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및 국가의 개념과 상관 관계에 대한 현실적 · 당위적 규정을 연구하는 학문. 때로는 그 실현을 목표로 하는 학문 영역. 정치 사상(Political Ideas, PoliticalThought) , 정치 이론(Political Theory)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론적인 내용의 실천을 강조하는 경우 정치 이념 또는 정치 이데올로기(Political Ideology)라고 표현한다.
〔의미와 주요 관점〕 하나의 유(類, species)인 인간(개인)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인간관이 정치 사상의 출발점이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의 문제, 개인은 과연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인가의 문제, 교육을 통해 사회적 · 정치적 존재로 키울 수 있는가의 문제, 이와 관련해 인간은 이성의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할 수 있는가의 문제, 한 개인안에서 이성과 신념(신앙)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이 인간관의 기초이다. 정치 철학은 이러한 인간(개인)이 집단으로서의 사회 공동체, 정치 공동체(국가, 권력)와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주로 다룬다. 개인의 가치와 사회의 규범 사이의 갈등과 조화의 문제, 어느 것을 우선하느냐의 문제, 또 인간의 존엄성을 구속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강제의 권위, 도덕성의 문제, 개인이 사회를 통해 권력에 복종할 수 있는 윤리와 자발성의 문제 등이 개인, 사회, 국가 간의 관계 설정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인간관에 기초한 사회관, 정치관은 세계관과도 관계를 갖는다. 신 또는 외부 세계로서의 자연, 우주 등과 연관한 개인의 규정, 세속 권력과 권위의 문제등은 인간관, 사회관, 정치관의 형성에 중요한 변수가된다.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회나 국가를 부차적이고 보조적으로 보면, 즉 개인이 사회나 국가보다 우선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경우 개인주의, 개인 자유주의나 자유주의의 입장이 부각된다. 개인의 사회적 존재, 사회적 소유를 논의의 기본으로 삼고 자유보다는 평등을 더 주장하면, 즉 사회가 개인이나 국가보다 우선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경우 사회주의, 공동체주의가 나타난다. 또한 개인이나 사회가 속해있는, 물리적으로 보다 큰 영역인 국가를 가장 중시하면, 즉 국가를 개인이나 사회보다 우월적 존재로 보는 경우 국가주의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개인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에 민주주의, 민족주의가 혼합되면 다양한 이념이 출현한다. 또한 여기에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 정치 체제의 경제적 기초에 관한 판단이 가세하면 더욱 복잡한 모습을 띠게 된다. 한편 이러한 정치 이념은 구체적인 정치 체제 형성의 토대가 되며 한 정치 체제 내의 권력 분포를 결정하게 된다. 정치 철학은 정치 체제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대성, 주권론, 인간관과 결부시켜 세 가지로 논의할 수 있다. 이 세 차원의 논의가 명확히 차별되는 것은 아니고 중첩되는 영역도 있다. 한 시대의 특징은 주권에 대한 입장을 전체적으로 나타내며, 한 시대의 인간관, 세계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시대성과 정치 체제론 : 고고학이나 인류학 등으로 확인 가능한 기원전 약 5,000년부터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까지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는 군주제를 정치 체제로 하였다. 통일 국가의 수립, 전제 왕권-중앙 집권 체제 확립 등의 과정은 군주제의 성립을 의미한다. 고대 메소 포타미아 · 이집트 · 에티오피아 ·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스라엘 · 아시리아 · 페르시아 · 인도 . 중국 · 아즈텍 ·마야 등의 왕국과 문명의 정치 체제는 군주제였다. 그리스 문명, 로마 제국과 동서 로마 제국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군주제에서 주권은 군주 또는 왕 한 사람에게만 있었고, 귀족은 왕권이 약화되었을 때 국가나 제국을 간접적으로 다스렸으며, 일반 국민들은 권력의 객체로 머물렀다. 하지만 귀족들이 왕권을 어느 정도 나누어 가져도 군주제라는 전체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한 왕권은 혈연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세습되었고 민주제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적' 으로 나타난 고대 그리스에서도,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기원전 3000~1100)부터 미케네(Myycene) 시대를 거쳐 기원전 7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군주제가 전통이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고위 행정관인 아르콘(ἄρχων)은 세습되지 않고 선출되었다. 그리고 혈연에 덧붙여 지연도 작용하였다. 솔론(Solon, 기원전 630?~560?)이후 아르콘들의 개혁 정치로 정치 참여가 확대되었고, 민주제의 원형은 페리클레스(Pericles, 기원전 495?~429)시대에 짧게 나타나고 사라졌다.
문헌으로 확인 가능한 시대부터 시대를 구분하면, 고대(Ancient) · 중세(Medieval) · 근대(Modern)로 나눌 수 있고, 각 시대는 성격이 서로 다르다. 각 시대에 성격을 부여한다면, '고대성' (Antiquity) '중세성' (Medievality) · '근대성' (Modermity으로 부른다. '중세성' 은 집단주의 ·공동체주의 · 초이성주의 · 신본주의 · 초법주의 등으로, '근대성' 은 개인주의, 자유주의 · 이성주의 · 인본주의 ·법치주의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생산 양식 측면에서 '중세성' 과 '근대성' 은 농노 · 장원 · 영주 중심의 농업경제, 소규모 가내 공업과 시민, 시장, 국가 중심의 상업경제, 대규모 생산 체제 등으로 차별된다. 중세성이 반영되는 정치 체제는 신정 정치 체제, 교황(교회) 중심 정치 체제, 장원 중심의 지역 공동체 등으로 부를 수 있다. 한편 '고대성' 은 중세성과 근대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데, 생산 양식 측면에서도 같은 지적을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Pax Greca,Pax Romana)는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근대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Pax Britannica, Pax Americana)의 본질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근대적인 민주 정치 체제와 중세적인 군주 정치 체제가, 고대 로마에서는 근대적인 공화 정치 체제와 중세적인 군주 정치체제(왕정-제정)가 시기에 따라 병존했다.
근대성이 반영되는 정치 체제를 민주 정치 체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성격이 대별된다고 해도 정치 체제는 시대성이 현실에서 실천되어 제도로 나타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근대의 시작을 언제로 하느 냐의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근대성이 사상가들을 통해 정리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분명 르네상스이며, 12세기의 십자군 이후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성의정치 체제인 민주 정치 체제가 서양에서 보편화되는 것은 계약 사상가, 자연법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17~18세기도 아니고 프랑스 대혁명 직후도 아니다. 19세기에 들어서 그것도 19세기 중 · 후반, 민족 국가의 성립 시기이 다. 따라서 서양의 근대 정치 체제인 민주 정치 체제의 현실적 역사도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주권론과 정치 체제론 :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은 《국가론》에서 주권(권력) 소유자의 수에 따라 정치 체제를 구분하였다. 즉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사람에게 주권(Sovereignty)이 있는 경우 군주 정치 체제, 여러 사람에게 주권이 있는 경우 귀족 정치 체제, 모든 사람에게 주권이 있는 경우 민주정치 체제라 하였다. 또한 주권의 행사가 정의의 실현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군주 정치 체제는 참주 정치 체제로, 귀족 정치 체제 는 과두 정치 체제로, 민주 정치 체제는 중우 정치 체제로 변질된다. 이러한 정치 체제 구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83~322/321)를 전후하여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30/420?), , 크세노폰(기원전 431~350) , 투키디데스(기원전 5세기경),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 등을 통하여 정형화되었다. 또한 이 정치 체제 구분은 서양 정치 사상사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즉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 마키아벨리(1469~1527), 근대 계약 사상가들, 계몽 사상가들 모두에게서 고대 그리스의 정치 체제 분류가 그대로 나타난다.
한편 국가의 구성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국민과 영토는 물리적 · 가시적 · 규정적인 데 반해, 주권은 추상적 · 비규정적이다. 따라서 주권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다양한 규정이 가능하다. 모든 시대에 국가는 항상 존재했다. 각 시대는 성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국가의 성격도 차이가 나며, 따라서 시대에 따라 주권의 성격도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주권론의 내용도 달라진다. 또한 주권의 분포 형태는 한 국가내의 권력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며, 이에따라 정치 체제의 모습이 달라진다.
주권과 역사적으로 맥락을 같이 하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경우 '키리온' (Κύριον, 어떤 행위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힘), '아르케' (ἀρχή, 권력 또는 권리) 등이며, 라틴어에서는 '우월' (supranus)과 '지배' (dominium)이다. 이 개념들은 근대의 주권 개념과 차이는 있지만, 주권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국가 형태는 도시 국가(polis)이다. 권력 소유자의 수에 따라 도시 국가의 정치 체제(politeia)는 달라진다. 각 정치 체제의 권력 소유자들이 바로 주권자이다. 주권이라는 개념이 명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도시 '국가' 가 존재했으며, 각 국가는 정치 체제에 따라 군주 주권(군주제, 참주제, 왕정), 인민 주권(민주제, 중우제)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주권의 현실적 근거는 관습법, 실정법이다.
주권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한 중세 말기 이후에는 주권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중세는 교회(교황) 주권론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주권론의 근거가 되는 법은 신법 또는 영원법이며, 국가의 형태는 교회 국가이다. 정치 체제는 군주제이다. 교회와 국가, 교황권과 황제권 사이에서 교회가 주권의 소유자이며, 교황권이 바로 주권이다. 개인과 사회는 국가와 동일시되며, 국가 속에 함몰되어 있다.
국가와 황제권이 서서히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근대가 성립되었다. 중세와 근대 과도기의 주권론은 군주 주권론이며, 이 주권론의 근거가 되는 법은 신법 또는 자연법이다. 국가의 형태는 군주 국가이며, 왕권 신수설을 바탕으로 한 절대 군주제가 현실적인 정치 체제이다. 군주, 귀족, 신민 사이에서 군주와 귀족이 우월한 존재이다. 이어서 절대 군주제는 계몽 군주제와 입헌 군주제로 진행되지만, 군주 주권론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계몽 군주제의 근거를 이성 주권론으로 볼 수도 있다). 군주가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는 주권의 소유자이다. 개인과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주와 신민의 관계는 군주와 시민의 관계로 서서히 변화되었다.
근대의 주권론은 인민(국민) 주권론이며, 이 주권론의 근거가 되는 법은 자연법이다. 국가의 형태는 민주 국가이며, 국가와 시민 사회의 관계가 중시된다. 국가는 시민들의 결사체이며, 주권의 소유자는 시민(개인)이다. 인간관과 정치 체제론 : 인간관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경우는 군주 정치 체제와 민주 정치 체제에서이다. 귀족 정치 체제는 이 둘의 중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정치 체제가 변질되어 나타나는 경우에도 지배 세력의 피지배 세력에 대한 인간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역사에서 확인된 사실은 혈연을 중심으로 씨족-부족공동체가 형성되고, 이 공동체들이 문화, 무력, 경제력등을 통해 정치 공동체로 변화한다. 국가 형성 단계에서 씨족 공동체, 부족 공동체는 사회 공동체로서의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는 단계에 있다. 씨족 국가, 부족국가라는 표현은 성립 불가능하다. 또한 영토의 규모로 볼 때, 이 씨족 공동체, 부족 공동체는 소규모의 도시를 이룬다. 따라서 도시 국가라는 표현도 적절치 못하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중앙 집권적인 전제 왕권이 성립되기 이전에 도시 국가들이 존재했다는 표현도 적절치 못하다. 한국사에서 삼한 시대에 존재했던 수십개의 국(國)도 국가 또는 도시 국가가 아니다.
사회 공동체를 거쳐 정치 공동체인 국가가 성립되면서 귀족 정치 체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씨족-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의 우수성에 대한 강조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귀족 정치 체제의 인간관은 지배 세력이 이성적 · 정신적 · 자율적 · 논리적임을 강조한다. 반면 피지배 세력을 감성적 · 육체적 · 예속적 · 비논리적 존재로 본다. 이러한 인간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 종교, 제사, 상징 등을 등장시켰다. 군주 정치 체제가 제도화되고 피지배 세력에 대한 통제 기구가 강화되면서 귀족 세력들이 등장하였다. 군주 정치 체제가 참주-폭군 정치 체제로 변질될 때, 귀족들의 할거, 분할 지배 체제가 성립되었지만 외형은 여전히 군주 정치 체제였다. 폭군 정치 체제만은 방지하자는 주장은 계몽 군주제, 입헌 군주제로 이어질 수 있다. 피지배 세력들은 현실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이상 정치 체제를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저항에 피지배 세력이 현실적으로 가세하여 군주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위기에 처할 경우, 타협책으로 공화 정치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군주-귀족-백성들의 견제와 균형이 잠정적으로 유지된다.
한편 피지배 세력이 참주, 폭군, 절대 군주에 대한 저항에서 승리하여 주권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 민주 정치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에서 솔론 이후 페리클레스에 이르기까지 약 150년간 대단히 제한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전의 모든 지역 역사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 150년 이후 19세기까지 서양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로마도 왕정(군주 정치 체제)에서 공화 정치 체제로 바뀐 후, 공화정은 민주정으로 진행되지 않고 다시 군주정(제정)으로 나아갔다. 이후 서유럽에서는 12~13세기까지 이슬람, 터키 지역과 마찬가지로 군주 정치 체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서유럽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동로마 제국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일치가 나타난 점이 차이가 있으나, 외형적 정치 체제는 군주 정치 체제이다.
하지만 서유럽에서는 12~13세기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정치 체제의 성격이 서서히 변화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실리우스, 오컴(William ofOckham, 1285~1349)등이 중세성과 근대성의 과도기에 활동한 사상가들이다. 중세성이 비판되지만 근대성을 전면적인 대안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과도기의 단테(A. Dante, 1265~1321)도 주목할 만하다.
동양의 경우, 선사 시대 이후 보편적인 정치 체제 형태는 귀족 정치 체제와 군주 정치 체제였다. 서양에서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인 절대 군주 정치 체제 시대 이후 근대의 제도화 시기인 19세기의 민주 정치 체제 시대에 이르러서야 동양은 민주 정치 체제에 대하여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민주 정치체제는 피지배 세력인 일반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고, 인민 주권을 강조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국민은 감성적-이성적, 육체적-정신적, 노예적-자율적 현재적-미래 지향적, 예속 추구-자유 추구, 의존적-자립적정적-동적, 비논리적-논리적, 소극적-적극적인 모습을 모두 갖고 있지만 정치 공동체에서는 후자들의 모습을 더 중시한다. 전자들의 모습으로 거의 모든 시대를 보냈던 동양은 서양에 대한 반감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후자들의 가치를 본연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방법론과 인접 학문〕 정치 철학의 연구 방법론은 크게 철학적 방법론과 과학적 방법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인식론, 존재론 등을 위주로 하는 형이상학(또는 신학) 체계로 인간관, 세계관을 성립시킨 후, 이것을 토대로 하여 정치 철학, 윤리 철학을 전개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위적인 정언 명제들이 강조되고,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들은 소홀히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과학적 방법론은 분석, 종합, 예측을 위주로 하는 근대의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이성을 주요 수단으로 한다. 과학적인 여러 학문 분야의 업적을 활용하면서 정치 철학을 제시하지만, 현상 분석에 그치고 당위적인 방향의 제시나 실천은 소홀히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철학적 방법론과 과학적 방법론을 적절하게 결합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교회와 정치 철학〕 가톨릭 교회는 '사회적 가르침' 을 통해 정치 철학에 대한 기본 입장을 보여 준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된 교회' 로서 사회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종교 중 하나로서가 아니라 '하나' 인 교회로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를 가르친다. 교회의 가르침에서 세속 정치 철학의 관점을 풍부하게 끌어낼 수 있다. 주요 개념은 자연법, 인간의 존엄성, 보조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공동선, 민주주의 등이다. 그래서 자연법에 기초한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 집단(사회)의 이익 추구를 보장하고 이 보장 을 위해 자발적인 연대성을 충분히 확보해 주는 일, 국가 가 개인과 사회의 자율성이 드러나도록 보조적인 역할에머무는 일, 국제적으로도 개인 · 사회(집단) · 국가라는주체들이 이러한 일들을 충분히 이루도록 하는 일 등이 공동선을 위한 정신들이다.
교회는 특정 정치 철학(정치 이데올로기)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민주주의의 경우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에만 찬성할 뿐,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 촉구는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기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영역에서 자유주의(개인 자유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 독재 정치)를 거부하며, 경제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사회주의를 거부한다. 가톨릭 교회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의 개선을 촉구하지만, 자유주의를 위한 사회주의 입장의 개선책은 반대한다. 가톨릭 교회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의 개선을 촉구하지만, 사회주의 입장의 개선책은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19세기 초 · 중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발달로 형성되었지만, 정치적 억압과 극단적인 빈부의 차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는 비판을 하고 혁명이라는 방법으로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 은 이러한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질타로 제시되었다.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을 담은 최초의 문헌은 회칙<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이다. 이 회칙은 마르크스(K.H. Marx, 1818~1883) 사후 8년 뒤에 선포되었다. 마르크스주의만큼의 역사를 지닌 <노동 헌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사회주의적 발상의 거부이다. 이 회칙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진화에 따라 이후 반포 기념으로 발표된 회칙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되면서, 자본주의의 수정과 사회주의 체제의 비판에 기여해왔다. 즉 <노동 헌장> 반포 40주년을 기념한 회칙인 <40주년>(Qurdragesimo Anno, 1931), 50주년을 기념한 교황비오 12세(1939~1958)의 라디오 메시지, 반포 70주년을 기념한 <어머니와 교사>(Master et Magistra, 1961)와 <80주년>(Octogesima advenien, 1971), 90주년을 기념해 발표된<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 그리고 <백 주년>(Centesimus Annus, 1991) 등이다. → 사회 회칙 ; 정치)
※ 참고문헌 나정원 , 《플라톤의 정치 사상》, 법 문사, 1989/ 나정원, 《인간과 정치 사상》, 인간사랑, 2003/ E. Barker, Political Thought, Plato Aristotle. Dover, 1906/ Leo Strauss, What is Political Philosophy, Free Press of Glencoe, 1959/ A. Brecht, Political Theory, Princeton univ. Press, 1959/ R. Polin, Ethique et Politique, Sirey, 1968/ F. Chatelet, Histoire des Ideologies, Hachette vol. I-I, 1978/ E. Weil, Philosophie Politique, J. Vrin, 1984/ Luc Ferry, Philosophie Politique, PUF, 1984. 〔羅禎源〕
정치 철학
政治哲學
〔라〕Philosophia politica · 〔영〕Political Philosophy
글자 크기
1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