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가운데 하나. 복음적 관점에서 한국의 사회 현실을 연구 · 검토하여 하느님 백성에게 사회 안에서 시대적 사명을 자각시키고, 그리스도교적 증거의 생활을 격려 · 권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사회 구현에 이바지함을 그 설립 목적으로 함. 서울시 광진구 중곡1동 643-1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내 소재. 〔역대 위원장〕 초대~3대 황민성(黃旼性)베드로(1970. 8~1973. 6), 4대 지학순(池學淳) 다니엘(1973. 6~1979. 4), 5대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1979.4~1987. 11), 6대 박정일(朴正一) 미카엘(1987. 11~1990.11), 7대 경갑룡(景甲龍) 요셉(1990. 11~1996. 10), 8~9대 박석희(朴石熙) 이냐시오(1996. 10~2001.3), 10대 최영수(崔榮壽) 세례자 요한(2001.3~현재). 〔설립 및 활동〕 정의 평화위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공의회를 주관한 교황 바오로 6세는 1967년에 발표한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서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을 거듭 강조하면서, 교황청은 물론 각 지역 교회에 정의 평화위원회의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 회의는 1969년 10월 정기 총회에서 정의 평화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의하였고, 1970년 8월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정의 평화위원회는 설립 당시 활동이 미진하였지만, 1975년 12월에 주교 회의 상임 위원회 직속 기구로 재발족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명칭을 종전의 '한국 정의 평화위원회' 에서 '한국 천주교 정의 평화위원회' 로 고쳤는데, 이는 천주교회가 자신을 책임지고 좀 더 정돈된 자세로 활동을 해 나갈 결의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교육, 인권, 사회 경제, 홍보 등 4개의 분과를 설치함으로써 정의 평화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을 설정하였다. 1976년 12월에는 명동성당 3 · 1절 미사에서 '민주 구국 선언' 을 발표하고, 구속된 민주화 인사들을 위한 기도회를 주관하였다. 1977년 2월에는 한국의 인권 문제 등에 관한 메시지를 각국의 정의 평화위원회에 발송하여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렸다. 1978년 3월에는 성명서 <노동의 정의를 실천하라>를 발표하여 늘어나는 빈부의 격차를 비판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1980년 5월에는 성명서 <동일방직 노조를 정상화하라>를 발표하여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을 복직시키고, 노동 조합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82년 3월에는 노동자의 권익 보장과 농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결의문을 작성 · 발표하였고, 4월에는 미 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된 구속자들을 위한 특별 미사를 주관하였다. 1984년 2월에 개최된 정기 총회에서 인권 분과는 인권 침해 실태와 인권 운동 현황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인권 문제와 관련되어 구속된 양심수들을 위한 법률 구조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985년 2월에는 전년에 발생한 노동 문제, 노인 문제, 도시 빈민 문제 등과 관련된 자료를 종합한 자료집 《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1984년 노동자 · 농민 · 도시 빈민의 활동을 중심으로》를 발간하였으며, 5월에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서명 운동 결과를 모아서 작성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1986년 11월에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되어 구속된 양심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도시 빈민 노동자와 농민 등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명동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정의 평화위원회와 공동으로 '정의 평화를 위한 미사' 를 개최하였다. 1987년 1월에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관련하여 사건의 진실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5월에는 명동 성당에서 '민주화와 정의 평화 구현' 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1988년 3월에는 3 · 1 운동 69주년을 맞아 재일 동포의 법적 지위 문제와 국내의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재일 동포의 법적 지위와 지문 날인 거부 운동' 을 주제로 특별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6월 정기 총회에서는 담당 주교를 위원장 주교로 명칭을 수정하고, 총무직을 신설하는 한편 이사회를 폐지하고 상임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의 새 회칙을 마련하였다. 1990년에는 환경 보전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의 날 메시지를 실천하기 위해 환경 문제 자료집을 발간하였고, 환경 자문 위원단을 발족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2년 5월에는 '가톨릭 교회와 생명 운동' 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낙태를 반대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함을 역설하였고, 12월에는 세미나 자료를 모은 자료집 《모자보건법과 태아의 생명권》을 출간하였다. 1993년 11월에 개최된 정기 총회에서는 생명권 수호와 관련하여 낙태의 허용 범위를 규정한 헌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사형제도의 폐지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였다. 1995년 11월에는 '통일 시대의 지역 갈등' 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1998년 4월에는 세계 인권 선언을 기념하여 '인간 존엄성과 양심수' 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1999년 5월에는 대희년 맞이 세미나 '인간 존엄성과 사형 제도 폐지' 를 개최하였고, 12월에는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였으며, 2000년 12월에는 사형 제도 폐지 1차 서명 운동을 시작하였다. 2001년5월에는 사형 제도 폐지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6월에는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과 함께 범종교 연합 행사를 갖고 사형 제도의 폐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지속적인 환경 보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정의 평화위원회 산하 환경 소위원회를 설치하였다. 2002년에는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가두 음악회 개최,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 등을 통해 사형 제도의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 환경의 날 담화문 발표 등과 같이 환경 보호 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갔다. 2003년 4월에는 남북한이 진리, 정의, 사랑, 자유의 바탕 위에 어떻게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 나갈지를 모색하기 위해 '남북한 평화는 가능한가' 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와 같이 정의 평화위원회는 노동, 환경, 인권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한국 사회와 함께 고민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사회 사목; 세계 평화의 날)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 정의 평화위원회,《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한국 천주교 정의 평화위원회 설립 25주년 기념 자료집 : 1969~1994》, 1994/ <가톨릭 신문>/ <평화 신문>. 李文明 〔梁仁誠〕
정의 평화위원회
正義平和委員會
〔영〕Committee for Justice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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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