제의 덕이 이성에 따라 조화롭게 작용하고 이성에 의해 통제될 때, 정의는 부수적인 덕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즉정의를 모든 다른 덕의 토대로서 덕들이 요약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사람들이 사회 공동체인 국가 안에서 자기본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는 원리가'정의' 라고 주장하였다. 즉 정의는 각자가 자신이 맡은일을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83~322/321)는 정의를 '완성된 덕' 혹은 '최고의 덕' 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덕은정치 공동체의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또한 공동체의 지배 질서에 교대로 참여하는 시민의 정치 능력이며, 가능한 한 좋은 삶을 목적으로 삼는 정치 공동체의 도덕 질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공동체의 고유한 덕으로 규정하고, 덕이 없는 상태를 정의가 부재한 상태로 보았다. 윤리적 관점에서 정의는 '올바르게행위함' 을 의미하고, 불의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음' 을 뜻한다.
무엇보다 그에게 정의는 '중용' (中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그는 정의가 '평등한 비례의 관계' 를 서술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관계의 훼손이 불의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정의를 '일반적 정의' 와 '특수한 정의' 로 구분하였다. '일반적 정의' 는 법적 정의로서 인간의 심정과 행동을 공동 생활의 일반 원칙에 적합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특수한 정의' 는 법의 구체적 원리에 따라 각자의 물질적 · 정신적 이해 관계를 평등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특수한 정의' 는 다시 '분배정의' 와 '평균적 정의' 혹은 '교환적 정의' 로 나뉘며, 평균적 정의는 '시정적(是正的) 정의' 라고도 불린다.
'분배 정의' 와 '평균적 정의' 는 피타고라스(Pytagoras, 기원전 580?~500?)가 이미 구분한 것이었다. '분배 정의'는 명예와 재산을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기여도와 공헌도에 따라 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재화나 명예, 특히 공적의 분배에서는 기하학적으로 비례적인 균등이 필요하다. 즉 각자는 자신의 몫에 따라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평균적 정의' 는 사람들이 받는 이익과 손실을 산술적 비례에 따라 평등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교환의 경우에 상호의 이득을 평등하게 하여 불법으로 남에게 입힌 손해를 배상하게 하며, 범죄에 대해서는 같은 값의 보복형을 부과하는 것이 평균적 정의이다. 평균적 정의는 일어난 불의를 시정하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에 시정적 정의라고도 부른다.
플라톤 이전부터 있어온 '정의' 에 대한 이해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어야 한다' (Suum cuique tribuere)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정의로운 질서는 인간이 타인에게 그에게 귀속해 있는 것을 준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 한편으로 모든 불의는 인간에게 마땅히 돌아갈 몫을 주지 않거나 빼앗는 것을 뜻하며, 이런 일은 불행 · 흉년 · 화재 · 지진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생긴다. 이와 같이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라' 는 사상은 플라톤 이전 시대에 시작되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치체로(Cicero, 기원전 106~43), 암브로시오(339~397), 아우구스티노(354~430), 특히 로마법을 거쳐 서양의 전통에서 공유 재산이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에게 '정의' 라는 덕은 '확고하고 변함없는 의지가 각자에게 각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태도 이다. 하지만 그가 정의를 한 가지 의미로만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몫을남의 몫과 구별지어 주는 것' 혹은 '사물들 사이를 질서지우는 것' 을 정의라고 이해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의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롤스(J. Rawls, 1921~2002)는 자신의 주저 《정의론》에서 공리주의를 극복하려 하였다. 그의 정의론은 칸트(l. Kant, 1724~1804)의 이념적인 것과 사회 계약적인 것을 훌륭하게 배합하고 있다. 롤스는 정의에 관한 현대의 논의에 참신한 이론으로 불을 지폈지만, 그렇다고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본 질〕 정의의 대상은 법과 권리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의 대상은 인격성에 의거하여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으로서, 인간은 이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 공간을 보증하는 권리를 뜻한다. 그리고 인간이 가치를 실현함에 있어 하느님이 원한 자신의 현존의 규정을 채우기 위해 인격적으로 자기를 실현하고, 또한 도덕적 본질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외적인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한 권리를 뜻한다. 권리는 인간에게 속하는 반면, 정의는 타인에게 귀속하는 권리를 부여하려는 의지의 준비 상태이다. 정의는 권리들에 의해 근거 지워진다. 정의는 권리들을 근거 짓지는 못하나 권리들을 전제로 한다. 권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격체인 인간의 창조를 통하여 근거지워진다. 즉 정의는 권리에 앞서 있는 것이며, 권리는 무엇이 정의로운가를 결정하는 심급(審級, Instanz)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권리의 뒷면이며, 도덕적 관점에서 본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법은 같은 내용의 존재론적 측면이고, 정의는 윤리적 측면이다. 따라서 법과 정의는 같은 범위를 가지며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정의는 오직 인간 사이의 관계질서로 향한 사회적 행위이다. 정의의 목표점은 타자, 즉 개인이거나 공동체이다. 정의는 타자의 '다름' 을 전제로한다. 정의는 권리들과 관계가 있지만, 권리의 요구를 채운다는 의미에서 외적인 재화와 행위에만 관계가 있다.정의는 의무를 지닌 자의 심정과 내적인 태도로부터 독립해 있는,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척도를 내포한다. 즉 구매 가격과 임금의 지불, 생명에 대한 공격의 중지와 건강, 타인의 명예, 금지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국가적인 법 보호의 보증, 정의롭게 통치하는 정부의 법에 대한 복종 등이다. 정의의 특별함은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의무를 지는 사람의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서 독립하여 외부로부터 규정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정의의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객관적인 측면인 제도적 · 정치적 · 사회적으로 이해하자면, 정의는 외적인 공동체의 삶에 기초가 되는 규범적인 원리이다. 따라서 정의는 무엇보다도 법과 국가의 영역과 관계가 있다. 여기에는 입법권과 선포권 그리고 행정권이 포함된다. 나아가 정의는 비형식적으로 조절되는 영역인 가정, 이웃, 학교 등에서의 행동과 갈등에도 관계가 있다. 정의만이 공동체 삶의 규칙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나 비판의 척도가 된다. 둘째, 주관적으로 이해하자면, 정의는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도덕적인 삶의 태도이다. 덕으로서의 정의는 어떤 사람이 남보다 더 강한 힘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남에게 속임수를 써 자신의 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에 나타난다. 시민의 덕으로서 정의는 정치 공동체가 명백한 불의에 빠져 들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법과 정의는 외적 행위와 질서로 사회를 본성에 맞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타인이 그 자신의 몫을 얻도록 하는 것은 정의의 엄격한 요구이다. 타인의 몫은 선량한 심정이나 다른 도덕적 행위 혹은 신체적 · 정신적자비의 업적에 의해 대치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자비가 정의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정의를 채우는 것" (토마스 아퀴나스)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훼손을 이웃 사랑의 외투로 덮는 것은 이웃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사랑은 보상해야 할 실패한 정의에 대한 대용물도 아니다(교황 비오 11세). 그러므로 모든 애덕(caritas)은 도덕의 최소한으로서 정의를 요구한다. 즉 "정의 없는 자비는 혼돈의 어머니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
〔정의와 평등〕 정의 개념의 핵심에는 '평등' 의 원리가 자리잡고 있다.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 는 것이 평등 원리의 내용이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불평등한 대우는 정의롭지 못하다. 정치 공동체의 기본 질서는 평등의 원리가 국가의 삼권(三權)에 의무를 지우는 헌법의 규정일 경우 정의롭다고 간주될 수 있다. 평등의 권리를 충족시키기위해서 현행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한다. 첫째, 현행법은 개인과 개별적인 사례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례의 유형(소득세, 절도, 살인 등)을 어떤 기준(예를 들어 소득세는 소득의 많고 적음, 가정 상태와 자녀수에 따라 부과함)에 따라 조절하는 규정에 의해 성립되어야 한다. 둘째, 법규들은 헌법에 명시된 법제의 절차 규칙에 따라, 그리고 규범적인 주요 원리(예를 들어 법치 국가, 민주주의, 사회 복지 국가 등)에 따라 제정되어야 한다. 이 주요 원리들은 도덕성이라는 최고의 기준으로 정의의 응용 원리들을 중개함으로써 근거 지워질 수 있다. 우리가 도덕률의 보편화 가능성을 도덕성의 기준으로 인정한 다면, 행동 관계와 갈등 관계를 엄밀하게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본 명제에 따라, 특히 침해할 수 없는 인권, 개인의 자유권, 사회적 권리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평등의 원리이다. 셋째, 행정부와 사법부는 법률과 법 제정을 개인의 지위, 즉 성별과 종교 그리고 사회적 · 경제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적용해야 한다. '정의' 를 나타내는 그림에서 정의의 여신의 눈이 가리워진 것은 이런 의미이다.
〔정의와 형평〕 일반적인 법의 규칙을 적용할 경우 특수한 개별 사례들에서 명백히 정의롭지 못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형평의 원리는 유효한 법의 자구(字句) 해석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한다. 그 이유는 정의 이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입법자가 예견하지 못한 비상한 상황에서도 그것이 주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평의 원리에서는 법과 마찰이 없는 법조문 적용이중요하지 않고, 특수 상황에서 남을 배려하는 보다 인간적인 법 적용이 중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는 '형평성' 개념은 법률의 일반 규정에 있지 않은 예외를 인정하므로 '실정법의 보정' 이라고 부른다.
〔사회 정의〕 사회 정의는 전통적 정의인 교환 · 분배 ·법적 정의와는 다른 자연적 정의이다. 즉 전통적인 의미의 정의는 법적 정의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반면, 사회 정의는 법적 정의를 넘어서는 자연적 정의이다. 양자를 구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법적 정의는 경험과 사려 있는 분별로써 형성되고 법률(lex)이 법(jus)이 되게 하는 정의이며, 실정법을 만들고 그것에 복종할 의무를 지우는 강제성을 띠는 정의인 반면, 사회 정의는 인간의 인격적 · 사회적 본성과 사회 자체의 본성에 근거하는,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정의이기 때문이다. 둘째, 법적 정의의 의무는 주로 실정법에 의거하지만, 사회 정의의 의무는 자연적 도덕률 혹은 자연법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셋째, 법적 정의는 국가적 차원의 정의이지만, 사회 정의는 국가와 사회를 포괄하는 세계적 차원의 정의이고, 국제적 차원의 의무는 자연적 정의에 기초하기때문이다.
〔평 가〕 정의 문제는 불의한 사회에서 제기된다. 인류역사를 보면 사회의 모든 불의는 그 사회의 구조 · 조직 ·제도 · 법률 · 환경 등 모든 필요한 조건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근본적으로 말살하는 데 기인한다. 또한 공동체의 협동으로 이루어진 공동선이 모든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 데 기인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 문제는 개인 대 사회 혹은 개인대 국가의 관계에서만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국제적 관계에서도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제적 정의는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 공동체의 공동선을 지향하게 하는 정의의 형태이다. 범죄, 인신 매매, 마약 거래 등 국제 사회의 복리에 위험이 되는 것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물질적인 향상을 위해 국가 간의 협력이 요청된다. 가톨릭 교회는 특히 교황 레오 13세(1878~1903)가 반포한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이후 현재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하여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참고문헌 그리스도교 철학연구소, 《현대 사회와 정의》, 철학과 현실사, 1995/ 요한네스 메쓰너 , 강두호 역, 《사회 윤리의 기초 I :인간 사랑》, 이문출판사, 1997/ 호세 욤파르트, 정종휴 역,《법철학의 길잡이》, 경세원, 2000/ 이상열, 《사회 정의의 윤리》, 분도출판사, 1990/ J. 피이퍼, 강성위 역, 《정의에 관하여》, 서광사, 1995/ Kath-olische Sozialakademie Östereichs ed., Katholisches Soziallexikon, Tyolia, Innsbruck · Wien · München, 1904/ J. Ritter ed., Historisches Worterbuchder Philosophie, Band 3,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1974/ O. Höffe ed.,Lexikon der Ethik, Beck, München, 1992. 〔朴鍾大〕
정의
正義
Ⅰ. 성서에서의 정의 · Ⅱ. 사회학에서의 정의 · Ⅲ. 윤리 신학에서의 정의 · Ⅳ. 철학에서의 정의 · 〔히〕צְדָקָה · 〔그〕δικαιοσύνη · 〔라〕iustitia · 〔영〕justice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