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2동 182-16 소재. 1942년 5월 16일 혜화동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관할 구역은 제기1 · 2동, 용두1 · 2동, 안암3 · 4 · 5가 전지역. 〔교 세〕 1965년 3,500명, 1971년 3,400명, 1976년3,190명, 1981년 3,286명, 1986년 4,496명, 1991년 3,753명, 1996년 3,804명, 2002년 3,709명. 〔역대 신부〕 초대 콜랭(Colin, 高一郎) 요한(1942~1947. 9), 2대 이삼복(李三馥) 요한(1947. 9~1950. 12), 3대 방유룡(方有龍) 레오(1950. 12~1955. 1), 4대 김제근(金濟根) 토마스(1955. 1~1958. 9), 5대 김덕제(金德濟) 치릴로(1958.9~1962. 12), 6대 윤병희(尹炳熙) 바오로(1962. 12~1967.8), 7대 조창희(趙昌熙) 베네딕도(1967. 8~1969. 2), 8대 이석충(李錫忠) 요한(1969. 2~1974.5), 9대 김정수(金晶壽) 레오(1974. 5~1978. 8), 10대 구전회(具田會) 바르톨 로메오(1978. 8~1983.8), 11대 김정직(金正直) 디오니시오(1983. 8~1988. 9), 12대 박인선(朴仁善) 도미니코(1988. 9~1993. 10), 13대 김병학(金丙學) 라파엘(1993.10~1998. 9), 14대 이종환(李鍾煥) 미카엘(1998. 9~2003.9), 15대 함세웅(咸世雄) 아우구스티노(2003. 9~현재).
서울대교구에서는 동대문 밖에 본당을 설립하기 위하여 1932년 5월 6일 제기동 260번지 소재 초가와 부지 (260평)를 구입하였는데, 이 초가를 중심으로 제기동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942년 2월 일본이 사제 양성기관인 예수성심신학교를 폐쇄시키자,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던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콜랭 신부는 본국으로의 귀국을 거부하고 혜화동 본당 4대 주임 생제(P. Singer,成載德) 신부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던 제기동 공소의 주임 신부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 1942년 5월 혜화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제기동 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콜랭 신부가 임명되었다. 콜랭 신부는 공소 건물로 사용하던 초가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42년 가을부터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5월 단층 성당(42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44년 10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삼복 신부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하며 본당 재정 자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본당 공동체는 주임 신부의 의욕적인 지도에 힘입어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인해 이삼복 신부는 사목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7월 말 이 신부가 잠시 성당을 떠나 피신해 있던 동안에는 성당이 북한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다. 3대 주임 방유룡 신부 재임기에도 전쟁으로 인해 본당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난 뒤 다시 교회 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신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방 신부는 1954년 4월 성당 신축을 계획하고 11월 현 본당 소재의 부지(508평)를 매입하였다.
4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제근 신부는 전교 및 성당 건축에 중점을 두고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고, 1955년 10월 9일에는 신자 증가로 인하여 청량리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1955년 11월부터 석조 성당 신축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1958년 9월 5일 김제근 신부가 과로로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자들은 5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덕제 신부와 함께 다시 공사를 진행하여, 1959년 8월 준 고딕 양식의 2층 성당(118평)을 완공하고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김 신부는 새 성당 건립을 계기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 를 새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사목의 방향을 본당의 내실화로 정하여, 회장단을 젊은 연령층으로 개편하였다. 한편, 구(舊) 성당은 교구의 지시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중국인 성당으로 대여해 주게 되었다. 6대 주임 윤병희 신부는 1963년 8월 중국인 본당이 교통의 불편 등을 이유로 명동 성모병원 옆 건물로 이전하자, 그곳에 유치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1964년 5월 '소화유치원' 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8대 주임 이석충 신부는 1970년 4월 3층으로 된 사제관(40평)을 개축하였다.
9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정수 신부는 1974년 본당 주보를 발행하고 성가대(1974) , 명도회(1978), 정우회(1978)등의 여러 사도직 단체들을 발족시켜 교세 확장에 전력을 다하였다.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구전회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집중 육성하여 구 신부의 재임기에 13개의 쁘레시디움이 설립되었고, 본당 최초의 꾸리아인 '사랑의 모후' 꾸리아가 1982년 12월 창단되었다.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정직 신부는 1984년 3월부터 본당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4월에 봉헌식을 가졌다. 한편 1964년 설립된 이래 운영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소화유치원은 1988년 유치원 통원 버스를 구입한 이후 입학 아동수가 증가하며 발전을 거듭하였다. 또한 김 신부는 본당 숙원 사업 중 하나인 교육관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84년 3월 제기2동 182-14번지(103평)의 대지를 매입하였고, 1987년에 182-13번지(47평)의 대지를 추가 매입하였지만 김 신부 재임 중에는 착공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인선 신부는 1990년 2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관 추진 위원회' 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 결과, 1992년 11월 공사를 시작하여 1993년 11월 기념관의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병학 신부는 성당 앞 도로의 원활한 진 · 출입을 위해 1995년 6월 성당 앞을 가로막고 있던 제기동 182-36번지 84㎡의 토지를 매입하여 성당 출입의 편의를 도모하였고, 성당 조경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14대 주임 이종환 신부의 재임기였던 2002년 5월에는 본당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식과 더불어 강우일(姜禹-, 베드로) 주교의 집전으로 기념 미사가 봉헌 되었다. 한편, 소화유치원 인근의 토지가 2002년 재건축지로 승인되어 유치원의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었다.이에 제기동 55-20번지 외 10필지 1,057㎡에 연면적657.85㎡의 건물을 신축하여, 2003년 봄부터 소화유치원은 새 건물에서 원아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재임 중 구역별 연도 대회 및 피정 등 신자들의 영성 생활과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강조하던 이종환 신부는 2003년 9월 제기동 본당의 주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15대 주임으로 함세웅 신부가 부임하였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제기동교회 50년사 편찬위원회, 《제기동본당 50년사》, 천주교 제기동 교회 , 1992. 〔洪延周〕
제기동 본당
祭基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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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본당의 과거(1984년, 왼쪽)와 현재.
