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생활이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입장에서, 현재처한 상황에 대한 신학적 연구. '정치적 형태' 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상호 관계를 분석하는 실천 신학의 하나로, 시대의 표징을 밝혀 내고 실천하기 위해 연구되었다.
〔배 경〕 20세기에 그리스도교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모순 그리고 저항과 박해를 경험하였다. 소련 사회주의의 종교 박해와 파시즘하에서의 교회 투쟁,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군부 독재 정권이 자행한 박해 등은 교회와 국가의 전통적인 관계와 그리스도교 문화와의 공생 구조를 붕괴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는 현대인이 처한 문제들과 전망을 고민하면서 당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복음, 즉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전해야 했다. 즉 그리스도교가 그 상황에 적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결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전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유럽의 몇몇 신학자들이 이시대의 모순을 탐구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실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정치 신학이 태동하였다.
그런데 정치 신학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신학을 신화 신학, 자연 신학, 정치 신학 등의 세 가지로 구분한 스토아 학파에서였다. 로마 시대에 정치 신학은 자 연 신학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때 정치 신학은 정치의 우월성과 국가의 절대적 요구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러한 정치 신학은 르네상스 시기에 되살아났는데, 마키아벨리(N. di B. dei Machiaveli, 1469~1527)와 흡스(T. Hobbes, 1588~1679)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국가의 부활이라는 이념을 지녔던 19세기 프랑스의 전통주의자들 역시 정치 신학에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정치 신학의 개념이 현대에 다시 등장하였는데, 이 정치 신학은 종말론적 메시지의 공공적 성격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느님이 약속한 것은 단지 개인을 위한 새로운 자기 이해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복음의 내용이 개인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경우에도 사회적 환경 안에 있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정치적이며, 성서의 하느님은 비정치적이지도 않고(J. Moltmann)인간 상황의 중립적 관찰자도 아니며 불의의 세력에 대항해 투쟁하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 신학의 주요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메츠(J.B.Metz, 1928~ )와 몰트만(1926~ )의 사상은 비판적 사회학을 다루는 프랑크푸르트 학파(J. Habermas, M. Horkhei-mer, T. Adomo)와 철학자인 블로흐(E. Bloch, 1885~1977)의 유토피아적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메츠는 정치 신학이 교회 전통과 오늘의 정치 · 사회에 대한 비판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보고, 정치 신학의 과제를 종교와 사회, 교회와 사회의 공공성, 종말론적 신앙과 사회적인 실천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독일의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몰트만에 따르면, 정치 신학은 혁명 신학 · 해방 신학 · 흑인 신학 여성 신학 그리고 지역 성격에 따라 규정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신학과 같은 신학들의 출발점이다.
〔구 분〕 정치 신학은 크게 유럽의 정치 신학과 제3 세계의 상황 신학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의 정치 신학은 현대 세계를 지배와 종속의 구조로 보고, 지배라는 정치 상황에서 출발하였다. 유럽의 정치 신학자들은 현대 세계의 정치 질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고,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신의 상황도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도 이 지배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적이라는 견해에서 전개되었다. 메츠는 자신이 처한 유럽의 정치 상황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다른 모든 유럽 신학들이 부르주아적이고 자본주의 사회 내의 중간층에 봉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예수의 복음, 즉 가난한 자의 복음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학적 관점 안에서 정치적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사고와 저술의 학문적 상황을 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3 세계 신학자들은 메츠에 대해 평가하면서, 그가 사용한 언어와 개념들이 높은 지적 수준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로인해 그 역시 다른 교수들을 위해 글을 쓰는 교수일 뿐이라고 혹평하였다.
한편 미국의 종교 학자인 콕스(H.G. Cox, 1926~ )는 저서인 《세속 도시》(The Secular City : Secularization and Urbani-zation in Theological Perspective, 1990)에서 '혁명의 신학' 이라는 말은 오해받을 수 있기에 정치 신학이라는 말이 더적절하다고 하였다. 즉 오늘날과 같이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에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 할 때, 정치 신학은 정치에 대한 신학적인 관심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신학' 이란 말은 인간이 역사상 행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신학적인 비판과 해석이며, 이러한 신학적인 노력을 정치와 관련시켜 정치적 현실이 만드는 인간의 실존을 하느님의 공의(公儀)와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iung, 1963)에서는 정치 신학이란 용어가 언급되지 않지만, 그가 말하는 '희망의 신학' 은 행동신학의 성격을 띤다. 그리스도교 신학을 역사적 현실, 즉 정치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세속 질서에 속한 것으로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속 질서가 어떻게 하느님이 역사하는 장(場)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면에서 그의 신학도 정치 신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몰트만은 미래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 곧 인간의 현실을 좌우하는 정치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치가 곧 인간 자체의 현실 문제로서, 이것이 하느님의 현실이요 하느님의 과업이라며 정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이해 문제를 정치와 관련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인간의 역사적 현실을 하느님의 의(義)를 실행하는 신정론(thodic)에서 이해하려 하였다. 한편 그는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의 '복음에 대한 물음은 인간이 자기 실존에서만 제출할 수 있다 는 태도' 를 지양하고, 세계적 · 종말론적인 해석이 가능한 틀 속에서 물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몰트만은 복음을 정치와 관련시켜 물어야 하는 정치 신학이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살아가는 모습과 그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 상황 신학은 제3 세계의 해방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제3 세계의 지역적 상황에서 출발한 신학들이다. 이 신학들은 공통적으로 해 방을 주제로 삼았고, 실제 그 지역의 해방 운동과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다. 또한 이 신학들은 서구 신학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면서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도모하였다. 유럽의 정치 신학보다 현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거나, 현장의 실천 경험을 2차적으로 신학화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유럽 정치 신학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내용과 주요 관심〕 정치 신학은 성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신앙인들의 정치적 실천에 연결시키는 데우선적인 관심을 가졌다. 정치 신학자들은 출애급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을 통하여 해방자 하느님의 성격을 이 끌어 내고, 구세사 안에서 하느님의 정치적 개입의 흔적을 찾아냈다. 즉 예언자 전통과 복음의 사회적 해석 등이 신학적 숙고의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역사적 행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적 현실과 관련되어 항상 인간의 정치 문제에 하느님 자신의 의지와 계획을 알려 주는 분임을 밝혔다. 따라서 역사에서 인간이 관련된 정치는 하느님의 역사(activity)에 관련된 것이므로, 이는 곧 하느님의 정치적 참여이며 관심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숙고의 결과들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현세 질서에 대한 개입 그리고 도전과 저항의 근거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정치 신학은 '정치와 신학' 이 혼합되기를 원치않으며, 신학이 권력자를 합법화해 주고 그들을 재가하는 데 기여했던 정치 질서와 교회 사이의 동맹 관계도 반대하였다. 오히려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한 하느님의 관여를 제시함으로써 교회가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통찰은 남미의 해방 신학에 나타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편 정치 신학은 성서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넘어 그리스도교의 교의 전반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일례로 죄에 대한 해석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죄는 비정치적이고 개인의 내면 문제로 국한하여 해석되었었다. 그런데 정치 신학자들은 이러한 죄를 집단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국가와 사회 집단 그리고 인종 등의 개념을 개입시켜 죄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죄에 대한 사회적 해결이 개인의 문제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적인 개혁을 통해 죄가 줄어들 수 있다고 함으로써 죄의 구조적인 차원을 밝혔다. 이처럼 정치 신학은 개인의 변화를 넘어 세계의 변혁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으로 신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 놓았다. 물론 이들 이 신앙의 내면적 차원을 간과하거나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치 신학은 기존 교의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을 통하여 인간의 현실을 신학적으로 매개하고자 하였다.
〔영향과 평가〕 정치 신학은 모든 현실의 생활 상황이 문화적 현실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현실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신학들과 구별된다. 정치 신학자들은 모든 삶이 사실상 정치적이며 여러 면에서 정치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지적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과 교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성서적 · 신학적 근거를 밝힘으로써 이후에 등장하는 제3 세계 신학들의 논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삶의 정황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신학도 사실상 정치적이라는 것을 밝혀 신학자들에게 신학하는 자세를 일깨워 준 것도 이들의 공로일 것이다. 하지만 제3 세계, 특히 남미의 해방 신학자들은 정치 신학이 실천적인 측면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였다. 남미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 신학은 실천적인 것(JL. Segundo)이라기보다는 체계적인 회의(doubt)를 다룬 데카르트적 혁명, 즉 변혁을 가져올 운동에 동참하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일정한 입장을 취하는 이론적 원리와 방법일 뿐이었다. → 실천 신학 ; 제삼 세계 신학 ; 해방 신학)
※ 참고문헌 Jürgen Moltmann, 차옥승 역, 《오늘의 신학 무엇인가》, 한국신학연구소, 1989/ 기독교사상 편집부, 《한국의 정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83/ 박순경 외,《제삼 세계의 상황 신학》, 민중사, 1987/ 서광선, 《한국 기독교 정치 신학의 전개》,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 〔朴文洙〕
정치 신학
政治神學
〔영〕political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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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