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경기도 여주(驪州) 출신. 정종호의 온 가족이 천주교를 믿었다. 그는 1800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 원경도(元景道,요한) 등과 함께 부활 축일을 지냈다. 그는 부활절에 가족, 교우들과 함께 길가에 모여 모두 큰 소리로 '알렐루야 와 '부활 삼종경' 을 외웠다. 얼마 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온 포졸들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그는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종호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다시 여주로 보내져 1801년 4월 25일(음 3월 13일) 여주 성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安應烈 · 崔奭祐 역, 《韓國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황사영 백서》 《邪學懲義》 . [梁仁誠]
정종호 (?~1801)
鄭宗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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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부활 축일을 위해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장만히는 정종호(탁희성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